당신은 예수님은 마음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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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74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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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9:1-10 당신은 예수님은 마음을 아십니까
어떤 목사님이 한 농가에서 한동안 하숙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크리스천이 아니었지만 그의 아내는 오랫동안 남편을 위해 기도를 해오고 있는 터였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은 언젠가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참뜻을 주인에게 이 설명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농장 주인이 목사님에게 닭장으로 함께 가보자고 했습니다. 둥지에 죽은 암탉 한 마리가 앉아있었는데 그 날개 밑에서 어린병아리들이 뽀죽뽀죽 밖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농장 주인이 말했습니다.「머리에 난 상처를 좀 보십시오. 간밤에 족제비가 피를 몽땅 빨아 먹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 병아리들이 족제비에게 다칠까봐 죽어가면서도 꼼짝도 않고 가만있었던 거죠.」
그때 그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의 모습과 꼭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그 모든 고통을 견디셨습니다. 움직일 수도 있었고 내려 올 수도 있었고 목숨을 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예수님이 움직였더라면 그 십자가에서 내려 오셨다면 선생님과 나는 죽게 되었을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를 그 고통스럽고 괴로움을 참으면서 왜? 목숨까지 다 희생하시면서 지셨습니까?
바로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시기 위함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와 똑 같은 육신을 가지신 그분이 말입니다.
이런 주님의 마음을 한번 헤아려 보셨습니까?
주님 가신 실 십자가의 길 외롭고 무거웠던 길 골고다의 거친 언덕길 지치신 주님의 모습 오 나의 주님 용서하소서. 죄인 위해 고난 받으셨네. 이 세상에 생명 주시길 그렇게도 원하셨던 길
이 세상에 생명 주시길 그렇게도 원하셨던 길 …….
예수님은 분명히 자신의 마음을 잘 들어 내 놓고 계십니다.
10절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할렐루야!
이런 주님을 우리는 얼마나 외면하였고 당신을 전부다 희생하신 주님에게 아직도 십자가에 또 달리시라고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번 수난절에는 이미 이루어 놓으신 예수님의 구원을 우리의 삶 가운데 받아 드리고 이루시는 기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겟세마네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왜? 예수님은 당신이 피 땀 흘리며 기도하신 그 동산에서 함께 기도를 하시자고 하셨습니까?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의 구원의 고난을 담당하시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를 통하여이미 이루어진 구원의 축복을 받으시라고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각 교회마다 기도하며 그 구원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도 남은 2주간은 특별히 기도를 통하여 구원의 기쁨에 참여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또 이번 수난절은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는 축복의 기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하시는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양을 구원하려 함이니라 할렐루야!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모른다면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믿는다고 하지만 다른 이에게 복음을 한번 전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와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아버지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가장 교제를 잘 하는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을 시인하는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도 인정이 되고 예수님을 시인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도 그 사람을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항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예수님의 뜨거우신 열정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영혼을 위한 어떤 열정을 가지고 계셨습니까?
많은 사람 중에서 구원을 받을 자를 찾고 계시는 주님입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구원이 필요한 자가 뜨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꼭 구원을 받아야 할 자가 그 눈에는 보이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의 눈에는 어떤 사람이 눈에 뜨이십니까?
잘 생긴 사람, 돈 많은 사람, 인기 있는 사람, 내게 유익을 주는 사람입니까?
그러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꼭 구원을 받을 사람이 눈에 보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참으로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구원을 받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부모 형제 사랑하는 내 남편 가족들이 내 친구 친지 이웃이 우리의 눈에는 모두가 구원을 받아야 할 자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적으로 예수님이 그들의 구주가 되심을 믿지 못하고 세상에서 구세주를 찾으려고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한번 세상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보면 한결같이 세상 이야만 그들의 주제가 되어 잇지 않습니까?
돈!돈!돈! 명예!명예!명예! 쾌락!쾌락!쾌락! 이것이 그들의 구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구주로 여기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에 나오는 삭개오 역시 그런 인물이었지만 이제는 그는 알았어요.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물질로 구원함에 이르지 못함을 알았고 은근히 진정한 구원을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유했지만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했지만 그의 마음은 항상 빈곤했습니다.
주변에는 자신을 진실로 아껴주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이웃이 없었습니다. 염려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독했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생의 의욕을 잃어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허무하기만 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 인생의 마지막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이런 인물들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자는 그 누구도 다 그런 인물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자 못한 내 부모 형제 내 자녀 내 남편 내 아내가 지금 이렇게 방황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왜? 내 눈에는 그런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그런 인물이 눈에 들어오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십시오.
삭개오와 같이 구원 받아야 할 자들이 내 주위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냥 죽어 기도록 방치 하시렵니까?
예수님의 영혼에 대한 열정이 어떠하였습니까?
예수님은 그에게 참으로 필요한 복음 곧 말씀으로 함께 하시기를 원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그 사람과 함께하여 예수님의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십니다. 생명을 살리는 영생하는 물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자에게도 합당한 말씀으로 그들을 살릴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니 죽은 나사로도 살아나며 에스겔의 마름 뼈들도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할렐루야!
아무도 세리인 삭개오와는 함께 하기를 꺼려했습니다.
당시에 세리는 몸을 파는 창기와 같은 더러운 죄인이라는 취급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감히 그 누구도 가까이 하기 싫은 자를 주님은 가까이 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 이들까지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참으로 한 영혼이라도 그냥 못 본체 하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병정들을 향하여도 예수님은 저들이 하는 일을 저들이 모르고 있으니 용서하여 달라는 기도를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천하에 그 어떤 사람도 예수님의 구원의 대상에서 벗어 날 자가 없고 그 어떠한 인물도 예수님은 능히 구원하실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살인강도도 남편이 5명이 되는 여자도 사기꾼도 그 누구도 구원을 받게 하는 일이 저와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끼치거나 하니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자가 있으면 죽어도 용서해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저주도 그런 저주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연히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서 함께 하시겠다는 것을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찌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거하려고 하시느냐? 고 의아해 하는 것 아닙니까?
복음을 전함으로 자신의 입장이 낮아 질까봐? 복음 전해서 자신이 무슨 손해를 볼까봐?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자신이 스타일을 망치는 줄 알고 예수를 믿노라고 하면서도 한번도 복음을 전하지 않는 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헛되이 돌리는 일이요 그 가치를 무력화 시키는 가장 악한 일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한 달란트 그대로 가지고 왔을 때에 주님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책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구원도 빼앗기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의 삶이 참으로 불행해 지고 자꾸만 후회가 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전혀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나만 열심히 믿고 있는 자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장 악한 사람입니다.
우리 보고들은 것을 어찌 전하지 않으리오. 하는 사도들과 같이 어찌 받은 은혜를 전하지 않으려고 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열정은 참으로 못난 자들을 불러서 하나님의 큰 일군으로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할렐루야!
아주 귀하고 복되게 선을 위하는 인물로 만들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나 같은 못난 자를 불러서 하나님의 귀한 일군으로 만들어 주심을 감사하고 영광 돌리는 자가 잇습니까?
우리 모두가 그런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귀한 자가 되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그런 놀라운 일이 일어 날 것입니다.
예수 믿고 왕자 됐네. 왕자 됐네. 예수 믿고 공주 됐네. 공주 됐네. 할렐루야!
죄짐를 다 벗어 버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는 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지금 미국등지에서는 그리스도의 고난이라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이 영회를 미국에서 한 젊은 청년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청년은 임신한 자신의 애인을 더 이상 사귀기가 싫다는 이유로 목 졸라 살해한 자였는데 그만 이 영화에서 예수님을 만나 자수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여인은 자살한 것으로 이미 결론을 받은 사건으로 사건 종결이 되었던 일이 었습니다.
그는 자수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종신형을 검찰로부터 선고를 받는 일을 기꺼이 치렀다고 하니 얼마나 이 예수님이 사람을 복되고 귀한 그릇으로 만드는 분이 아니겠습니까?
플로리다 주에서는 은행 강도가 자수를 하는 등 숱한 화재가 낳고 잇다는 했습니다.
그러니 세리 삭개오 역시 그가 만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를 고백하고 깨끗하게 되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가진 것의 절반을 가난한 자를 위해 나눠 주고 토색한 것은 4배나 갚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는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온 그 어느 때보다 가장 행복한 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자신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행복이 무엇입니까? 칼 틸리히는 행복은 서로 그리워하는 것, 서로 마주 보는 것, 서로 자기를 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행복은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그리워해야 그것이 사랑이고 행복입니다. 한 사람만 사랑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또 행복은 서로 마주 보는 것입니다. 나는 그를 보고 그는 나를 볼 때 그게 사랑이고 행복입니다. 나는 그를 보는데 그는 딴 사람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도 아니고 행복도 아닙니다.
또 행복은 자기를 주는 것입니다. 다 주는 것입니다. 마음도 주고, 정신도 다 주는 것입니다. 다 주고 난 후에는 자존심도 녹아 버리고, 체면도 녹아서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그러고 난 후에야 비로소 진짜 사랑이 나오고, 진정한 기쁨이 나오고, 피차간에 비밀이 없어지고, 욕심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때 튀어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대로 죽어도 좋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정말 행복해지면 죽음도 두렵지 않은 마음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삭개오는 자신을 다 주어도 행복한 자가 되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이같이 예수님은 그 어떤 자라도 새로운 자 복된 자가 되시기 위하시는 열정을 가지고 모든 자를 바라보십시다.
왜요? 예수님 당신이 친히 인간의 모든 허물과 죄악을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예수님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어떤 사람도 책임지시고 귀하고 복된 자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눈에는 그 어떤 자도 부정적이고 저주 받을 자가 없고 다 구원의 은혜를 입을 자로 보이시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 무슨 말이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의 눈에도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보일까요?
그 누구든지 예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귀하고 복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처한 그 어떤 사람도 우리 예수님으로 인하여 아주 귀하고 복된 자가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니 여러분들의 주위에 있는 그 어떤 인물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참으로 놀라운 자들이 될 수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예수님을 전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두고 방치 하는 일이야 말로 얼마나 악한 자이겠습니까?
복음을 줄려고 하지는 않고 부모 자식 걱정만 하고 있어야 되겠습니까?
참으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는 일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번 수난절에는 과연 나로 말미암아 누가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복음 전하는 아름다운 기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장 악한 자가 아니라 가장 복된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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