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족함이 보이십니까? 그러면 당신에게 하나님의 가능성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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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80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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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8 : 21-30 나의 부족함이 보이십니까? 그러면 당신에게 하나님의 가능성이 보입니다.
3,500억을 하나님께 감사드린 사람의 글을 읽었습니다.
어떻게 하여 이렇게 많은 돈을 감사하였을까?
옥공예의 중요무형문화재 장주원장로입니다.
목포 창조교회 장로, 경기대 석좌교수, 미술학 명예박사 지금 그의 나이 69세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생활 방편으로 옥공예를 하였지만 예수님을 알고부터는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로 목적의식을 갖고 공예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5년 전에 불교 천태종으로부터 삼십삼만삼천삼백삼십삼개의 불상을 만들어 줄 것을 제의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면 옥공예가로서 공예역사상 불교역사상 기록에 남을 일이며 가문의 영광이 될 일이기에 하고 너무나도 욕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더욱이 장로로서 불상을 만들었을 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거기에다가 절을 하겠는가? 이런 갈등 속에서 인간이기에 또 옥 공예가이기에 이것을 물리친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시험이었다고 합니다.
마침 한 교회에 시무하시던 장로님이 그 불상을 만들게 되면 얼마나 돈을 벌수 있는가? 물어보았을 때에 1개에 10만원이면 350억원, 100만원이면 3500억원, 그러면 여기서 장로님은 불상을 만들지 않게 되면 하나님께 감사헌금으로 3500억원을 드리는 것이 됩니다. 그 말을 듣고 불상에 대한 고민이 해결되고 마음에 하지 않을 이유가 생긴 것에 감사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 후로 하나님의 은혜로 대한민국 옥공예 수준을 세계 최고로 끌어 올리게 되었고 옥공예의 종주국인 중국 신광에서 추출되던 양질의 옥이 바닥을 보였는데 3년 전에 하나님이 여태까지 숨겨두셨다가 러시아연방 브리아띠아 공화국에서 세계 최대의 옥 광산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이 발굴 할 수 있는 라이센스를 따내게 하여 지금 그 러시아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또한 오는 3월에는 목포 갓바위에 옥장 중요무형문화재 전시회장을 오픈하고 미국의 세계적인 박물관인 워싱턴 소재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옥공예 2점을 의뢰를 받고 코리아환타지아와 500나한상을 제작 중이니 예술가로서 세계적인 명예가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 자신의 욕심과 정욕과 혈육적인 것에서 매여 참으로 가장 버리기 어려운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내 삶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에 맞추고 나아가니 그에게 나아가는 길은 하나님이 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믿음적이지 않습니까?
불상 333333개를 만들었다면 돈과 명예는 얻었을지는 몰라도 그 인생은 우상을 333333개를 만드는 것이 되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평생을 후회하고 가슴이 아픈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불상을 만들지 않는 것을 3500억원 감사 헌금을 드리는 기쁨으로 바꿀 수 있었을 때에 이 얼마나 은혜로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랬더니 그의 앞길에는 내가 예상하지도 않는 그의 한 말대로 하나님이 여태까지 숨겨 두었던 세계 최대의 옥 광산 채굴권을 얻게 되었고 년 1000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오는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 그의 옥 기술을 과시 할 수 있으니 이것보다 더 큰 명예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제가 여기에 두 번을 다녀왔는데 무지 무지하게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입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께 합당치 않는 것은 감사함으로 버리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리는 자라는 말은 내게 속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제 설정하라는 말씀입니다.
일단 내가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이런 것들로 하나님께 걸림돌이 되지 말아야지 오히려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옥공예가 불상 333333개의 유혹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이 되어야 겠습니까?
오히려 불상 333333개를 버림으로서 그가 가진 옥공예는 하나님께 영광이 된 것입니다.
왜 내게 주신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일로 만들지 못하고 죄를 짓고 축복을 막는 일이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난 철야 시간에 왕권을 가진 다윗은 이 왕권을 가지고 자신을 저주하는 시므이에게 부하 아비새 장군의 말대로 단 칼에 그 늙은이의 목을 벨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왕권을 그 순간에는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왕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 것입니다.
나 두어라 이 일이 하나님께로 난 것인데 누가 탓 할 것이냐?
이 일로 하나님은 나의 원통함을 들으시고 저주를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이 얼마나 왕의 자리가 빛이 더 나는 것 아닙니까?
만약에 목을 베었다면 그 왕의 자리는 자신이 지금 아들의 쿠데타를 피하여 가는 처지만큼 자신의 처지는 서글펴셨을 것입니다.
내게 무엇인가가 주어졌다고 나를 주장하고 나의 권을 주장하고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얼마나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하나님의 선을 쫒은 일이 멋이 있습니까?
우리 성도들의 삶은 날마다 이런 삶이 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가능성을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가능성을 따라 가는 자가 되십시다.
말 그대로 여러 배를 받을 것이며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27절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하고 능력은 하나님의 생각과 능력에 미치지 못한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생각은 멸망이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과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믿는 자는 더 이상 인간의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어 놓은 자가 아니라 인간의 제한된 권에서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가능성에 내 인생을 열어 놓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나를 두둔하고 변명하는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간적인 냄새를 풍기지 말자는 것입니다.
돈 있다고 돈 냄새 풍기고 이런 사람은 돈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됩니다.
지위가 주어졌다고 권력의 냄새 풍기고 이런 사람의 힘 때문에 많는 사람이 괴로워합니다.
그것은 아무리 의롭다 할지라도 지독한 냄새를 내는 악취에 불과한 것입니다.
돈을 통하여 사람을 살리고 권력으로 용기를 주고 인도함을 주어야지
나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다른 이들이 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성도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성도들이 그 향기에 참으로 흐뭇하고 너무 너무 목회가 행복하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그 사람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정말로 머리가 아프고 기분이 상할 정도로 악취가 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자신을 얼마나 드러내는지....
똑같은 삶을 살면서 일을 하면서 이렇게 다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한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 영생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가 들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을 완벽하게 내 세우고 있을 뿐입니다.
네가 계명에 대하여 알고 있느냐? 는 질문에 율법을 알고 있을 정도가 아니라 어려서부터 잘 지켜 왔다는 말로 응해 왔습니다.
그런데 왜 그에게는 구원의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까?
자신의 의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선의 요구에 행동 할 의지도 이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에서 탈피를 못하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가장 힘든 자입니다. 아주 골동품입니다.
주님은 이런 자들에게 언제든지 들려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직도 그리스도인으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나 스스로 족하게 여기고 있으니 하나님의 은혜받기가 상당히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 율법을 다 지켰다고 그래 그 율법을 확인해 보자
네게 있는 재산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늘의 창고가 열릴 것이고 그런 자가 나를 따르는 자야
이 한 말에 이 청년은 한 방에 가버렸습니다.
여태까지 주를 위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이었다는 것이 증명이 되었습니다.
주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든지 자신이 드려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앙생활을 하기는 하지만 아직도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이고 주를 위한다고 하지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내어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자신이 얼마나 의롭고 잘났다고 대답을 하니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잘 해왔다고 하니 할 말이 없는 것 아닙니까?
왜? 우리 가운데는 아직도 이런 나 자신을 자랑하고 있어야 되겠습니까?
우리 인생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로마서 3장10절 \\의인은 없다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말합니다.
야고보서 3장 2절에서도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말씀합니다,
바벨론의 마지막 왕은 벧사살 왕은. 지금의 미국과 러시아를합친 것보다 더 큰 국가를 건설한 나라의 왕으로, 어느 날 연회장의 벽에 손가락이 나타나더니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자가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왕의인격 됨돔이를 세어보니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하니 이 나라를 갈라서 메대와페르시아 나라로 갈라버리겠다는 뜻입니다. 전 세계 최고의 군왕도하나님의 저울에 달렸을 때는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자신의 형편과 처치를 굳게 세우는 자는 은혜의 길을 제시해 주어도 상당히 부담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태까지 주님께 나아와서 신앙의 생활을 하지만 하나님과의 합일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도 무엇을 행해야 할지도 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것만 열심히 주장하고 자신이 가장 의로움 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길에는 언제든지 그 구원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준비되시기를 원하십니다.
너무나도 나의 것으로만 가득차있기 때문입니다.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 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의 무엇을 빼앗아 가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채워주시려는 것입니다.
더 나는 것을 주시고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하여 내 것으로 가득 찬 그것을 빼 버리시려고 하십니다.
이 부자 청년의 재산을 빼앗아 가려는 것 아닙니다.
여러분의 재산을 빼앗아 가려는 것 아닙니다.
교회가 모든 것 다 가져 가는 줄 아는데 그것아닙니다.
하늘의 보물을 주시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영생을 주시기 위하심입니다.
내게 속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요구에 합하게 사용하지 못했음을 시인합시다.
그런 자는 주의 요구에 무엇이든지 적극성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여태까지 나는 주의 요구를 얼마나 묵살 시킨지 모릅니다.
거기에다가 근심까지 하고 혈기는 부릴 대로 부르고 …….
우물을 파려고 하는데 열 자를 팠는데 물이 나오는데 그 물은 진짜 생수가 아닙니다. 더 좋은 생수가 나오려면 더 깊이 파야 되는데 더 깊이 파다 보니 반석이 나왔는데 그 드러나지 않는 저 깊은 곳에 있는 반석, 마지막 저항, 마지막 깨지지 않는 부분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반석이 나왔으니 그만 둘까? 그래도 물은 나오니까 적당하게 살 것이냐, 아니면 이 반석만 깨면 그 속에서 진짜 생수가 터져 나올 것인데 자!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하나님이 거기까지 오시는 것입니다. \\내 속에, 내 안에 아직도 안 깨진 것이 있구나!\\ 그걸 인정하라.
아직도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는 부분을 솔직히 시인하고 드려 내 놓으시기 바랍니다.
\\오! 하나님 저를 깨뜨려 주시옵소서. 바로 제가 깨져야 됩니다.\\ \\깨지기만 하면 너를 향하여 아낌없이 내가 은혜와 복을 부어 주리라. 그리고 너의 가정이 살고, 너의 자녀가 살고, 너의 하는 모든 일들이 영생의 은혜로 살아나게 될 것이고 하늘의 보화를 부어주리라 \\
\\오! 하나님 맞습니다. 오늘의 많은 고통이 바로 무엇을 위한 고난인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깨뜨리심으로 그리고 그 다음에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힘없는 영생에 샘물이 콸콸 쏟아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손길이 여기 있구나! 하나님 알았습니다. 제가 받아 드리겠습니다. 저는 정말 깨져야 될 존재입니다. 저를 깨뜨려 주시옵소서\\ 하고 받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면은 아마 이런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주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고백이 따를 것입니다.
주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서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유명한 위인들은 이렇게 자신의 일생을 그렇게 위대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괴테: 나는 일생 중에 즐겁다고 생각한 시간은 불과 4주일에 불과했다.
시세로(로마의 웅변가):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고 그 다음 행복은 하루 속히 세상을 떠나가는 것이다.
바이론: 나는 일생 중에서 즐겁다고 생각한 시간은 오직 하루뿐이었다.
솔로몬: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욥도 차라리 나지 않았드라면 하지 않았습니까?
나 자신의 것으로는 아니 지금까지의 나의 삶이 하나님의 요구에 부족함을 시인하십시오.
그리고 나 자신을 하나님을 위하여 희생되어져 보십시오.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되어집니다.
영원한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 구원을 근거로 인하여 내 생활에서도 생각하지도 않는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 배의 축복 적어도 100배, 60배, 30배의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 믿음의 성도들 아니 일군들을 통하여 무엇인가 큰일을 일으킬 것 같은 감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어제도 교회에서 설교를 준비하는 가운데 이런 은혜가 물 밀 듯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왜요? 자신의 주어진 조건을 가지고 주장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는 그 모습 속에서 그런 축복이 생기는 것입니다.
계속적인 이런 일이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내 의를 세우기에 급급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큰 은혜를 가리우고 있습니다.
왜?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두고서 인간적인 그 무엇에 목을 매고 그렇게 기갈을 느껴야 합니까?
생각지도 않는 은혜가 내 자신의 처신에 여하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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