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르는 가시가 있습니까? 또 하나의 다른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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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651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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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12:6-10 찌르는 가시가 있습니까? 또 하나의 다른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지난 목요일 목사님들의 모임인 목양회에 갔더니 마침 친구 목사님 두 분과 함께 이야기 하는 중 공교롭게도 한분의 아들은 지난주에 군에서 만기 제대를 하여 집으로 돌아왔는데 한분의 아들은 내일 군에 입대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지금 군에는 사회에서 자녀를 보낸 부모들이 염려 될 일들이 일어나 들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제대한 아들을 가진 목사님 쪽은 쾌재의 만세를 부르는 것 같았고 입대 시킬 아들을 둔 목사님은 걱정이 역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군에는 한 병사의 사고를 계기로 하여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당장 군 병사의 봉급을 인상시키고 지피등 생명이 위험한 곳에서 근무하는 자에게는 생명 수당까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군의 내무반을 현대식으로 개조하고 소대원들이 사용하던 내부반을 분대단위로 축소 사용하도록 하고 정신적인 상태나 개인 신상에 대한 세밀한 배려를 계획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사고가 나기 전에 병사들에 대한 처우 개선을 생각하고 개인의 신상을 파악하고 나섰다면 좋았겠지만 사고가 있기 전에는 그렇게 할 의지도 동기나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니 알지만 적극적으로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꼭 그기에 합당한 이런 대가를 치루고 나서야 새로운 방향 제시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게 사람들의 삶의 한 형태인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는 미리 선을 행한다거나 더욱이 적극적인 선을 찾아 나선다는 그런 실력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사고도 없을 것이요 참으로 아름답고 풍성한 삶이 될 것입니다.
일찍이 사도들의 고백과 같이 선을 행하는 자도 없고 찾는 자도 없고 다 멸망하는 짐승같이 자기 배만을 채우려고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무엇인가 찔려 주는 자극과 아픔이 있어야 그것이 계기가 되어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말만 하여도 잘 들을 수 있지만 짐승은 말만하여 되지 않기 때문에 코뚜레를 뚫고 잡아 갈려는 방향으로 이랴 이랴하고 잡아 댕겨야 합니다.반대로 갈려치면은 고비를 잡아 댕기기 때문에 살갗이 찢어 질 것 같은 아픔이 있기 때문에 잘 따라 오는 것입니다.
한 병사의 무모한 짓을 통하여 몇몇 병사가 희생이 되고 그들의 부모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고서야 그 아픔을 통하여 무엇이 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선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 인생도 그러하다고 여겨집니다.
무엇인가 도전을 받고 아픔을 통하여야 무엇인가 새로움에 나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119: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렇다면 내게 찾아온 그 아픔이 나를 괴롭게 하기 위하여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것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유익을 가져오게 됩니다.
우리 몸에 있는 장기등 각 기관이 병에 오염이 되고 상처가 나고 무엇인가 잘못되어 갈 적에는 아픔의 통증이 빨리 와야 좋은 것입니다.
그래야지 증상을 느끼고 치료를 하여 더 심하지 않는 가운데 생명을 건질 수 있는데 그런 자각 증세의 통증이 없다면 나중에는 목숨을 잃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바다는 조용하면 다 썩어서 생명이 살 수 없는 물웅덩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움직이고 때로는 해일 태풍 등으로 소용돌이침으로서 그 바다는 많은 생물을 산출하는 생명의 보금자리가 되지 않습니까?
독일의 철학자요 시인인 프리드리히 니체는 “기독교는 수난의 종교다. 기독교를 박해하지 말라. 기독교는 수난을 당할수록 더 강해지고, 더 위대해진다. 기독교를 박멸하려면 무한한 자유를 주라. 그렇게 되면 스스로 부패해서 무너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불완전의 고통 속에서 완전을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든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찌르는 가시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가시를 통하여 인간의 부족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존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 자체가 완전하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처럼 약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은혜 가운데 자신이 있음을 고백하는 순간입니다.
바울은 남모르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그것을 ‘육체의 가시’라고도 말하고 ‘사단의 사자’라고 말할 정도로 상당히 괴로운 일이며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시’라는 헬라어의 말뜻은 ‘말뚝, 끝이 뾰족한 나무 막대기’등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육체를 찌르고 있는 이 가시가 얼마나 괴롭히고 있는 요소인가를 짐작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육체의 가시가 그에게 너무나 괴롭고 힘들어서 그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부족한 우리 인생에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가시 절대로 이상하지 않고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욥14:1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여러분에게도 찌르는 가시가 있음은 당연합니다.
그러니 그것으로 너무 걱정만 하시지 말고 왜? 나에게 이런 가시가 왔을까?를 알게 될 것입니다.
나에게 찾아온 가시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에 합당한 인물로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죄와 벌 등의 글을 쓴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 그는 1821년에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이며 난폭하였습니다. 돈을 조금 벌었을 때에 땅을 샀는데 일꾼을 너무나 혹독히 부려서 결국 그의 나이 열여섯살때에 그가 보는 앞에서 농노들에 의하여 살해됩니다. 그 비참한 광경을 본 그는 그때의 충격으로 간질병이 걸려 평생을 고생하게 됩니다. 그는 28살 되던 해에 한 정치집단에 가입했다가 소위 ‘페트라세프스키’라는 정치사건에 말려 반역자로 체포되어서 사형을 언도받고 시베리아로 끌려갑니다. 가던 중에 한 시골 역에서 차를 대접하는 장교의 부인을 만나게 되는데 죽음의 공포로 인하여 차를 거절하자 그 장교의 부인은 가슴에서 작은 책을 꺼내어 줍니다. 그것은 신약성경이었는데 그는 움추크 감옥에서 죽음의 날을 기다리면서 그 성경책을 읽습니다. 그러면서 신앙에 눈을 뜨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삶의 용기와 힘을 갖게 됩니다. 당시 감옥에서 그 형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형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제 나는 최고의 인생을 살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인격이 된 것입니다.
그는 총살형을 받기위해서 형장으로 끌려갑니다. 그런데 기적같이 총살 집행하기 2분전에 황제의 특별사면령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 고통의 세월과 간질병이라는 육체의 가시가 신앙의 인격으로 만드시고 세계최대의 작가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역사는 좋은 환경과 잘 갖추어진 조건에서 아름답고 축복의 인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약함과 부족함과 우리의 심각한 약점 중에서 우리를 강하고 훌륭하고 축복된 존재로 창조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가시의 고난을 통해 내게 주시는 은혜가 무엇인지는 가시를 허락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가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감은 기도로 나아 갈 수 있습니다.
너는 내게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그러면 얻게 될 것이요 찾게 될 것이요 열리게 될 것입니다.
내가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을 경험할 때에는 하나님께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 기도에 응답이 될 때까지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를 드리면 어떤 모습으로든지 하나님의 응답으로 찾아 올 것입니다.
바울은 기도하기 전에는 그 가시가 자신에게는 고통을 주는 원인으로만 알았지만 기도를 하고 알고 보니 그 가시는 내가 자랑하고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이렇게 가시의 정체를 바로 알게 되면 이 사람은 살판이 날 것입니다.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범사의 삶은 하나님께 기도해 보세요
그러면 감사하고 살아야 하는 삶임을 아셔야 합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해야 할 삶을 지금 우리는 불만하고 있습니다.
기뻐해야 할 삶을 슬퍼하고 있습니다.
복을 받은 삶을 저주 받는 자 같이 살고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있으니 그 가시만 고통스러워하고 있지 뫠 가시가 나를 찌르는 가에 대하여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하나님은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현재 내게 주어진 삶이 내게 딱이구나? 이걸 아셔야 합니다.
이런 사람 더 발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비록 육체의 가시로 인하여 고통을 겪고 괴로움을 당하는 생활 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면 만족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바울사도는 빌립보서에서 그가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며 지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늘 평안하고 기쁨이 넘치는 풍요로운 삶을 살려면 하나님께 날마다 더욱 큰 무엇인가를 요구하기보다는 현실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찾아서 감사하고 만족하는 삶을 가져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니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번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얼마나 불행한 자입니까?
이런 사람은 죽을 때까지 감사 할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게 저주입니다. 지옥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지옥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지옥같은 삶도 천국같이 살게 됩니다.
더욱이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 중에서도 한번도 감사하지 못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의 생애는 감사 할 일이 한번도 생기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일년 365일 감사 헌금 한번 할 수 없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자주 지금 나에게 없는 것 남에게 있는 것만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아쉬워하고 원망하고 합니다.
그러나 먼저 우리는 자신을 향하여 감사 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남의 남편만보고 내 남편 불평하지 말고 내 남편을 가만히 보세요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남편임을 알 것입니다. 이런 남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남의 아내만 보고,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여자만 보고 자신의 아내 구박하고 바람피우지 말고 자신의 아내의 모습을 가만히 보세요 그 희생, 그 인내, 그 아름다움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아내일 것입니다.
이런 아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자신을 보지 않고 남으로 인하여 불평하는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불평 불만하는 사람 자신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교회적으로 감사하는 절기 입니다.
가만히 들러 보십시오
감사 할 것뿐입니다.
지내온 인생도 내가 지금 존재하고 있음도 내 주위에 관계된 모든 것이 다 감사 할 일 뿐입니다.
이것보다 더 못하게 하시다면 어떡하시겠습니까?
나를 찌르는 가시 까지도 가만히 기도해 보면 또 하나의 다른 하나님의 축복임을 알게 된다면 무엇이든지 나의 생활은 감사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20장 찬송 「다 감사드리세」의 가사를 살펴 보면 은
다 감사드리세. 온 맘을 주께 바쳐. 그 섭리 놀라와 온 세상 기뻐하네.
예로부터 주신 복 한없는 그 사랑. 선물로 주시네 이제와 영원히
ꁗ감사와 찬송을 다 주께 드리어라. 저 높은 곳에서 다스리시는 주님.
영원한 하나님 다 경배할지라. 전에도 이제도 장래도 영원히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찬송의 시는 가장 참담한 현실 속에서 부른 감사의 찬송입니다.
1618년에서 1648년까지 30년 동안 독일을 무대로 개신교와 케토릭교간에 종교전쟁으로 기록된 \\30년 전쟁\\때 독일의 작세지방의 아일렌 베르크에서 목회 하던 린카르트 목사가 작시한 것입니다.
이 참혹한 30년 전쟁이 휩쓸고, 지나갈 때 기근과 흑사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린카르트 목사는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시체를 장사지냈습니다.
어떤 때는 하루에 4~50구의 시체를 장사 지낼 때도 있었습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하는 찬송시를 적어 나갔습니다.
ꁡ사랑의 하나님 언제나 함께 계셔 기쁨과 평화의 복 내려 주옵소서.
몸과 맘 병들 때 은혜로 지키사 이 세상 악에서 구하여 주소서.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드린 최고의 찬송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내가 처해있는 환경이 어렵고 힘들어도 좌절하지 맙시다.
불평하지 맙시다. 기도해 보십시오 오히려 감사하십시다.
그러면 지금까지 나를 찌르는 가시가 또 하나의 다른 하나님의 축복으로 다가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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