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권위를 인정 하십시오 그러면 삶의 질서가 바로 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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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21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누가복음 7 : 7 - 10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 하십시오 그러면 삶의 질서가 바로 서게 됩니다.
콩가루 집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권위가 서지 않고 아들은 아들대로 딸은 딸대로 집안 식구 모두가 어른이 되어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으니 가정의 위계질서가 서지 않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우리 옛 말에도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어떤 단체나 모임에서 리더의 권위가 서지 않으면 그 단체나 그 모임의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표현하는 뜻일 것입니다.
나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인생을 리더하시는 분은 내 자신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하나님의 권위가 세워지지 않고 내 삶에 인정이 되지 않으면 그 인생은 참으로 콩가루가 되고 배가 산으로 가는 꼴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재앙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 구원이요 축복하시기 원하십니다.
내 인생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대로 따르지 않으니 불행해 지는 것입니다.
제대로의 길을 가지 못하니 질서가 서지 못하니 혼돈하고 혼란하고 하니 거기에는 고통이 따르고 그 결과 어려움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음은 다른 말로 표현을 하자면 하나님의 위계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되어 그거를 가리켜 죄라고 하고 거기에는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 죄로 인하여 찾아오는 영향이 사망입니다. 그 사망의 영향이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질고가 찾아오고 다툼과 분쟁이 생기고 또한 가난해지고 일이 꼬이고 지지리도 풀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데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어두움이 장악했던 세력이 물러가니 질고가 치유되고 가난에서 해방되고 평안과 기쁨이 찾아오니 얼씨구나 하는 살맛이 날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할렐루야!
세상에서 종이 되어 있는 여러분들에게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여러분들에게 룰루랄라하는 이러한 축복이 있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에는 무슨 병인지는 몰라도 죽을병이 걸려 오늘 내일 하고 있는 한 사람이 나옵니다.
말 그대로 죽을 날만 기다릴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죽어야 할 자가 죽지 않고 건강함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것은 다름이 아닌 그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데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내 인생의 삶에도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한다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슬픔이 기쁨으로
질병에서 자유함을
가난에서 해방이 되고 절망에서 소망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바뀌는 역사가 일어 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못하는 그 사람은 참으로 불행하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불행한 사람이냐? 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우습게 여기고 영접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습게 여겼다가 얼마나 호된 대가를 지불하는지 모릅니다.
구소련의 망명 작가인 솔제니친은 소련이 6천만 명이 인명을 희생시키면서 붉은 혁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원인에 대하여 연구했습니다.그 결론으로 \\소련인 들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이 무서운징계를 받게 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못하면 그 나라는 망합니다.
중국도 7-8%의 기독인들이 있다고 통계가 있는데 우리나라 인구수보다 훨씬 많습니다.
음으로 양으로 어떤 모습이라도 인정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나라는 망하고 맙니다.
우리교회서도 예수 이름으로 선교사 2명, 학생1명, 경로당 1곳 경제적으로 매달 도움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지급 북한도 복음 때문에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복음의 개방이 되지 않고 살 수가 없습니다.
복음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구호품들이 북으로 들어가는지 모릅니다.
지난 목요일 북한의 평양에다가 빵 공장을 건설하여 인민소년궁 학생들에게 빵을 공급하는 미국 시민권을 가진 한인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평양 인민 소년 궁에 속한 학생이라면 그래도 괜찮은 아이들인데 이들에게도 빵이 필요할 정도라니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이 선교회에서 저를 평양으로 초청하여 올 가을에 한번 가자고 하는데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북한구호의 80-90%는 기독단체에서 예수 이름으로 여러 가지의 구호를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제 북한도 복음으로 구제받고 살길이 열립니다.
그렇다면 가장 행복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의 자리에 모시는 자입니다. 아멘이십니까?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성이 아람 군대의 공격을 받았을 때에 이스라엘 왕은 그 성 문을 안으로 걸어두고 모든 사람의 출입을 금지 시키고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람 군대는 성을 포위하고 물러가지를 않고 항복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성문을 열고 항복을 하면 남자들은 다 죽이고 아녀자들은 종으로 끌려가게 생겼습니다. 이런 일이 오래 지속이 되자 성 안에서는 먹을 양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사람이 사흘 굶어 남의 집 담장을 넘지 않는 자가 없다고 했는데 배가 고프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자기 자녀를 개돼지 잡아먹듯이 잡아먹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비극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성안의 질서가 파괴되고 얼마가지 않아 그 성은 완전히 망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을 하시는데 내일 이 맘 때에는 이 성안에 양식이 풍족하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이 일러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좋아 해야 할까요? 화를 내어야 할까요?
믿어야 할까요. 거짓말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말이 선포되자 다른 사람들은 다 좋아하고 감사하게 여기는데 그리고 기다리는데 잘난 체하는 한 장관이 화를 버럭 내면서 하는 말이 하나님이 하늘에서 창을 내어도 곡식을 부어주어도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대들었습니다.
축복을 해 주어도 싫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교만한 일이요 무모한 일입니까?
오늘날 전파되는 복음 앞에 우리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복음을 받아 드리지 않으면 다 망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영생을 얻으리로다. 할렐루야!
살려주시겠다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죽으려고 악을 서는 것입니다.
이 때에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장관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당신은 내일 이 맘 때에 풍족한 양식을 눈으로 보겠지마는 그 양식을 먹지는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말씀이 복음이 되어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지만 받지 못한 그 사람에게는 구원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권위가 있으신지 말씀에 따라서 일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는데 사마리아 성을 에워싸던 아람 군대에게 환청이 들리게 하였습니다. 그들의 귀에 많은 군인들이 말을 타고 병거를 타고 자신들을 공격하는 환청을 듣고서는 생각하기를 사마리아 사람들이 돈을 주고 외국의 용병들을 불러 모았는 줄 생각하고는 급히 퇴각을 해버리고 가니 그들이 준비해 놓은 수많은 군량미를 가져가지 못하고 그대로 두고 갔습니다.
그날 밤에 성 밖에 격리 수용되어 있던 나환자들이 오늘따라 생각하기를 너무나도 배가 고파서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니 죽더라도 양식이 있는 아람 군대 진영으로 가보자하고 갔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온 천지 사방에 먹을 양식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같은 소식을 사마리아성에서 굶주린 자들에게 들려주니 이들이 그 아침에 성문으로 달려와서 양식을 가져가서 배 불리 먹고 살판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거짓말로 여긴 장관은 성문에서 사람들을 통제하다가 그만 넘어져 사람들에게 밝혀서 말 그대로 양식을 보았으나 먹지도 못하고 죽어 버렸습니다.
진리를 진리로 받아 드린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결과는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받아 드린 자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한 자요
받아 드리지 못한 자는 권위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므로서 놀라운 기적을 경험 할 일들이 우리 가운데는 참으로 많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인정치 아니하므로 인하여 점점 어려움을 당하고 있음을 또한 아셔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함으로 꼬이고 꼬인 나의 삶이 하나님의 질서로 회복되는 기적 갈은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어떠하면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 할 수가 있습니까?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 자신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곧 말씀은 하나님이십니다.
C. S.루이스라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참된의미에서의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평화와 행복은 하나님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성숙한 신앙인 입니다.
말씀만 하시면 되겠습니다.
말씀에 만족하고 배불리고 해결을 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내 인생을 걸어 보십시오
이게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은 인간이 무엇이다라는 것을 자신의 위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조그만 부닥쳐도 깨어지고 부숴져리는 상처를 잘 받는 그릇입니다.
안개요 이슬 같은 자입니다.
나 같은 인간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이 위대하십니다.
오늘 이걸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명령을 내리고 누가 순종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도구가 사람을 사용합니까?
사람이 도구를 이용합니까?
주님 앞에서 피조물로서의 우리의 위치와 한계를 인식하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백부장은 이걸 잘 알았어요.
자기를 과시하는 교만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늘이 얼마나 높은 줄 아십니까? 여태까지 끝까지 올라가본 사람이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예수 탄생하신 베들레헴에는 베들레헴 성전이 있습니다. 그 성전 안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셨던 말구유를 볼 수가있었는데 성전 문은 아주 낮게 허리를 굽혀 겨우 들어갈 만한 조그만 문입니다. 그 문을 가리켜 \\겸손한 문\\이라고 합니다. 제아무리 왕이라도 그 곳으로 들어가려면 말을 타고 들어 갈수가 없습니다.
뻣뻣이 서서 들어 갈 수 없습니다. 말에서 내려 왕관을 벗고 최대로 고개를 숙여야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 앞에 타고 온 것에서 내리시고 벗을 것은 다 벗고 고개를 숙이시기 바랍니다.
성숙한 신앙은 자기의 공로나 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첫째도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입니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5).
사실상 로마시민이자 백부장으로서의 그의 권세가 당면 문제인 병든 종을 쾌유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의 영향력과 평판 그리고 많은 재산 중 그 어느 것도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죽어가는 자 앞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 엎드릴 때에 그의 문제는 해결 할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자는 자신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심리학자인 에이브러햄 모슬로마는 \\인간에게서는 몇 가지 근본적인 욕구가 있는데, 그것은 생존의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의욕구, 지위의 욕구, 자기실현의 욕구\\라고 했습니다.
교회라고 하는 곳은 이다섯 가지 욕구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사랑 안에서 충족시킬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욕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인정하는 그 자리가 바로 자신의 위치가 더욱 공교해지는 자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죽을 병 걸린 종을 예수님의 권위로 치유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권위가 나의 삶에 세워지기만 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나의 인격에 나의 가정에 나의 생업에 우리 교회에서 높이 높이 세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나의 삶은 더욱 공교하게 세워질 것입니다.
콩가루 집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권위가 서지 않고 아들은 아들대로 딸은 딸대로 집안 식구 모두가 어른이 되어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으니 가정의 위계질서가 서지 않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우리 옛 말에도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어떤 단체나 모임에서 리더의 권위가 서지 않으면 그 단체나 그 모임의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표현하는 뜻일 것입니다.
나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인생을 리더하시는 분은 내 자신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하나님의 권위가 세워지지 않고 내 삶에 인정이 되지 않으면 그 인생은 참으로 콩가루가 되고 배가 산으로 가는 꼴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재앙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 구원이요 축복하시기 원하십니다.
내 인생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대로 따르지 않으니 불행해 지는 것입니다.
제대로의 길을 가지 못하니 질서가 서지 못하니 혼돈하고 혼란하고 하니 거기에는 고통이 따르고 그 결과 어려움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음은 다른 말로 표현을 하자면 하나님의 위계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되어 그거를 가리켜 죄라고 하고 거기에는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 죄로 인하여 찾아오는 영향이 사망입니다. 그 사망의 영향이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질고가 찾아오고 다툼과 분쟁이 생기고 또한 가난해지고 일이 꼬이고 지지리도 풀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데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어두움이 장악했던 세력이 물러가니 질고가 치유되고 가난에서 해방되고 평안과 기쁨이 찾아오니 얼씨구나 하는 살맛이 날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할렐루야!
세상에서 종이 되어 있는 여러분들에게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여러분들에게 룰루랄라하는 이러한 축복이 있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에는 무슨 병인지는 몰라도 죽을병이 걸려 오늘 내일 하고 있는 한 사람이 나옵니다.
말 그대로 죽을 날만 기다릴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죽어야 할 자가 죽지 않고 건강함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것은 다름이 아닌 그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데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내 인생의 삶에도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한다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슬픔이 기쁨으로
질병에서 자유함을
가난에서 해방이 되고 절망에서 소망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바뀌는 역사가 일어 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못하는 그 사람은 참으로 불행하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불행한 사람이냐? 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우습게 여기고 영접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습게 여겼다가 얼마나 호된 대가를 지불하는지 모릅니다.
구소련의 망명 작가인 솔제니친은 소련이 6천만 명이 인명을 희생시키면서 붉은 혁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원인에 대하여 연구했습니다.그 결론으로 \\소련인 들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이 무서운징계를 받게 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못하면 그 나라는 망합니다.
중국도 7-8%의 기독인들이 있다고 통계가 있는데 우리나라 인구수보다 훨씬 많습니다.
음으로 양으로 어떤 모습이라도 인정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나라는 망하고 맙니다.
우리교회서도 예수 이름으로 선교사 2명, 학생1명, 경로당 1곳 경제적으로 매달 도움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지급 북한도 복음 때문에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복음의 개방이 되지 않고 살 수가 없습니다.
복음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구호품들이 북으로 들어가는지 모릅니다.
지난 목요일 북한의 평양에다가 빵 공장을 건설하여 인민소년궁 학생들에게 빵을 공급하는 미국 시민권을 가진 한인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평양 인민 소년 궁에 속한 학생이라면 그래도 괜찮은 아이들인데 이들에게도 빵이 필요할 정도라니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이 선교회에서 저를 평양으로 초청하여 올 가을에 한번 가자고 하는데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북한구호의 80-90%는 기독단체에서 예수 이름으로 여러 가지의 구호를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제 북한도 복음으로 구제받고 살길이 열립니다.
그렇다면 가장 행복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의 자리에 모시는 자입니다. 아멘이십니까?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성이 아람 군대의 공격을 받았을 때에 이스라엘 왕은 그 성 문을 안으로 걸어두고 모든 사람의 출입을 금지 시키고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람 군대는 성을 포위하고 물러가지를 않고 항복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성문을 열고 항복을 하면 남자들은 다 죽이고 아녀자들은 종으로 끌려가게 생겼습니다. 이런 일이 오래 지속이 되자 성 안에서는 먹을 양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사람이 사흘 굶어 남의 집 담장을 넘지 않는 자가 없다고 했는데 배가 고프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자기 자녀를 개돼지 잡아먹듯이 잡아먹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비극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성안의 질서가 파괴되고 얼마가지 않아 그 성은 완전히 망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을 하시는데 내일 이 맘 때에는 이 성안에 양식이 풍족하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이 일러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좋아 해야 할까요? 화를 내어야 할까요?
믿어야 할까요. 거짓말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말이 선포되자 다른 사람들은 다 좋아하고 감사하게 여기는데 그리고 기다리는데 잘난 체하는 한 장관이 화를 버럭 내면서 하는 말이 하나님이 하늘에서 창을 내어도 곡식을 부어주어도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대들었습니다.
축복을 해 주어도 싫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교만한 일이요 무모한 일입니까?
오늘날 전파되는 복음 앞에 우리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복음을 받아 드리지 않으면 다 망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영생을 얻으리로다. 할렐루야!
살려주시겠다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죽으려고 악을 서는 것입니다.
이 때에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장관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당신은 내일 이 맘 때에 풍족한 양식을 눈으로 보겠지마는 그 양식을 먹지는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말씀이 복음이 되어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지만 받지 못한 그 사람에게는 구원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권위가 있으신지 말씀에 따라서 일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는데 사마리아 성을 에워싸던 아람 군대에게 환청이 들리게 하였습니다. 그들의 귀에 많은 군인들이 말을 타고 병거를 타고 자신들을 공격하는 환청을 듣고서는 생각하기를 사마리아 사람들이 돈을 주고 외국의 용병들을 불러 모았는 줄 생각하고는 급히 퇴각을 해버리고 가니 그들이 준비해 놓은 수많은 군량미를 가져가지 못하고 그대로 두고 갔습니다.
그날 밤에 성 밖에 격리 수용되어 있던 나환자들이 오늘따라 생각하기를 너무나도 배가 고파서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니 죽더라도 양식이 있는 아람 군대 진영으로 가보자하고 갔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온 천지 사방에 먹을 양식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같은 소식을 사마리아성에서 굶주린 자들에게 들려주니 이들이 그 아침에 성문으로 달려와서 양식을 가져가서 배 불리 먹고 살판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거짓말로 여긴 장관은 성문에서 사람들을 통제하다가 그만 넘어져 사람들에게 밝혀서 말 그대로 양식을 보았으나 먹지도 못하고 죽어 버렸습니다.
진리를 진리로 받아 드린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결과는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받아 드린 자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한 자요
받아 드리지 못한 자는 권위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므로서 놀라운 기적을 경험 할 일들이 우리 가운데는 참으로 많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인정치 아니하므로 인하여 점점 어려움을 당하고 있음을 또한 아셔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함으로 꼬이고 꼬인 나의 삶이 하나님의 질서로 회복되는 기적 갈은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어떠하면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 할 수가 있습니까?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 자신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곧 말씀은 하나님이십니다.
C. S.루이스라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참된의미에서의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평화와 행복은 하나님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성숙한 신앙인 입니다.
말씀만 하시면 되겠습니다.
말씀에 만족하고 배불리고 해결을 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내 인생을 걸어 보십시오
이게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은 인간이 무엇이다라는 것을 자신의 위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조그만 부닥쳐도 깨어지고 부숴져리는 상처를 잘 받는 그릇입니다.
안개요 이슬 같은 자입니다.
나 같은 인간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이 위대하십니다.
오늘 이걸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명령을 내리고 누가 순종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도구가 사람을 사용합니까?
사람이 도구를 이용합니까?
주님 앞에서 피조물로서의 우리의 위치와 한계를 인식하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백부장은 이걸 잘 알았어요.
자기를 과시하는 교만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늘이 얼마나 높은 줄 아십니까? 여태까지 끝까지 올라가본 사람이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예수 탄생하신 베들레헴에는 베들레헴 성전이 있습니다. 그 성전 안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셨던 말구유를 볼 수가있었는데 성전 문은 아주 낮게 허리를 굽혀 겨우 들어갈 만한 조그만 문입니다. 그 문을 가리켜 \\겸손한 문\\이라고 합니다. 제아무리 왕이라도 그 곳으로 들어가려면 말을 타고 들어 갈수가 없습니다.
뻣뻣이 서서 들어 갈 수 없습니다. 말에서 내려 왕관을 벗고 최대로 고개를 숙여야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 앞에 타고 온 것에서 내리시고 벗을 것은 다 벗고 고개를 숙이시기 바랍니다.
성숙한 신앙은 자기의 공로나 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첫째도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입니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5).
사실상 로마시민이자 백부장으로서의 그의 권세가 당면 문제인 병든 종을 쾌유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의 영향력과 평판 그리고 많은 재산 중 그 어느 것도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죽어가는 자 앞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 엎드릴 때에 그의 문제는 해결 할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자는 자신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심리학자인 에이브러햄 모슬로마는 \\인간에게서는 몇 가지 근본적인 욕구가 있는데, 그것은 생존의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의욕구, 지위의 욕구, 자기실현의 욕구\\라고 했습니다.
교회라고 하는 곳은 이다섯 가지 욕구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사랑 안에서 충족시킬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욕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인정하는 그 자리가 바로 자신의 위치가 더욱 공교해지는 자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죽을 병 걸린 종을 예수님의 권위로 치유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권위가 나의 삶에 세워지기만 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나의 인격에 나의 가정에 나의 생업에 우리 교회에서 높이 높이 세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나의 삶은 더욱 공교하게 세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