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뜻을 향한 순수한 믿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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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27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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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 : 5 - 14 선한 뜻을 향한 순수한 믿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미국의 샌디에고는 경관이 좋고 기후 조건이 뛰어나 살기 좋은 곳입니다.거기에는 별장과 저택들이 많이 있습니다.이곳 어느 집에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아들이 귀향을 알리는 전화가 왔습니다.어머니는 너무 기뻐서 당장 집으로 돌아올 일이지 전화는 왜 거느냐?아들이 어머니. 그런데 집으로 가기 전에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친구하나를 데려가고 싶습니다.\\ \\아, 그래? 데려오려무나.\\\\그런데, 이 친구에게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전쟁에서 부상을 당해 눈 하나와 팔과 다리 한 짝씩이없습니다. 오갈 데 없는 친구라 제가 데리고 살까 합니다.\\\\아무튼 데리고 들어오너라. 한달쯤 같이 살자꾸나.\\\\아니에요, 좀더 오래 같이 있어야 합니다.\\\\그럼 일년쯤 같이 살도록 하자. 천천히 돌려보내지 뭐.\\\\아닙니다. 일생동안 같이 살고 싶은데요.\\어머니는 대답합니다.\\얘야, 네가 전쟁터에 나가더니 꽤 감상적인 사람이 되었구나.냉정히 생각해야지.그런 불구자와 평생을 같이 지내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란다.처음에야 불쌍하고 측은한 마음에 성심껏 대할 수 있겠지만 얼마 지나다 보면 거추장스러워질 때가 온단다. 무거운 짐이 되는 거지.그러니 일생을 함께 지낼 생각일랑말아라.\\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덜거덕하고 전화가 끊겼습니다. 몇 시간이지난 뒤해군본부로부터 한 장의 전보가 날아들었습니다.\\귀댁의 아들이 유감스럽게도 샌디에이고 호텔 12층에서 투신하였음을 통보합니다.\\
부상을 당했다는 친구는 바로 그녀의 아들이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나를 어떻게 맞아줄까? 이런 내가 집에 돌아가도 되는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전화를 걸어본 이 아들은 어머니의대답을 듣고 \\그럴 줄 알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것입니다.이것은 엄연한 실화입니다.
그 어머니는 아들을 위하지만은 그 아들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는 못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가까운 자라 할지라도 내 마음을 다 헤아려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다 아십니다.
또한 그 마음을 만족하게 하실 분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점심을 지나 저녁이 되도록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돌아가는 백성들이 돌아가는 길에 지쳐서 고생하지 않을까? 염려하셨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이와 같은 심령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하며 방황함을 매우 민망해 하고 계셨습니다.
이들에게 먹을 양식을 해결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입니다.
아니 예수님만이 우리 지치고 피곤한 인생들에게 진정한 양식이 되심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와서 돈 없이 값없이 젓과 포도즙을 싸라 내가 너희를 배부르게 하리라 다시는 목마르지 않게 하리라 할렐루야!
너희가 어찌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돈을 주고 수고하느냐?
내가 생명의 참 양식이야
ꁡ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초장에 뉘게 하시며 잔잔한 물가로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할렐루야!
목자의 인도함을 받은 순수한 양이 이런 은혜를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순수한 믿음으로 이런 주님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인생이 만족함을 얻고 가는 믿음의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참된 양식은 진정한 배부름을 가져오게 하십니다.
어제 교회 인수 문제로 관계된 분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현 싯가 30억을 호가하는 건물을 17억5천만 원에 인수하는 건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교회 입장에는 당장 현찰을 준비하지는 못하지만 작정된 현금이 만들어지기까지 그기에 합한 대출 융자의 이자 매달 약900만 원 중 400여만 원은 교회에서 충당이 되고 나머지 부족분 약500만원은 집사님 중에서 감당하기로 하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는 현찰로만 인수를 원하고 조건이 또한 얼마나 까다로운지 2시간가량 이야기를 하고 다시 새 의견으로 만나기로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성사가 되든지 안 되든지 저는 이미 하나님께 감사를 했습니다. 우리의 교회의 조건에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만족하고요 합의치 않으면 또 다른 은혜를 기다릴 수 있는 그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 문제에서 저희 교회가 보일 수 있는 것은 순수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곳에 있는 영혼을 사랑하고 그 영혼을 인도하고 싶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목적에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해지고 싶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언제든지 성도들의 순수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믿음의 주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금보다 귀한 믿음은 참 보배 되도다. 이 진리 믿는 사람들 다 복을 받겠네
예수님의 하시는 일이나 또한 말씀들이나 약속들은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소화 시킬 수가 없는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순수한 믿음으로만 갈 수가 있습니다.
너희는 어른들이 되지 말지어다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않으면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 갈 수가 없느니라
천국은 이런 아이들의 것이니 라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은 순수한 것입니다.
요새 아이들은 어른 같은 아이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웃어도 느끼하게 웃습니다.
어른이라도 믿음으로 순수해지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웃는 얼굴이 얼마나 순수하는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러합니다.
순수한 아이의 믿음이 예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5,000명의 굶주린 군중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이었습니다.
여기서 5,000명은 여자와 아이를 제외한 수니 가히 많은 무리가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목요 봉사를 하는데 200명분을 준비를 하고 나눠 주는데도 얼마나 힘이 듭니까?
양재동까지가서 고기등 재료를 사오고 수요 저녁에 준비를 하고 밤새도록 끓이고 이게 보통일 아닙니다. 그리고 목요일 모여서 준비된 음식을 공원까지 나르고 또 배식을 하고 돌아와 뒷정리 이렇게 하여야 끝이 납니다.
아이와 여자 합하니 2만은 족히 될 것입니다.
당시의 여건상으로는 돈이 있어도 불가능 한 일입니다.
이들에게 먹을 것을 구하여 주어라는 주님의 말씀은 5,000명의 무리들에게 먹일 수 있는 떡은 인간적으로는 불가능 하는데 믿음이 있어야? 가능 하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하시는 주님께 드리는 믿음을 요구하시고 그리고 그 믿음을 보시기를 원하셨습니다.
6절 이렇게 말씀하심은 그들을 시험코자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믿음적인 반응이 있기를 기대하신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침 이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어제 저녁 10시가 넘어서 미국 달라스에 있는 최미현 자매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거의 개미 같은 소리로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자매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회복을 원하셨습니다. 그러면 은혜가 될 것을 말입니다. 어떤 믿음 우리교회 인테리어 할 때에 참으로 성심성의껏 수고를 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봉사를 하는데 그 때에 기쁨을 주시고 소망을 주시고 그가 원하는 미국까지 가게 하시고 결혼까지 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지요 미국의 생활도 축복이 되어야 하는데 새 기업을 갖기 위해 남편 직장을 그만 두게 하고 가게를 오픈 했지만 안 되어 정리를 한 상태입니다. 그러다보니 아마 향수병이나 우울증까지 온 것 같습니다. 다시 화평제단에서 섬기듯이 믿음을 회복하면 남편에게도 그 자신에게도 길을 열어주고 축복이 될 것을 약속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화로 상담을 하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이것저것 때문이 아니라 누구든지 믿음이 먼저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순수한 믿음을 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믿음이 요구되는 선한 뜻 앞에서 여지없이 믿음 없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은혜의 줄을 끓어 놓는 것입니다.
제자 빌립은 돈이 200데나리온이 필요합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돈의 필요성을 들고 나왔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어떤 제자는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주어진 환경과 여건을 말했습니다.
물론 돈이 필요로 합니다.
또한 환경도 문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역사하심은 인간적인 어떤 조건을 가지고 행하시지 않으시고 순수한 믿음이 그 뜻을 이루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돈도 문제가 아니고 어떤 빈들이나 저녁때나 같은 조건도 아닙니다.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드리는 그 순수한 믿음이 5,000명을 먹이고도 남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순수한 믿음에 예수님은 그가 누구신지 드러내시고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때때로 신앙생활의 연륜이 많지 않는 초신자들이 축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왜요 순수한 믿음을 드리기 때문입니다.
오랜 교회 생활을 하여도 축복이 안 되는 자도 있습니다.
왜요? 순수하지 않고 믿음이 골동품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와 믿음은 날마다 새롭게 임하기 때문에 날마다 순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의 우리 앞에 놓인 일들은 아니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일들이 인간의 생각으로는 받아 드릴 수가 없고 또한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들이 사실 많이 있습니다.
왜? 이러한 일들을 우리에게 주셨을까요?
내게 짐이 되고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고 낙심하기 위하여 주셨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혈기를 부리고 낙심에 빠지기를 당연히 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일들이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원하시고 계신다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 일들이 다 믿음으로 행 할 일 뿐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아무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 합니다.
그러면 역사를 가져오는 순수한 믿음을 가지는 마음은 어떠한 마음입니까?
선의 요구에 자신의 의지도 함께하는 마음입니다.
무슨 말씀을 주시더라도 받아드리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나의 의지로 말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 뜻대로 하옵소서 할렐루야!
역사를 가져오는 순수한 믿음은 선의 요구에 내 자신의 역량(役糧)을 다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자신의 전부를 주셨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부가 서로 최선을 다해 상대방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의 성공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가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주신 것처럼 나도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때 가능합니다. 믿습니까?
온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최선을 다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내 가운데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실 최선을 다하지 않지 않습니까?
신앙에 가장 무서운 것은 하나님 내가 이 정도 할 테니 하나님도 이 정도는 해 주세요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름에 인간의 응답 100%여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구원은 100% 은혜입니다. 그러면 행위는 필요 없느냐? 아닙니다. 삶도 100%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롬 12:1).
이제 내가 최선을 다하여 할 때입니다.
도시락을 들고 오는 아이처럼 말입니다.
목사님 500만원은 제가 할 수가 있습니다.
제 집을 팔라는 말씀입니까? 저 금식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어느 순간에 이 집사님이 이렇게 순수 할 수가 있을까?
다른 목사님이 이제는 이 집사님을 보고 제를 닮았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오랫동안 함께 하였지만 처음입니다.
그랬더니 이 집사님은 하시는 말씀이 감동적입니다.
영적인 아버지를 담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순수해 집시다.
오늘 우리 교회는 자신을 배불리기 위하여 나만을 위하여 준비된 도시락을 가져오는 순수함이 있어야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수한 믿음은 선의 요구에 인간적인 계산이 앞서지 않는 마음입니다
오늘도 3종류의 신자가 교회에 모여 있습니다. 인간적인 계산을 하고 인간의 방법을 쓰는 신자. 순수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신자가 있고, 남을 따라서 덩달아서 믿는 신자가 있습니다.
순수한 신앙에는 비록 광야라 할지라도 풍성한 배불림과 만족한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성경 다음으로 유명한 책인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은 초등학교도 졸업을 못한 자이지만 그는 감옥에서 11년 옥살이 하면서 광야 같은 삶 속에서 위대한 책을 쓰게 됨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약간 배운 것은 다 잊었지만 주님의 가르침만은 남아있다\\
실낙원을 쓴 영국 시인 존 밀톤은 17세에 이혼하고 1649년 눈이 실명 위기에 있었지만 밀톤은 실낙원 쓰는 것을 멈추지 않고 글을 썼고 1652년 밀톤은 장님이 되어 버렸지만 그 눈물과 고통 속에서 영광을 돌리는 글을 썼습니다.
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도 밧모 섬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서 계시록이 기록되었다.
짐승도 살기 힘들다는 밧모섬 광야 같은 곳에서 세상의 마지막 될 일을 성령님의 붙잡힘 속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왜 오병이어의 표적은 광야에서 일어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은 광야입니다.
이 광야에 복음의 구세주가 찾아오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광야에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인간의 잔꾀를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이 광야길 에는 성도의 순수한 믿음만이 빛을 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 광야에도 참으로 만족하고 배부름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 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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