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축복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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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68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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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 : 1 - 9 하나님의 축복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지난 27일에는 미우주 항공국 나사에서 우주 왕복선 디스카버리호를 발사하였습니다. 이 우주선에는 오랫동안 훈련을 받는 우주인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우주선이 발사되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않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또한 0.75kg의 단열재가 떨어져 나가고 정체불명의 가로 60~83㎝, 세로 25~35㎝, 두께는 5~10㎝ 의 물체가 함께 떨어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별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별이 되었지만은 사실 이 우주선이 무사히 돌아와야지 그 안전성은 증명이 될 것입니다. 내달 7일에 귀한을 한다고 하니 안전 귀향을 기대를 기원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에 이번 일로 기체가 문제가 된다면 이들은 우주 정거장으로 자리를 옮겨야 하며 이들이 가지고 간 양식이 다 떨어지기 전에 나사에서는 또 다른 우주선 애틀랜티스호를 보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애틀랜스호를 준비하기는 시간적으로 너무나도 촉박하다고 합니다.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무리하게 억지로 돌아왔다가는 첼렌지호와 같이 공중분해가 될 것이요 우주정거장에서 다른 우주선을 마냥 기다리고 있다가는 우주의 미아가 되고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이들이 무엇을 믿고 어찌 조그마한 우주선에 의지하여 넓고도 넓은 우주에 자신의 귀중한 생명을 띄워 보내는 이런 업무를 하게 되었을까?
지난번 첼리저호의 궁중분해도 보았을 터인데도 말입니다. 그런데도 또 다시 도전을 하다니 너무나도 귀하게 여겨지고 흥분하게 여겨 질 뿐입니다.
왜 이들이 이러한 위험한 일에 도전을 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다른 이들보다 우주개척에 대한 도전의 정신이 있었을 것이며 또한 모든 이들을 위한다는 선구자적인 마음을 가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도전의 정신이 있고 선구자적인마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우주여행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한다면 결코 이 일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상에 잔류해있는 우주여행에 대한 모든 관계자들에 대한 신뢰 그리고 기체의 성능과 그기에 따르는 모든 여건들을 믿고 또한 하나님이 주신 우주에 대한 자연의 질서적인 운행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이와같은 엄청난 일을 하게한 것입니다.
만약에 제 아무리 완벽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었다 할지라도 그기에 대한 믿음이 따라가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서도 참으로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 즉 내게 준비된 가나안의 프로그램을 이룰 수 있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나의 믿음이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고 믿은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고 내가 믿는 믿음대로 되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게 하는 믿음은 어떠한 믿음입니까?
여호수아같이 하나님의 약속를 믿음으로 받아드리는 사람입니다.
소히 하나님보시기에 믿음이 가는 자입니다.
교인은 많습니다. 실력 있는 자들도 많습니다. 잘난 사람도 많습니다. 자존심들도 대단합니다. 그런데 왜 이루지 못하느냐? 그러나 문제는 한결같이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고 염려하셨습니다.
카네기 철강회사는 60만 명의 종업원을 둔 거대한 기업입니다. 카네기 회장이 노령으로 후계자를 물색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서로 후계자가 되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답니다. 어느 날 후계자를 발표하는데 그 회사 청소부 출신이었던 셰이커를 지명하였답니다. 사람들은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카네기가 그를 지명한 이유는 그 청소부에게 믿음이 갔다는 것입니다. 사무실에서 회장이 퇴근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퇴근을 하지 않는 답니다. 그래서 회장은 일단 퇴근을 하고 다시 회사에 들어와서 일을 하였답니다. 하루는 청소부 셰이크가퇴근을 하고 회사근처로 자나다가 회장실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회사로 들어와 대기를 하였답니다. 회장이 집무를 다 보고는 사무실에 나오는데 셰이크가기다리고 있더랍니다. \\자네는 왜 퇴근을 안 하고 있는가?\\ 물으니, \\저는 회장님의 일을 보살펴 드리고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회장님이 퇴근하면 다시 청소를 하려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카네기는 이런 믿음이 가는 사람에게 이 회사를 맡겨야 되겠다고 그 순간에 결심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완전한 인간은 아닙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단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누구에게든지 허락된 가나안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나안의 새 시대는 믿음으로만 볼 수 있는 땅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떤 의미에서 인생은 한평생을 나그네로, 개척자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생 동안 불확실한 미래를 향하여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래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러나 믿음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게 합니다. 할렐루야!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편 대해까지...... 의 땅이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에 대한 미련에 매여 있지 않고 내일을 향하여 믿음으로 도전하며 나아 갈 수가 있습니다.
신학자이며 사회학자인 죤 브레들리 쇼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If you want to go, you have to be able tosay good-bye\\---\\변화와 성장을 원한다면 \\안녕히\\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그렇습니다. good-bye라는 말을 깨끗이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적어도 미래를 향하여 나가려 한다면 옛것에서의 관계가 깨끗해야 합니다.딱 끊는 냉정함이 필요합니다.우리는 뻔히 안 될 것을 알면서, 끝난것을 알면서 또 들쳐보고 또 생각하고 합니다. 언제까지 이 같은 미련을 떨 것입니까?
왜 자꾸 애급을 말하고 애급을 그리워하고 좋지 않는데 좋았다고 합니까?
수많은 하나님의 약속들을 바라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아 동서남북을 바라보아라 많은 별을 보아라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게 하는 믿음은 반드시 그 일이 이루어 질 것을 믿고 행하는 것입니다.
왜 믿고 행하지 않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행하지 않기 위한 핑계일 뿐 진정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행치 못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발바닥으로 밟아야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은 일반적인 은총, 달란트를 다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홍해 앞에 선 모세에게 홍해를 갈라 주지 않고 모세에게 백성들을 바다로 내 몰고 지팡이로 홍해를 치게 하신 것입니다. 그 시퍼런 바다로 모는 것은 믿음입니다. 치고 안치는 것은 그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광야에서도 매일의 만나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거져 먹이시지 않고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내게주신 건강으로 매일 거두는 수고를 하게 하신 것입니다. 아말렉 전투에서도 모세의 기도로만 승리하게 하지 않고 여호수아가 적진을 향해 나가서 전투하게 하신 것입니다. 기독교의 삶은 발로 밟아서 정복하는 수고하고 노동하는 개척자의 삶입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배워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믿음은 결코 게으른 자의 것이 아닙니다.
게으른 자는 손으로 입에 음식 가져가는 것조차도 귀찮게 여긴다고 합니다.
내가 믿음으로 밟아야 할 땅은 이러합니다. 이스라엘이 애급에서 나올 때 유월절 어린양 고기를 먹고 그 피를 바르고 허리띠를 띠고 신을 신고 애급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의 기분대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결코 한 발자국도 갈 수없습니다. 언약궤가 이동하는 곳으로만 밟아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위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호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약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 원하십니까? 약속의 말씀을 붙들기를 바랍니다.
성령을 체험하시기 원하십니까? 성령은 말씀을 따라서 역사합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매일 매일 지시할 땅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언약의 궤를 매고 행진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가복음 16:15)고 했습니다. 주님은 발로 밟는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을 주신다(사도행전 1:8)고 했습니다.
저는 성도들이 축복이 될 때에 꼭 하나님은 복음 전도를 제시하였습니다.
내 수고를 통하여 믿음의 정복이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자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자는 별과 같이 빛나리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밟는 역사입니다. 「다스리고 지배하고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창조역사는 발로 밟는 역사입니다. 기도의 발로밟고, 찬양의 발로 밟고, 전도의 발로 수고와 헌신의 발로 밟아야 합니다.
이러한 수고를 하기를 싫어하는 자는 아무것도 받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믿음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심을 믿고 담대해야 합니다.
대다수 믿는 사람들은 감각적인 지식을 가지고 주위 환경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두려워해서 하나님 말씀을 저버릴 때가 많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손으로 만지는 것들에 의해서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걸어 나갈 때 베드로는 물위로 걸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위환경인 바람과 파도를 보고 그만 마음속에 두려움을 가지고 머뭇거리자 그는 물속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고 나무랐습니다. \\(마14:29-31)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요동하는 물결 같아서 이런 사람은 주께 무엇을 받을 것을 생각하지 말아 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속에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살아가면 우리는 환경과 운명의 노예가 되고 세속의 물에 빠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나에게도 약속의 말씀을 믿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수1:9)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약속의 성취를 위하여 하나님은 떠나지 않으시고 역사를 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일에 형통케 하시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다윗을 그처럼 사랑했습니까? 다윗이 윤리와 도덕적으로 정말 의롭고 거룩해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그는 윤리나 도덕적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여러 번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신 것은 다윗은 하나님을 믿고 강하고 담대하게 인생을 도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소년 다윗은 양무리를 칠 때 곰이나 사자가 공격을 할 때도 피하지 아니하고 담대히 대적했습니다. 다윗이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의지하여 나가자 하나님의 천사가 함께하여 주어서 사자와 곰 같은 맹수들을 무찌를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다윗이 블레셋 군대의 장수 골리앗을 죽인 것은 이스라엘은 전쟁에 경험이 많고 훈련된 장수가 많았으나 블레셋 장수골리앗의 기세에 눌려서 그와 대결해서 싸울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은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가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항오를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면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 보내라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그 블레셋 사람이 또 가로되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로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삼상17:8-11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년 목동 다윗은 인간의 힘으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강하고 극히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을 모욕하고 이방인 군대를 향해 나아가 싸우겠다는 믿음으로 담대히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제구에 물맷돌 다섯 개 넣고 물매에 돌을 물려 골리앗을 향해서 나갔습니다. 골리앗은 자기 신의 이름을 부르고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믿음으로 굴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네 손에 분이시리라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삼상17:45-46)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물맷돌을 흔들어서 돌을 날려 보내니 돌이 골리앗의 이마 정통을 때리자 골리앗이 돌에 맞아 거꾸러지자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뽑아 그 목을 배고 피가 흐르는 높이 들자 이스라엘의 군사들이 그때야 용기와 힘을 얻고 일제히 일어나서 블레셋을 공격해 블레셋은 완전히 전멸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을 통해서 강하고 담대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음에 두려움과 불안을 가지고 있는 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로마서 8장 31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 편에 서서 강하고 담대하게 나가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셔서 사자도 곰도 거꾸러지고 골리앗도 꺼꾸러지고 세상도 이기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답대함을 가지면 죽음이냐 적신이야 기근이냐 칼이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넉넉히 이길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위대한 선교사 데이빗리빙스톤(D.Livingstone)은 말년에 옥스포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학위 수여식에 앞선 예배 시간에 리빙스턴은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경험담을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무덥고 짜증만 나는 한낮이 계속되고, 또 춥고 소름끼치는 그 많은 밤 동안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했노라\\는 리빙스턴의 말에 많은 학생들이 고개를끄덕이고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말하기를, 온갖 짐승의공격과 흑인들의 방해로 당한 고통도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사실그의 오른 팔은 사자의 공격으로 불구가 되어있었습니다. 연설을 마치자,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일어섰습니다.\\선생님! 선생님으로 하여금 아프리카 생활을 잘 이겨내도록 한 비결 있었다면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리빙스톤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내게 있어 비결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의 십자가가 나를 끝까지 붙들어 주었을 뿐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내게 허락한 약속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감당하여 믿음으로 승리하는 믿음의 큰 용사가 되어 모든 일에 패배하지 마시고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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