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구원은 지금 받을 수 있는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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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370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고린도후서6:1-10 은혜와 구원은 지금 받을 수 있는 축복입니다.
한 소녀가 2년 전에 시력을 잃고 맹인이 되었습니다. 시력을 잃은 그 자체가 그녀에게 있어서는 크나큰 절망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누가 은혜를 말 하겠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논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소녀는 이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고 또한 하나님의 구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2년의 세월이 지난 후 내가깨달은 사실이 있지요. 나는 인간에게 불행을 초래하는 원인제공은바로 시력에서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내가 눈이 멀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값비싼 옷을 걸치고 다니는 것을 보고 나의 누추한 옷으로 인하여 적지 않게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또 예쁜 사람들을 볼 때 내가 그처럼 예쁘지 못한 것을 한탄하였지요. 그런데 나는 인간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는 생각은 보지 못하는 가운데서도생겨난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를 할 때에 눈을 감지요, 또 부드러운 음악을 감상할 때에도 눈을 감게 됩니다. 하나님과 대화할 때에도 눈을 감습니다. 나는 눈으로 보는 기쁨은 잃었지만 또한 보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나의 삶의 다른 기쁨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소녀는 볼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은혜를 느끼고 그 가운데서 구원의 기쁨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은혜와 베풀어 주시는 구원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집니다.
대통령이라고 대통령이기 때문에 다 행복하다는 법이 없고 힘들게 살아가는 노동자라고 해서 마냥 불행 하라는 법이 없지 않습니까?
지금도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처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고 기적 같은 하나님의 구원을 필요로 하며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만 은 그러나 기다리는 은혜가 없어 실망하고 그 가운데 일어나는 구원의 기쁨이 없어 절망하고 매우 지치고 목말라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한 것같이 내게는 하나님의 은혜도 없고 구원도 없는 줄로 여기고 삶의 기쁨을 잊어버리고 인생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내게 말씀 하십니다.
지금이야말로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 누구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며 누구에게도 구원의 기회가 지금 허락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힘 있고 능력 있는 존재만 잘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힘없고 능력이 없는 존재도 살게 마련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입니다.
지금도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유효하고요 지금 이 시간에도 하나님의 구원은 누구에게든지 이루어지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내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때를 다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니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상황 내 인생에 있어서 특히 내가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은혜가 되지 않고 구원이 막막한 그 모든 것까지도 은혜와 구원의 대상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누구 한 사람 그 어떤 문제에도 하나님은 은혜로 다가오시고 구원의 길을 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를 보면 지금이 여러 가지 환경과 상황이 어려운 때입니다.
그 모습을 4절부터 말씀하고 있습니다.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매 맞음과 갇힘 그리고 요란함, 수고로움, 자지 못함, 먹지 못함 등입니다.
이들이 지금 이러한 때를 당하고 있습니다.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압박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경제적으로는 가난하고 구차한 생활을 하며 대처하기 어려운 역경, 생의 수단에서 따라오는 육체적으로 가해지는 어려움, 생활적으로 평안하지 못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어려움이 다 함께 당하는 총체적인 어려운 삶을 살고 있음이 짐작이 되지 않습니까?
이런 모습이 당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의 모습이요 지금의 모든 사람들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지금’이라는 이런 상황에 처한 때에도 은혜가 필요하고 구원이 요구되지 않느냐? 는 것입니다.
아니 은혜가 되어 주시고 구원이 되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이 은혜를 헛되이 돌리지 말고 은혜를 받을 줄 알고 구원을 소유하는 자가 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제요? 지금이 아니겠습니까?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존재는 마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가 필요 할 때에 은혜가 되게 하셨고 구원이 요구 될 때에는 언제든지 구원을 베풀었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은혜를 받지 못함과 구원을 받지 못함은 구원과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원하지 않는 나 자신에게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웬 나 자신인가? 할지모르지만 오늘 하나님의 은혜가 구원은 지금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내 욕심과 내 정욕과 내가 원하는 것이 우선이 되기 때문에 지금은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이 요구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구원을 말하지만 사실은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내 성질대로 내 기분대로 욕심대로 정욕대로 가 버리지 않습니까?
요사이 마귀들은 전략을 새로 짰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전략이 잘 먹혀들고 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도 다니게 하고, 예수도 잘 믿게 하고, 전도도 하게하고, 기도도 하게하고, 열심을 내게 합시다. 그러나 내일부터 하게 합시다’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는 단연, ‘내일부터’, ‘다음에’, ‘차차’, ‘나중에’하게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마귀가 제일 무서워하는 단어는 ‘오늘’, ‘지금’ ‘행하라’입니다.
오늘 읽었던 본문의 말씀이 강조하고 있는 핵심적인 말씀은 “지금”이라는 단어입니다.
은혜와 구원은 지금 받을 수 있는 축복입니다.
망연한 내일을 기다리는 성도 어쩌면은 마귀에게 놀아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한꺼번에 받는 것이 아니고 매일 매일 때마다 알마다 시마다 받는 것입니다.
한번 받았다고 평생을 가는 것이 아니고요 앞으로 받을 것이란 망연함에 있어서도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 가운데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것이 예수 안에서 아버지의 뜻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때마다 일마다 시마다 평강을 주시기로 원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올라오신 분은 반드시 은혜를 받고 구원의 축복을 받고 가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은혜와 구원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얼마나 깊고 넓은지 마치 태평양의 물과 같고… 하나님의 은혜의 곡간은 요셉이 애굽에 지은 창고보다도 더 크고 풍성합니다. 그런데 태평양 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목말라 죽고, 요셉의 창고 속에 있는 생쥐가 굶어서 죽었다면 그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겠습니까? 그저 입만 벌리면 물이 들어오고, 조금만 수고하면 기름진 곡식으로 배불리 먹을 텐데 입을 꼭 다물고 굶어 죽는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강물처럼……. 차고 넘치고 있는데도 은혜를 사모하지 않고, 받은바 은혜도 헛되이 여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도하는 은혜를 주셨으면 기도해야 하지 않습니까?
말씀을 주셨으면 사모하며 말씀에 굳게 서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고 이방인과 같이 행하면 되겠습니까?
옛날 믿음의 선조들은 감옥에 잡혀가면서도 밤을 새워 성경을 읽으며 은혜를 받았는데, 바울과 실라는 옥중에서도 찬송하고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고, 어디서든지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때가 되었지만……. 우리는 여기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듣는 일과 은혜 받을 곳을 찾기보다는……. 육신을 위해서 바쁘고, 자신을 위한 일에 너무 분주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지금은 은혜 받을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 주실 때, 깨어 일어나……. 믿음의 입을 크게 벌려……. 은혜를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일에는 모든 것이 다 기회가 있습니다. 인생의 성공과 행복도 기회가 있는 것이고,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이 기회를 잘 잡은 자요, 실패하는 사람은 이 기회를 무심히 보다가 놓쳐버린 사람입니다.
기회는 어느 순간에 지나가 버리는 것이 기회입니다. 기회는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오면 그것을 놓치지 말고 꼭 붙잡아야 합니다.
영국 어느 박물관에 머리는 말의 머리이고 꼬리는 새의 꼬리로 된 모형의 동물이 있는데 그 이름을 기회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기회는 앞으로 올 때는 말의 머리와 같아서 붙잡고 올라 탈수가 있지만 그것이 지나간 다음에는 아무리 붙잡으려고 애를 써도 새의 꼬리와 같이 미끄럽고 잘 빠져나가서 붙잡을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바로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연히,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골탕 먹으려고 어려움을 주신 일이 한번도, 한 사건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에는 그런 것 같이 여겨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 하든지 은혜를 헛되이 돌리지 않도록 깨우치고, 교훈하셔서 그들을 믿음의 길에, 축복의 길에 있게 하시기 위하여 어려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봅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이 있느냐?’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면 어떻게 환난과 고난을 당하고 있는 이것을 그냥 쳐다만 보고 있느냐?’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악인들이 죄를 짓고 있는데도 잘만 되는데 왜 그냥 보고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애 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니라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환난과 고난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지금 내가 아파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되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으라는 말씀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그런 일들을 하시는 것은 여러분들을 정말 사랑하시기에 내가 볼 때에 좀 힘이 들고 아파지만 그런 일을 동원하신 줄 믿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매우 힘든 상황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기에 우리를 멸망케 하시려고 준 사건이 아니라, 이 위기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우리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그 은혜와 그 구원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시기 위하여 주신 사건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 이 놀라운 은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오래 참음과 자비함, 성령의 감화, 거짓 없는 사랑,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인격의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공급받기로 하면 됩니다.
언제? 지금입니다. 은혜 받는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3:13절에 보면,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했습니다. \\오늘\\이 중요합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다음 기회는 기약 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 기회에 은혜 받겠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은혜 받는 자리에 내가 있어야 내가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은혜 받기를 아무리 갈망해도 내가 은혜 받는 자리에 없으면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은혜 받는 자리에 빠지는 것은 자신만 손해입니다. 은혜의 때, 은혜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 예배, 수요 예배, 구역 예배,철야 기도 새벽 기도때에 은혜를 받기를 힘쓰야지요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을 때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은혜의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도마는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것을 의심하였습니다. 내 손으로 예수님의 손에 못 자국을 만져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예수님께서 두 번째 제자들에게 오셨을 때, 도마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은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은혜의 자리에 동참한 이후에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게 되었고, 그리하여 인도에 가서 순교하기까지 평생을 복음 전도자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도마가 두 번째 모임에도 빠졌더라면 도마는 평생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고 제자의 반열에서 탈락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은혜의 자리에 빠지지 말고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은혜 받는 자리에 다른 사람은 둘째고, 내가 있어야 내가 은혜를 받는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에 빠진다는 것 자체가 은혜와 구원의 사모하는 열정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 없습니다 하는 표시입니다.
아 저 사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없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있구나? 교역자도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별로 염려 안합니다.
그러나 열심히 나아오는 자는 제 쌀독에 쌀이라도 퍼 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기도할 때 은혜를 받습니다.
사도행전 2:38절에 보면, 기도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했고 마태복음 7:11절에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성도가 은혜도 많이 받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아들이 아버지에게 생선을 달라고 할 때에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알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눅11:11-13).
또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감사를 하는 자가 더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한번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크게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푹푹 찌는 어느 여름날입니다. 길을 가던 길손이 나무 그늘 밑에 앉아서 시원하게 땀을 들이며 나무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볼품없이 생긴 나무를 보고 이 길손은 중얼거렸습니다. \\나무치곤 되게 못생겼네.. 저렇게 비틀려 있으니 재목으로도 못쓰겠고, 과일나무도 아니니 과일을 따먹을 수도 없고, 장작으로 때려해도 하도 옹이가 많아서 뻐개기가 힘이 들겠으니... 나무치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겠구먼!\\ 지나가던 사람이 이 말을 듣고 \\여보시오! 게서 무엇하시오!\\ 하고 물었습니다. \\하도 더워서 땀을 들이고 있습니다!\\ 그때 이 나그네가 말합니다. \\아니 당신은 그 나무가 아무 짝에도 없다고 했는데……. 그렇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고 있지를 않습니까?\\ 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땀을 들이던 이 길손은 그만 얼굴이 벌게지면서 말문이 막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면서도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 어리석은 인생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지금 은혜를 사모하며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며 감사를 한다면 나의 신분은 놀랍게 바뀔 것입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한 소녀가 2년 전에 시력을 잃고 맹인이 되었습니다. 시력을 잃은 그 자체가 그녀에게 있어서는 크나큰 절망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누가 은혜를 말 하겠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논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소녀는 이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고 또한 하나님의 구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2년의 세월이 지난 후 내가깨달은 사실이 있지요. 나는 인간에게 불행을 초래하는 원인제공은바로 시력에서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내가 눈이 멀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값비싼 옷을 걸치고 다니는 것을 보고 나의 누추한 옷으로 인하여 적지 않게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또 예쁜 사람들을 볼 때 내가 그처럼 예쁘지 못한 것을 한탄하였지요. 그런데 나는 인간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는 생각은 보지 못하는 가운데서도생겨난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를 할 때에 눈을 감지요, 또 부드러운 음악을 감상할 때에도 눈을 감게 됩니다. 하나님과 대화할 때에도 눈을 감습니다. 나는 눈으로 보는 기쁨은 잃었지만 또한 보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나의 삶의 다른 기쁨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소녀는 볼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은혜를 느끼고 그 가운데서 구원의 기쁨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은혜와 베풀어 주시는 구원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집니다.
대통령이라고 대통령이기 때문에 다 행복하다는 법이 없고 힘들게 살아가는 노동자라고 해서 마냥 불행 하라는 법이 없지 않습니까?
지금도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처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고 기적 같은 하나님의 구원을 필요로 하며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만 은 그러나 기다리는 은혜가 없어 실망하고 그 가운데 일어나는 구원의 기쁨이 없어 절망하고 매우 지치고 목말라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한 것같이 내게는 하나님의 은혜도 없고 구원도 없는 줄로 여기고 삶의 기쁨을 잊어버리고 인생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내게 말씀 하십니다.
지금이야말로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 누구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며 누구에게도 구원의 기회가 지금 허락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힘 있고 능력 있는 존재만 잘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힘없고 능력이 없는 존재도 살게 마련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입니다.
지금도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유효하고요 지금 이 시간에도 하나님의 구원은 누구에게든지 이루어지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내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때를 다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니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상황 내 인생에 있어서 특히 내가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은혜가 되지 않고 구원이 막막한 그 모든 것까지도 은혜와 구원의 대상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누구 한 사람 그 어떤 문제에도 하나님은 은혜로 다가오시고 구원의 길을 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를 보면 지금이 여러 가지 환경과 상황이 어려운 때입니다.
그 모습을 4절부터 말씀하고 있습니다.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매 맞음과 갇힘 그리고 요란함, 수고로움, 자지 못함, 먹지 못함 등입니다.
이들이 지금 이러한 때를 당하고 있습니다.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압박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경제적으로는 가난하고 구차한 생활을 하며 대처하기 어려운 역경, 생의 수단에서 따라오는 육체적으로 가해지는 어려움, 생활적으로 평안하지 못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어려움이 다 함께 당하는 총체적인 어려운 삶을 살고 있음이 짐작이 되지 않습니까?
이런 모습이 당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의 모습이요 지금의 모든 사람들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지금’이라는 이런 상황에 처한 때에도 은혜가 필요하고 구원이 요구되지 않느냐? 는 것입니다.
아니 은혜가 되어 주시고 구원이 되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이 은혜를 헛되이 돌리지 말고 은혜를 받을 줄 알고 구원을 소유하는 자가 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제요? 지금이 아니겠습니까?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존재는 마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가 필요 할 때에 은혜가 되게 하셨고 구원이 요구 될 때에는 언제든지 구원을 베풀었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은혜를 받지 못함과 구원을 받지 못함은 구원과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원하지 않는 나 자신에게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웬 나 자신인가? 할지모르지만 오늘 하나님의 은혜가 구원은 지금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내 욕심과 내 정욕과 내가 원하는 것이 우선이 되기 때문에 지금은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이 요구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구원을 말하지만 사실은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내 성질대로 내 기분대로 욕심대로 정욕대로 가 버리지 않습니까?
요사이 마귀들은 전략을 새로 짰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전략이 잘 먹혀들고 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도 다니게 하고, 예수도 잘 믿게 하고, 전도도 하게하고, 기도도 하게하고, 열심을 내게 합시다. 그러나 내일부터 하게 합시다’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는 단연, ‘내일부터’, ‘다음에’, ‘차차’, ‘나중에’하게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마귀가 제일 무서워하는 단어는 ‘오늘’, ‘지금’ ‘행하라’입니다.
오늘 읽었던 본문의 말씀이 강조하고 있는 핵심적인 말씀은 “지금”이라는 단어입니다.
은혜와 구원은 지금 받을 수 있는 축복입니다.
망연한 내일을 기다리는 성도 어쩌면은 마귀에게 놀아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한꺼번에 받는 것이 아니고 매일 매일 때마다 알마다 시마다 받는 것입니다.
한번 받았다고 평생을 가는 것이 아니고요 앞으로 받을 것이란 망연함에 있어서도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 가운데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것이 예수 안에서 아버지의 뜻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때마다 일마다 시마다 평강을 주시기로 원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올라오신 분은 반드시 은혜를 받고 구원의 축복을 받고 가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은혜와 구원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얼마나 깊고 넓은지 마치 태평양의 물과 같고… 하나님의 은혜의 곡간은 요셉이 애굽에 지은 창고보다도 더 크고 풍성합니다. 그런데 태평양 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목말라 죽고, 요셉의 창고 속에 있는 생쥐가 굶어서 죽었다면 그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겠습니까? 그저 입만 벌리면 물이 들어오고, 조금만 수고하면 기름진 곡식으로 배불리 먹을 텐데 입을 꼭 다물고 굶어 죽는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강물처럼……. 차고 넘치고 있는데도 은혜를 사모하지 않고, 받은바 은혜도 헛되이 여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도하는 은혜를 주셨으면 기도해야 하지 않습니까?
말씀을 주셨으면 사모하며 말씀에 굳게 서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고 이방인과 같이 행하면 되겠습니까?
옛날 믿음의 선조들은 감옥에 잡혀가면서도 밤을 새워 성경을 읽으며 은혜를 받았는데, 바울과 실라는 옥중에서도 찬송하고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고, 어디서든지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때가 되었지만……. 우리는 여기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듣는 일과 은혜 받을 곳을 찾기보다는……. 육신을 위해서 바쁘고, 자신을 위한 일에 너무 분주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지금은 은혜 받을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 주실 때, 깨어 일어나……. 믿음의 입을 크게 벌려……. 은혜를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일에는 모든 것이 다 기회가 있습니다. 인생의 성공과 행복도 기회가 있는 것이고,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이 기회를 잘 잡은 자요, 실패하는 사람은 이 기회를 무심히 보다가 놓쳐버린 사람입니다.
기회는 어느 순간에 지나가 버리는 것이 기회입니다. 기회는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오면 그것을 놓치지 말고 꼭 붙잡아야 합니다.
영국 어느 박물관에 머리는 말의 머리이고 꼬리는 새의 꼬리로 된 모형의 동물이 있는데 그 이름을 기회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기회는 앞으로 올 때는 말의 머리와 같아서 붙잡고 올라 탈수가 있지만 그것이 지나간 다음에는 아무리 붙잡으려고 애를 써도 새의 꼬리와 같이 미끄럽고 잘 빠져나가서 붙잡을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바로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연히,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골탕 먹으려고 어려움을 주신 일이 한번도, 한 사건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에는 그런 것 같이 여겨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 하든지 은혜를 헛되이 돌리지 않도록 깨우치고, 교훈하셔서 그들을 믿음의 길에, 축복의 길에 있게 하시기 위하여 어려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봅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이 있느냐?’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면 어떻게 환난과 고난을 당하고 있는 이것을 그냥 쳐다만 보고 있느냐?’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악인들이 죄를 짓고 있는데도 잘만 되는데 왜 그냥 보고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애 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니라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환난과 고난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지금 내가 아파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되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으라는 말씀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그런 일들을 하시는 것은 여러분들을 정말 사랑하시기에 내가 볼 때에 좀 힘이 들고 아파지만 그런 일을 동원하신 줄 믿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매우 힘든 상황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기에 우리를 멸망케 하시려고 준 사건이 아니라, 이 위기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우리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그 은혜와 그 구원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시기 위하여 주신 사건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 이 놀라운 은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오래 참음과 자비함, 성령의 감화, 거짓 없는 사랑,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인격의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공급받기로 하면 됩니다.
언제? 지금입니다. 은혜 받는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3:13절에 보면,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했습니다. \\오늘\\이 중요합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다음 기회는 기약 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 기회에 은혜 받겠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은혜 받는 자리에 내가 있어야 내가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은혜 받기를 아무리 갈망해도 내가 은혜 받는 자리에 없으면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은혜 받는 자리에 빠지는 것은 자신만 손해입니다. 은혜의 때, 은혜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 예배, 수요 예배, 구역 예배,철야 기도 새벽 기도때에 은혜를 받기를 힘쓰야지요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을 때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은혜의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도마는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것을 의심하였습니다. 내 손으로 예수님의 손에 못 자국을 만져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예수님께서 두 번째 제자들에게 오셨을 때, 도마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은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은혜의 자리에 동참한 이후에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게 되었고, 그리하여 인도에 가서 순교하기까지 평생을 복음 전도자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도마가 두 번째 모임에도 빠졌더라면 도마는 평생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고 제자의 반열에서 탈락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은혜의 자리에 빠지지 말고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은혜 받는 자리에 다른 사람은 둘째고, 내가 있어야 내가 은혜를 받는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에 빠진다는 것 자체가 은혜와 구원의 사모하는 열정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 없습니다 하는 표시입니다.
아 저 사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없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있구나? 교역자도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별로 염려 안합니다.
그러나 열심히 나아오는 자는 제 쌀독에 쌀이라도 퍼 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기도할 때 은혜를 받습니다.
사도행전 2:38절에 보면, 기도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했고 마태복음 7:11절에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성도가 은혜도 많이 받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아들이 아버지에게 생선을 달라고 할 때에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알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눅11:11-13).
또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감사를 하는 자가 더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한번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크게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푹푹 찌는 어느 여름날입니다. 길을 가던 길손이 나무 그늘 밑에 앉아서 시원하게 땀을 들이며 나무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볼품없이 생긴 나무를 보고 이 길손은 중얼거렸습니다. \\나무치곤 되게 못생겼네.. 저렇게 비틀려 있으니 재목으로도 못쓰겠고, 과일나무도 아니니 과일을 따먹을 수도 없고, 장작으로 때려해도 하도 옹이가 많아서 뻐개기가 힘이 들겠으니... 나무치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겠구먼!\\ 지나가던 사람이 이 말을 듣고 \\여보시오! 게서 무엇하시오!\\ 하고 물었습니다. \\하도 더워서 땀을 들이고 있습니다!\\ 그때 이 나그네가 말합니다. \\아니 당신은 그 나무가 아무 짝에도 없다고 했는데……. 그렇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고 있지를 않습니까?\\ 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땀을 들이던 이 길손은 그만 얼굴이 벌게지면서 말문이 막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면서도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 어리석은 인생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지금 은혜를 사모하며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며 감사를 한다면 나의 신분은 놀랍게 바뀔 것입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