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육을 그리워하는 이 명절에 잘 찾아보십시오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68회 작성일 2009-05-27 09:41

본문

사도행전 17:23-31 혈육을 그리워하는 이 명절에 잘 찾아보십시오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여러분 송편을 맛있게 드셨습니까?
그리고 사랑하는 부모 형제 자녀등 혈육을 만나는 기쁨이 있었습니까?
다행히 서울에 혈육이 계신 분들은 혈육을 만나기 위한 전쟁을 치루지 않아도 되지만 저 전라도나 경상도 남쪽에 계신 분들은 귀성 귀경 전쟁이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전쟁을 치루는 것도 혈육을 만나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사통팔달(四通八達)로 길이 잘 뚫여있어서 고향 가는 길이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만은 지금으로부터 10-20년 전에는 대단하였습니다.
제가 10-20년 전 설날에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 간적이 있었습니다. 오전 중에 출발을 하였는데 그 다음날 해가 뜬 후에 도착을 하였으니 시간상으로 만 하루 가까이 20시간 이상이 걸렸습니다. 아마 중부 상일 진입로에 접어드는데 만 해도 거의 3-4시간이 걸렸쓰니까요? 그리고는 하루 밤 자고 올라오는데 이게 장난이 아닙니다. 그 후로는 내려 갈 일이 없었습니다마는 그래도 혹시 부모님이라도 거기 계신다면 내려 갈 것입니다.
여태까지 많은 이들이 해온 것같이 특히 우리 민족은 이 혈육의 정에 살고 정에 죽는 민족이 아닙니까?
성경은 왜 사람들에게 혈육에 끌리게 하고 그리워하며 만나서 그 희로애락을 같이 나누게 하였을까요?
그 이유는 이 혈육적인 사랑과 기쁨을 주게 하신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서 만나게 하려고 하심입니다.
이 사랑이 어디서부터 왔을까? 이 기쁨이 어디서부터 와서 이 부모 자식 형제간의 정을 주셨을까? 생각을 한번 해 보셨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혈육의 정을 최고의 선으로만 여겼지 그 혈육의 정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면 그 혈육의 정을 주신 하나님의 귀한 뜻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혈육의 정만을 이야기하면은 사람들보다 짐승의 세계에는 더 애끓은 사연들이 많습니다.
가시고기의 자녀 사랑을 사람들이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제 살을 뜯어 먹어 자녀 고기를 키우지 않습니까?
거미들도 자녀들이 제 살을 다 뜯어 먹고 판자로된 재래식 화장실에 달려 껍데기만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지 않습니까?
동물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몸을 다 주어 종족을 번성케하는 눈물겨운 희생을 발휘하지만 그러나 더 이상의 발전은 없습니다.
혈육은 오직 종족의 번성을 위함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혈육의 사랑도 참으로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많지 않습니까?
자식 사랑 갈수록 굉장합니다. 가정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 합니다.
어떤 부모는 어린 자녀들이 자신이 없어 고생 할까봐 염려하여 그 자식과 함께 자살을 하지 않습니까?
짐승들도 어린 자녀가 위험에 돌출되면 잡아먹어 버립니다.
매스컴을 통하여 그런 소식을 접하게 될 때에 참으로 가슴이 뭉클하고 나도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의 종족을 위한 번성의 차원에서만 이루어진다면 다른 동물들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준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것이 아니면 무슨 유익이 있으며 아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종족 번식의 차원에서 논한다면 동물보다 못한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자식을 버리고 가는 부모들이 많이 있습니다. 멀리 볼 필요 없이 우리가 사는 이 풍납동에만 해도 부모들에게 버림을 받은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왜 자식을 떠났는가?를 생각하기 보다는 자식을 버린 자들을 향하여 짐승들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하며 짐승보다 못한 자라고 합니다.
사람이 짐승보다 종족의 번성에 우선하지 못합니다. 짐승은 종족 번식의 본능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요사이는 자식을 위하여 사는 부모들이 점점 줄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민족도 현명해졌다고 생각이 됩니다. 재산도 다 물려주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찾아서 떠나는 현실입니다.
무엇이 인간의 혈육을 논하는데 있어서는 짐승의 생활보다 우선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짐승은 종족 번성의 본능이 그들을 그렇게 살게 하기 때문에 가시고기는 모든 가시고기가 똑같이 자식을 위하여 자신의 살을 떼어 먹이고 하는 희생을 합니다.
그기에 너무 놀라지 말고 감동받지 마십시오 좋은 가시고기 나쁜 가시고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 악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짐승보다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태어났으며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존재이기 때문에 존귀한 것입니다.
이것 없다면 그 사람은 짐승보다 우선하지 못합니다.
이 같은 이유에서 사람의 존귀함을 알지 못하고 썩어질 혈육을 앞세우며 혈육 제일주의로 살아간다면 너무나도 하나님 앞에는 가증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제 자녀만 알고제 부모만 알고 그것으로 인생을 잘 사는 것으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다운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짐승보다 나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고 혈육제일 주의로 살아간다면 나중에는 크게 슬픔을 가질 것이요 후회가 될 것입니다.
혈육의 사랑의 관계를 통하여 이 사랑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의 한 남편은 너무나도 인간적으로 가정적이며 혈육적인 기쁨과 사랑에서 의무감에 충실함을 즐거워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가정의 가장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아내와 자녀에게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을 잘하며 또 부모에게 지극히 잘하는 효자이었습니다. 가족들 중심으로 혈육의 기쁨을 가지다가 이제 아내가 교회 중심으로 생활을 바뀌게 되니 거기에다가 아들까지 교회 생활에 힘쓰니 그만 삶의 기쁨이 소멸되고 혈육의 역학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혈육의 관계에서만이 아닌 새로운 사랑과 기쁨과 소망이 형성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새벽에 일어나보니 아내도 아들도 새벽기도를 가고 하니 방이 텅 빈 것 같은 감정과 허탈함을 느껴 갑자기 자신이 혼자된 마음에서 신세를 한하고 울었다는 것 아닙니까?
누가 내 부모요 형제입니까?
예수님은 자신을 향하여 오는 혈육을 향해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그는 부모에게 잘 할 수가 있었지만은 그 형님이 되시는 분은 절기에 부모를 찾는 일에는 벌써 몇 년째 오지를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생각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형은 아내를 통하여 복음을 듣고 보니 혈육의 관계만으로서 인간이 태어나서 행 할 부모와 형제의 도리가 아님을 알고 믿음의 관계로 바꿔 보려고 하니 혈육을 고집하는 부모와 동생들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그만 발걸음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본인도 사위를 본 입장입니다.
이게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여러분 명절날에 즐거운 일이기보다는 혈육의 관계를 따지다가 칼부림이 나고 평생 원수가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부모님이 그럴 수 있나 자식이 되어 그럴 수 있나 형이 되어 그럴 수 있나 동생이 예의도 없이 등등입니다.
혈육이 좋은 것 같지만 어떤 관계를 벗어나면 은 철천지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절대로 혈육으로만 사랑하고 사는 것이 사람의 삶이 아닙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이 가정을 하나님은 사랑하시기 때문에 혈육의 관계를 넘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축복을 받을 줄로 기대합니다.
이제 우리 민족은 부모 형제 자식간의 애틋한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주신 사랑을 발견하고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기회를 이번 절기를 통하여 이루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은 종교성을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이 종교성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무엇이든지 믿고 살도록 되어있습니다.
자심의 주먹을 믿더라도 믿음이 있어야 살지 않으면 불안하여 미쳐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산마다 골짝마다 동네마다 골목마다 골목 귀신이 있고 전봇대 밑에도 귀신이 있고 심지어는 아궁이에 불을 뗄 때 쓰는 부지깽이도 귀신이 있다는 듯이 삼천리금수강산이 아니라 삼천리 귀신 강산을 만들어 놓았듯이 그리스 로마시대 아테네에도 모든 것에 신이 있다고 믿고 신을 지었고 심지어는 혹시 우리가 알지 못하여 빠지는 신이 있을까 하여 알 수 없는 신에게 라고 하여 섬기는 범사에 종교성이 많았습니다. 이웃 일본에 가보면 귀신은 전국적입니다. 우리나라 이순신 장군도 귀신이 되어 있고 욘사마도 귀신이 될 날이 멀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일본이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빨리 복음이 전파되어야 할 선교지입니다.
1994년 1월 27일자 미국 워싱턴 포스트 지에서는 한국의 무당 심진송씨에 대해서 특집으로 다루었는데 그 이유는 김일성의 죽음을 정확하게 맞추었다고 해서 화제가 된 무당입니다. 이 사람은 그 일로 인해 하루아침에 유명해져서 앞으로 몇 년까지 점 예약이 이미 다 끝났다고 합니다. 재미로 보는 운세 요사이는 카드사나 통신 회사 등에서 무료로 5분 동안 운세 상담권을 넣어 주기도 합니다.
오늘 같은 합리적인 시대에, 그것도 최첨단 과학이 난무하는 시대에 무당들을 불러들여 매스컴들이 야단을 떨고 있습니다. 인공위성 무궁화호가 발사되기 전날에도 관계자들이 돼지 머리를 갖다 놓고 고사를 지냈습니다. 여러분은 이 같은 모습을 보시면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우주 정복을 위한 최첨단 과학 장비를 만들어 놓고 그 옆에서 돼지 머리를 놓고 넙죽 엎드려 절하면서 이 우주 장비가 무사히 발사되기를 비는 그런 원시적인 모습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양면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은 한편으로는 지독하게 교만하여 최첨단 장비를 만들어 인간 만능을 부르짖으면서 신을 부정합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인간은 그렇게 약할 수가 없습니다. 무지하고, 나약하고, 무력하고, 두려움이 많습니다. 오죽 사람의 마음이 무력하면 돼지 머리를 놓고 거기에 절하면서 기대어 보려고 하겠습니까?
식당에 가서 밥을 맛있게 먹다가 보면 북어 머리가 먼지를 뽀얗게 쓰고 있고 실타래가 걸려있고 부적을 써 놓고 요사이는 달마상이 얼마나 많은지…….
이같이 사람들은 모두 깊은 종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렀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을 만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영원히 기뻐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사43:21 이 백성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다른 우상이 하나님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종교적인 심성이 잘못 찾아가서 우상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24절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라고 하셨습니다.
더욱이 조상을 귀신으로 섬기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귀신이 조상과 같은 모습을 하여 찾아오는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고 악신이 그를 주장 할 때에 무당을 찾아가서 사무엘을 초혼하니 죽은 사무엘이 무덤에서 올라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무엘이 다시 이 땅에 온 것이 아니라 귀신이 사무엘의 형상을 입은 것입니다
이 일로 사울이 새롭게 되고 생명을 얻는 일이 있었습니까?
아무 것도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믿은 자는 낙원에 있으며 죽은 자는 음부에서 심판을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무당이었다가 예수님을 믿고 새로운 삶을 얻는 박에녹이라는 집사님은 죽은 어머니가 찾아와서 생일 안 챙겨준다고 하고 슬피 울고 가는 바람에 신입사원 연수원에서 담을 뛰어 넘어가 식당에 가서 제사를 지내지 까지 하고 때만 되면 찾아와서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하고 얼마나 자신에게 대접을 받으시려고 하는지 직장 생활도 제대로 못하고 드디어 이제는 강신무당이 되어 모든 인생을 팽개치게 되었는데 누님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보니 그에게 나타난 원통하며 울던 어머니가 죽은 어머니의 혼이 되어 찾아 온 것이 아니라 나중에 보니까 귀신이 어머니의 흉내를 내었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광명한 천사의 탈을 쓰고 나타나기도 합니다.
성경에서도 조상 선조라는 단어가 1000번 이상 나왔으니 결코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우리 조상의 하나님 우리 선조의 하나님으로 표기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조상이지 섬김의 조상이 아닙니다.
죽은 자를 위하여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으며 그들 또한 무엇을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번 명절을 기해 잘못된 우상의 섬김에서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계기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만물의 주재시며 만물을 풍성하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이 풍성한 가을 주신이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때를 따라서 우리에게 먹을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 보십시오
온 만물이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들어내고 있지 않습니까?
빗속에서 바람 속에서 햇살 가운데서도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도 그러하지 않습니까?
사과는 왜 그렇게 빨강색을 띠고 맛은 사과 맛을 내고 배는 황금빛을 띠고 시원함을 내고 포도는 어찌 그리 탐스럽게 열려 포도 맛을 내는지 알밤은 어찌 그렇게도 토실토실 한지 과실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놀랍지 않습니까?
이것 다 하나님이 키워 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사이 텔레비전은 부쩍 음식에 대하여 관심이 많습니다.
몸에 어떻게 해 먹으면 맛이 있고 웰빙이 되고 경쟁적으로 방영을 하는데 왜 그렇게 많이 방영합니까?
사람들이 먹는데 관심이 많고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맛있게 먹을 양식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왜 모른 척하느냐? 말입니다.
바다에는 별별 생선을 다 내시고 산천에는 별별 채소 다 내어 주셔서 먹게 하고 맛있게 하는 것이 어찌 이렇게 우리에게 양식이 되었느냐? 는 말입니다.
창1:29 온 지면에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가정마다 기쁨을 주는 자녀를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행복한 가정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인식 할 때에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 되고 축복이 되고 가정의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고 자녀는 어린 감람나무와도 같은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모르는 가정은 자녀가 원수가 되고 부부가 철천지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의 생명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까?
언제 불러 갈지 모르는 삶을 살면서 큰 소리 칠 필요 없지 않습니까?
겸허하게 내 생애를 주께 맡기고 살아가야 하지 않습니까?
이 중추절 휘영청 밝은 달 아래서 우리 인생의 모든 관계를 잘 더듬어 보면 하나님만 열심히 믿을 것 밖에 없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요 하나님을 찾으면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범사의 생활이 되시고 범사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Total 914 건 | 1 / 92 page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