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가장 쉽게 가장 빠르게 복 받고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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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56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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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30: 11-16 예수님은 가장 쉽게 가장 빠르게 복 받고 사는 길입니다.
지금 시중에는 자난 10월 16일 52세로 뇌졸중으로 사망한 만득이 라는 별명을 가진 전아무개의 목사님의 유서를 두고 화재가 난무합니다. 그의 유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대한 감사입니다. 스물 셋 되던 해에 예수의 도에 입문하여 늦은 나이에 학문을 접하며 좋은 스승들을 만났고 좋은 길벗들을 만나 여기까지 살게 된 것에 감사하노라. 나는 오늘까지 주변인(周邊人)으로 살게 된 것을 감사하고 모아 놓은 재산 하나 없는 것을 감사하고 목회를 하면서 호의호식하지 않으면서도 모자라지 않게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이 땅에서 무슨 배경 하나 없이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고 앞으로도 더 얻을 것도 없고 더 누릴 것도 없다는 것에 또한 감사하노라.
그리고 덧붙이기를 사람들의 탐욕은 하늘 높은 줄 모르며 치솟고 사람들의 욕망은 멈출 줄 모르고 내달리며, 세상의 마음은 흉흉하기 그지없는 때에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음에 참으로 감사하노라.
또 하나는 자신의 사후(死後) 처리에 대하여라 하겠습니다.이에 남은 이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노니, 첫째, 나는 치료하기 어려운 병에 걸리면 치료를 받지 않을 것인즉, 병원에 입원하기를 권하지 말라. 둘째, 나는 병에 걸려 회복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어떤 음식이든 먹지 않을 것인즉 억지로 권하지 말라. 또한 내가 의식이 있는 동안에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나누기를 꺼려하지 말라. 셋째, 내가 죽으면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알려 장례를 번거롭게 하지 말라. 넷째, 내가 죽으면 내 몸의 쓸모 있는 것들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머지는 내가 예배를 집례할 때 입던 옷을 입혀 화장을 하고, 현행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고향 마을에 뿌려 주기를 바란다. 다섯째, 내가 죽은 뒤에는 나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땅 위에 남기지 말라.(푯말이나 비석 따위조차도) 와서 산만큼 신세를 졌는데 더 무슨 폐를 끼칠 까닭이 없도다
아무 욕심 없이 살다가 감사하며 가는 구나 자신의 시신을 남을 위해 사용하구나 하는 생각은 들지만 무엇인가? 모르게 한 구석이 시원하지를 않습니다.
지난 주 제 딸이 반주를 하는 한인 교회에서 주일 설교를 하고 그 교회 담임 목사님과 식사를 하던 중에 하시는 말씀이 한 때는 많은 성도를 두고 목회를 할 때에 너무 힘이 들었는데 지금은 숫자가 적지만 오히려 편안합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몇 명의 성도를 두고 목회를 오래 동안 하시느라고 피곤하시기도 했겠지만 이것을 편안이라고 하면 되겠는가?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 숫자가 적어도 은혜로 감당 할 수 있고 감사하며 살 수도 있겠지요
내게 주어진 것만을 은혜로 감사하는 것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적극성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의 최선을 다하여 무엇인가? 큰일을 이루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28장에서 축복하시기를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이왕이면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어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저는 그 교회를 위하여 설교 전에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는 많은데 너무나도 답답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시기를 하나님의 은혜가 크고 이래도 고맙고 감사하는 것은 물론 당연하지만 그것으로만 하나님께 다하는 삶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으로만 나를 불러 주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를 깨뜨려서 온 사람들에게 향기를 진동시키는 것입니다.
가장 귀한 옥합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향기를 내는 것입니다.
한 알 그대로 감사하며 그냥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드 향이 제 아무리 고급 향수라도 옥합 속에 갖혀있으면 그 진가가 발휘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받은 은혜를 가만히 내것으로 감사하고 좋아하고 있기를 원치않고 깨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팍 깨어 질 때에 그 주위는 예수 향기로 진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하는 사고로는 주신 은혜가 족하다는 사고를 가지고서는 발전이 없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이룰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찾아 적극성을 가지는 추진해 가는 일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펑펑펑 깨뜨려야 합니다.
기드온의 300명의 용사들이 항아리 속에 있는 횃불이 그 항아리가 깨어지면서 빛을 발휘하였을 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300명이 10만의 대군을 쳐서 승리하게 된 것이 아닙니까?
변화산에서 초막을 셋 짖고 여기가 좋사오니 하는 베드로에게 산 아래로 내려가서 주어진 사역을 하기를 주님은 종용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 가운데 여기가 좋사오니 이대로가 좋사오니 하는 식으로 감사하니 편안하니 하며 그냥 머물러 있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길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미국을 다녀오면서 또 하나 느끼는 것이 있었습니다.
한국은 선을 주장하고 선한 것 같지만 아직 악의 영향권 아래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미국은 악한 것이 많는 것 같지만 선의 영향 아래 지배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한국은 기독 사상이 주도를 하지 못하고 있고 미국은 그래도 기독 사상이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를 주장하고 미국을 침략군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합니다 만은 어떤 사회를 형성시키고 지향하는 바가 민족주의인지 공산주의인지 아니면 그 때 그 때 형편에 따라 가겠다는 지 국가의 정체성을 일부의 국민들은 전혀 감각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한은 맥아더 장군 동상을 철거하고 그 곳에다가 공산주의로 통일 전쟁을 도운 중국 공산당 창시자 모택동의 동상을 세워야 하는지 감이 아직도 잡히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북한의 공산당 사상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은 김일성이가 공산정권을 세운 후 지금까지 그 사상에 하나라도 흔들림이 없이 달려왔고 오늘날 공산 사상이 그들의 생명같이 되어 온 것이 사실이지 않습니까? 앞으로 어떠한 시대가 오고 어떤 사상이 흐른다 하더러도 뚜렷한 국가의 정체성은 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사회는 누가 뭐라고 해도 세계에서 가장 자유롭고 평화스러운 부요한 나라입니다.
이들이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부자가 되고 수탈하여 잘 된 나라라고 생각이 드십니까?
국가가 세워진지 200년을 겨우 넘어선 나라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 질문을 하기를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남한이 미합중국을 광범위한 분야에 거쳐서 따라잡으려면 몇 년이나 걸릴까 궁금해요 라는 질문에 절대 못 잡습니다. 이건 욕이 아닙니다…….일단 미국만한 기반시설을 갖추기가 몇 백 년이 들지도 모릅니다…….군사비만 따져도 미국이 1년에 지출하는 군사비용은 그 다음순위 10개나라가 지출하는 비용과 맞먹을 정도입니다…….또한 우주과학, 생명과학, 군사과학, 정치, 땅크기, 인구수, 신용도 등에서 모두 한참 앞서있기도하고요....혹시 모르죠.. 우리나라가 화성에 인간을 먼저 보낸다면.--
미국은 어떤 민족주의도 아닙니다. 말 그대로 여러 민족이 혼합한 합중국입니다.
무슨 정신이 이들의 중심을 잡고 있습니까? 기독 정신입니다.
지금 이라크 때문에 미 부시 대통령이 곤경에 처해 있지만은 부시는 이라크를 공격한 것을 두고서 하나님의 응답하심 이라고 할 정도로 그러합니다.
이들에게 주어진 자유와 평화가 풍요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평화롭고 자유로운 만큼 그들에게 주어진 사회 규범을 지킴으로 이루어집니다.
전쟁, 테러, 허리케인, 등등의 소용돌이가 있지만 아마 다른 나라에 이 정도로 일을 수행한다면 사회 질서가 혼란스럽고 정치가 흔들릴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평화와 자유 질서가 이 미국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통질서 하나만 보더라도 놀라울 지경입니다.
누가 한 사람 큰소리치지 않고 조용조용하게 일이 처리되고 있다는 것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모인 곳마다 싸우는 소리가 판을 칩니다.
라스베가스 도박의 현장에 가보면 더 놀라지요 수십만명이 도박을 하지만 큰소리 더욱이 싸움의 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평화와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도 또한 그 규범을 어길 때에는 엄청난 대가를 치루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강력하고 부유한 나라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을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평안과 번영을 원한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질서가 그 하나님의 복을 받고자 하는 나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그 질서가 무너져 버리면 사망일 수밖에 없다는 정신을 가져야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 하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처신 하느냐?에 따라 생사화복이 있습니다
살고 죽고 복을 받고 화를 받는 것이 절대로 다른 이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 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이 원망하지 말고 내가 복없다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15 절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내가 골라잡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처신 하느냐?에 생사화복이 있습니다.
자신이 처한 행동에 대하여는 아무런 책임 관심이 없고 내게 당한 결과에 대하여 원망하고 평하고 있지 말아야 합니다.
16 절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방법이 없다 길이 없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무엇을 행하든지 그대로 거두기 마련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사람들이 행하는 모습 그대로구나를 너무나도 실감하며 느낍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처신 못하는 사람 결코 잘 될 수가 없고요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사람은 그 앞길 보장됩니다.
기독교는 절대로 요행을 바라는 라스베가스에서 당기면 터지는 잭팟(jackpot)이 터지는 카지노 게임이 아닙니다.
그 시작은 내 마음에서부터 그리스도를 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겨울은 눈이 있어 좋고,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것 같아서 좋고, 여름은 초목이 우거져 있어서 좋고, 가을은 열매가 있어 좋다.\\ 이 사람은 항상 복된 사람입니다.
반면에 \\겨울은 추워서 싫고, 봄은 황사 때문에 싫고, 여름은 더워서 싫고, 가을을 고독해서 싫다.\\ 이런 사람은 겨울이 되면 여름을 생각하고, 여름에는 겨울을 생각하니까 이 사람은 행복할 틈이 없습니다.
참으로 복된 사람은 내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도가 자리 잡아야 합니다.
마음에 시온(Zion)의 대로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그리스도를 품은 대로 그 생활에 그리스도가 반영이 되고 그리스도의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마음의 사고를 복되게 가져야 행동도 복되게 됩니다.
사람의 행동은 그 마음에 품은 대로 들어 나게 마련입니다.
우연히 갑자기 나도 모르게 하는 말은 핑계일 뿐입니다.
내 마음 속을 한번 들여다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하십니까? 그러면 복 받을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혀 주관하지 않는 마음입니까? 절대로 보장 받지 못할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잘 알 것입니다
복 받을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 순간에 복이 될 것이며 복 받을 말이 시작되고 내가 받을 복이 눈에 보일 것입니다.
그 마음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세요 예수님의 능력이 축복이 생명이 구원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행 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삶이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생명평화라는 주제로 탁발순례. 2004년 3월 달에 길을 떠난 자가 있었습니다. 지리산 한 절에서 종사하는 자들이 절간을 떠났습니다. 그 이유적슨 길에서 길을 찾기로 나섰습니다. 그것도 많은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평생을 길에 머물렀던 부처의 흉내를 내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부처도 길을 찾지 못했는데 이 분들은 그 해 10월까지 여기 저기 다녔다는 글을 보았는데 지금도 다니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길을 가지만 길을 찾지 못하고 있음은 두 말 할 나위도 없을 것입니다.
평생을 다녀도 어느 정도 도가 튀어야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길은 찾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미 주어진 길을 가면 됩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내가 곧 길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 가운데 더 이상 길을 찾아 나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길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를 따르라 나를 배우라 나와 함께 가자 나와 너는 하나이라 하시지 않습니까?
제발 신앙생활을 고행쯤으로 여기지 마십시요
11 절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늘 끝에 있는 것도 아니요 바다 끝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내게 아주 가깝게 내 심장보다 더 가깝게 주님은 계십니다. 할렐루야!
신앙생활에서 벗어난 생활만큼 힘들고 고생스러운 것 없습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얼마나 편안하겠습니까?
내 안에 있는 색깔이 내 주변의 사람들을 결정하고 내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다.
마음이 우중충하면 인생도 우중충하고 마음이 밝으면 인생도 밝고 마음이 오락가락하면 인생도 오락가락하고 마음이 확실하면 인생도 확실합니다.
가네 나네 하는 노래를 부르면 진짜가고 쨍하고 햇뜰날 돌아온단다 하면 그런 날이 옵니다.
예수님을 품으면 예수의 삶이 내 생활에 이루어집니다.
마음이 천박하면 인생도 천박하고 마음이 고상하면 인생도 고상하고 내 안의 색깔이 내 인생을 좌우합니다. 광야시대의 출애굽 1세대는 마음 색깔이 우중충하고 오락가락하고 천박했습니다. 불평불만, 원망, 불신앙, 불순종, 메뚜기 자아상이 그들의 색깔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중충한 광야에서 메뚜기처럼 오락가락 40년 동안 천박하게 살다가 죽을 때까지 마음 색깔이 광야 색깔이면 광야생활만 하다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의 색깔이 바뀌어야 인생도 바뀌는 것입니다. 광야훈련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광야훈련을 시키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는 훈련입니다. 그런데 출애굽 1세대들은 평생 광야훈련만 받다가 끝났고 누구에게나 광야훈련은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을 빨리 끝내야 합니다. 그것이 싫지만 체질화되면 탈출이 어렵습니다. 아주 체질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끈질기게 노력해서 광야생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광야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하늘에서 내리는 하나님께서 직접 주시는 기적의 양식 만나이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기적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이 최선은 아닙니다.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만나를 먹고 사는 광야생활이 아니라 내 스스로 수고하여 땅의 열매를 먹고 사는 가나안생활이어야 합니다
출애굽 2세대는 기적 같이 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려고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그들은 부모세대의 우중충하고 오락가락하고 천박한 색깔을 탈피하고 요단강을 건넌 후 길갈에서 할례를 행함으로 그들의 애굽에서의 종살이 하는 스타일의 삶의 수치가 굴러가버렸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유월절까지 지켰습니다.
이로써 십자가 보혈로 완전히 새로워진 출애굽 2세대가 등장한 것입니다.
이제 나도 애급과 광야를 벗어나 과감하게 요단강을 건너 나 욕심으로 가득찬 내 심보에 예수님을 보시고 마음의 할례를 받고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메뚜기 같은 생활을 청산하고 모든 것이 내 눈 앞에는 밥이라 할 수 있는 승리한 복된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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