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죽음의 관을 내려놓으시고 참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모시고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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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392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누가복음 7:11-16 이제 죽음의 관을 내려놓으시고 참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모시고 가십시오
오늘 우리 성도들이 수고하고 여러분들도 어렵게 오셨는데 귀한 말씀을 듣고 축복된 날이 되시기 기원합니다.
항간에 한 여성이 십몇 년 동안 함께 살아온 남편을 목 졸라 죽였던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살해한 여인이 구속되었는데 구명하자는 운동이 여성 단체들 사이에서 뜨겁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이 남편을 살해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은 이렇습니다.
남편이 남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더 이상 당신은 내 남편감으로 존재 할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여인의 말을 빌면 사랑을 해 줘야 할 남편이 상습적인 폭행을 하고 살해가 되던 그날도 자식들에게 주려고 없는 형편에 사둔 돼지고기 세근을 술과 바꿔 먹었다는 것입니다.
어찌 이 여인이 돼지고기 세근 때문에 남편을 죽였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동안 남편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속으로 얼마나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겠습니까?
미워 죽겠는데 그날따라 아이들 주려고 준비한 고기로 술로 바꿔 먹어버렸으니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그만 그 여인은 앞뒤를 생각 할 겨흘도 없이 당신 같은 사람은 차라리 우리 가정에서 없는 편이 훨신 낫겠다 하고 일을 저지려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구명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이와같이 제 역할을 못하는 사람은 누가 되었든지 죽여 버렸으면 좋겠습니까?
인터넷에서 그 기사에 관한 댓글에 보니 그런 인간은 잘 죽었다는 글도 더러 있었습니다마는 극히 소수요 극한 감정에 처한 자들이었고 대체로 왜 하필이면 이런 방법 밖에 다른 길이 없었는가? 하고 아쉬워하는 이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한 2편을 소개하자면
죽은 분도 살미 행복으로 충만치 안았을터 ,,, 그리 허무이 갔지만,,다음 생에서는 행복한 가정써 사랑받고 줄수 잇는 사람으로 태어나길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져야 한다는 데는 아무도 의의가 없지 않습니까?
나도 한때3개월간 실직했을때 가족들에게 잘해주지못하고있다는 자책감에 잦은음주와 폭력적인 반응을 보였었는데...만약일자리를 아직직장구하지 못했다면 나도 맞아죽었거나 자살했을듯...삼가고인은 명복을빕니다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 참 불안한 인생이구나를 말하였습니다.
대체로 이 죽음을 참으로 안타까워하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입장도 남편의 형편도 죽음이라는 고비를 넘길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으니 이 두 사람 다 바라 볼 때에 안타까운 일이지 않습니까?
어찌 행복권을 잃어 버리고 불안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가정과 인생이 어디 이들 뿐이겠습니까?
이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사실 우리 모두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누가 이 가정을 죽음의 불행을 넘어 행복하게 살릴 수는 없었던가? 말입니다.
이 가정에 무엇이 문제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돈이 없기 때문입니까?
결코 돈 때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돈 없는 가정은 살아남을 길이 없고 행복해 지지도 못하는 것 아닙니까?
돈이 없어도 몸이 불편해도 얼마든지 행복 살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돈이 많기 때문에 죽어야만 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어떤 아들은 수년 동안 늙으신 어머니를 한번 찾아오지도 않던 형제가 있었는데 어머니 집이 재개발 되고 집값이 많이 올라가니 그 집문서를 내어 놓으려고 어머니를 찾아와서 협박하고 폭행하니 그 어머니가 자식에게 맞아 죽게 생겼으니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하였다는 것 아닙니까?
이와같이 우리네 삶에는 가장 가까운 자로 서로 위하고 사랑해야 하는 자들이 서로 사랑하기는커녕 원수가 되고 너가 없으면 내가 훨씬 행복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행스러운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우리가 불행해지는 것은 죽지 말고 잘 살아야 할 자가 내가 참으로 기대했던 자가 사망하였거나 기대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에 그 슬픔은 또한 말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죽어서는 안 될 외아들을 잃어버린 한 과부의 슬픔과 비통에 판 울음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이제 어떻게 사노
내가 무엇을 바라고 사노하며 서글피 여인이 울고 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다 죽어야 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슬퍼하며 괴로워하며 살 수 밖에 우리의 삶에 진정한 행복과 영원한 생명을 오늘 여러분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너도 나도 망하고 다 망 할 수 밖에 없는 우리네 삶에 진정한 성공적인 삶을 살도록 소개하고 싶습니다.
만약에 남편을 살해 할 수밖에 없는 그 가정에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그 같은 죽음의 비극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계시는 곳은 죽음의 자리에서 살리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을 한번 들어 보십시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세상에는 죽음이 2가지가 있습니다.
육신적인 죽음과 이 죽음은 누구에게든지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무서운 죽음이 있는데 소이 영적인 죽음 즉 영원한 죽음 지옥의 죽음이 있습니다.
여러분 육신적인 죽음 이것은 영원한 죽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사람이 어떠한 죽음을 죽게 되느냐? 아니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냐의 기준이 되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나인성에 과부의 아들의 죽음 앞에는 그 어느 사람도 생명을 더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사람은 그 죽음 앞에서 항복하고 그 자체를 받아들기고 슬퍼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주위에 보십시오
그 어떤 사람이 죽더라도 특별한 일이 없이는 3일 만에 빨리 빨리 장래를 치루지 않습니까?
그 누구도 이 죽음 앞에서 생명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조차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죽음을 향해 명령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죽음에서 일어나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아니 참으로 꿈같은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죽음의 현장에서 생명이 찾아 온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 생명이 잇음을 보여 주시는 사건입니다.
그 청년은 죽음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을 다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그 현장에는 죽음이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제 아무리 캄캄해도 불을 켜면 그 어두움이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이 사려져 버립니다.
빛이 있으면 제 아무리 칡흙같은 어두움도 꼼짝없이 물러갑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 예수님을 청한다면 죽을 맛나는 삶이 날마다 사는 역사가 일어 날 것입니다.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사는 역사가 일어 날 것입니다.
오늘 귀중한 시간 내어서 올라오신 모든 분들이 이 예수님을 소유하시고 가시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빛 되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내 주위에 사망의 어두움이 당장 물러 갈 것입니다.
예수님은 과연 어떠한 분이시기 때문입니까?
나를 무지무지 하게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나같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나 대신 죽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못난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죽어서야만 내가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정했습니다.
죄의 값은 누구든지 사망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세상에서도 죄를 지으면 벌을 받지 않습니까?
지독한 죄인은 사형을 시키지 않습니까?
그래서 죄는 사람이 짖고 그 죄값으로 죽기는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으니 그 사랑이 얼마나 크신 사랑이십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나를 살렸으니 나의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크신 사랑이라고 말들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 죽음의 관을 메고 가는 무리가 얼마나 슬퍼하며 모든 기대를 다 잃어버리고 이 청년이 흙으로 돌아가는 절차를 밝아 가고 있습니다.
이제 생명이 없는 시신을 흙으로 돌려보내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보시는 예수님은 결코 그 청년의 죽음을 외면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이 대신 죄의 값을 치루셨는데 그 청년 죽게 내 버려 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크신 사랑으로 죽음으로 향하여 가는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여인아 울지 말라 이 청년 죽을 이유 없다 내가 생명을 주겠노라는 것입니다.
그 울음을 그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무도 가까이 하기 싫어하는 그 죽음의 관에 손을 데시고 망자의 행렬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습성은 죽음에는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함께 하는 부부도 부자 관계도 무서워서 도망을 가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 누구보다도 부부보다 부자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분이시기에 죽음에 손을 대시고 참으로 사랑하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부부도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 목 졸려 죽이는 판인데 예수님은 죽은 자에게도 당신의 사랑을 베푸시고 살리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내가 처한 곤란한 문제에 그 누구도 관여하지 않고 피하려고 하지만 내 형제도 내부모도 자식도 아내도 남편도 관여치 않으려고 하지만 오직 예수님만이 그 문제에 사랑을 가지고 예수님은 관여 하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사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찾아다니시는 곳이 어디며 찾아 만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이요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힘없고 가난하고 병들고 죽음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자들에게 언제든지 찾아 오셔서 그의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혹시 이 자리에 함께하신 분들 중에는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나만의 괴로움과 힘들어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예수님은 그 부분에 사랑으로 다가 오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감당치 못하여 거의 포기하고 아니 인생 자체를 포기하고 싶은 그 자리에 예수님의 사랑이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예수님은 찾아 오셨습니까?
그 가운데서 오셔서 구원을 베푸시기 위함입니다. 즉 그 문제에서 건져 주시기 위하심입니다.
강도와 도적이 오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강도질과 도적질을 하기 위하여 오지만은 나는 많은 사람을 살리시기 위하여 내 자신의 몸을 희생의 제물이 되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이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그 사랑을 알지 못하고 감사하지도 않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감사절은 인생에게 주신 모든 것을 감사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심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모든이들과 함께 즐거워 하는 날입니다.
죽음을 향하여 한없는 슬픔과 절망에 있는 이 무리에게 예수님은 왜 다가 왔습니까?
그들에게 생명을 주고 새로운 소망을 주시기 위함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왜 사랑하는 여러분들을 강권하여 청하신 줄 아십니까?
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시고 예수님의 생명을 선물로 받으시라고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을 소개하겠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다 시행하리라
이제 내 인생에 예수님 때문에 절호의 기회가 오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외면하지 말고 그의 사랑을 받아 드리고 그의 생명을 선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나의 삶이 예수님 때문에 180도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죽음의 무리가 지나쳐 갔다면 은 결코 생명은 주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영원한 슬픔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나에게 가장 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말씀입니다,
기회는 다시 주어지지 않습니다.
은혜는 지금 받을 때요 구원도 지금이 받을 때입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가 나를 위하여 기회를 만들어 준 마지막 기회 인 줄 알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죽음은 슬픈 것입니다. 특별히 영적인 죽음은 더욱 슬픈 일입니다. 영원한 이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과 슬픔이 세상에 들어온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나왔든지 예수님께서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자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구원이 이루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예수님만이 나의 구주이심을 아시고 모시고 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분들을 잘 인도하여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살아가는 참된 축복을 받도록 도와 줄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이 수고하고 여러분들도 어렵게 오셨는데 귀한 말씀을 듣고 축복된 날이 되시기 기원합니다.
항간에 한 여성이 십몇 년 동안 함께 살아온 남편을 목 졸라 죽였던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살해한 여인이 구속되었는데 구명하자는 운동이 여성 단체들 사이에서 뜨겁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이 남편을 살해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은 이렇습니다.
남편이 남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더 이상 당신은 내 남편감으로 존재 할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여인의 말을 빌면 사랑을 해 줘야 할 남편이 상습적인 폭행을 하고 살해가 되던 그날도 자식들에게 주려고 없는 형편에 사둔 돼지고기 세근을 술과 바꿔 먹었다는 것입니다.
어찌 이 여인이 돼지고기 세근 때문에 남편을 죽였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동안 남편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속으로 얼마나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겠습니까?
미워 죽겠는데 그날따라 아이들 주려고 준비한 고기로 술로 바꿔 먹어버렸으니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그만 그 여인은 앞뒤를 생각 할 겨흘도 없이 당신 같은 사람은 차라리 우리 가정에서 없는 편이 훨신 낫겠다 하고 일을 저지려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구명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이와같이 제 역할을 못하는 사람은 누가 되었든지 죽여 버렸으면 좋겠습니까?
인터넷에서 그 기사에 관한 댓글에 보니 그런 인간은 잘 죽었다는 글도 더러 있었습니다마는 극히 소수요 극한 감정에 처한 자들이었고 대체로 왜 하필이면 이런 방법 밖에 다른 길이 없었는가? 하고 아쉬워하는 이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한 2편을 소개하자면
죽은 분도 살미 행복으로 충만치 안았을터 ,,, 그리 허무이 갔지만,,다음 생에서는 행복한 가정써 사랑받고 줄수 잇는 사람으로 태어나길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져야 한다는 데는 아무도 의의가 없지 않습니까?
나도 한때3개월간 실직했을때 가족들에게 잘해주지못하고있다는 자책감에 잦은음주와 폭력적인 반응을 보였었는데...만약일자리를 아직직장구하지 못했다면 나도 맞아죽었거나 자살했을듯...삼가고인은 명복을빕니다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 참 불안한 인생이구나를 말하였습니다.
대체로 이 죽음을 참으로 안타까워하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입장도 남편의 형편도 죽음이라는 고비를 넘길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으니 이 두 사람 다 바라 볼 때에 안타까운 일이지 않습니까?
어찌 행복권을 잃어 버리고 불안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가정과 인생이 어디 이들 뿐이겠습니까?
이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사실 우리 모두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누가 이 가정을 죽음의 불행을 넘어 행복하게 살릴 수는 없었던가? 말입니다.
이 가정에 무엇이 문제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돈이 없기 때문입니까?
결코 돈 때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돈 없는 가정은 살아남을 길이 없고 행복해 지지도 못하는 것 아닙니까?
돈이 없어도 몸이 불편해도 얼마든지 행복 살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돈이 많기 때문에 죽어야만 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어떤 아들은 수년 동안 늙으신 어머니를 한번 찾아오지도 않던 형제가 있었는데 어머니 집이 재개발 되고 집값이 많이 올라가니 그 집문서를 내어 놓으려고 어머니를 찾아와서 협박하고 폭행하니 그 어머니가 자식에게 맞아 죽게 생겼으니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하였다는 것 아닙니까?
이와같이 우리네 삶에는 가장 가까운 자로 서로 위하고 사랑해야 하는 자들이 서로 사랑하기는커녕 원수가 되고 너가 없으면 내가 훨씬 행복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행스러운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우리가 불행해지는 것은 죽지 말고 잘 살아야 할 자가 내가 참으로 기대했던 자가 사망하였거나 기대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에 그 슬픔은 또한 말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죽어서는 안 될 외아들을 잃어버린 한 과부의 슬픔과 비통에 판 울음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이제 어떻게 사노
내가 무엇을 바라고 사노하며 서글피 여인이 울고 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다 죽어야 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슬퍼하며 괴로워하며 살 수 밖에 우리의 삶에 진정한 행복과 영원한 생명을 오늘 여러분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너도 나도 망하고 다 망 할 수 밖에 없는 우리네 삶에 진정한 성공적인 삶을 살도록 소개하고 싶습니다.
만약에 남편을 살해 할 수밖에 없는 그 가정에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그 같은 죽음의 비극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계시는 곳은 죽음의 자리에서 살리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을 한번 들어 보십시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세상에는 죽음이 2가지가 있습니다.
육신적인 죽음과 이 죽음은 누구에게든지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무서운 죽음이 있는데 소이 영적인 죽음 즉 영원한 죽음 지옥의 죽음이 있습니다.
여러분 육신적인 죽음 이것은 영원한 죽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사람이 어떠한 죽음을 죽게 되느냐? 아니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냐의 기준이 되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나인성에 과부의 아들의 죽음 앞에는 그 어느 사람도 생명을 더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사람은 그 죽음 앞에서 항복하고 그 자체를 받아들기고 슬퍼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주위에 보십시오
그 어떤 사람이 죽더라도 특별한 일이 없이는 3일 만에 빨리 빨리 장래를 치루지 않습니까?
그 누구도 이 죽음 앞에서 생명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조차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죽음을 향해 명령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죽음에서 일어나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아니 참으로 꿈같은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죽음의 현장에서 생명이 찾아 온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 생명이 잇음을 보여 주시는 사건입니다.
그 청년은 죽음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을 다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그 현장에는 죽음이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제 아무리 캄캄해도 불을 켜면 그 어두움이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이 사려져 버립니다.
빛이 있으면 제 아무리 칡흙같은 어두움도 꼼짝없이 물러갑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 예수님을 청한다면 죽을 맛나는 삶이 날마다 사는 역사가 일어 날 것입니다.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사는 역사가 일어 날 것입니다.
오늘 귀중한 시간 내어서 올라오신 모든 분들이 이 예수님을 소유하시고 가시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빛 되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내 주위에 사망의 어두움이 당장 물러 갈 것입니다.
예수님은 과연 어떠한 분이시기 때문입니까?
나를 무지무지 하게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나같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나 대신 죽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못난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죽어서야만 내가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정했습니다.
죄의 값은 누구든지 사망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세상에서도 죄를 지으면 벌을 받지 않습니까?
지독한 죄인은 사형을 시키지 않습니까?
그래서 죄는 사람이 짖고 그 죄값으로 죽기는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으니 그 사랑이 얼마나 크신 사랑이십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나를 살렸으니 나의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크신 사랑이라고 말들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 죽음의 관을 메고 가는 무리가 얼마나 슬퍼하며 모든 기대를 다 잃어버리고 이 청년이 흙으로 돌아가는 절차를 밝아 가고 있습니다.
이제 생명이 없는 시신을 흙으로 돌려보내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보시는 예수님은 결코 그 청년의 죽음을 외면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이 대신 죄의 값을 치루셨는데 그 청년 죽게 내 버려 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크신 사랑으로 죽음으로 향하여 가는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여인아 울지 말라 이 청년 죽을 이유 없다 내가 생명을 주겠노라는 것입니다.
그 울음을 그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무도 가까이 하기 싫어하는 그 죽음의 관에 손을 데시고 망자의 행렬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습성은 죽음에는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함께 하는 부부도 부자 관계도 무서워서 도망을 가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 누구보다도 부부보다 부자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분이시기에 죽음에 손을 대시고 참으로 사랑하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부부도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 목 졸려 죽이는 판인데 예수님은 죽은 자에게도 당신의 사랑을 베푸시고 살리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내가 처한 곤란한 문제에 그 누구도 관여하지 않고 피하려고 하지만 내 형제도 내부모도 자식도 아내도 남편도 관여치 않으려고 하지만 오직 예수님만이 그 문제에 사랑을 가지고 예수님은 관여 하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사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찾아다니시는 곳이 어디며 찾아 만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이요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힘없고 가난하고 병들고 죽음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자들에게 언제든지 찾아 오셔서 그의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혹시 이 자리에 함께하신 분들 중에는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나만의 괴로움과 힘들어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예수님은 그 부분에 사랑으로 다가 오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감당치 못하여 거의 포기하고 아니 인생 자체를 포기하고 싶은 그 자리에 예수님의 사랑이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예수님은 찾아 오셨습니까?
그 가운데서 오셔서 구원을 베푸시기 위함입니다. 즉 그 문제에서 건져 주시기 위하심입니다.
강도와 도적이 오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강도질과 도적질을 하기 위하여 오지만은 나는 많은 사람을 살리시기 위하여 내 자신의 몸을 희생의 제물이 되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이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그 사랑을 알지 못하고 감사하지도 않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감사절은 인생에게 주신 모든 것을 감사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심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모든이들과 함께 즐거워 하는 날입니다.
죽음을 향하여 한없는 슬픔과 절망에 있는 이 무리에게 예수님은 왜 다가 왔습니까?
그들에게 생명을 주고 새로운 소망을 주시기 위함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왜 사랑하는 여러분들을 강권하여 청하신 줄 아십니까?
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시고 예수님의 생명을 선물로 받으시라고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을 소개하겠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다 시행하리라
이제 내 인생에 예수님 때문에 절호의 기회가 오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외면하지 말고 그의 사랑을 받아 드리고 그의 생명을 선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나의 삶이 예수님 때문에 180도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죽음의 무리가 지나쳐 갔다면 은 결코 생명은 주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영원한 슬픔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나에게 가장 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말씀입니다,
기회는 다시 주어지지 않습니다.
은혜는 지금 받을 때요 구원도 지금이 받을 때입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가 나를 위하여 기회를 만들어 준 마지막 기회 인 줄 알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죽음은 슬픈 것입니다. 특별히 영적인 죽음은 더욱 슬픈 일입니다. 영원한 이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과 슬픔이 세상에 들어온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나왔든지 예수님께서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자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구원이 이루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예수님만이 나의 구주이심을 아시고 모시고 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분들을 잘 인도하여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살아가는 참된 축복을 받도록 도와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