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나는 내 마음대로 살고 있지만 예수님은 벌써 나의 죄를 다 용서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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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381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이사야 53:1-6 아직도 나는 내 마음대로 살고 있지만 예수님은 벌써 나의 죄를 다 용서 하셨습니다
한국의 최고의 재벌의 딸이 미국 뉴욕에서 유학중 목매에 자살을 하였습니다. 아직 자살의 원인을 말하지 않아 잘 알 수는 없겠습니다마는 그 딸의 소유로 된재산이 약 2,000억 원 정도라고 하니 가히 재벌의 딸답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많은 재산도 그의 생명을 지켜주거나 그의 인생을 행복하게 해 주지는 못하였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 중에는 그 만큼 많은 돈이 내게 있으면 나는 참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겠는데 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줄로 압니다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사람은 떡으로만 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돈이 있다든지 세상적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은 다 행복하게요 그렇지 않습니다.
로또에 당첨되면 상당히 행복 할 줄로 알았지만 당첨된 것을 후회하고 더 불행해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참 행복한 삶을 살도록 만들어져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돈과 세상적인 그 무엇만을 위하여서 살아가는 자는 가장 어리석은 삶을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자가 되기 위하여 그 말씀의 양식을 얻기 위하여 힘을 쓰는 자가 진정한 행복한 자라 하겠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고 수고 하느냐? 너희는 내게 나아와 들어라 그리하면 네 영혼이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가 삶의 주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도록 힘쓰는 것이 삶의 주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이 필요한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더하여 넘치는 것으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소이 삶이 참으로 풍성한 생활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이 생명의 양식이 어떻게 우리 사람에게 주어집니까?
이 생명의 양식을 얻는 일에는 우리 사람 편에는 아무 공로 없이 노력 없이 값없이 얻게 되는 양식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이 양식을 사람들에게 주어지기까지는 엄청난 희생의 값을 치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을 하늘의 보좌에서 이 땅으로 보내시어 죄인의 형상을 입혀서 저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죽게 하시므로 얻어지게 하시는 양식입니다.
이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라는 영화 중에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주시기 위한 그리스도께서 받은 고난을 영화 중에서 발췌한 것을 비디오로 먼저 보겠습니다.
다시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지만 보아야 합니다. 비디오 상영 10분
자 이와 같은 피 비린내 나는 저주의 고난을 통하여 참된 양식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내가 당하여야 할 죄악의 참상을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가 찢기신 살을 기념하고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참으로 피비린내 나는 양식을 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두고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우리 인생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예수님께 다 담당시키신 것입니다.
나의 슬픔을 지고 가셨다고 하셨습니다. 나의 죄악과 허물을 대신 갚아 주셨습니다.
그는 내가 받을 징계를 몸소 다 받았습니다.
그 결과 나는 의롭함을 얻고 평화를 얻고 치료를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런 예수님을 사람들은 어떻게 대우하였습니까? 은혜를 헛되이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귀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멸시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어찌 장차 진노를 받을 만 하지 않겠습니까?
죄인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은 세상적인 욕심으로 가득 찬 눈으로 볼 때에는 도저히 유대 민족을 구원할 왕이 아니셨습니다.
또한 힘없이 십자가를 지는 모습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의 모습도 결코 아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글에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그가 자기 땅에 왔지만 자기 백성들이 아무도 그를 환영하거나 영접하는 자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무관심과 냉대와 멸시 그리고 무서운 음모가 이루어지고 있는 때에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본문의 이사야 선지자는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우리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분께서는 멸시와 천대, 따돌림, 배척을 당하셨습니다.
그렇게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그 종이,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로 오신 것입니다.
아마 이것은 세속적인 견해에는 너무나도 맞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세상은 힘과 권력과 자기 자랑과 자기도취 속에 사는 세상입니다.
외모가 위엄이 있고 풍채가 당당할 때 사람들은 그 권위에 위압 됩니다.
세상은 그런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연한 순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는 즉 우리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라고 하였습니다.
그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보잘것없는 모습 그러한 모습으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니 누가 그를 믿었겠습니까? 사람들은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
또한 오늘 이 세대 사람들은 무슨 이익이 보장되어야만 그것을 따르고 그것을 흠모합니다.
사람마다 이익을 추구하고 모두 자기의 영광을 얻기만 바랍니다.
그래서 신앙의 길도 자신의 행복과 유익을 조건으로 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혹시 교회 나오면 내가 이익을 볼 것인가? 손해를 볼 것인가? 계산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3) 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습니다. 아무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니 누가 그를 따랐겠습니까? 또한 오늘 이 시대는 이웃과 타인에게 무감각하고 냉담합니다.
극도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시대입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내가 짐을 지는 일이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다\\(사 53:4)고 하였는데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매를 맞는 것\\이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탐탁치 않고 께름칙하여 세상은 그를 버렸고 사람들은 다 그를 떠나갔습니다.
그가 누구기에 내 짐을 다 지고 갈까? 하고 믿어지지 않는 것이지요
선지자 이사야가 증언하는 예수의 모습은 그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오시는 그 분은 많은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보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우리의 구원자가 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들을 왜 그렇게 비천한 종의 모습으로 보내셨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방법만이 죄인을 구원하는 길이시기 때문입니다.
천하에 다른 방법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지 아니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 분은 만왕의 왕이시오 만 주의 주이시지만 나의 구주가 되시기 위하여 지극히 비천한 종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귀한 희생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의 양식을 함께 나누며 기념을 합니다.
누구든지 이 양식을 먹고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다시는 목마르거나 주리지 않을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한국의 최고의 재벌의 딸이 미국 뉴욕에서 유학중 목매에 자살을 하였습니다. 아직 자살의 원인을 말하지 않아 잘 알 수는 없겠습니다마는 그 딸의 소유로 된재산이 약 2,000억 원 정도라고 하니 가히 재벌의 딸답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많은 재산도 그의 생명을 지켜주거나 그의 인생을 행복하게 해 주지는 못하였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 중에는 그 만큼 많은 돈이 내게 있으면 나는 참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겠는데 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줄로 압니다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사람은 떡으로만 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돈이 있다든지 세상적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은 다 행복하게요 그렇지 않습니다.
로또에 당첨되면 상당히 행복 할 줄로 알았지만 당첨된 것을 후회하고 더 불행해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참 행복한 삶을 살도록 만들어져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돈과 세상적인 그 무엇만을 위하여서 살아가는 자는 가장 어리석은 삶을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자가 되기 위하여 그 말씀의 양식을 얻기 위하여 힘을 쓰는 자가 진정한 행복한 자라 하겠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고 수고 하느냐? 너희는 내게 나아와 들어라 그리하면 네 영혼이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가 삶의 주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도록 힘쓰는 것이 삶의 주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이 필요한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더하여 넘치는 것으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소이 삶이 참으로 풍성한 생활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이 생명의 양식이 어떻게 우리 사람에게 주어집니까?
이 생명의 양식을 얻는 일에는 우리 사람 편에는 아무 공로 없이 노력 없이 값없이 얻게 되는 양식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이 양식을 사람들에게 주어지기까지는 엄청난 희생의 값을 치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을 하늘의 보좌에서 이 땅으로 보내시어 죄인의 형상을 입혀서 저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죽게 하시므로 얻어지게 하시는 양식입니다.
이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라는 영화 중에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주시기 위한 그리스도께서 받은 고난을 영화 중에서 발췌한 것을 비디오로 먼저 보겠습니다.
다시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지만 보아야 합니다. 비디오 상영 10분
자 이와 같은 피 비린내 나는 저주의 고난을 통하여 참된 양식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내가 당하여야 할 죄악의 참상을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가 찢기신 살을 기념하고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참으로 피비린내 나는 양식을 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두고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우리 인생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예수님께 다 담당시키신 것입니다.
나의 슬픔을 지고 가셨다고 하셨습니다. 나의 죄악과 허물을 대신 갚아 주셨습니다.
그는 내가 받을 징계를 몸소 다 받았습니다.
그 결과 나는 의롭함을 얻고 평화를 얻고 치료를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런 예수님을 사람들은 어떻게 대우하였습니까? 은혜를 헛되이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귀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멸시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어찌 장차 진노를 받을 만 하지 않겠습니까?
죄인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은 세상적인 욕심으로 가득 찬 눈으로 볼 때에는 도저히 유대 민족을 구원할 왕이 아니셨습니다.
또한 힘없이 십자가를 지는 모습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의 모습도 결코 아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글에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그가 자기 땅에 왔지만 자기 백성들이 아무도 그를 환영하거나 영접하는 자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무관심과 냉대와 멸시 그리고 무서운 음모가 이루어지고 있는 때에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본문의 이사야 선지자는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우리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분께서는 멸시와 천대, 따돌림, 배척을 당하셨습니다.
그렇게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그 종이,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로 오신 것입니다.
아마 이것은 세속적인 견해에는 너무나도 맞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세상은 힘과 권력과 자기 자랑과 자기도취 속에 사는 세상입니다.
외모가 위엄이 있고 풍채가 당당할 때 사람들은 그 권위에 위압 됩니다.
세상은 그런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연한 순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는 즉 우리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라고 하였습니다.
그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보잘것없는 모습 그러한 모습으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니 누가 그를 믿었겠습니까? 사람들은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
또한 오늘 이 세대 사람들은 무슨 이익이 보장되어야만 그것을 따르고 그것을 흠모합니다.
사람마다 이익을 추구하고 모두 자기의 영광을 얻기만 바랍니다.
그래서 신앙의 길도 자신의 행복과 유익을 조건으로 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혹시 교회 나오면 내가 이익을 볼 것인가? 손해를 볼 것인가? 계산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3) 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습니다. 아무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니 누가 그를 따랐겠습니까? 또한 오늘 이 시대는 이웃과 타인에게 무감각하고 냉담합니다.
극도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시대입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내가 짐을 지는 일이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다\\(사 53:4)고 하였는데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매를 맞는 것\\이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탐탁치 않고 께름칙하여 세상은 그를 버렸고 사람들은 다 그를 떠나갔습니다.
그가 누구기에 내 짐을 다 지고 갈까? 하고 믿어지지 않는 것이지요
선지자 이사야가 증언하는 예수의 모습은 그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오시는 그 분은 많은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보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우리의 구원자가 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들을 왜 그렇게 비천한 종의 모습으로 보내셨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방법만이 죄인을 구원하는 길이시기 때문입니다.
천하에 다른 방법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지 아니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 분은 만왕의 왕이시오 만 주의 주이시지만 나의 구주가 되시기 위하여 지극히 비천한 종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귀한 희생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의 양식을 함께 나누며 기념을 합니다.
누구든지 이 양식을 먹고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다시는 목마르거나 주리지 않을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