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왕국은 충성된 장수로 이루졌듯이 화평교회도 충성된 일군으로 세우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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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59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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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11:15-19 다윗의 왕국은 충성된 장수로 이루졌듯이 화평교회도 충성된 일군으로 세우져 갑니다
1639년 존 하버드라는 목사님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을 때 700파운드의 돈과 200여권의 책이 전부 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소유를 가지고 가장 값진데 투자를 했습니다. 즉 앞으로 미국을 이끌어 나갈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는데 목적을 두고 하버드라는 조그마한 신학교를 보스턴에 세우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날 하버드는 세계에서 유명한 대학이 되어 미국과 세상을 움직이는 지도자를 많이 배출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그 대학 출신의 노벨 수상자들과 대통령과 훌륭한 목사님들과 신학자들과 인류의 복지를 위해 수고하고 정의를 위해 수고한 공로자들의 사진들이 수없이 걸려 있습니다. 하버드 목사님이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 교회와 세상을 위한 교육계에서 인물들을 양성하는 큰일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 무슨 귀한 것을 가졌느냐? 가 큰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하는 가에 내 자신을 드려질 수만 있다면 그것은 큰일을 이룰 수가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무엇에다가 내 자신을 투자하여야 하는지 투자처를 바로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월리임 패더라가 쓴 글 가운데 어떤 가난한 소년이 길을 가다가 5달러의 돈을 주었는데 그 당시에 그는 그 돈을 가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그 때부터 소년은 땅을 보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길바닥을 보고 다니면서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다 주었습니다. 그가 평생에 주운 것들은 별로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단추가 29,519개, 머리핀이 54,172개, 수천 개의 동전들은 주었습니다마는 그는 부자가 되지 못했고 그렇다고 훌륭한 인물이 된 것도 아니고 그것들을 줍느라고 허리는 구부러지고 청춘은 다가고 아름다운 하늘도, 땅의 꽃과 새들과 푸른 초목을 보지 못하고 넝마주이 인생을 산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와같이 현실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넝마주이가 되어 오늘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한번 뿐인 귀중한 인생을 허송해 버리고 그냥 그냥 끝내려고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냥 막 살아가다가 끝을 낸다고 끝나는 인생이 아닙니다.
틀림없이 내가 살아온 인생은 결과가 따르기 마련이요 그리고 심판이 있습니다.
물론 그기에 따르는 상벌이 있습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라는 사람은 인생에 대해 세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가라는 자기 인식에 대한 질문입니다.
나는 무엇을 해야 되는 가라는 윤리 도덕적 행위의 요청입니다.
나는 무엇을 바랄 것인가라는 종교적 요청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사람은 당연히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아야 되지만 아무리 도덕적으로 바르게 산다고 해도 그만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모순된 현실에는 궁극적인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계셔야만 하고, 영원불멸의 세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위한 삶이 진정한 자유로운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을 논하는 철학자의 사상에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을 위하여 필연적으로 살아야 함을 일러 주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아무렇게나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삶이 아닌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병사로 부름을 받은 자는 자기 사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부른 자를 기쁘시게 하는 삶이어야 당연 합니다.
나를 부르신 자가 누구십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다윗의 용사들이 무엇을 위하여 필연적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 주고 있지 않습니까?
다윗에게 나아온 자는 다윗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이들이 다윗이 원하는 물 한잔을 위하여 드리는 생명을 건 사건이 결코 우매하거나 무모한 짓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생각을 합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살아가는 삶을 무모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만 은 사실은 선의 요구에 자기 자신을 드리지 못하고 측정하고 머뭇머뭇하고 있는 삶이 가장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들의 충성은 무모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만용이 아니라 사울의 왕가를 폐하고 다윗의 왕국을 세우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충정이었습니다.
그 모든 결국은 이들이 무엇을 하였든지 하나님께 드릴만한 것이요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것이었습니다.
용사들이 다윗 왕이 원하는 베들레헴 우물의 물 한잔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거는 그 충성심이 다윗 왕에게 드려진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졌다는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주의 교회도 주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일군들의 충정을 통하여 든든하게 세워져 갑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지나온 올 한해를 돌이켜 봅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주를 위한 충성된 자들의 충성의 투지를 통하여 교회가 이만큼이라도 만들어 졌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어느 교회도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은 다윗이 원하는 한잔의 물을 위하여 목숨을 거는 그 무모함 같은 행위들이 오늘날 주의 교회들이 세워져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충성된 자들을 통하여 교회는 앞으로 크게 세워 질 것을 기대 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 물을 떠 온다는 사실에만 중점을 두었다면 이 일은 이룰 수가 없을 것입니다.
충정어린 마음이 이일을 가능케 한 것입니다.
충정은 그 어떤 장애도 장애를 만들지 않습니다
그 자체가 길이 될 것입니다.
프로농구 현대 모비스의 코치 박 승일은 5년 전에 박승일이 온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루게릭 병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에 걸려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산소 호흡기를 끼고 온 몸을 꼼작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왼쪽 검지하나 그리고 눈동자입니다.
숨쉬것 조차도 못하고 물론 식사는 배를 뚫어 미음을 넣어 주고 있습니다. 팔에 앉은 모기 한 마리를 쫒을 힘이 없어 보고만 있었다던 박승일은 세상을 향해 말한다. “ 나 여기 살아있다 ” 고 그는 눈동자로 컴퓨터로 자신을 표현하며 전국에 1500명이 되는 루게릭 병 환자를 세상에 알리고 그들을 변호하는 전도사로 그의 일을 하는데 제가 그 프로를 보고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위하여 기도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 장애에 매여 있지 않고 그 자리에서 선을 위하여 드려지는 모습은 그 어떤 성한 사람도 그의 귀한 마음에는 따라 갈자가 없습니다. 결코 장애가 선을 위하는 일에는 결코 장애로 남아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 심야 기도회 때에 내가 무엇을 줄꼬 라는 물음 앞에 나를 통하여 내 가정을 통하여 주의 교회가 세워지기를 원합니다라는 각각의 고백이 얼마나 신성하게 들려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이것이 인생의 주제요 의미입니다.
그 외에는 어떤 핑계를 되어도 바른 대답일 수가 없습니다.
오늘 새롭게 제직으로 임명을 받는 자들은 물론이지만 이 시간에 교회에 발걸음을 옮긴 모든 분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큰 일군들이 되셔야 마땅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할렐루야!
절대로 다른 대답을 하려고 구상하지 말고 핑계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일군은 어떤 모습을 가진 자라고 하겠습니까?
주의 일군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어떤 모습이든지간에 힘을 더하기 위하여 있습니다.
10절에 다윗의 주위에 모여드는 이유는 그 장수들이 모두가 한결같이 다윗을 도와 다윗의 왕국을 세우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다미엔이라는 선교사가 나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단신으로 모로코 섬에 들어갔을 때에 모든 사회와 국가와 종교와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고 외면당해 온 문둥병자들은 철저하게 그를 외면하고 다미엔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다미엔은 왜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나환자들이 왜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도 저 사람들과 같은 나병을 내려 주옵소서…….그래서 저도 그 고통을 함께 누리면서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모로코 섬에 들어간 지 6년째 되는 어느 아침에 다미엔은 차를 마시기 위해서 물을 끓이게 되었고 그 뜨거운 물이 실수로 자신의 발등에 떨어지게 되는 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뜨거운 물이 발등에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뜨거움도 아픔도 감각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바로 다미엔에게도 그 나병이 덮쳐 왔던 것이었습니다. 순간 다미엔은 그 자리에 끓어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나도 저 나병자들에게 설교할 때에 여러분…….이라고 하지 아니하고 우리는…….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당신들 나병자가 아니라 우리 문둥병자들은…….이라고 설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이 기쁨의 나병을 주시 오니 정말 감사합니다.”
복음 사역을 위한다면 오히려 나병자가 됨을 감사할 수 있었다니 이제는 더 이상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시지 마시고 어쩌면은 당연한 것이 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윗의 용사들은 블레셋의 진영이라 할지라도 그 곳에서 자신들의 피를 요구한다 할지라도 다윗을 위한다면 달려 갈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라도 주의 교회를 세우는데 도움을 주는 자로 계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의 일군은 주의 뜻에 전념을 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저 남 보다 더 잘살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사명자가 되여야 합니다.
성령님의 지시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행 20:22)
심령에 매임을 받았다는 말은 환경을 따라서나 어떤 인간적 유익을 쫓아서나 누구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지시한 것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것도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말입니다.
그가 마케도니아로 갈 때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세아로 가서 복음 전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고 마케도니아로 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 때의 일을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행 16:6-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만 하고 자기 기분 내키는 데로만 해서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 드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좋은 것도 하고 내 마음에 안 맞는 것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에서는 \\울면서 씨를 뿌린다\\고 하시고 에레미아는 울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 성령님에게 매여 그의 지시를 마음으로 받고 순종을 해야 합니다.
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이 점에 있어 실수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지시하시는 바를 알기 위해서는 기도를 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상고해야 하며 하나님의 종의 충고를 귀담아 들을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바울이 가진 사명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이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고난당하는 것을 두려워 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 일을 위하여 기도하고 이루기 위하여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주의 일군은 주를 위하여 올인 하는 것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베스도 각하와 아그립바 왕 앞에 호송되어 심문을 받을 때에 그들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일이 이해가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도를 넘어 이제는 미쳐버렸구나 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누가 도를 넘어 미쳐버린 자 입니까?
사도 바울은 나는 정신 차린 말을 하다고 하였으니 사실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각하가 도를 넘어 미쳐버린 자입니다.
인생이 어디서 왔다가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은 만물이 주께로부터 나왔고 주로 말미암다가 주께로 가노라고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아마 주의 일군들은 한번은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야 정상입니다.
그래야만 미쳤다고 하는 그 사람들이 바로 돌아오는 날이 빠를 것입니다.
사람이 미쳐야지 일을 내지 그리스도의 도를 미치지 아니하니 아무런 일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용사들이 미쳐버렸으니 전직 속으로 물 한잔을 얻기 위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미친 사람들이 주의 교회를 세우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멀쩡한 사람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이루지도 않고 구경만 하고 판단만 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겠습니까?
주의 일군의 사역은 모두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것이 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축복이 되겠습니까?
소자에게 냉수 한그릇를 대접한 것도 결코 그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일군에게는 상급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역대상 27-28장 에는 다윗의 왕국이 건설 되고 다윗은 그들의 수고에 따라 직책을 주며 상을 주었습니다.
다윗왕의 재산을 맡은 자들이 이러하였더라 다윗의 아자비 요나단은 지혜가 있어서 모사가 되며 서기관도 되었고 학모니의 아들 여히엘은 왕의 아들들의 배종이 되었고 아히도벨은 왕의 모사가 되었고 아렉 사람 후새는 왕의 벗이 되었고 브나야의 아들 여호야다와 아비아달은 아히도벨의 다음이 되었고 요압은 왕의 군대 장관이 되었더라
이 땅에서도 백배나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였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 상을 잊지 아니하십니다.
다윗 왕국을 위한 일이 다윗을 위한 일이요 하나님께 드리는 재물입니다.
이제 제직으로 부름을 받은 분들과 물론 오늘 참여한 모든 분들은 주의 교회를 위하여 올인 할 수 있음을 당연히 여기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상급을 받는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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