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사람만이 선교의 힘을 얻고 꿈을 이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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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46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사도행전 3:1-10기도하는 사람만이 선교의 힘을 얻고 꿈을 이루게 됩니다
「나는 너와 결혼하였다는 책의 주인공인 한 여자가 육신과 마음이 세상에서 타락할 대로 타락해서 종국에는 각종 질병이 찾아오고 많은 문제가 자꾸만 생겨서 너무나도 괴롭고 낙심이 되는 가운데 힘이 없이 길을 가는 도중에 교회 앞을 지나다가 그날 설교 제목인 ‘죄의 삯은 사망이다’라는 기록된 내용을 보고서는 ‘그래 나는 죽어야 마땅할 죄인이다’라고 생각하고 바다에 빠져 죽기로 하고 회한(悔恨)의 눈물을 흘리면서 갔습니다.
바닷가로 들어가면서 생각하기를 ‘나에게 지금까지 만나왔던 남자들은 전부 거짓말을 하고 달콤한 말로 나를 속이고 유혹하였는데 저 사람은 나에게 바른 말을 해 주었으니 마지막으로 고맙다는 말이나 해 주자’라고 생각하고선 전화기 앞에 서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끝까지 설교를 듣지 않고 제목만 들은 그녀는 “내가 오늘 목사님 설교를 너무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내가 확신을 얻었습니다.”
“무슨 확신을 얻으셨습니까?”
“나 같은 여자는 죽어야만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고 마지막으로 목사님께 죽어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 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 전화했습니다.”
이 전화를 받은 목사님은 바닷가로 나가 그 여자를 만나 말씀하시기를 “죽으면 안 됩니다. 그래도 힘을 내야 됩니다.”라고 하지 않고 “당신은 꼭 죽어야 할 마땅한 사람입니다. 죽어야 됩니다. 오늘 죽어야 합니다. 나도 죽어야 됩니다. 우리는 다 죽어야 할 죄인인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 죄를 모두 다 청산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면 당신의 모든 문제는 죽어야만 해결될 모든 문제에서 자유하고 오히려 살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옛날의 그 어떤 잘못된 부분도 아무런 문제가 아닙니다.”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던 여자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함으로서 죽을 수밖에 없는 길에서 죽지 않아도 되는 살 길을 찾았고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인생이 시작 되었다고 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여인이 목사님이 전하여 주신 복음으로 구원함에 이르렀듯이 오늘 본문에도 영원히 불구의 아픔을 안고 평생에 허리하번 펴보고 서보지 못하다가 그러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앉은뱅이가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으로 일어 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성도들이 복음을 제대로 전하기만 한다면 받아 드리기만 한다면 누구든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 구원함을 받고 그들의 삶에 죽지 않고 허리를 펴고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기적 같은 일들은 하나님께는 얼마든지 많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여러분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할렐루야!
한국 교회사 가운데 가장 능력 있던 부흥사 중 한 사람이었던 김익두 목사님이 전도사 시절이었을 때에 어느 날 심방을 다녀오던 중에 시장 통에서 거지 앉은뱅이를 만났습니다. 마침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요한처럼 예수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고쳐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과수원 돌담 밑으로 거지를 업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보라하고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라\\하면서 손을 잡고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러나지 않고 그대로 이었습니다. 너무나도 부끄러워 그 자리를 도망쳐 나와 자신의 무능함을 탄식하다가 담요 한 장 싸들고 산으로 올라가서 금식과 철야를 하며 나에게도 그런 능력을 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불같은 성령이 그에게 임했고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산을 내려오다가 예전의 그 앉은뱅이를 다시 만났습니다. 이제 부끄러움도 없이 담대하게 그의 손을 잡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앉은뱅이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김익두 목사님의 첫 번째 기적이었고 그 후 2만여 명의 난치병 환자들을 안수 기도하여 고쳤으며, 280여 개의 교회를 세웠고, 200여 명의 신학생들을 공부시켰다고 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의 이런 큰 능력은 기도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올 한해 꿈을 이루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기도로 비전을 품은 자이어야 합니다.
그냥 형편에 따라 하는 자가 아니라 기도 시간을 정해 놓고 목적을 정해 놓고 하는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도 큰 능력을 행하는 자는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자입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씩 시간을 정해 놓고 제3시, 6시, 9시(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에 기도했습니다.
민족을 구한 다니엘도 습관적으로 하루 3번씩 무릎을 꿇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였다고 했습니다.
큰 대왕이라는 이름을 가진 다윗왕도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시 55:17). 하루에 3번씩 기도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앉은뱅이를 일으킨 베드로와 요한도 제 9시 정한 기도 시간에 기도하러 성전에 가다가 일어난 사건입니다.
큰 구원을 가져온 사람은 한결같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올 해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이루어야 할 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늘 느끼는 것이 있는데 기도가 부족하구나 입니다.
지난 철야기도 시간에 들어 보시지 않았습니까?
상당히 하나님을 향한 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이 일을 인간적으로 이룰 수 있다고 여겨져 장담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일을 뒤 받침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없는 허무맹랑한 것이고 허상이라고 생각이 드십니까?
아닙니다.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그 만큼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누군가가 그 일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도 책임 질 수가 없지만 기도하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겨라 그러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잠16:3 할렐루야!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아말렉 군사가 진을 쳐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을 때에 이들의 승리의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여호수아를 위시한 장군들과 병사들이 아말렉을 쳐서 나아가는 길을 낼 수 있는 승리 할 수 있음은 무엇입니까?
모세가 손을 들고 하는 기도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아말렉을 이깁니다.
그러나 모세가 피곤하여 기도하는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패합니다.
그러니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기도해야 승산이 있기 때문에 모세의 기도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끝까지 승리하도록 아론과 훌은 모세의 손을 양쪽에서 떠받쳐들고 모세를 편안하게 앉혀 기도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하니 그 전투는 승리 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와 교회가 꿈을 이룰 수 있음은 먼저 기도하는 데 있습니다.
다행히 하루 3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 특공대가 기도하기로 함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많은 것 같지만 일을 이루려면 그 시간은 많은 것이 아닙니다.
남편의 사업을 위해 내 자녀를 위해 텔레비전만 보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위하여 기도하는 자들을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데 어떤 모양으로든지 협력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나를 위하여 기도하겠금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기도하는 자에게는 구원의 길이 보입니다.
이 세상에는 은금으로가 아니라 복음으로 구원을 받아야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18세기 위대한 영적 부흥 운동가였던 조지 휫필드와 웨슬리 형제들은 당시에 유행했던 바자회를 하지 않기로서원 다짐하고 문서를 작성하여 서명까지 했습니다. 선교 자금 마련이나 고아와 과부를 돕기 위한 수단으로 영원히 바자회 같은 것을 하지 않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불행한 이 세상이 교회의 \\은과 금\\에 주목하는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에 눈을 돌리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저 역시 교회가 참기름 팔고 뭐 팔고 하는 것 극구 반대입니다.
그 시간에 기도하고 차라리 얼마거두어서 도와 주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휫필드와 웨슬리 형제가 바자회를 금지하기로 한 것은 바로 그 시대의 세상 사람들과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교회는 \\은과 금이 없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구원하는 예수님의 이름을 소유하고 그 이름을 증거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구원의 예수님은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의 눈을 가지고는 구원의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증인은 본 것을 말하는 자이기 때문에 잘 보아야 증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뉴톤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찾아냈습니다. 사과 떨어지는 것을 과수원 농부가 더 많이 보았을 텐데 예사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뉴톤은 그것을 자세히 보고 놀라운 발견을 했습니다.
스티븐슨은 물 끓는 것을 보고 증기기관차를 생각했고, 라이트 형제는 독수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비행기를 생각했으며, 헨델의 아버지가 헨델이 오르간 치는 것을 보고 대 음악가가 될 수 있는 소질을 보았습니다.
또 돌멩이를 보고 아인슈타인은 방정식을 연구해 냈으며, 몰러는 전쟁 속에서 고아를 쳐다보고 하나님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 앉은뱅이를 보고 연구해 낸 직업은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은 숨어 있는 곳이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으면 돈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앉은뱅이는 사람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성전 미문에 앉았습니다. 일주일에 한번도 쉬지 않고 날마다 나왔습니다. 2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여기서 보면 이 사람을 도와주는 충성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두 종류의 충성된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육신 봉사 즉 구걸하도록 날마다 데려다 주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적실만큼 고마운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이같은 고마운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또 한 종류로 봉사자가 있는데 동전을 던져 주는 물질 봉사자를 말합니다.
모두 중요한 봉사입니다. 그러나 진정 앉은뱅이에게 필요한 것은 육신 봉사, 물질 봉사였을까요?
이 사람은 나면서부터인 앉은뱅이라는 틀림없는 사실에 육신 봉사 물질 봉사가 그에게 필요합니다.
모든 이들은 육신적인 봉사와 물질의 봉사만을 보았지만 이것만으로 안됩니다.
이 부분을 베드로와 요한은 주의 구원의 필요를 보는 눈을 가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이 말의 뜻은 “아주 자세히 봤다”는 말입니다.
이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이다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본 것입니다.
금과 은이 아닙니다. 동정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그것이 필요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주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 가운데 어떤 어려움에 놓인 인물을 보아도 필요한 것은 주께서 베푸시는 구원뿐입니다.
금과 은이 아닙니다. 동정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은과 금은 없다 그러면 뭐가 있다는 것입니까?
구원의 주 예수님의 이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름은 그의 직위와 그의 본질과 그의 사역과 능력을 보이는 것입니다.
대통령하면 그의 직위 그의 사역 그리고 그의 능력이 보이지 않습니까?
구원의 예수님의 이름이 내게 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제가 성도들에게 큰소리치는 것은 은금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라보는 자들마다 제가 외치는 것은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라 입니다.
이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만이 구원의 길이 보입니다.
저도 기도하지 않으면 사실 동전 몇 푼은 나누어 줄 수 있을지 모르나 예수 이름을 외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기 때문에 예수 이름을 자신 있게 외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니 무슨 일이나 무슨 문제나 무슨 사람에게나 언제든지 예수님의 구원의 길을 보게 되니 성공적이지 아니 할 수없습니다.
기도하는 자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함께 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변화산에 계실 때 제자 9명이 귀신들린 어린 아이 하나를 가운데 두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을 때에 예수님이 내려오셔서 고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우리는 왜 능히 그 아이를 고치지 못하였나이까?”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이것이 주님의 대답이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돕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찾는 것,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곧 기도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눈을 열어주시고 문을 열어 주십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1517년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조항의 \\개혁선언문\\을 붙여 종교개혁의 포문을 열었을 때에 당시 평범했던 일개 신부가 그가 어떻게 절대 권력의 교황의 세력과 맞설 수 있었을까.
루터는 그것이 기도라고 말한다. \\만일 내가 새벽에 두 시간 이상을 기도하지 않았다면 그날의 승리는 마귀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나에게는 너무나 할 일이 많았다. 그러나 날마다 세 시간 이상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다. 그 기도가 모든 일을 지탱해 나가게 하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도 3시간의 기도가 나오네요.
우리 가운데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들어 주시는 길을 예수님 때문에 열어 놓았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시행하리니…….
내 보다 더 큰 일을 하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올 한해는 기도로 비전을 품고 선교로 꿈을 이루시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는 너와 결혼하였다는 책의 주인공인 한 여자가 육신과 마음이 세상에서 타락할 대로 타락해서 종국에는 각종 질병이 찾아오고 많은 문제가 자꾸만 생겨서 너무나도 괴롭고 낙심이 되는 가운데 힘이 없이 길을 가는 도중에 교회 앞을 지나다가 그날 설교 제목인 ‘죄의 삯은 사망이다’라는 기록된 내용을 보고서는 ‘그래 나는 죽어야 마땅할 죄인이다’라고 생각하고 바다에 빠져 죽기로 하고 회한(悔恨)의 눈물을 흘리면서 갔습니다.
바닷가로 들어가면서 생각하기를 ‘나에게 지금까지 만나왔던 남자들은 전부 거짓말을 하고 달콤한 말로 나를 속이고 유혹하였는데 저 사람은 나에게 바른 말을 해 주었으니 마지막으로 고맙다는 말이나 해 주자’라고 생각하고선 전화기 앞에 서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끝까지 설교를 듣지 않고 제목만 들은 그녀는 “내가 오늘 목사님 설교를 너무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내가 확신을 얻었습니다.”
“무슨 확신을 얻으셨습니까?”
“나 같은 여자는 죽어야만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고 마지막으로 목사님께 죽어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 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 전화했습니다.”
이 전화를 받은 목사님은 바닷가로 나가 그 여자를 만나 말씀하시기를 “죽으면 안 됩니다. 그래도 힘을 내야 됩니다.”라고 하지 않고 “당신은 꼭 죽어야 할 마땅한 사람입니다. 죽어야 됩니다. 오늘 죽어야 합니다. 나도 죽어야 됩니다. 우리는 다 죽어야 할 죄인인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 죄를 모두 다 청산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면 당신의 모든 문제는 죽어야만 해결될 모든 문제에서 자유하고 오히려 살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옛날의 그 어떤 잘못된 부분도 아무런 문제가 아닙니다.”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던 여자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함으로서 죽을 수밖에 없는 길에서 죽지 않아도 되는 살 길을 찾았고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인생이 시작 되었다고 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여인이 목사님이 전하여 주신 복음으로 구원함에 이르렀듯이 오늘 본문에도 영원히 불구의 아픔을 안고 평생에 허리하번 펴보고 서보지 못하다가 그러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앉은뱅이가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으로 일어 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성도들이 복음을 제대로 전하기만 한다면 받아 드리기만 한다면 누구든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 구원함을 받고 그들의 삶에 죽지 않고 허리를 펴고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기적 같은 일들은 하나님께는 얼마든지 많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여러분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할렐루야!
한국 교회사 가운데 가장 능력 있던 부흥사 중 한 사람이었던 김익두 목사님이 전도사 시절이었을 때에 어느 날 심방을 다녀오던 중에 시장 통에서 거지 앉은뱅이를 만났습니다. 마침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요한처럼 예수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고쳐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과수원 돌담 밑으로 거지를 업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보라하고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라\\하면서 손을 잡고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러나지 않고 그대로 이었습니다. 너무나도 부끄러워 그 자리를 도망쳐 나와 자신의 무능함을 탄식하다가 담요 한 장 싸들고 산으로 올라가서 금식과 철야를 하며 나에게도 그런 능력을 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불같은 성령이 그에게 임했고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산을 내려오다가 예전의 그 앉은뱅이를 다시 만났습니다. 이제 부끄러움도 없이 담대하게 그의 손을 잡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앉은뱅이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김익두 목사님의 첫 번째 기적이었고 그 후 2만여 명의 난치병 환자들을 안수 기도하여 고쳤으며, 280여 개의 교회를 세웠고, 200여 명의 신학생들을 공부시켰다고 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의 이런 큰 능력은 기도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올 한해 꿈을 이루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기도로 비전을 품은 자이어야 합니다.
그냥 형편에 따라 하는 자가 아니라 기도 시간을 정해 놓고 목적을 정해 놓고 하는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도 큰 능력을 행하는 자는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자입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씩 시간을 정해 놓고 제3시, 6시, 9시(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에 기도했습니다.
민족을 구한 다니엘도 습관적으로 하루 3번씩 무릎을 꿇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였다고 했습니다.
큰 대왕이라는 이름을 가진 다윗왕도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시 55:17). 하루에 3번씩 기도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앉은뱅이를 일으킨 베드로와 요한도 제 9시 정한 기도 시간에 기도하러 성전에 가다가 일어난 사건입니다.
큰 구원을 가져온 사람은 한결같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올 해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이루어야 할 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늘 느끼는 것이 있는데 기도가 부족하구나 입니다.
지난 철야기도 시간에 들어 보시지 않았습니까?
상당히 하나님을 향한 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이 일을 인간적으로 이룰 수 있다고 여겨져 장담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일을 뒤 받침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없는 허무맹랑한 것이고 허상이라고 생각이 드십니까?
아닙니다.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그 만큼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누군가가 그 일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도 책임 질 수가 없지만 기도하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겨라 그러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잠16:3 할렐루야!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아말렉 군사가 진을 쳐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을 때에 이들의 승리의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여호수아를 위시한 장군들과 병사들이 아말렉을 쳐서 나아가는 길을 낼 수 있는 승리 할 수 있음은 무엇입니까?
모세가 손을 들고 하는 기도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아말렉을 이깁니다.
그러나 모세가 피곤하여 기도하는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패합니다.
그러니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기도해야 승산이 있기 때문에 모세의 기도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끝까지 승리하도록 아론과 훌은 모세의 손을 양쪽에서 떠받쳐들고 모세를 편안하게 앉혀 기도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하니 그 전투는 승리 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와 교회가 꿈을 이룰 수 있음은 먼저 기도하는 데 있습니다.
다행히 하루 3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 특공대가 기도하기로 함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많은 것 같지만 일을 이루려면 그 시간은 많은 것이 아닙니다.
남편의 사업을 위해 내 자녀를 위해 텔레비전만 보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위하여 기도하는 자들을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데 어떤 모양으로든지 협력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나를 위하여 기도하겠금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기도하는 자에게는 구원의 길이 보입니다.
이 세상에는 은금으로가 아니라 복음으로 구원을 받아야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18세기 위대한 영적 부흥 운동가였던 조지 휫필드와 웨슬리 형제들은 당시에 유행했던 바자회를 하지 않기로서원 다짐하고 문서를 작성하여 서명까지 했습니다. 선교 자금 마련이나 고아와 과부를 돕기 위한 수단으로 영원히 바자회 같은 것을 하지 않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불행한 이 세상이 교회의 \\은과 금\\에 주목하는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에 눈을 돌리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저 역시 교회가 참기름 팔고 뭐 팔고 하는 것 극구 반대입니다.
그 시간에 기도하고 차라리 얼마거두어서 도와 주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휫필드와 웨슬리 형제가 바자회를 금지하기로 한 것은 바로 그 시대의 세상 사람들과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교회는 \\은과 금이 없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구원하는 예수님의 이름을 소유하고 그 이름을 증거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구원의 예수님은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의 눈을 가지고는 구원의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증인은 본 것을 말하는 자이기 때문에 잘 보아야 증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뉴톤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찾아냈습니다. 사과 떨어지는 것을 과수원 농부가 더 많이 보았을 텐데 예사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뉴톤은 그것을 자세히 보고 놀라운 발견을 했습니다.
스티븐슨은 물 끓는 것을 보고 증기기관차를 생각했고, 라이트 형제는 독수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비행기를 생각했으며, 헨델의 아버지가 헨델이 오르간 치는 것을 보고 대 음악가가 될 수 있는 소질을 보았습니다.
또 돌멩이를 보고 아인슈타인은 방정식을 연구해 냈으며, 몰러는 전쟁 속에서 고아를 쳐다보고 하나님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 앉은뱅이를 보고 연구해 낸 직업은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은 숨어 있는 곳이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으면 돈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앉은뱅이는 사람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성전 미문에 앉았습니다. 일주일에 한번도 쉬지 않고 날마다 나왔습니다. 2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여기서 보면 이 사람을 도와주는 충성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두 종류의 충성된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육신 봉사 즉 구걸하도록 날마다 데려다 주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적실만큼 고마운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이같은 고마운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또 한 종류로 봉사자가 있는데 동전을 던져 주는 물질 봉사자를 말합니다.
모두 중요한 봉사입니다. 그러나 진정 앉은뱅이에게 필요한 것은 육신 봉사, 물질 봉사였을까요?
이 사람은 나면서부터인 앉은뱅이라는 틀림없는 사실에 육신 봉사 물질 봉사가 그에게 필요합니다.
모든 이들은 육신적인 봉사와 물질의 봉사만을 보았지만 이것만으로 안됩니다.
이 부분을 베드로와 요한은 주의 구원의 필요를 보는 눈을 가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이 말의 뜻은 “아주 자세히 봤다”는 말입니다.
이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이다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본 것입니다.
금과 은이 아닙니다. 동정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그것이 필요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주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 가운데 어떤 어려움에 놓인 인물을 보아도 필요한 것은 주께서 베푸시는 구원뿐입니다.
금과 은이 아닙니다. 동정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은과 금은 없다 그러면 뭐가 있다는 것입니까?
구원의 주 예수님의 이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름은 그의 직위와 그의 본질과 그의 사역과 능력을 보이는 것입니다.
대통령하면 그의 직위 그의 사역 그리고 그의 능력이 보이지 않습니까?
구원의 예수님의 이름이 내게 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제가 성도들에게 큰소리치는 것은 은금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라보는 자들마다 제가 외치는 것은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라 입니다.
이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만이 구원의 길이 보입니다.
저도 기도하지 않으면 사실 동전 몇 푼은 나누어 줄 수 있을지 모르나 예수 이름을 외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기 때문에 예수 이름을 자신 있게 외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니 무슨 일이나 무슨 문제나 무슨 사람에게나 언제든지 예수님의 구원의 길을 보게 되니 성공적이지 아니 할 수없습니다.
기도하는 자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함께 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변화산에 계실 때 제자 9명이 귀신들린 어린 아이 하나를 가운데 두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을 때에 예수님이 내려오셔서 고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우리는 왜 능히 그 아이를 고치지 못하였나이까?”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이것이 주님의 대답이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돕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찾는 것,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곧 기도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눈을 열어주시고 문을 열어 주십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1517년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조항의 \\개혁선언문\\을 붙여 종교개혁의 포문을 열었을 때에 당시 평범했던 일개 신부가 그가 어떻게 절대 권력의 교황의 세력과 맞설 수 있었을까.
루터는 그것이 기도라고 말한다. \\만일 내가 새벽에 두 시간 이상을 기도하지 않았다면 그날의 승리는 마귀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나에게는 너무나 할 일이 많았다. 그러나 날마다 세 시간 이상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다. 그 기도가 모든 일을 지탱해 나가게 하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도 3시간의 기도가 나오네요.
우리 가운데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들어 주시는 길을 예수님 때문에 열어 놓았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시행하리니…….
내 보다 더 큰 일을 하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올 한해는 기도로 비전을 품고 선교로 꿈을 이루시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