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구원에 힘쓰는 자가 가장 지혜롭고 영광스러운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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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75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다 니 엘 12:1 - 4 영혼 구원에 힘쓰는 자가 가장 지혜롭고 영광스러운 사람입니다
1994년도에 있었던 일입니다. 미 온라인 경매 회사인 eBay에서 플로리다 주의 \\hchero\\라는 한 경매자가 자신의 신장 한 쪽을 경매에 내어놓은 것입니다. \\기능이 완전한 신장을 팝니다\\ 오른 쪽 왼 쪽 두 쪽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할 수 있으며 신장 축출에 필요한 모든 의료비용은 구매자가 부담한다는 조건하에 내어 놓은 신장은 하루 사이에 무려 5백 7십만 달러까지 올라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몇 백만 원에 팔리고 하지 않습니까?
중국에 산 가격의 신장을 구하려 가는 분들도 많지 않습니까?
물론 인간의 장기를 사고 팔 수 없도록 법률로 정해진 미국에서는 당장 인터넷 시장에 자신의 신장을 내어 놓은 실제 인물을 추적해 들어갔고 eBay에서도 다시 그 같은 경매가 나오지 않도록 즉각 조치를 취했다고 합니다마는 사람의 신장 하나가 5백 7십만 달러라면 인체 전체를 값으로 치면 최소한 5백 7십만 달러는 넘을 것이 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나 세계 도처에서 전쟁과 탐욕 앞에 죽어져 가는 현실 앞에서 인간의 가치를 묻는 것은 부끄러울 정도로 인간의 가치는 형편이 없습니다.
아프리카 수단의 노예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미국과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그 노예들을 되사는 값은 한 사람 당 50달러니 사람값은 5만 원 정도가 되기도 합니다.
인간의 값을 돈으로 상대적으로 따져보는 이러한 세상이지만 인간의 값은 상대적이 아닌 절대 기준에 진정한 가치가 있습니다.
인간의 절대적 가치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산 인간의 가치를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값없고 가치가 없는 인간대신 죽게 하심으로 그 피 값이 인간의 가치를 바로 절대적인 가치의 수준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나는 얼마짜리 인간인가?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까?
사고로 인하여 보상금을 챙길 때에 얼마인가 계산을 하게 됩니다.
이 사람의 직업은 무엇이며 나이는 얼마이며 등등으로 보상금이 매겨집니다.
세상은 여러분들을 지금도 상대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기분이 좋아요 기분이 나빠요 VIP로 대접을 받은 사람도 있지만 나의 의도와는 상관이 없이 내가 형편없은 불량한 자로 가치가 없는 자로 여김을 받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나 귀하게 보느냐? 하면 천하를 주고도 바꾸지 않는 자로 절대적인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독생자 아들도 아끼지 아니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인간이 상대적인 가치관에서 절대적인 가치로 전환이 될 수 있음은 예수님을 받아 드림으로서 그 순간에 하나님과 나와의 절대적 관계를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의 가장 위대한 능력입니다.
무능한 자를 유능한 자로 어리석은 자를 지혜로운 자로 가난한 자로 많은 사람을 부유케 하며 죽은 자 같지만 사는 자로 복음은 인간의 가치를 최고로 올려놓는 것입니다.
이 복음이 사람의 가치를 엄청나게 귀한 자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길쌈도 안 하고 창고에 모아 드리지도 아니하지만 하늘에 계신 너희 천부께서 먹이시고 기르시나니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 너희들은 이것들 보다 더 귀하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보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
복음의 효력이 인간의 부가 가치를 높이고 삶의 질을 높이고 삶을 부요하고 풍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복음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인간은 가치가 없습니다.
애완용 개보다 못합니다. 개보다 못한 인생 많습니다.
미국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정원을 밟는다고 총으로 사람을 쏘아 죽여 버렸습니다.
사람의 가치가 예수님이 없으면 엉망진창입니다.
사람이 가치 있고 귀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은 복음입니다.
세계적으로 보십시오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곳은 복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이유도, 사람의 가치를 모르고 살다가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살다가 나중에는 멸망하는 짐승같이 망하고 지옥가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아멘
인류역사에 유태인만큼이나 타 민족에게 박해를 받아온 민족은 없을 것입니다.
멀리는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유다가 바벨론제국, 회복된 이스라엘이 또다시 로마에, 그리고 근대에 와서는 독일 나치스에 의해 초유의 6백만 명 이상이 대학살당하는 끔찍한 민족적 사건을 겪었습니다.
이 사건은 곁코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들의 인간대접을 받지 못함은 복음과 상관이 있었습니다.
복음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을 박게 내어 주면서 하는 말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겁도 없이 하는 말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자기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죽이라 하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복음을 버리고 배척함으로서의 그 대가는 엄청난 것입니다.
예수의 피 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마27:25)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니 내 주먹을 믿어라 어떻게 이 말의 책임을 나중에 어찌 감당 할지 몰라요
그 후 그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2천여 년 동안 1948년 그들의 나라가 세워지기까지 피값을 치르고 다녔으며 지금도 그 피 값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그 피 값을 더 치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만은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들이 복음을 받아 드리는 그날까지 그 값은 계속 될 것입니다. 언젠가는 성경에 약속한 대로 그들은 복음을 받아 드릴 것입니다.
이제는 아셔야 합니다.
내가 존귀한 자가 되고 당신이 존귀한 자가 될 수 있음은 혈육의 관계도 아니요 돈의 관계도 아니요 세상의 다른 어떤 관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이 피차 존귀한 자로 세우게 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아셔야 합니다.
내가 잘 되고 당신이 잘 될 수 있음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윈 윈 전략이 복음입니다.
이제는 내 삶의 구조가 복음적이어야 하며 내 의식이 복음적이어야 하며 내 생활의 직업과 생업이 복음적이어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복음적이어야 하며 죽어도 살아도 복음적이어야 합니다.
복음적으로 사는 인생은 너무나도 가치가 있습니다.
이번 우리 교회는 부활절기를 앞두고 300명 영혼 구원이라는 대 전제를 가지고 기도하며 전도하고 있습니다.
순종하며 기도하는 자들 가운데 세상적인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건강, 물질, 직장, 사업, 가정, 자녀, 등 이런 문제 등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들이 그 어떤 것도 복음보다 우선적이지 않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복음이 우선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복음적인 인물로 나를 체질로 바꾸신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벤느고가 금 신상에 절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풀무 불속에서 화형을 당하는 문제가 있지만 그 문제는 복음보다 우선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들은 유명한 말을 하지 않습니까?
그리아니 하실찌라도 라는 말을 하시지 않습니까?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 풀무불 가운데 구원이 있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없을지라도 그 가운데 구원이 있고 없고 문제가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하여 복음이 조금도 손상을 당하거나 후퇴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 풀무불 가운데 구원하심이 있었습니다만은 풀무불 가운데 구원을 받고 안 받고 가 관심사가 아니라 그 풀무불 가운데 드러내는 복음이 관심사인 것입니다.
복음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가장 지혜롭고 영광스러운 인물이 되겠습니까?
맨날 세상적인 것만 가지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좋아하고 즐겨하고 있는 자는 가장 어리석은 자입니다.
비록 세상적인 것이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아니 오히려 복음 때문에 세상의 장애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개의치 않고 복음을 위하여 살아 갈 수 있는 사람은 가장 지혜로운 자이며 영광스러운 자입니다.
오늘 나는 복음을 위하여 부름을 받는 영광스러운 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은 구원받을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함께 거하는 세상입니다.
왜 그렇게 함께 두셨을까요? 따로 따로 분리시키지 않음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이 되십니까?
부부 간에도 그렇습니다. 부자간에도 형제간에도 물론 사회의 모든 관계 들이 그렇습니다.
이것은 이들을 미워하고 배척하고 모른척하고 정죄하라고 함께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부름을 받는 자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기회를 만들어 주시고 이 복음으로 다른 이를 살리는 기회가 됨으로서 오히려 전하는 나를 가장 복되고 귀하게 하시게 하심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 할 때에 내가 가장 귀한 자임을 자부하십니까?
두 사람이 함께 잠을 자다가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 남았네
이들의 사이는 부부 사이 부자 사이 자매사이 형제 사이 일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맷돌 갈다가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 남았네
이들의 사이는 직장 동료. 사업의 동업자 사회의 선배 후배 이웃 등이 됩니다.
이제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자들은 나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도록 하나님이 붙여 준 자임을 아시기 바립니다.
또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나에게 축복의 기회를 만들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복음 전도자의 체질 개선을 하시기 바랍니다. 개선하자! 개선하자! 개선하자!
그래야 내가 이 땅에 온 가치가 있습니다.
전하지 않음으로 내 인생이 망하는 것을 왜 아직도 모른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엄청 빠른 시대입니다.
인천 공항에서 La 공항까지는 약6000마일 약1000키로입니다. 비행기로 11-12시간의 거리입니다.
그러나 전화로나 인터넷으로는 거의 같은 정보를 누립니다
지난 금요일 딸아이가 전화가 왔습니다. 운전 면허증 갱신을 해야 하는데 당연히 될 줄 알고 기간 만료 하루를 앞두고 재학 증명서로 신청을 했는데 캘리포니아 주법이 바뀌어 유학 비자가 없으니 갱신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운전을 못하면 꼼짝하지 못할 처지입니다. 날짜는 하루 밖에 없습니다. 급히 할 수 있는 다른 주를 알아보는데 워싱턴 버지니아 주에서 텍사스 주 달라스등에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비행기 표를 밤 시간에 인터넷으로 구하고 반경 80키로 내에 있는 공항에서 구한지 4시간 만에 산타나 공항으로 가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12시 달라스에 도착하여 갱신을 하고 오후 4시 비행기를 타고 롱비치 비행장에 도착하니 오후 6시였습니다. 시차는 2시간입니다. 비행시간만 3시간입니다. 먼 거리입니다.
12간만에 그 먼 길을 업무를 보고 온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루가 지나면 면허를 얻을 수가 없고 한 시간만 늦어도 달라스에가도 갱신할 수가 없는데 인터넷의 정보 그리고 비행기등 교통시설이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지금 빠른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생각을 합니다. 왜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모든 것이 빨라질까? 입니다.
그만큼 복음의 전파의 긴박감을 일러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에 관한 만큼은 너무 지체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빨리 빨리 하고 유행은 얼마나 잘 타는지 그러나 복음적인 것에는 너무 느립니다.
가장 급한 것이 복음인데 복음은 무조건 뒤로 미룬다니 참 이해가 안 됩니다.
시집 장가 생일 등등보다 복음을 우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복음 전하는 기회가 딱 두 번이 있다고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입니다.
이 말은 내게 주어진 조건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전하여야 할 것이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선 그 어떤 것보다 빨리 아니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전하여야 할입니다.
이것저것이 복음 전파의 핑계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이것저것 때문에 복음은 더 전하여 져야 합니다.
저는 바울의 전도 여행 경로를 다니면서 바울이 이렇게 넒은 지역을 당시의 형편없는 교통수단을 들어서 전하였구나를 생각 할 적에 얼마나 긴박감을 가지고 전도에 힘을 썼구나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떠한 지역 지형도 민족에게도 그에게는 결코 복음의 장애가 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이 염려를 가지고 있으니 그는 잠시라도 지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복음이 전하여 짐을 최고의 선으로 여겼으며 그의 인생의 목적이 되었든 것입니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소돔 같은 거리에도 사랑안고 찾아가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라
툭하면 복음의 장애로 내 자신이 자리 잡고 복음의 걸림돌을 찾는 자가 되지 말아야 겠습니다.
선교사 가운데 중국 선교사로 갔던 앤 월터 펀 양은 아름다운 처녀로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선교사를 자원하여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중국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는 위험한 곳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앤의 어머니는 210달러 값어치의 금을 주며 \\안전하다(safe)\\는 한마디만 전보로 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얼마 후에 앤에게서 전보가 왔습니다. 내용은 어머니가 기다리던 \\안전하다\\가 아니라 \\즐겁다(delighted)\\였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고백입니다. 주님께 헌신한 사람은 안전과 편안함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사명 속에서 즐거움을 찾으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즐겁게 감사하게 수행하는 자세가 사명자의 자세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내가 해야 할 남은 일은 복음적인 일입니다.
사람만큼 귀한 것이 없기 때문에 복음이 필요합니다.
짐승들에게 복음이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복음은 죄인이 인생에게 생명입니다.
복음에 일을 감당하는 자는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오스카 쉰 들러는 유태인과는 아무런 피도 석이지 않은 순수 게르만족 이지만 전쟁후반 동족인 나치스의 천인공노 할 만행을 보고 인간적 갈등을 격게되고 결국 그는 양심의 길을 선택하여 그동안 착취한 유태인들의 노동력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1천1백여 명의 유태인 목숨을 구하게 된다. 그 결과, 오늘날 쉰 들러에 의해 살아남은 유태인들의 후손은 6천여 명 이상이나 된다. 유태인들의 교과서인 탈무드에 나오는 구절 \\한사람을 구하면 세상을 구한 것이다.\\는 말처럼 쉬들러는 당시 천여 명을 구했지만 앞으로도 그가 구한 그 천여 명의 후손들이 몇 만, 몇 백만, 몇 천만 으로 늘어날지 누가아랴. 전쟁이 끝난 뒤 오스카 쉰 들러는 1958년 에루살렘의 야드바셈위원회에의해 \\정의로운 자\\로 선정되어 정의의 거리에 식수를 위해 초대되었고 그가 죽은 후 그의 시신은 에루살렘으로 안치 되었다 고합니다.
1994년도에 있었던 일입니다. 미 온라인 경매 회사인 eBay에서 플로리다 주의 \\hchero\\라는 한 경매자가 자신의 신장 한 쪽을 경매에 내어놓은 것입니다. \\기능이 완전한 신장을 팝니다\\ 오른 쪽 왼 쪽 두 쪽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할 수 있으며 신장 축출에 필요한 모든 의료비용은 구매자가 부담한다는 조건하에 내어 놓은 신장은 하루 사이에 무려 5백 7십만 달러까지 올라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몇 백만 원에 팔리고 하지 않습니까?
중국에 산 가격의 신장을 구하려 가는 분들도 많지 않습니까?
물론 인간의 장기를 사고 팔 수 없도록 법률로 정해진 미국에서는 당장 인터넷 시장에 자신의 신장을 내어 놓은 실제 인물을 추적해 들어갔고 eBay에서도 다시 그 같은 경매가 나오지 않도록 즉각 조치를 취했다고 합니다마는 사람의 신장 하나가 5백 7십만 달러라면 인체 전체를 값으로 치면 최소한 5백 7십만 달러는 넘을 것이 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나 세계 도처에서 전쟁과 탐욕 앞에 죽어져 가는 현실 앞에서 인간의 가치를 묻는 것은 부끄러울 정도로 인간의 가치는 형편이 없습니다.
아프리카 수단의 노예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미국과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그 노예들을 되사는 값은 한 사람 당 50달러니 사람값은 5만 원 정도가 되기도 합니다.
인간의 값을 돈으로 상대적으로 따져보는 이러한 세상이지만 인간의 값은 상대적이 아닌 절대 기준에 진정한 가치가 있습니다.
인간의 절대적 가치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산 인간의 가치를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값없고 가치가 없는 인간대신 죽게 하심으로 그 피 값이 인간의 가치를 바로 절대적인 가치의 수준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나는 얼마짜리 인간인가?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까?
사고로 인하여 보상금을 챙길 때에 얼마인가 계산을 하게 됩니다.
이 사람의 직업은 무엇이며 나이는 얼마이며 등등으로 보상금이 매겨집니다.
세상은 여러분들을 지금도 상대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기분이 좋아요 기분이 나빠요 VIP로 대접을 받은 사람도 있지만 나의 의도와는 상관이 없이 내가 형편없은 불량한 자로 가치가 없는 자로 여김을 받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나 귀하게 보느냐? 하면 천하를 주고도 바꾸지 않는 자로 절대적인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독생자 아들도 아끼지 아니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인간이 상대적인 가치관에서 절대적인 가치로 전환이 될 수 있음은 예수님을 받아 드림으로서 그 순간에 하나님과 나와의 절대적 관계를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의 가장 위대한 능력입니다.
무능한 자를 유능한 자로 어리석은 자를 지혜로운 자로 가난한 자로 많은 사람을 부유케 하며 죽은 자 같지만 사는 자로 복음은 인간의 가치를 최고로 올려놓는 것입니다.
이 복음이 사람의 가치를 엄청나게 귀한 자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길쌈도 안 하고 창고에 모아 드리지도 아니하지만 하늘에 계신 너희 천부께서 먹이시고 기르시나니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 너희들은 이것들 보다 더 귀하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보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
복음의 효력이 인간의 부가 가치를 높이고 삶의 질을 높이고 삶을 부요하고 풍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복음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인간은 가치가 없습니다.
애완용 개보다 못합니다. 개보다 못한 인생 많습니다.
미국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정원을 밟는다고 총으로 사람을 쏘아 죽여 버렸습니다.
사람의 가치가 예수님이 없으면 엉망진창입니다.
사람이 가치 있고 귀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은 복음입니다.
세계적으로 보십시오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곳은 복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이유도, 사람의 가치를 모르고 살다가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살다가 나중에는 멸망하는 짐승같이 망하고 지옥가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아멘
인류역사에 유태인만큼이나 타 민족에게 박해를 받아온 민족은 없을 것입니다.
멀리는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유다가 바벨론제국, 회복된 이스라엘이 또다시 로마에, 그리고 근대에 와서는 독일 나치스에 의해 초유의 6백만 명 이상이 대학살당하는 끔찍한 민족적 사건을 겪었습니다.
이 사건은 곁코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들의 인간대접을 받지 못함은 복음과 상관이 있었습니다.
복음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을 박게 내어 주면서 하는 말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겁도 없이 하는 말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자기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죽이라 하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복음을 버리고 배척함으로서의 그 대가는 엄청난 것입니다.
예수의 피 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마27:25)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니 내 주먹을 믿어라 어떻게 이 말의 책임을 나중에 어찌 감당 할지 몰라요
그 후 그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2천여 년 동안 1948년 그들의 나라가 세워지기까지 피값을 치르고 다녔으며 지금도 그 피 값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그 피 값을 더 치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만은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들이 복음을 받아 드리는 그날까지 그 값은 계속 될 것입니다. 언젠가는 성경에 약속한 대로 그들은 복음을 받아 드릴 것입니다.
이제는 아셔야 합니다.
내가 존귀한 자가 되고 당신이 존귀한 자가 될 수 있음은 혈육의 관계도 아니요 돈의 관계도 아니요 세상의 다른 어떤 관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이 피차 존귀한 자로 세우게 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아셔야 합니다.
내가 잘 되고 당신이 잘 될 수 있음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윈 윈 전략이 복음입니다.
이제는 내 삶의 구조가 복음적이어야 하며 내 의식이 복음적이어야 하며 내 생활의 직업과 생업이 복음적이어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복음적이어야 하며 죽어도 살아도 복음적이어야 합니다.
복음적으로 사는 인생은 너무나도 가치가 있습니다.
이번 우리 교회는 부활절기를 앞두고 300명 영혼 구원이라는 대 전제를 가지고 기도하며 전도하고 있습니다.
순종하며 기도하는 자들 가운데 세상적인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건강, 물질, 직장, 사업, 가정, 자녀, 등 이런 문제 등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들이 그 어떤 것도 복음보다 우선적이지 않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복음이 우선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복음적인 인물로 나를 체질로 바꾸신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벤느고가 금 신상에 절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풀무 불속에서 화형을 당하는 문제가 있지만 그 문제는 복음보다 우선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들은 유명한 말을 하지 않습니까?
그리아니 하실찌라도 라는 말을 하시지 않습니까?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 풀무불 가운데 구원이 있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없을지라도 그 가운데 구원이 있고 없고 문제가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하여 복음이 조금도 손상을 당하거나 후퇴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 풀무불 가운데 구원하심이 있었습니다만은 풀무불 가운데 구원을 받고 안 받고 가 관심사가 아니라 그 풀무불 가운데 드러내는 복음이 관심사인 것입니다.
복음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가장 지혜롭고 영광스러운 인물이 되겠습니까?
맨날 세상적인 것만 가지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좋아하고 즐겨하고 있는 자는 가장 어리석은 자입니다.
비록 세상적인 것이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아니 오히려 복음 때문에 세상의 장애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개의치 않고 복음을 위하여 살아 갈 수 있는 사람은 가장 지혜로운 자이며 영광스러운 자입니다.
오늘 나는 복음을 위하여 부름을 받는 영광스러운 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은 구원받을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함께 거하는 세상입니다.
왜 그렇게 함께 두셨을까요? 따로 따로 분리시키지 않음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이 되십니까?
부부 간에도 그렇습니다. 부자간에도 형제간에도 물론 사회의 모든 관계 들이 그렇습니다.
이것은 이들을 미워하고 배척하고 모른척하고 정죄하라고 함께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부름을 받는 자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기회를 만들어 주시고 이 복음으로 다른 이를 살리는 기회가 됨으로서 오히려 전하는 나를 가장 복되고 귀하게 하시게 하심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 할 때에 내가 가장 귀한 자임을 자부하십니까?
두 사람이 함께 잠을 자다가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 남았네
이들의 사이는 부부 사이 부자 사이 자매사이 형제 사이 일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맷돌 갈다가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 남았네
이들의 사이는 직장 동료. 사업의 동업자 사회의 선배 후배 이웃 등이 됩니다.
이제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자들은 나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도록 하나님이 붙여 준 자임을 아시기 바립니다.
또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나에게 축복의 기회를 만들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복음 전도자의 체질 개선을 하시기 바랍니다. 개선하자! 개선하자! 개선하자!
그래야 내가 이 땅에 온 가치가 있습니다.
전하지 않음으로 내 인생이 망하는 것을 왜 아직도 모른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엄청 빠른 시대입니다.
인천 공항에서 La 공항까지는 약6000마일 약1000키로입니다. 비행기로 11-12시간의 거리입니다.
그러나 전화로나 인터넷으로는 거의 같은 정보를 누립니다
지난 금요일 딸아이가 전화가 왔습니다. 운전 면허증 갱신을 해야 하는데 당연히 될 줄 알고 기간 만료 하루를 앞두고 재학 증명서로 신청을 했는데 캘리포니아 주법이 바뀌어 유학 비자가 없으니 갱신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운전을 못하면 꼼짝하지 못할 처지입니다. 날짜는 하루 밖에 없습니다. 급히 할 수 있는 다른 주를 알아보는데 워싱턴 버지니아 주에서 텍사스 주 달라스등에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비행기 표를 밤 시간에 인터넷으로 구하고 반경 80키로 내에 있는 공항에서 구한지 4시간 만에 산타나 공항으로 가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12시 달라스에 도착하여 갱신을 하고 오후 4시 비행기를 타고 롱비치 비행장에 도착하니 오후 6시였습니다. 시차는 2시간입니다. 비행시간만 3시간입니다. 먼 거리입니다.
12간만에 그 먼 길을 업무를 보고 온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루가 지나면 면허를 얻을 수가 없고 한 시간만 늦어도 달라스에가도 갱신할 수가 없는데 인터넷의 정보 그리고 비행기등 교통시설이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지금 빠른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생각을 합니다. 왜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모든 것이 빨라질까? 입니다.
그만큼 복음의 전파의 긴박감을 일러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에 관한 만큼은 너무 지체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빨리 빨리 하고 유행은 얼마나 잘 타는지 그러나 복음적인 것에는 너무 느립니다.
가장 급한 것이 복음인데 복음은 무조건 뒤로 미룬다니 참 이해가 안 됩니다.
시집 장가 생일 등등보다 복음을 우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복음 전하는 기회가 딱 두 번이 있다고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입니다.
이 말은 내게 주어진 조건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전하여야 할 것이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선 그 어떤 것보다 빨리 아니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전하여야 할입니다.
이것저것이 복음 전파의 핑계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이것저것 때문에 복음은 더 전하여 져야 합니다.
저는 바울의 전도 여행 경로를 다니면서 바울이 이렇게 넒은 지역을 당시의 형편없는 교통수단을 들어서 전하였구나를 생각 할 적에 얼마나 긴박감을 가지고 전도에 힘을 썼구나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떠한 지역 지형도 민족에게도 그에게는 결코 복음의 장애가 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이 염려를 가지고 있으니 그는 잠시라도 지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복음이 전하여 짐을 최고의 선으로 여겼으며 그의 인생의 목적이 되었든 것입니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소돔 같은 거리에도 사랑안고 찾아가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라
툭하면 복음의 장애로 내 자신이 자리 잡고 복음의 걸림돌을 찾는 자가 되지 말아야 겠습니다.
선교사 가운데 중국 선교사로 갔던 앤 월터 펀 양은 아름다운 처녀로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선교사를 자원하여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중국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는 위험한 곳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앤의 어머니는 210달러 값어치의 금을 주며 \\안전하다(safe)\\는 한마디만 전보로 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얼마 후에 앤에게서 전보가 왔습니다. 내용은 어머니가 기다리던 \\안전하다\\가 아니라 \\즐겁다(delighted)\\였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고백입니다. 주님께 헌신한 사람은 안전과 편안함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사명 속에서 즐거움을 찾으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즐겁게 감사하게 수행하는 자세가 사명자의 자세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내가 해야 할 남은 일은 복음적인 일입니다.
사람만큼 귀한 것이 없기 때문에 복음이 필요합니다.
짐승들에게 복음이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복음은 죄인이 인생에게 생명입니다.
복음에 일을 감당하는 자는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오스카 쉰 들러는 유태인과는 아무런 피도 석이지 않은 순수 게르만족 이지만 전쟁후반 동족인 나치스의 천인공노 할 만행을 보고 인간적 갈등을 격게되고 결국 그는 양심의 길을 선택하여 그동안 착취한 유태인들의 노동력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1천1백여 명의 유태인 목숨을 구하게 된다. 그 결과, 오늘날 쉰 들러에 의해 살아남은 유태인들의 후손은 6천여 명 이상이나 된다. 유태인들의 교과서인 탈무드에 나오는 구절 \\한사람을 구하면 세상을 구한 것이다.\\는 말처럼 쉬들러는 당시 천여 명을 구했지만 앞으로도 그가 구한 그 천여 명의 후손들이 몇 만, 몇 백만, 몇 천만 으로 늘어날지 누가아랴. 전쟁이 끝난 뒤 오스카 쉰 들러는 1958년 에루살렘의 야드바셈위원회에의해 \\정의로운 자\\로 선정되어 정의의 거리에 식수를 위해 초대되었고 그가 죽은 후 그의 시신은 에루살렘으로 안치 되었다 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