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의 근거와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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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31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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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0:31-33 당신의 삶의 근거와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지금 나이 40세인 이용규씨는 서울대 동양사학과 학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중동지역학 및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그의 전공하고는 전혀 다른 지금 몽골 울란바트로에 소재한 이례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물론 울란 바트로 소재 대학에서 칭기즈 칸에 대한 연구와 객원 교수를 하고 있습니다 만은 몽골 인을 섬기는 자가 된 것은 하버드 대학 학창 시절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쓴 글 내려놓음에서 말하기를 최고의 학부 하버드 대학에서 광야생활을 경험하게 되었는데 나는 동급생들 중에서 유일한 동아시아 출신으로 더듬거리는 영어를 구사하고 전공에 대한 기초 준비가 가장 안 되어 있는 학생이었다. 과연 내가 이 분야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는 늘 자신 없는 질문이었다. 바닥에서 허덕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태어나서 그전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아주 낮은 자존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속에서 깨어짐을 경험했고 비로소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그 아무 것도 아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우리고 순종하는 법을 몸으로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종은 하버드를 졸업하고 모든 것을 털고 몽골로 향하는 발걸음을 가능케 만들었다 그리고 그 순종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동시에 자신의 기쁨이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하나님의 만족에서 찾았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만족에서 멀어지면 그 목적을 상실한 자며 그 존재가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치창조의 수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적을 상실하면 자연히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실 이 땅에 살면서 나의 존재가치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린 그 증거는 그 순간부터 인생의 방황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존재의 가치를 찾으면 그 목적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에 어떤 장애도 극복 할 수도 있고요 무엇이든지 감당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그리고 사람으로는 생각 할 수없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9: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그 방향에 삶이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보여도 존재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아직도 삶의 목적이 정해져 있지 않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본의 신학자 우찌므로 간조는“실패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 목적이 잘못된 것이 죄다”라고 했습니다.
나의 삶의 근거와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3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이야 말로 삶의 총체적인 목적입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할렐루야!
나를 지으신 목적이 하나님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원망이나 하고 하나님을 거스리게 하기위하여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에 마지막 7일째 날 7바퀴를 돌고 소리를 지르라고 했는데 그 소리를 지를 때에 여리고 성이 함락이 되었는데 그 때에 무슨 소리를 질렀을까? 지금까지 고민이었습니다.
오늘이야 그 해답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라고 소리를 친 것이 틀림없이 맞을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기드온 300 용사가 10만의 미디안을 칠 때에 그들이 밤중에 불이 든 항아리를 깨며 소리를 질렸습니다.
무엇라고 소리를 질러라고 하였습니까?
역시 여호와를 위하여 여호와 칼이여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생명이 살아서 무엇을 하든지 그 존재 자체가 여호와를 위하는데 있을 뿐입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위하는 일에 모든 삶을 드린다면 하나님께 영광이요 자신도 영광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인 41세인 압둘 라흐만은 1990년대 파키스탄에서 외국 구호기관에 활동하다가 기독교로 개종했는데 이 문제로 부인과 이혼을 하고, 최근 아이 양육문제로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오자 부인이 당국에 그의 개종 사실을 신고해서 구속되고 재판이 시작됐는데 검찰은 “개종은 이슬람 율법 위반”이라며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언도를 했습니다.
이것 하나만 봐도 이슬람이 사랑을 외치지만 공간주의보다 더 한 악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어떤 모 신문 사설에서 종교적인 처형은 상상하기 어려운 처참한 형벌이라고 하였습니다.
15~16세기 이슬람의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기독교의 유럽이 한창 종교적인 각축을 벌일 때 양측은 공포심과 광기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끔찍한 방식으로 상대를 살육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말뚝 형은 인간이 고안해 낸 가장 잔인한 형벌로 꼽힌다. 196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구 유고슬로바키아 작가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강의 다리>에는 당시를 배경으로 이런 장면이 나온다.‘2.4㎚ 정도 되는 참나무 막대 끝에 날카로운 쇠촉을 달고 막대 전체에 돼지기름을 바른다. 그런 다음 미리 칼로 도려 입구를 넓혀 놓은 사형수의 항문에 막대를 박아 넣는다.
형 집행인은 사형수가 오래 살아 있으면 보너스를 받게 되므로 나무망치로 막대 끝을 치며 서서히 조심스럽게 복부로 집어넣는다. 막대가 복부를 비집고 올라가 간, 비장, 횡경막, 폐를 다치지 않고 지나 심장을 살짝 스치고 어깨 근육을 통해 밖으로 나오게 되면 성공한 것이다.
그 다음 막대를 45도 각도로 들어 올려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한다. 고통으로 몸을 비틀며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거의 하루 동안을 사형수는 그렇게 매달려 있었다.’(피터 마쓰의 <네 이웃을 사랑하라>에서 재인용). 고 합니다. 21세기에야 이런 일이 있겠는가? 설마….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 위기에 처했던 압둘 라흐만 씨는 그 법정에서 증언하기를 압둘 라흐만은 나에 대한 사형 처벌은 인정 할 수 있지만 나는 이교도가 아니며 기독교인이며 삼위 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혹시 석방된다 하더라도 아프가니스탄을 떠나고 싶지 않다 나는 신앙을 위해 순교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가난하고 별 볼일 없는 것 같은 한 아프가니스탄 인이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을 전부를 드린다는 데에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존재가 하나님을 위하는 재물이라는 데에는 여부(與否)가 없었습니다.
압둘 라흐만 씨는 지금 이탈리아로 망명을 갔지만 전 세계인을 향한 기독교인의 정신을 심어주었고 그의 신앙의 고백의 한 말이 그가 살아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가 죽어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겠습니까?
과연 나는 그러한가?
나의 말 한마디가 나의 행동 하나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화장실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그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어느 것은 그렇고 어느 것은 아니고가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영광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어떤 삶이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삶입니까?
지금 내게 주어진 일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어느 한 분의 큐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오늘 새벽기도 시간에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내가 또 한 번 부끄럽게 눈물을 떨어뜨리어야 했다.
문제에 깊이 빠지면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아등바등 거리는 내 모습이 전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과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제 비전은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입니다. 늘 기도해보지만 그 비전은 삶의 무게에 점점 더 초라해져가고 난 다시 그 무게에 짓눌려 이젠 지쳤습니다. 그 무게라도 가볍게 해주소서.
이런 기도가 주류를 이루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당연히 기도에 힘이 없고, 가뜩이나 지친 몸에 졸린 모습으로 횡설수설 하게 만든다.
다윗을 생각해 보았다.
사무엘상 17장에 나타난 다윗의 모습이 오늘 왜 이리 감동을 주는가?
\\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사무엘상 17장 45~47절)
거인 골리앗에게 겁 없이 나가 결투를 신청한어린 소년 다윗의 고백이다.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인데!
이 말씀을 지금 읽는 동안 그 다윗의 담대한 고백과 확신이 얼마나 내게 감동을 주는지!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생명을 걸었다. 그것이 승리를 가져다 준 것이다.
난지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난 다윗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면 목숨도 걸 수 있을까?
고작 인생의 문제에 발목 잡혀 아등바등 거리고 있으면서…….
그것 해결 받으려고 하나님께 매달리고 있으면서…….
다윗처럼 살고 싶다고 했지만 참으로 힘드네!
최근에 기도하면서도 힘이 있는 기도가 되지 못하고 자꾸 기도의 맥을 못 잡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문제를 떠나서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고, 비전을 바라보고,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소망으로 살아왔던 것처럼 나도지금의 광야를 바라보고 그 광야를 벗어나보려고 매달리고 안간힘을 쏟기 보다는 광야의 삶도 즐기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준비하고 살아보아야 하는 것이다. 늘 생각은 이러했지만 참으로 그때마다 삶의 무게가 짓눌러버리면 또 잊어버리고~~ 그러다가 이렇게 말씀으로 회복하고~~~ 또 ~~~
중심을 잡자! 다윗의 담대한 고백을 오늘 마음 판에 새기며 날마다 승리하자!
지금 내게 주어진 일에서 얼마든지 영광을 돌릴 수 있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는 일이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32)
모든 성도는 교회를 섬기는 봉사자입니다.
인간이 부패함으로 가정이 파괴되고, 파괴된 가정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주님은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섬기는 것은 자신의 가정을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역을 방해하는 사단의 세력이 있습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에베소서 2:2)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에 영들에게 대함이라”(에베소서 6:12)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지 맙시다.
하나님의 교회에 거치는 자는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는 인생입니다.
주님의 교회가 성장하는데 큰 일군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영국의 경험주의자 베이컨은 이 세상에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거미같이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입니다. 둘째 개미같이 있어도 없어도 무관한 사람입니다. 셋째 일벌같이 꼭 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이는 마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누가복음 10:30-37)에서 거미 같은 강도 인생과 개미 같은 레위인과 제사장 그리고 일벌 같은 선한 사마리아인입니다. 당신은 이 시대에 주님의 교회에 꼭 필요한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영광의 결론은 영혼 구원입니다.
영혼 구원하는 일보다 귀한 일은 없습니다.
천하를 다 얻었다 할지라도 자기 생명하나 구원 받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왜 사람을 섬기고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까?
잘 사고 잘 먹고 잘 놀기 위함이 아니라 이것 모두 사람을 구원에 이르기 위한 일입니다.
본문을 기록한 바울의 전도관은 이러합니다.
전도는 항상 힘써야 합니다. 당신이 복음을 받은 순간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은 다 전도의 대상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디모데후서 4:2)고 했습니다.
빚진 심정으로 전해야 합니다. 당신이 지금 받은 구원의 은총은 거저 받은 선물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에베소서 2:8-9)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빚진 자의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낮아진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입니다(고린도전서 9: 19-23).
전하지 않으면 화가 미칠 줄 알아야 합니다(고린도전서 9:16). 우리는 복음 전하는 파수군 입니다. 그래서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서 복음의 나팔을 불어서 사망권세에서 건져내어야 합니다. 만약에 파수군의 나팔이 분명치 못하여 아군이 적군의 손에 죽으면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에스겔 33:7-9).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고린도전서 1:21).
우리의 주어진 모든 때는 복음을 위한 기회요 영혼 구원을 위한 영광을 돌릴 일입니다.
나사로가 죽을병이 걸려 사실 죽었을 때에도 예수님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면서 소경된 자를 사람들은 정죄의 대상으로 보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시는 일로 보시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의 자신의 십자가 사건을 두고서 아버지가 영광을 받으실 때로 자신에게도 영광을 입을 때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미국의 메리온 웨이드란 분이 사고를 당하여 두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절망에 빠진 그는 골방에 들어앉아 하나님께 호소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왜 이 젊은 나이에 눈이 멀어 폐인이 되어야 합니까? 그가 애타게 부르짖는 중에 하늘로서 임하는 성령의 은혜를 체험케 되었습니다. 넘치는 성령의 은혜로 기쁨이 충만하게 되고 또 삶에 대한 용기가 용솟음치게 되었습니다. 그때로부터 그는 달라졌습니다. 손끝으로 글자를 익힌 후에 그는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Service Master Co.란 청소 용역회사를 세우면서 기업신조를 고린도전서 10장31절의 말씀인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을 내걸었습니다. 그리고는 경영기법으로 종업원과 고객을 함께 만족시킴에 두었습니다. 그 뒤로 회사가 날로 성장하여 99년에는 세계40개국에서 8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발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전심전력을 하다보면 자연히 개인의 발전은 물론 조직도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업이 성장하게 되고 또 이익증대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제 교회는 영혼 구원이라는 최대의 목적에 초점을 맞추고 달려갑니다.
위하여 기도하고 순종함으로서 교회는 새 역사의 장이 반드시 열릴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하며 따르는 자들은 분명히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실 것입니다.
교회를 새롭게 자신을 축복의 기회로 만드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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