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인정받는 복된 자가 됩시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93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시편1:1-6 하나님께 인정받는 복된 자가 됩시다.
어떤 유명한 철학자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의 책이 출판되자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정신의사들까지도 환자 치료에 그 책을 이용하거나 환자들에게까지 추천하여 읽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초췌한 한사람이 정신과 의사를 찾아왔는데 그는 중증환자였습니다. 의사가 그를 만나 면담 후에 그에게 책 한권을 소개하기를 “당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 한 권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어떤 책인데요?” “유명한 철학자가 쓴 책입니다. 현재 시중의 베스트셀러입니다.” “그 책을 소개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책에 대해 들어 본 일이 있습니까?” 한참 만에 환자가 나지막한 소리로 대답하기를 “제가 그 책을 쓴 저자입니다.”라고 말했다는 것 아닙니까?
세상에는 행복에 관하여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환자와 같이 행복에 대하여 알고 말하고 가르치지만 그러나 진작 자신은 행복해 하지 못하고 불행해 하고 있습니다.
행복에 관하여 말을 한다고 해서 행복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는 행복을 마냥 기다리고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이 행복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언제 행복해 질까하고 점치는 사람들이고 사주팔자에다, 그 해, 그 달 운세를 보러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헤르만 헷세의 시와 같이 “저 산 너머 행복이 있다기에 찾으러 갔다가 눈물만 글썽하여 돌아왔네. 라는말과 같이 행복을 어디서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행복을 깨뜨려서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들어온 행복을 발로 차버린 다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사시는 동안 얼마 동안 행복하였습니까?
시인 괴테는 「나는 한 평생 중 일주일 밖에는 행복해 본 적이 없었다.」고 고백하였으니 83세를 살았으니 그에게는 인생이 얼마나 불행하였겠습니까?
반면에 날마다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삶 자체가 행복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지금 나의 인생이 행복하십니까?
강철 왕이라 불리는 앤드류 카네기는 “행복이란 외계의 상황에 따라 결정되기 보다는 내 마음의 상태 여하에 따라 결정된다. 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정말로 행복한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만나게 됩니다.
그 결론은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여호와 하나님께 인정하심을 받는 일입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람입니다.
가장 행복한 삶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삶입니다. 가장 행복한 일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일입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과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이 인정할 만합니까?
하나님께 인정받는 복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처신(處身)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가마귀 싸호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낸 가마귀 흰 빛을 새오나니창파에 조히 씻은 몸 더러일가 하노라
고려 말 고려는 국운이 쇠퇴할 대로 쇠퇴하여 군신들은 서로 암살과 권력 다툼만을 일삼고 국정은 전혀 돌보지 않고 명예와 사리사욕만을 채우려고 했을 때 정몽주의 어머니가 아들이 소인배의 무리에 잘못 섞여 장래를 그르칠까 염려하여 몸가짐을 조심히 하라는 훈계의 내용입니다.
이방원이 정몽주에게 하여가(何如歌)를 불렀지요
이런들 어찌하리 저런들 어찌하랴 만수산 칡넝쿨이 얽혀진들 어찌하리 라고 할 때에
정몽주는 단심가를 응했습니다.
이 몸이 주거주거 일백 번 고쳐 주거 백골이 진토 되야 넉시라도 잇고 업고 님 향한 일편 단심이야 가싈 줄이 이시랴
어떻게 처신을 잘하여야 합니까?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자입니다.
악인이란 경건하게 믿음으로 사는 자를 핍박하고 시대의 조류에 편승해서 시시각각으로 자기 유익과 욕심을 따라 사는 자입니다.
여기서 좇는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배우고 익혀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악인의 꾀를 좇습니까?
그것은 자기 유익과 욕심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악인의 꾀를 좇습니다.
그러나 현재 득세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은 심판을 받고 맙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은 현실에 손해가 있을지라도 그 죄의 결과가 멸망하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에 악인의 꾀를 좇지 않습니다.
자신의 사리사욕에 욕심에 끌리지 않는 그 자체가 처신을 잘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죄\\란 \\곁길로 빠지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잘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사람들이 왜 정도를 걷지 못하고 죄인의 길에 서기를 좋아합니까?
그것은 죄의 길에는 육적인 쾌락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사람의 심보가 못된 짓을 하고서 즐거움을 느끼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디 죄를 즐길만한 것이 없는가 하고 찾아 헤맨 답니다.
또, 죄의 문화가 만연하여서 죄를 짓지 않으면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취급됩니다.
그리고 직장 동료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가 일쑤입니다.
중고등 학교 대학 청년 시절에 이런 유혹을 많이 받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도 그 영향을 받아서 그들과 동화되어 죄인의 길에 서기가 쉽습니다.
사단은 지금도 달콤한 유혹을 하는데 넘어가지 않고 나의 길을 가는 자가 처신을 잘하는 복된 자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합니다.
오만 한 자는 입을 빼쭉거리며 비웃고 조롱하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오만 한 자는 하나님에 대하여 모욕적인 발언을 하는 극악한 자를 말합니다.
그러니 자신 외에는 다른 이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무시하는 말을 하는 아주 교만한 자입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리에 앉지아니합니다. 왜냐하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죄인의 회중에 들지 않은 사람이 바로 처신을 잘하는 복 있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니깐 세상에서도 유유상종(類類相從)인 것처럼 죄인은 의인의 회중에 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인은 죄인끼리 모이는 것입니다. 의인은 주님과 함께하는 자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와 함께 있느니라
하나님께 인정받는 복 있는 사람이 누굽니까?!
말씀에 이끌림을 받는 삶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합니다.
그 이유는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요 14:15절에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다윗은 시 119:12-14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찬송을 받으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입의 모든 규례를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내 입에 달고 오묘한 말씀이 됩니다. 그리고 항상 그 말씀의 맛을 사모하게 됩니다.
시 119:103절의 고백과 같이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나이다\\ 이러한 고백이 날마다 터져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사모하기 때문에 말씀을 가까이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와 능력을 알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을 보여주시고 만나게 합니다.
말씀은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며, 강하게 합니다.
말씀은 모든 사람을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어떤 사람일지라도 말씀 앞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골수와 관절을 찔러 쪼개며 회개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심같이 위대하고, 창조의 능력이 있는 반면, 우리의 작은 생각까지도 시시비비를 감찰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나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말씀 안에서 안식을 누리게 하고 영혼을 소생시킵니다.
그러면 복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느 정도까지 즐거워합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묵상한다는 것은 \\계속 신중하게 생각하고 입으로 중얼거리며 암송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주야로 묵상한다는 것은 말씀을 중얼거리며 암송하기도 하고 생각하기도 하면서 하루 종일 말씀에 사로 잡혀 지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분재와 화초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분재와 화초를 항상 가꾸고, 아침에 일어나면 이것에 제일 먼저 가서 물을 주고 다듬어 줍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는 주야로 돈을 묵상하는 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복 있는 자는 말씀에 사로잡혀 삽니다.
시편 19편 기자는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랑하고 꿀보다 더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시편 119편 기자는 말씀을 사모하여서 새벽부터 일어나 주의 말씀을 바라고 밤늦게까지 눈이 쇠하여지도록 묵상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주의 계명을 사모함으로 입을 헐떡였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말씀을 한번 보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할 때, 나의 영혼에는 말할 수 없는 은혜와 힘과 기쁨이 넘칩니다.
삶에 변화가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분들은 깊은 말씀 묵상과 더불어 말씀의 은혜를 공급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주야로 깊이 말씀을 먼저 묵상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할 때, 인생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고 기쁨이 충만합니다.
이렇게 말씀의 능력과 은혜를 체험할 때, 말씀을 헐떡거리며 사모하게 되고 야경이 깊도록 말씀을 읽는 자가 됩니다.
또 능력 있는 말씀의 종이 되고자 하는 자는 깊은 말씀 묵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피상적으로 말씀을 보아서는 말씀의 깊이가 절대로 깊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새벽에 나올 때 의무감으로 나오지 아니하고 시편기자와 같이 말씀을 사모하기에 새벽 전에 나오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파숫군이 새벽을 기다림같이 새벽을 기다리고 말씀과 기도로 새벽에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복된 자로 살게 되실 것입니다.
악인은 그 열매를 보게 됩니다. 바로 겨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쭉정이도 평소에는 알곡과 함께 지넵니다. 아주 가깝게 함께 붙어서 친한척하면서 그렇게 지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하기를 마지막 때가 되면, 반드시 알곡과 쭉정이는 나누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마3:12)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이 알곡과 쭉정이를 나눌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말하기를 바로 ‘바람’이라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럼, 여기 바람은 어떤 바람을 말합니까?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의 미혹과 유혹의 바람인 것입니다.
쭉정이의 특징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바람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복된 자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이런 바람에 반드시 이긴다는 겁니다.
시련의 불이 불 때에 그 공력이 나타나는데 인간적으로 한 것은 다 타고 없어져버렸지만 믿음적인 것은 오히려 그 공력이 드러날 것입니다.
오히려 시냇가의 심은 나무같이 세월이 갈수록 더욱 결실한 나무가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교회적으로도 심한 바람이 불었지만 여기 저기 생각지 않는 결실한 성도들이 일어 날 때에 우리 교회가 얼마나 복되고 복된 성도들이구나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최종적인 판단은 하나님 이십니다
누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가 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인정하신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까?
“대저 의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자는 바로 의인입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인정하셨습니다. 해서 그로 방주를 짓도록…….
하나님은 욥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사탄에게까지도 내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고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인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인정하셨습니다.
나 역시 우리 교회 역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악인의 길을 가면서 하나님께 복된 자가 될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복된 자에게 따르는 삶의 축복은
첫째, 성령의 열매 맺는 삶입니다. 악인의 꾀를 좇는 사람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소득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야로 말씀을 묵상할 때, 영적인 열매들로 가득합니다. 외적으로는 제자양성의 열매를 맺히고, 내적으로는 9가지 성령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맺히게 됩니다.
둘째, 나도 살고 너도 살리는 생명력이 충만한 삶입니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같이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성령이 충만한 삶,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셋째, 그 행사가 다 형통한 삶입니다.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축복과 은혜를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토지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케 하며, 모든 질병에서 떠나게 하며, 모든 열방 중에서 으뜸이 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사랑할 때, 전인격 전 생애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유명한 철학자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의 책이 출판되자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정신의사들까지도 환자 치료에 그 책을 이용하거나 환자들에게까지 추천하여 읽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초췌한 한사람이 정신과 의사를 찾아왔는데 그는 중증환자였습니다. 의사가 그를 만나 면담 후에 그에게 책 한권을 소개하기를 “당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 한 권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어떤 책인데요?” “유명한 철학자가 쓴 책입니다. 현재 시중의 베스트셀러입니다.” “그 책을 소개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책에 대해 들어 본 일이 있습니까?” 한참 만에 환자가 나지막한 소리로 대답하기를 “제가 그 책을 쓴 저자입니다.”라고 말했다는 것 아닙니까?
세상에는 행복에 관하여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환자와 같이 행복에 대하여 알고 말하고 가르치지만 그러나 진작 자신은 행복해 하지 못하고 불행해 하고 있습니다.
행복에 관하여 말을 한다고 해서 행복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는 행복을 마냥 기다리고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이 행복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언제 행복해 질까하고 점치는 사람들이고 사주팔자에다, 그 해, 그 달 운세를 보러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헤르만 헷세의 시와 같이 “저 산 너머 행복이 있다기에 찾으러 갔다가 눈물만 글썽하여 돌아왔네. 라는말과 같이 행복을 어디서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행복을 깨뜨려서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들어온 행복을 발로 차버린 다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사시는 동안 얼마 동안 행복하였습니까?
시인 괴테는 「나는 한 평생 중 일주일 밖에는 행복해 본 적이 없었다.」고 고백하였으니 83세를 살았으니 그에게는 인생이 얼마나 불행하였겠습니까?
반면에 날마다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삶 자체가 행복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지금 나의 인생이 행복하십니까?
강철 왕이라 불리는 앤드류 카네기는 “행복이란 외계의 상황에 따라 결정되기 보다는 내 마음의 상태 여하에 따라 결정된다. 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정말로 행복한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만나게 됩니다.
그 결론은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여호와 하나님께 인정하심을 받는 일입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람입니다.
가장 행복한 삶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삶입니다. 가장 행복한 일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일입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과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이 인정할 만합니까?
하나님께 인정받는 복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처신(處身)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가마귀 싸호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낸 가마귀 흰 빛을 새오나니창파에 조히 씻은 몸 더러일가 하노라
고려 말 고려는 국운이 쇠퇴할 대로 쇠퇴하여 군신들은 서로 암살과 권력 다툼만을 일삼고 국정은 전혀 돌보지 않고 명예와 사리사욕만을 채우려고 했을 때 정몽주의 어머니가 아들이 소인배의 무리에 잘못 섞여 장래를 그르칠까 염려하여 몸가짐을 조심히 하라는 훈계의 내용입니다.
이방원이 정몽주에게 하여가(何如歌)를 불렀지요
이런들 어찌하리 저런들 어찌하랴 만수산 칡넝쿨이 얽혀진들 어찌하리 라고 할 때에
정몽주는 단심가를 응했습니다.
이 몸이 주거주거 일백 번 고쳐 주거 백골이 진토 되야 넉시라도 잇고 업고 님 향한 일편 단심이야 가싈 줄이 이시랴
어떻게 처신을 잘하여야 합니까?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자입니다.
악인이란 경건하게 믿음으로 사는 자를 핍박하고 시대의 조류에 편승해서 시시각각으로 자기 유익과 욕심을 따라 사는 자입니다.
여기서 좇는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배우고 익혀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악인의 꾀를 좇습니까?
그것은 자기 유익과 욕심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악인의 꾀를 좇습니다.
그러나 현재 득세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은 심판을 받고 맙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은 현실에 손해가 있을지라도 그 죄의 결과가 멸망하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에 악인의 꾀를 좇지 않습니다.
자신의 사리사욕에 욕심에 끌리지 않는 그 자체가 처신을 잘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죄\\란 \\곁길로 빠지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잘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사람들이 왜 정도를 걷지 못하고 죄인의 길에 서기를 좋아합니까?
그것은 죄의 길에는 육적인 쾌락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사람의 심보가 못된 짓을 하고서 즐거움을 느끼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디 죄를 즐길만한 것이 없는가 하고 찾아 헤맨 답니다.
또, 죄의 문화가 만연하여서 죄를 짓지 않으면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취급됩니다.
그리고 직장 동료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가 일쑤입니다.
중고등 학교 대학 청년 시절에 이런 유혹을 많이 받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도 그 영향을 받아서 그들과 동화되어 죄인의 길에 서기가 쉽습니다.
사단은 지금도 달콤한 유혹을 하는데 넘어가지 않고 나의 길을 가는 자가 처신을 잘하는 복된 자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합니다.
오만 한 자는 입을 빼쭉거리며 비웃고 조롱하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오만 한 자는 하나님에 대하여 모욕적인 발언을 하는 극악한 자를 말합니다.
그러니 자신 외에는 다른 이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무시하는 말을 하는 아주 교만한 자입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리에 앉지아니합니다. 왜냐하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죄인의 회중에 들지 않은 사람이 바로 처신을 잘하는 복 있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니깐 세상에서도 유유상종(類類相從)인 것처럼 죄인은 의인의 회중에 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인은 죄인끼리 모이는 것입니다. 의인은 주님과 함께하는 자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와 함께 있느니라
하나님께 인정받는 복 있는 사람이 누굽니까?!
말씀에 이끌림을 받는 삶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합니다.
그 이유는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요 14:15절에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다윗은 시 119:12-14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찬송을 받으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입의 모든 규례를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내 입에 달고 오묘한 말씀이 됩니다. 그리고 항상 그 말씀의 맛을 사모하게 됩니다.
시 119:103절의 고백과 같이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나이다\\ 이러한 고백이 날마다 터져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사모하기 때문에 말씀을 가까이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와 능력을 알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을 보여주시고 만나게 합니다.
말씀은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며, 강하게 합니다.
말씀은 모든 사람을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어떤 사람일지라도 말씀 앞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골수와 관절을 찔러 쪼개며 회개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심같이 위대하고, 창조의 능력이 있는 반면, 우리의 작은 생각까지도 시시비비를 감찰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나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말씀 안에서 안식을 누리게 하고 영혼을 소생시킵니다.
그러면 복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느 정도까지 즐거워합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묵상한다는 것은 \\계속 신중하게 생각하고 입으로 중얼거리며 암송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주야로 묵상한다는 것은 말씀을 중얼거리며 암송하기도 하고 생각하기도 하면서 하루 종일 말씀에 사로 잡혀 지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분재와 화초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분재와 화초를 항상 가꾸고, 아침에 일어나면 이것에 제일 먼저 가서 물을 주고 다듬어 줍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는 주야로 돈을 묵상하는 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복 있는 자는 말씀에 사로잡혀 삽니다.
시편 19편 기자는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랑하고 꿀보다 더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시편 119편 기자는 말씀을 사모하여서 새벽부터 일어나 주의 말씀을 바라고 밤늦게까지 눈이 쇠하여지도록 묵상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주의 계명을 사모함으로 입을 헐떡였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말씀을 한번 보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할 때, 나의 영혼에는 말할 수 없는 은혜와 힘과 기쁨이 넘칩니다.
삶에 변화가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분들은 깊은 말씀 묵상과 더불어 말씀의 은혜를 공급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주야로 깊이 말씀을 먼저 묵상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할 때, 인생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고 기쁨이 충만합니다.
이렇게 말씀의 능력과 은혜를 체험할 때, 말씀을 헐떡거리며 사모하게 되고 야경이 깊도록 말씀을 읽는 자가 됩니다.
또 능력 있는 말씀의 종이 되고자 하는 자는 깊은 말씀 묵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피상적으로 말씀을 보아서는 말씀의 깊이가 절대로 깊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새벽에 나올 때 의무감으로 나오지 아니하고 시편기자와 같이 말씀을 사모하기에 새벽 전에 나오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파숫군이 새벽을 기다림같이 새벽을 기다리고 말씀과 기도로 새벽에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복된 자로 살게 되실 것입니다.
악인은 그 열매를 보게 됩니다. 바로 겨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쭉정이도 평소에는 알곡과 함께 지넵니다. 아주 가깝게 함께 붙어서 친한척하면서 그렇게 지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하기를 마지막 때가 되면, 반드시 알곡과 쭉정이는 나누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마3:12)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이 알곡과 쭉정이를 나눌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말하기를 바로 ‘바람’이라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럼, 여기 바람은 어떤 바람을 말합니까?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의 미혹과 유혹의 바람인 것입니다.
쭉정이의 특징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바람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복된 자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이런 바람에 반드시 이긴다는 겁니다.
시련의 불이 불 때에 그 공력이 나타나는데 인간적으로 한 것은 다 타고 없어져버렸지만 믿음적인 것은 오히려 그 공력이 드러날 것입니다.
오히려 시냇가의 심은 나무같이 세월이 갈수록 더욱 결실한 나무가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교회적으로도 심한 바람이 불었지만 여기 저기 생각지 않는 결실한 성도들이 일어 날 때에 우리 교회가 얼마나 복되고 복된 성도들이구나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최종적인 판단은 하나님 이십니다
누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가 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인정하신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까?
“대저 의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자는 바로 의인입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인정하셨습니다. 해서 그로 방주를 짓도록…….
하나님은 욥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사탄에게까지도 내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고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인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인정하셨습니다.
나 역시 우리 교회 역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악인의 길을 가면서 하나님께 복된 자가 될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복된 자에게 따르는 삶의 축복은
첫째, 성령의 열매 맺는 삶입니다. 악인의 꾀를 좇는 사람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소득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야로 말씀을 묵상할 때, 영적인 열매들로 가득합니다. 외적으로는 제자양성의 열매를 맺히고, 내적으로는 9가지 성령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맺히게 됩니다.
둘째, 나도 살고 너도 살리는 생명력이 충만한 삶입니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같이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성령이 충만한 삶,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셋째, 그 행사가 다 형통한 삶입니다.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축복과 은혜를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토지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케 하며, 모든 질병에서 떠나게 하며, 모든 열방 중에서 으뜸이 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사랑할 때, 전인격 전 생애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