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마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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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74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빌립보서2;5-11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폴 토머스라는 주한 미군 소령 한 분이 한국의 고아를 입양해서 키웠습니다.
이 아이는 장애를 가졌습니다.
이 아이가 앞으로 잘 살아 가려면 장애인을 위한 교육과 시설이 잘 되어 있는 미국에 데리고 가서 사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해서 그만 전역 원서를 제출한 것입니다.
이 사람은 장래가 촉망되는 미국의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를 나온 직업군인이요 더 놀라운 것은 중령 진급 예정자라는 사실입니다.
여느 보통 사람으로는 입양한 고아 장애인을 위한 다는 이유로 전역하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분명 다른 이에게서 찾을 수없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람에게는 보통 지식 지능 등의 능력을 알아보는 IQ(intelligence quotient)가 있고 사회화와 대인관계 등의 감성력을 보는 EQ(educational quotient)가 있고 영적이고 의지적인 신앙의 마음인 SQ(spiritual quotient)가 있습니다.
폴 토머스 소령의 마음은 IQ나 EQ만 가진 자가 아니라 거기에 SQ인 영적이고 신앙의 마음의 소유자 있었기에 이런 일들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의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어떤 마음인가하면 SQ적인 “예수님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 예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하면 “낮아져 종이 되어 하나님의 뜻이라면 아무런 조건 없이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복종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은 IQ와 EQ가 잘 조화되어야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이것만으로 안 되고 거기에다가 SQ, 즉 영성까지 즉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라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이루어 드리는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사람들이 이해 할 수없는 선한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은 바로 이런 마음을 소유한 자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 자신의 전부를 다 드리겠다는 마음을 가진 자 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를 다 비웠다는 뜻입니다.
비웠다는 말은 영어로는 empty입니다.
아주 속이 텅 비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본체는 하나님이시지만 그 하나님과 동등 됨을 드러내지 아니하시고그 하나님 됨을 비워서 아주 깨끗이 비웠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비하(卑下) 즉 낮아 지셨습니다.
강압에 못 이겨 할 수 없어서 포기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비웠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아름다움이십니다.
요10:18 이는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스스로 버리노라
내가 나된 것을 세우는 자가 아니요 스스로 비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나가 나 된 것을 변론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그를 따르려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속한 것은 다 배설물로 같이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이 다가오면 집안에 있는 것을 다 버리는 무교절기를 지켰습니다.
야곱은 베델로 올라가 하나님을 뵈올 때에 집안에 잇는 모든 것 심지어는 종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까지 다 상수리나무 아래 묵어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참 모습인 줄로 믿습니다.
누구를 뜨겁게 사랑해 본 일이 있습니까?
그러면 어느 사이에 내가 없어지고 맙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십니까?
이상하리만큼 내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 자존심이라는 게 아무것도 아닙니다.사랑한다면 자존심 상할 일 없습니다. 나를 버릴 수 있습니다.
저는 참 신기한 것을 발견합니다.
젊은 애기 엄마들이 애기가 똥을 싸고 온 몸에 묻었지만 화 한번 안내고 똥 색깔이 좋다하고 냄새도 맡아 보고 만져 보기도 하고 하는 것이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내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자존심이 상하다고 하셨거나 자존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신 적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뜻을 이루는데 자존심 따위는 다 버렸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자기를 세우는 자존심 때문에 주의 일을 거슬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날마다 나오기 날마다 죽는 것입니다.
내가 죽으니 자기가 없고 오직 예수님만 계시는 것입니다.
일본의 어느 화가가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그 그림의 재목이 바보 예수이었습니다.
화가가 바라 본 예수님은 아무리 보아도 바보라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 하나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느냐? 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사랑하므로 해서 고난을 많이 겪어 입술이 말라 갈라지고 너무 사랑해서 야위어 갈비뼈가 앙상하게 나오고, 그리고 너무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봄으로서 눈 하나가 찌그러지고 진물이 나는 모습으로 아주 볼품이 없도록 그렸어요.
그 작가가 보기에도 예수님은 세상적으로 흠모 할 것이 없는 확실한 바보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53:2-3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고 하였습니다.
이 같이 예수님의 마음은 선을 위한다면 기꺼이 자신의 기득권을 스스로 포기 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어서 나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고는 죽어도 포기 못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비우면 어떻게 됩니까?
비우니 다른존재가 되어 버렸어요.
하나님과 동등 됨을 비우니 사람과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7-8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그저 사람과 똑같은 죄인의 모습으로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무 죄인과 가깝게 되어 죄인의 친구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세리와 같이하니 먹고 탐하는 세속주의자라는 말들을 들어야 했습니다.
천하의 잘못은 내가 다 지고 있는 죄인의 모습으로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어찌 의인들만 충만한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성 프렌시스의 사랑하는 제자 한 사람이 환상 중에 천국에 가게 되었답니다.
천국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중에 영광스럽게 장식된 보좌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 앉은 사람이 없더랍니다.
그 빈 보좌를 보고 궁금하여 천사에게 묻기를 이 보좌는 누구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겁니까?
대답하기를 세상에서 제일 겸손한 성 프렌시스를 위해서 마련된 것이다 라고 대답했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아무리 자기 스승이지만은 너무 높임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 시기와 질투가 생겼답니다.
그환상에서 깨어난 그는 성 프렌시스를 시험을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하니 성 프렌시스는 서슴치 않고 그거야 물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지. 하고 말을 하자 그 제자는 반박을 했습니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세상엔 살인강도도 많고도둑놈도 많고 갖가지 죄인들이많은데 당신은 성 프렌시스라고 이렇게 추대 받는 성잔데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거야 말로 위선이요 거짓말이아닙니까?
그럴 때 성 프렌시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원래 악한 사람이요 지금도 악한 사람이야 그런데 내가 이만큼 된 것은 내가 하나님의 은혜야 내가 받은 이 많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도 베푸셨다면 그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 되었을 거야. 라고 대답했답니다.
자기 자신을 비운 사람이야 말로 자기 자신이 죄인 됨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죄인임을 한 번도 보지 못 하고 있지 않습니까?
잘난 사람만 득실하지 않습니까?
은혜를 받은 것을 아는 자만이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 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말 할 수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노라고 하며 그가 자신을 두고 한 말이 무엇입니까?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고로 이렇다 저렇다 아무 할 말이 없는 겁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이만큼의 내가 있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 은혜 앞에는 언제든지 나는 없는 것입니다.
내가 죽을 죄인이 되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생활 가운데 이루어 드리는 실천하는 것입니다.
지식으로만 그치는 삶이 아닙니까?
알기는 많이 알았지만 생활에 이루어 지지 않으면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이것만큼 가증스럽고 죄악된 것이 없습니다.
아는 것은 곧 실행입니다.
미국 센프란시스코는 기후가 좋아서 에이즈 환자들이 많이 모여 삽니다
에이즈 환자들만 사는 마을이 있고 에이즈 환자들만 나가는 교회도 있다고 합니다.
아들이 에이즈 병에 걸렸는데 아버지가 수레에다 아들을 태워 끌고 다니면서 에이즈 환자를 사랑합시다. 하고 다니는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를 행동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어느 부인이 의사인데 의사 일을 하면서 자기 일에 바쁜데 남편은 밖으로 나돌게 됐고 나돌다가 타락하고, 마지막에 에이즈 환자가 되어 몸은 썩어가기 시작합니다.
아내는 이 사실을 알고 남편 앞에 무릎을 꿇고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어쩌다가 내 일이 분주해서 아내 노릇을 못하고 챙기지 못해서 당신이 에이즈 걸린 것은 내책임이요.그런고로 이대로당신이 죽어 가면 당신 없는 세상에서 내가 건강하게어떻게 내가 죄인의 모습으로살아갈 수 있겠느냐고…….그러지 말고 같이 에이즈를 걸려서 같이 죽자고.그때부터다시 신방을 꾸미고 부부생활을 합니다.열렬히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부인이 에이즈가 전염되지 않고 그 남편도 소생했다는 겁니다.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가 없어요.또의학적으로 가능하다고까지 말합디다.
왜요?진정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생활은 비판이 아니요. 설교가 아니요. 책임을 묻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같이 되는 거예요. 죄인을 사랑하면 죄인과 같이 되는 거예요. 약한 자를 사랑하면 약한 자와 같이 되는 거예요.
나 스스로를 비워서 내가 사랑하는 자와 같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헬라인에게는 헬라인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그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이게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왜 나에게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없습니까?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하나님이 그만큼의 보상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수님을 십자가상에서 죽은 분으로만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시고 만물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입이 예수님을 주라고 칭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왜 스스로 높아지려고만 하십니까?
오히려 하나님이 나를 높이시도록 만드시기를 축원합니다.
구멍가게로 시작한 옷 가게가 불과 몇 년 만에 세계적인 유통회사 까르푸를 인수한 분이 계십니다.
그 사람은 원래 몸에 희귀병에 걸려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없는 중 환자입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이 치유하시고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일에 귀하게 쓰십니다.
참 감사 할 일입니다.
지난 박성수 회장은 6일 안성 사랑의 교회 수양관에서 열린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 20주년 기념특강\\에서 강사로 나서 \\까르푸 인수 때 네 차례에 걸쳐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말했습니다.박 회장은 \\올해는 200억 원을 북한 동포 및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며, (까르푸 인수로) 내년에는 1000억 원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회장은 자신의 기도는 \\아침마다 깊은 말씀과 기도 묵상을 통해 신앙의 기본기를 철저히 다지는 것인데 주님의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로드십\\과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처럼 \\종 된 리더십\\을 갖고 사역하는 것, 이라고 합니다.
내가 나를 높이려고만 하지마시고 주님의 주되심을 인정하시고 주님을 높이는 일에 힘을 쓰십시요
주님이 나를 높이시는 기회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이제라도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십시오
이제부터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시작 될 것입니다.
폴 토머스라는 주한 미군 소령 한 분이 한국의 고아를 입양해서 키웠습니다.
이 아이는 장애를 가졌습니다.
이 아이가 앞으로 잘 살아 가려면 장애인을 위한 교육과 시설이 잘 되어 있는 미국에 데리고 가서 사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해서 그만 전역 원서를 제출한 것입니다.
이 사람은 장래가 촉망되는 미국의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를 나온 직업군인이요 더 놀라운 것은 중령 진급 예정자라는 사실입니다.
여느 보통 사람으로는 입양한 고아 장애인을 위한 다는 이유로 전역하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분명 다른 이에게서 찾을 수없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람에게는 보통 지식 지능 등의 능력을 알아보는 IQ(intelligence quotient)가 있고 사회화와 대인관계 등의 감성력을 보는 EQ(educational quotient)가 있고 영적이고 의지적인 신앙의 마음인 SQ(spiritual quotient)가 있습니다.
폴 토머스 소령의 마음은 IQ나 EQ만 가진 자가 아니라 거기에 SQ인 영적이고 신앙의 마음의 소유자 있었기에 이런 일들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의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어떤 마음인가하면 SQ적인 “예수님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 예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하면 “낮아져 종이 되어 하나님의 뜻이라면 아무런 조건 없이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복종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은 IQ와 EQ가 잘 조화되어야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이것만으로 안 되고 거기에다가 SQ, 즉 영성까지 즉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라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이루어 드리는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사람들이 이해 할 수없는 선한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은 바로 이런 마음을 소유한 자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 자신의 전부를 다 드리겠다는 마음을 가진 자 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를 다 비웠다는 뜻입니다.
비웠다는 말은 영어로는 empty입니다.
아주 속이 텅 비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본체는 하나님이시지만 그 하나님과 동등 됨을 드러내지 아니하시고그 하나님 됨을 비워서 아주 깨끗이 비웠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비하(卑下) 즉 낮아 지셨습니다.
강압에 못 이겨 할 수 없어서 포기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비웠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아름다움이십니다.
요10:18 이는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스스로 버리노라
내가 나된 것을 세우는 자가 아니요 스스로 비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나가 나 된 것을 변론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그를 따르려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속한 것은 다 배설물로 같이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이 다가오면 집안에 있는 것을 다 버리는 무교절기를 지켰습니다.
야곱은 베델로 올라가 하나님을 뵈올 때에 집안에 잇는 모든 것 심지어는 종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까지 다 상수리나무 아래 묵어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참 모습인 줄로 믿습니다.
누구를 뜨겁게 사랑해 본 일이 있습니까?
그러면 어느 사이에 내가 없어지고 맙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십니까?
이상하리만큼 내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 자존심이라는 게 아무것도 아닙니다.사랑한다면 자존심 상할 일 없습니다. 나를 버릴 수 있습니다.
저는 참 신기한 것을 발견합니다.
젊은 애기 엄마들이 애기가 똥을 싸고 온 몸에 묻었지만 화 한번 안내고 똥 색깔이 좋다하고 냄새도 맡아 보고 만져 보기도 하고 하는 것이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내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자존심이 상하다고 하셨거나 자존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신 적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뜻을 이루는데 자존심 따위는 다 버렸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자기를 세우는 자존심 때문에 주의 일을 거슬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날마다 나오기 날마다 죽는 것입니다.
내가 죽으니 자기가 없고 오직 예수님만 계시는 것입니다.
일본의 어느 화가가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그 그림의 재목이 바보 예수이었습니다.
화가가 바라 본 예수님은 아무리 보아도 바보라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 하나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느냐? 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사랑하므로 해서 고난을 많이 겪어 입술이 말라 갈라지고 너무 사랑해서 야위어 갈비뼈가 앙상하게 나오고, 그리고 너무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봄으로서 눈 하나가 찌그러지고 진물이 나는 모습으로 아주 볼품이 없도록 그렸어요.
그 작가가 보기에도 예수님은 세상적으로 흠모 할 것이 없는 확실한 바보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53:2-3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고 하였습니다.
이 같이 예수님의 마음은 선을 위한다면 기꺼이 자신의 기득권을 스스로 포기 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어서 나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고는 죽어도 포기 못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비우면 어떻게 됩니까?
비우니 다른존재가 되어 버렸어요.
하나님과 동등 됨을 비우니 사람과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7-8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그저 사람과 똑같은 죄인의 모습으로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무 죄인과 가깝게 되어 죄인의 친구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세리와 같이하니 먹고 탐하는 세속주의자라는 말들을 들어야 했습니다.
천하의 잘못은 내가 다 지고 있는 죄인의 모습으로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어찌 의인들만 충만한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성 프렌시스의 사랑하는 제자 한 사람이 환상 중에 천국에 가게 되었답니다.
천국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중에 영광스럽게 장식된 보좌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 앉은 사람이 없더랍니다.
그 빈 보좌를 보고 궁금하여 천사에게 묻기를 이 보좌는 누구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겁니까?
대답하기를 세상에서 제일 겸손한 성 프렌시스를 위해서 마련된 것이다 라고 대답했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아무리 자기 스승이지만은 너무 높임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 시기와 질투가 생겼답니다.
그환상에서 깨어난 그는 성 프렌시스를 시험을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하니 성 프렌시스는 서슴치 않고 그거야 물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지. 하고 말을 하자 그 제자는 반박을 했습니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세상엔 살인강도도 많고도둑놈도 많고 갖가지 죄인들이많은데 당신은 성 프렌시스라고 이렇게 추대 받는 성잔데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거야 말로 위선이요 거짓말이아닙니까?
그럴 때 성 프렌시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원래 악한 사람이요 지금도 악한 사람이야 그런데 내가 이만큼 된 것은 내가 하나님의 은혜야 내가 받은 이 많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도 베푸셨다면 그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 되었을 거야. 라고 대답했답니다.
자기 자신을 비운 사람이야 말로 자기 자신이 죄인 됨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죄인임을 한 번도 보지 못 하고 있지 않습니까?
잘난 사람만 득실하지 않습니까?
은혜를 받은 것을 아는 자만이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 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말 할 수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노라고 하며 그가 자신을 두고 한 말이 무엇입니까?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고로 이렇다 저렇다 아무 할 말이 없는 겁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이만큼의 내가 있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 은혜 앞에는 언제든지 나는 없는 것입니다.
내가 죽을 죄인이 되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생활 가운데 이루어 드리는 실천하는 것입니다.
지식으로만 그치는 삶이 아닙니까?
알기는 많이 알았지만 생활에 이루어 지지 않으면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이것만큼 가증스럽고 죄악된 것이 없습니다.
아는 것은 곧 실행입니다.
미국 센프란시스코는 기후가 좋아서 에이즈 환자들이 많이 모여 삽니다
에이즈 환자들만 사는 마을이 있고 에이즈 환자들만 나가는 교회도 있다고 합니다.
아들이 에이즈 병에 걸렸는데 아버지가 수레에다 아들을 태워 끌고 다니면서 에이즈 환자를 사랑합시다. 하고 다니는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를 행동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어느 부인이 의사인데 의사 일을 하면서 자기 일에 바쁜데 남편은 밖으로 나돌게 됐고 나돌다가 타락하고, 마지막에 에이즈 환자가 되어 몸은 썩어가기 시작합니다.
아내는 이 사실을 알고 남편 앞에 무릎을 꿇고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어쩌다가 내 일이 분주해서 아내 노릇을 못하고 챙기지 못해서 당신이 에이즈 걸린 것은 내책임이요.그런고로 이대로당신이 죽어 가면 당신 없는 세상에서 내가 건강하게어떻게 내가 죄인의 모습으로살아갈 수 있겠느냐고…….그러지 말고 같이 에이즈를 걸려서 같이 죽자고.그때부터다시 신방을 꾸미고 부부생활을 합니다.열렬히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부인이 에이즈가 전염되지 않고 그 남편도 소생했다는 겁니다.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가 없어요.또의학적으로 가능하다고까지 말합디다.
왜요?진정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생활은 비판이 아니요. 설교가 아니요. 책임을 묻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같이 되는 거예요. 죄인을 사랑하면 죄인과 같이 되는 거예요. 약한 자를 사랑하면 약한 자와 같이 되는 거예요.
나 스스로를 비워서 내가 사랑하는 자와 같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헬라인에게는 헬라인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그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이게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왜 나에게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없습니까?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하나님이 그만큼의 보상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수님을 십자가상에서 죽은 분으로만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시고 만물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입이 예수님을 주라고 칭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왜 스스로 높아지려고만 하십니까?
오히려 하나님이 나를 높이시도록 만드시기를 축원합니다.
구멍가게로 시작한 옷 가게가 불과 몇 년 만에 세계적인 유통회사 까르푸를 인수한 분이 계십니다.
그 사람은 원래 몸에 희귀병에 걸려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없는 중 환자입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이 치유하시고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일에 귀하게 쓰십니다.
참 감사 할 일입니다.
지난 박성수 회장은 6일 안성 사랑의 교회 수양관에서 열린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 20주년 기념특강\\에서 강사로 나서 \\까르푸 인수 때 네 차례에 걸쳐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말했습니다.박 회장은 \\올해는 200억 원을 북한 동포 및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며, (까르푸 인수로) 내년에는 1000억 원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회장은 자신의 기도는 \\아침마다 깊은 말씀과 기도 묵상을 통해 신앙의 기본기를 철저히 다지는 것인데 주님의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로드십\\과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처럼 \\종 된 리더십\\을 갖고 사역하는 것, 이라고 합니다.
내가 나를 높이려고만 하지마시고 주님의 주되심을 인정하시고 주님을 높이는 일에 힘을 쓰십시요
주님이 나를 높이시는 기회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이제라도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십시오
이제부터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시작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