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위하여 내 자신을 드리십시오 거기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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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80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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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4 : 11 - 20 선을 위하여 내 자신을 드리십시오 거기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십니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그렇게도 공을 드려온 햇볕 정책이 북한의 미사일 한방에 다 날라 간 기분입니다. 그 동안 공들어서 수 조억의 돈을 쏟아 부어 주어 재미있게 호상(互相)간에 잘 지내왔습니다
북측은 남한이 자신의 의도대로 잘 따라주니 재미가 솔솔 낫습니다.
지금까지 잘 길들어진 남한 정권이 이번 미사일 문제는 협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남한이 물질로 우리를 도와주었으니 이번에는 우리가 미사일 선군 정치로서 남한을 외세의 개입에서 자유 하도록 도와준다는데 이번에는 남한이 말을 잘 듣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이산가족도 만나지 않겠다 금강산 면회소 건설 노무자도 더 이상 필요 없다 떠나라 하여 모두 와 버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상호간의 관계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 여태까지 해 온 상투적(常套的)인 수법은 변함이 없다는 모습을 드러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악담을 스스럼없이 하는데 북한 웹 사이트 우리끼리에서는 만일 미국이 북침전쟁을 도발하면 미제 침략자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남쪽 땅이 과연 무사할 수 있겠느냐며 전쟁이 일어나면 남쪽이 더 많은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은 세상이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남한의 운명까지 지켜주는 우리의 선군에 대해 문제시하는 남측의 정세판단이야말로 현실인식이 결여된 유치하고 시대착오적인 오판의 극치이다 라고 하며 남조선 당국자들은 이 엄연한 사실에 등을 돌려대고 우리의 선군에 도전하는 매우 온당치 못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며 남측은 이번 망동(妄動)이 북남관계에 미치게 될 엄중한 후과(後果)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를 했다고 합니다.
불바다를 만들겠다는 지 어떠하겠다는 지 …….
그렇다고 우리 정권은 이제 남북 관계가 끝났다 하고 평화가 끝났다 하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햇볕이 안 되면 달빛으로 하든지 별빛 정책을 펴든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하는 새로운 방법을 간구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반도에 결코 전쟁이 일어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될 일이지 않습니까?
선을 위하는 목적에는 언제든지 시련과 도전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한 나라뿐만 아니라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무엇인가 이루려고 하면은 도전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될 대로 되어라 하고 방치하고 있다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마찬 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절호의 선을 위한 기회가 왔습니다. 70년간 나라가 없는 설움을 당하고 이제 해방이 되어 잃은 땅을 찾고 무너진 성을 다시 쌓을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성벽을 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성을 반도 쌓기 전에 더 이상 쌓을 수 없도록 도전하는 무리가 생겼습니다.
사마리아인의 지도자 산발랏과 암몬의 지도자 도비야를 중심으로 대적들의 방해 공작은 강력했고 집요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2-3절 잿더미에서 다시 일으키려고 하는가.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지겠다 형편없다고 약을 올리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협박하고 위협하며 실제로 침략과 살해의 음모까지 꾸몄습니다.
8,11절 예루살렘을 공격하자, 그것도 부족하여 다 죽여 버리자고 하였습니다.
12절 그래서 일부 유다 백성들은 낙담하여 성벽 중건을 포기하자고 지도부에 종용했습니다.
이처럼 외부의 방해와 내부의 분열이 느헤미야를 아주 괴롭혔던 것입니다.
세상의 구조가 항상 내우외환이 있기 마련입니다.
선을 향하여 그냥 잘 가도록 사단은 두고 보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파괴시키고 분열시키고 다투고 선한 일을 도모하지 못하게 합니다.
에덴동산에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사단이 낙원인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 부부가 행복하게 살도록 내 버려두지를 않습니다.
선한 일에는 언제든지 도전을 받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나라도 개인도 가정도 마찬 가지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사단의 도전에 항복하고 손을 들기를 하나님이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 나 자신을 포기하고 싶어 가정을 버리고 싶어 모든 것에서 떠나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되기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하여 말하기를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찌니 피곤치 아니하면 때가 되면 거두리라 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낙심되게 하는 일들이 많으니 낙심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능력 많은 엘리야 선지자도 유다의 아합왕과 이세벨 왕후의 대적으로 그의 사역을 포기하려고 하였습니다.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하고 그들을 목 베어 버리는 용맹한 일을 한 자며 또 3년 6개월 동안 내리지 않는 비가 내리는 기적을 가져 왔지만 사단의 대적이 얼마나 크든지 생명을 포기하고 죽기 싶은 자리까지 이르렀습니다.
저 산속에 들어가 죽기를 구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 죽여주십시오.
이렇게 살 바에야 죽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혹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결코 이런 시련이 있다고 선지자의 역할을 포기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나를 통하여 더 큰 일을 하도록 격려를 하며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네가 여기에서 죽겠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일어나라 그리고 내가 주는 구운 떡과 물을 마셔라
결국 엘리야는 죽지 않고 힘을 얻고 일어나 더 큰 일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주문하신 일을 다 하였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와 에둠의 지도자를 세우고 자신보다 능력이 갑절이나 되는 후계자 엘리사를 세웠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큰 도전이 되고 시험된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저 자신의 제일 큰 도전과 시험된 일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제 사역을 통하여 영혼을 구원하고 또 양육하여 자라게 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군들을 세우는 일입니다.
이게 저의 늘 근심거리요 또한 사역이며 저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엘리야와 같이 포기하고 낙담을 하게 됩니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나만 남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알에게 절하지 않는 7000명이 남아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나를 용기를 주며 담대하게 하사 일으켜 세우시면서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선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도전이 있다 할지라도 그 도전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을 이루는 데는 방해는 하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결코 선을 위한 자리에서 포기하고 그냥 버려두시기를 원치 않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 한 사람 한 사람 하나님 보시기에 버리시기에 다 아까운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서 쓰실 자들 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한 뜻만이 나를 통하여 이루어시기를 원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가정이 파괴되기를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사업과 직장에서 망하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주의 일군들이 영혼 구원의 일을 손 놓고 중단하기를 기대하시지 않습니다.
주의 교회가 흥왕하시기를 원하시고 개인과 가정이 행복하시기를 축복하시고 또한 기업과 직장에서 성공하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 선한 뜻을 알고 선을 위한 계획을 세우십시오.
반드시 나를 망하게 하는 사단의 계략은 무너지고 하나님의 선한 뜻만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아멘
악한 마귀 제 아무리 강 할지라도 우리들의 대장 예수 앞서 가시니 두려 말고 용기 있게 힘써 싸우세 최후 승리 얻을 때까지 할렐루야!
그러므로 내게 주어진 삶이란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적극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를 통하여 내 가정을 통하여 내 생업을 통하여 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이루는 데에는 기도하는 자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기도는 참으로 기적을 가져 오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이 문제에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알렉산더 대왕이 자신을 위해서 충성을 다한 참모들을 불러 모아 놓고 여러분, 그 동안 참으로 수고 많이 했소. 이제 소원이 있으면 한 가지씩 이야기해 보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참모들이 집을 한 채 사달라든지 휴가를 달라는 요청들을 합니다. 그 중에 데릭이라는 한 신하가 알렉산더대제에게 이런 요청을 하였다고 합니다. 아주 정중하게 대왕이시여, 대왕께서 정복한 나라 중에 한 나라를 제게 주십시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또 왕이 그러한 부탁을 들어 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제는 뜻 밖에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라 하나를 그대에게 주겠소. 그대는 나 알렉산더가 나라라도 하나 뚝 떼어 줄 수 있는 큰 사람으로 믿어 주었기 때문에 나 역시 이러한 호위를 베푸는 것이오. 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이런 역사를 기대 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크게 믿는 다는 표현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 일수 있는 효험이 있습니다.
기도는 무조건 내가 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서 세상을 감당 할 힘을 공급 받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그 뜻을 이루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기도를 시키십니다.
그리고 기도 한 것은 반드시 이루시게 하십니다.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을 위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성벽을 다시 쌓은 주역인 느헤미야는 성벽 쌓기 중단의 아픔을 울고 슬퍼하는 것만으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런 식으로 끝을 냈다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운다고 해서 우리의 역사가 변화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울기만 했습니까? 인간적으로 아무리 힘쓰고 애쓴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 역사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선을 알고 또한 선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을 알고 있었기에 그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울고 슬퍼하다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기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기도한다는 것은 시간 낭비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기도라는 것을 어리석게 여길지도 모릅니다.
위대한 역사를 움직여 온 사람들을 만나 보십시오.
이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기도가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대영제국과 전 구라파가 독일 나치의 위협을 받고 있었을 때에 처칠 경은 주님 앞에 경건한 기도를 드린 후에 단에 나와서 모든 국민들을 향하여 연설을 했습니다.
우리 모두 항복합시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눈물과 땀을 흘리며 끝까지 싸웁시다. 라고 했습니다.
선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할 수가 있습니다.
일본 천황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졌을 때에 항복을 했습니다.
왜요 그들이 2차 대전을 일으킨 용맹이 다 어디에 갔습니까?
그들의 전쟁은 침략을 위한 야욕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항복을 해야 합니다.
더 이상 전쟁을 할 명분도 이유도 없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기도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눈물과 땀을 흘리며 싸웁시다.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그리고 선을 위한 역사를 이루어 갑시다. 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기도하라는 것은 무조건 내가 죽어 라는 것이 아닙니다.
선을 위하여 용기 있게 싸워 가자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지고 절반은 한손에는 병기를 잡고 한 손으로는 성을 쌓는 것입니다.
세상은 어차피 싸우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험하고 높은 이 길을 싸우며 나아갑니다. 다시금 기도하오니 내 주여 인도 하소서
포기하는 사람은 가장 비급한 사람입니다.
인생을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 목요일에 함께 하는 식구들 가운데는 열심히 재활용품을 모으고 리어카를 끌고, 성내동에 볼일 보러 갔는데 자전거에다 방충망 재료를 싣고 골목을 다시시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오늘 새벽에 잠19:1 성실히 행하는 가난한 자는 입술이 패려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게 주어진 선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내 인생 내 가정 내 생업 네 소명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게 하십니다.
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느헤미야가 포기하지 않고 선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리고 삶을 준비하고 노력 할 때에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워 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스펄젼 목사님에게 젊은 신학생 한 명이 찾아와서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도 낙망하신 일이 있습니까? 그러자 그 목사님은 적어도 지난 20년 동안은 낙망해 본 적이 없네.나는 그 동안하나의 중요한 원리를 내 삶에 적용하고 있었지. 그 원리란 계속해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라네. 나는 하루에 단 일분도 주님을 생각하지 않고 지나간 일이 없네. 그때 이래로 나는 낙망을 모르고 살아 왔어.
시 42: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더 이상 나를 함부로 사용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선을 위하여 내 자신을 드리기를 즐겨 하십시오
거기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는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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