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가 인생의 목표요 그의 뜻을 따름이 인생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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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33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빌립보서 3:12-16예수 그리스도가 인생의 목표요 그의 뜻을 따름이 인생의 삶입니다.
외국의 어느 동시집에 이런 글이 소개되었습니다.
한 나그네가 한 덩이의 진흙을 얻었습니다. 그 진흙에서는 아름다운 향기가 발산되었습니다.
나그네가 물었습니다. \\너는 바그다드의 진주냐?\\ 진흙의 대답은 \\아니요.\\
\\그럼너는 인도의 사향(麝香)이냐?\\ \\그것도 아니요.\\
\\그럼 너는 무엇이냐?\\ \\나는 한 덩이의 진흙일 뿐이요.\\
\\그러면 어디서 그런 향기가 나오느냐?\\\\그 비결을 말해 드릴까요?
나는 백합화와 함께 오래 살았습니다.\\ 이 진흙이 지닌 향기의 비밀은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백합화와 함께 오래 살았다는 사실 때문에 그 진흙이 아름다운 향기가 발산되었던 것입니다.
진흙과 같은 우리 인생이 무엇으로 아름다운 향기를 낼 수 있겠습니까?
항상 섞은 냄새만을 풍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을 살펴봅시다.
모두가 자신을 위하여 열심히 살아가지만 결코 그 삶은 아름다운 것도 없고 향기로운 것도 없으며 자랑할 만한 것도 없지 않습니까?
늘은 것은 한숨이요 주름살이요 한만 맺혀 있지 있고 후회만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무엇입니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
그렇다고 살아 있는 동안에는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펴봅시다.
흙으로 살아가니 믿음이 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부끄럽고 죄악된 것이며 허무한 것이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 한번 보십시오 인생만큼 허무한 것 없습니다.
그러니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누린 솔로몬이 인생을 논하기를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결국에 그가 발견한 것이 무엇입니까?
일의 결국을 다 알았나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인생의 본문임을 알았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부터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라고 하였습니다.
12절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는 인생이요
14절 푯대를 향하여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는 인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젊은 시절에 이미 알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우리 가운데는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케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안락과 평안을 추구하는 이때에 아름다움 향기를 내는 자들이 있습니다.
20년 전에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드리고 선교사가 되겠다고 한 서원을 지키고자 잘나가는 국내 의사직을 버리고 이슬람권의 A국으로 선교로 떠나는 최강주 집사(43. 한동대 선린병원 심장외과 전문의)를 봅니다.
아마 그는 학창 시절에 20대 초반에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약속을 한 것을 40대 초반이 되어 자신을 멋있는 인물로 만들어서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것입니다. 최 집사는 지난달 27일 포항북부교회 예배당에서 열린 ‘선교사 파송’ 예배를 통해 A국 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다음 달 중순 부인 서현아(41) 집사와 두 딸 진유(25개월), 찬유(45일)를 데리고 A국으로 떠납니다. 그가 데리고 가는 두 딸은 자신들이 낳은 아이들이 아니라 부모들에게 버림을 받은 아이들을 입양한 자녀들입니다. 두 사람이 떠나도 힘겨울 것인데 25개월 45일된 어린 것들을 데리고 자신은 한국에서 있으면 안전 빵입니다. 유능한 심장외과 전문의입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의료선교사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 서울아산병원과 부산백병원을 거처 한동대 선린병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심장수술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섞어 냄새 날 진흙 같은 인생이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를 내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방송공사(KBS) 출신의 이영호(38) PD는 아내 전미화(34) 전도사와 함께 오는 10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영상선교사’로 떠납니다. 이 PD는 “아프리카는 내게 PD로서 명예와 성취를 줬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준 땅”이라며 “이제는 내가 그 땅을 섬기기 위해 가는 것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내 전 전도사는 2001년부터 3년간 필리핀에 단기선교를 다녀온 뒤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신학대학원에 진학을 하고 선교의 비전을 가진 배우자를 만나길 기도해오다 지난해 말 이 PD를 만났다고 합니다.
전 전도사는 “선교에 관심 있는 사람은 많아도 막상 선교 현장에 나가려는 사람은 드물었다”며 “남편을 만나면서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선교사로 부르셨구나’하는 확신을 가졌다”고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새벽기도를 같이 다니는 ‘새벽 데이트’를 해오다 지난 5월27일 결혼 후 이제 아프리카로 떠날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출국을 앞둔 이들은 요즘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들의 삶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그 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꿈에 가슴이 설렌다고 합니다. 이 PD와 전 전도사는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위해 조그만 일이라도 해낸다면 나중에 주님을 뵐 때 덜 부끄러울 것 같다”며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뼈를 묻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장년들을 바라 볼 때에 얼마나 가슴이 뿌듯한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우리 가운데는 인생이 무엇인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이 행하는 일들이 이해가 잘 안 가는지 모르겠습니까?
그렇게 공부해 가지고 겨우 저것이냐?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속 내 생각 속에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입을까? 로 가득차 있는데 하지 않습니까?
오직 세상적인 그 무엇을 이루어야만 이 땅에 태어난 이유가 충족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에 이것을 인생으로 여긴다면 이것만을 위하여 사는 것으로 여긴다면 정말로 우울 할 것입니다.
지금도 우울하지 않아요
자녀가 조금만 못하여도 아내와 남편이 조금만 섭섭하게 하여도 우울해 하고 있더라고요
세상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아주 귀한 내 인생을 세상적인 그 무엇의 충족을 위한 천한 존재로 전략을 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인생을 살아간다면 공중의 나는 새보다 나는 것이 무엇이며 들에 핀 백합화 보다 내 삶이 낫다고 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래서 짐승보다 못한 자로 전략이 되고 짐승보다 못한 삶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제 오늘 이 시간에 내 인생과 삶의 질을 높이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흙으로 왔다가 흙으로 가는 자가 아니라 흙으로 왔다가 진주로 보배로 갈 수 있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도 말씀 하셨습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정한 보배 귀한 보배 주 예수의 보배 하늘나라 두시려고 다 찾으시네
오늘 여러분들이 가장 귀한 자가 될 수 있음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름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의 목표가 되셔야 합니다.
내 삶의 목표가 세상적인 것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바뀌시기를 축원합니다.
지금도 여러분의 삶의 목표를 물으면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목표입니다. 하는 사람은 이 가운데 1-20%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거의 8-90%가 세상적인 것으로 대답합니다.
돈이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도 여러분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은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돈이 없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돈을 목표로 하고 돈으로 해결 하려고 하니 이렇게 된 것입니다.
더 큰 이상 더 큰 목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큰 바위의 얼굴을 아시지 않습니까?
호손이 만년에 쓴 단편소설로 남북전쟁 직후, 어니스트란 소년은 어머니로부터 바위 언덕에 새겨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어니스트는 커서 그런 사람을 만나보았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자신도 어떻게 살아야 큰 바위 얼굴처럼 될까 생각하면서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간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돈 많은 부자, 싸움 잘하는 장군, 말을 잘하는 정치인, 글을 잘 쓰는 시인들을 만났으나 큰 바위 얼굴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니스트의 자신의 설교를 듣던 시인이 어니스트가 바로 ‘큰 바위 얼굴’이라고 소리를 쳤다는 것 아닙니까? 물론 어니스트는 자기보다 더 현명하고 나은 사람이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용모를 가지고 나타나기를 마음속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삶의 우선순위가 바꿔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불행해져 있고 인생을 만족해하지 못하고 있고 그리고 스스로 초라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얻고 그의 안에서 발견되는 것, 이것이 평생을 통한 바울의 소원이었습니다.
8-9절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김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예수 안에서 자신이 새롭게 발견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예수 안에서 발견하였습니다.
예수 안에서 모든 일에 일체 만족하는 비결을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안에서 풍부에도 빈곤에도 비천에도 존귀에도 처 할 줄 아는 만능 인물이 되었으며 부족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약함과 죄 속에서 자신을 보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의 안에서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힘으로 일어 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예수를 목표로 삼고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초라하고 무능하고 약한 내 자신만을 보고 괴로워하고 우울해 하고 있어야겠습니까?
자꾸만 세상적인 것에 마음이 빼앗길 것만 같으니 바울은 예수님만 바라보고 좇아간 것입니다.
바울은 쉬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이 시간에 세상에 아주 익숙한 여러분들이 예수님만을 바라보기 위하여 힘을 써야하고 달려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리더 하는 삶을 사셔야 합니다.
여태까지 내 고집과 내 스타일로 내 감정으로만 살아 온 것을 접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나를 망하게 하고 나를 죽였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까?
2차 대전 시에 유태인 빅톨 프랭클 박사는 여러 해 동안 나치 수용소에서 수치와 학대를 당하면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석방되었습니다. 그는 게쉬타포에게 끌려가서 모든 것 집과 가족, 모든 소유물, 권리, 자유, 손목시계와 결혼반지까지 빼앗겨 버리고 그의 머리는 박박 밀었고 벌거벗겨져 야만적인 고문을 당했는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아무 것도 남겨주지 않았고 너무도 열악한 대우를 받으며 유태인들은 급속히 죽어갔습니다.
하루하루가 저주였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가 비참한 동물로 만들어져 갔고. 죽음보다도 못한 생활에서 그가 죽지 않고 무엇이 그를 살아남게 만들었던가?
그는 아직 자기에게 빼앗기지 않은 것이 있음을 알았다. 그렇다. 비록 목숨을 빼앗는 다해도 그것만은 아무
도 내게서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는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여전히 남아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누가 그에게 어떤 일을 행하든,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던, 삶의 태도를 선택하는 권한만은 그에게 있었습니다.
분노에 몸을 던져 버릴 것인가? 아니면 용서할 것인가? 삶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아름답게 살아갈 것인가? 참고 아직도 사람으로서 존엄성을 가지고 죽는 순간까지 갈 것인가? 자포자기 속에 그리고 자기 연민 속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하소연하고 슬퍼하고 동정 받고 이성이 마비되어 미쳐 갈 것인가? 이 상황에서 그는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아름답게 살아 갈 것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와 같이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은 거의가 거기서 죽었고 그저 몇몇 사람들만이 전쟁 후에 구출되었던 것이다.
후에 그는 로고테라피 라는 삶의 의미나 가치문제에 대한 현대인의 인격적 태도 변화를 정신치료의 획기적인 방법을 내놓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유명한 학자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얻었다함도 아니요 이루었다 함도 아닌 겸손한 태도로 한 일 뒤에 있는 것 즉 과거에 지나간 일에 내 자신을 묶어 두지 말고 그리스도를 목표로 삼고 달려가야 할 때가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너무 옛날에 집착하거나 뒤엣것에 집착하게 되면 발전이 없고 새로움이나 진전된 삶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구원의 성이나 축복의 땅은 뒤에 있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앞에 있습니다.
축복의 땅은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가로질러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라야 얻을 수 있는 것이지, 이미 출애굽을 했으면서도 애굽을 잊지 못하고, 옛날에 벽돌 구우며, 고기나 얻어먹던 그때만을 추억하며 생각하는 사람은 축복의 땅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소돔 땅에서 살던 롯의 아내는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못해서 그만 구원의 은총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불행입니다.
한번은 처칠 경에게 핼로우의 모교에서 학생들을 위하여 연설해 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그때에 교장은 모든 학생들에게 처칠 경의 연설을 하나도 빼놓지 말고 노트하도록 미리 준비시켰습니다.
마침내 처칠 경이 강단에 올라섰습니다.
돋보기안경을 끼고는 옛날 자신이 앉았던 그 의자에 않아 있는 학생들을 감개무량한 듯 한참동안 가만히 바라보면서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얼마 후 그는 입을열었습니다. \\결코 포기하지 마시오! 결코 포기하지 마시오! 결코 포기하지 마시오!
결코 결코...\\이것이 그의 연설이었습니다.
위대한 삶의 푯대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목적을 위하여 계속해서 우리는 결코포기하지 아니하고 전진해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부름에 합당한 상을 주실 것입니다.
기독인은 운돈 선수와 같습니다. 운동선수는 끝까지 목표 지점을 향해 달려야 합니다.
중단하거나 기권하면 상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자 그러면 인생의 목표가 정해졌고 그리고 살아가는 방식이 정해졌습니다.
오늘 확실한 내 인생을 발견하였으니 달려갈 일과 상 받을 일만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절망의 인생 할 일 없는 인생이 아니라 소망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내 값진 인생임을 아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를 위하여 산 것은 남은 것이 없습니다.
오직 주를 위하여 산 것만이 인정받고 남는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외국의 어느 동시집에 이런 글이 소개되었습니다.
한 나그네가 한 덩이의 진흙을 얻었습니다. 그 진흙에서는 아름다운 향기가 발산되었습니다.
나그네가 물었습니다. \\너는 바그다드의 진주냐?\\ 진흙의 대답은 \\아니요.\\
\\그럼너는 인도의 사향(麝香)이냐?\\ \\그것도 아니요.\\
\\그럼 너는 무엇이냐?\\ \\나는 한 덩이의 진흙일 뿐이요.\\
\\그러면 어디서 그런 향기가 나오느냐?\\\\그 비결을 말해 드릴까요?
나는 백합화와 함께 오래 살았습니다.\\ 이 진흙이 지닌 향기의 비밀은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백합화와 함께 오래 살았다는 사실 때문에 그 진흙이 아름다운 향기가 발산되었던 것입니다.
진흙과 같은 우리 인생이 무엇으로 아름다운 향기를 낼 수 있겠습니까?
항상 섞은 냄새만을 풍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을 살펴봅시다.
모두가 자신을 위하여 열심히 살아가지만 결코 그 삶은 아름다운 것도 없고 향기로운 것도 없으며 자랑할 만한 것도 없지 않습니까?
늘은 것은 한숨이요 주름살이요 한만 맺혀 있지 있고 후회만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무엇입니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
그렇다고 살아 있는 동안에는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펴봅시다.
흙으로 살아가니 믿음이 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부끄럽고 죄악된 것이며 허무한 것이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 한번 보십시오 인생만큼 허무한 것 없습니다.
그러니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누린 솔로몬이 인생을 논하기를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결국에 그가 발견한 것이 무엇입니까?
일의 결국을 다 알았나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인생의 본문임을 알았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부터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라고 하였습니다.
12절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는 인생이요
14절 푯대를 향하여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는 인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젊은 시절에 이미 알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우리 가운데는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케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안락과 평안을 추구하는 이때에 아름다움 향기를 내는 자들이 있습니다.
20년 전에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드리고 선교사가 되겠다고 한 서원을 지키고자 잘나가는 국내 의사직을 버리고 이슬람권의 A국으로 선교로 떠나는 최강주 집사(43. 한동대 선린병원 심장외과 전문의)를 봅니다.
아마 그는 학창 시절에 20대 초반에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약속을 한 것을 40대 초반이 되어 자신을 멋있는 인물로 만들어서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것입니다. 최 집사는 지난달 27일 포항북부교회 예배당에서 열린 ‘선교사 파송’ 예배를 통해 A국 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다음 달 중순 부인 서현아(41) 집사와 두 딸 진유(25개월), 찬유(45일)를 데리고 A국으로 떠납니다. 그가 데리고 가는 두 딸은 자신들이 낳은 아이들이 아니라 부모들에게 버림을 받은 아이들을 입양한 자녀들입니다. 두 사람이 떠나도 힘겨울 것인데 25개월 45일된 어린 것들을 데리고 자신은 한국에서 있으면 안전 빵입니다. 유능한 심장외과 전문의입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의료선교사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 서울아산병원과 부산백병원을 거처 한동대 선린병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심장수술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섞어 냄새 날 진흙 같은 인생이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를 내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방송공사(KBS) 출신의 이영호(38) PD는 아내 전미화(34) 전도사와 함께 오는 10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영상선교사’로 떠납니다. 이 PD는 “아프리카는 내게 PD로서 명예와 성취를 줬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준 땅”이라며 “이제는 내가 그 땅을 섬기기 위해 가는 것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내 전 전도사는 2001년부터 3년간 필리핀에 단기선교를 다녀온 뒤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신학대학원에 진학을 하고 선교의 비전을 가진 배우자를 만나길 기도해오다 지난해 말 이 PD를 만났다고 합니다.
전 전도사는 “선교에 관심 있는 사람은 많아도 막상 선교 현장에 나가려는 사람은 드물었다”며 “남편을 만나면서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선교사로 부르셨구나’하는 확신을 가졌다”고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새벽기도를 같이 다니는 ‘새벽 데이트’를 해오다 지난 5월27일 결혼 후 이제 아프리카로 떠날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출국을 앞둔 이들은 요즘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들의 삶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그 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꿈에 가슴이 설렌다고 합니다. 이 PD와 전 전도사는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위해 조그만 일이라도 해낸다면 나중에 주님을 뵐 때 덜 부끄러울 것 같다”며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뼈를 묻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장년들을 바라 볼 때에 얼마나 가슴이 뿌듯한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우리 가운데는 인생이 무엇인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이 행하는 일들이 이해가 잘 안 가는지 모르겠습니까?
그렇게 공부해 가지고 겨우 저것이냐?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속 내 생각 속에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입을까? 로 가득차 있는데 하지 않습니까?
오직 세상적인 그 무엇을 이루어야만 이 땅에 태어난 이유가 충족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에 이것을 인생으로 여긴다면 이것만을 위하여 사는 것으로 여긴다면 정말로 우울 할 것입니다.
지금도 우울하지 않아요
자녀가 조금만 못하여도 아내와 남편이 조금만 섭섭하게 하여도 우울해 하고 있더라고요
세상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아주 귀한 내 인생을 세상적인 그 무엇의 충족을 위한 천한 존재로 전략을 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인생을 살아간다면 공중의 나는 새보다 나는 것이 무엇이며 들에 핀 백합화 보다 내 삶이 낫다고 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래서 짐승보다 못한 자로 전략이 되고 짐승보다 못한 삶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제 오늘 이 시간에 내 인생과 삶의 질을 높이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흙으로 왔다가 흙으로 가는 자가 아니라 흙으로 왔다가 진주로 보배로 갈 수 있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도 말씀 하셨습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정한 보배 귀한 보배 주 예수의 보배 하늘나라 두시려고 다 찾으시네
오늘 여러분들이 가장 귀한 자가 될 수 있음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름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의 목표가 되셔야 합니다.
내 삶의 목표가 세상적인 것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바뀌시기를 축원합니다.
지금도 여러분의 삶의 목표를 물으면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목표입니다. 하는 사람은 이 가운데 1-20%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거의 8-90%가 세상적인 것으로 대답합니다.
돈이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도 여러분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은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돈이 없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돈을 목표로 하고 돈으로 해결 하려고 하니 이렇게 된 것입니다.
더 큰 이상 더 큰 목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큰 바위의 얼굴을 아시지 않습니까?
호손이 만년에 쓴 단편소설로 남북전쟁 직후, 어니스트란 소년은 어머니로부터 바위 언덕에 새겨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어니스트는 커서 그런 사람을 만나보았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자신도 어떻게 살아야 큰 바위 얼굴처럼 될까 생각하면서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간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돈 많은 부자, 싸움 잘하는 장군, 말을 잘하는 정치인, 글을 잘 쓰는 시인들을 만났으나 큰 바위 얼굴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니스트의 자신의 설교를 듣던 시인이 어니스트가 바로 ‘큰 바위 얼굴’이라고 소리를 쳤다는 것 아닙니까? 물론 어니스트는 자기보다 더 현명하고 나은 사람이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용모를 가지고 나타나기를 마음속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삶의 우선순위가 바꿔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불행해져 있고 인생을 만족해하지 못하고 있고 그리고 스스로 초라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얻고 그의 안에서 발견되는 것, 이것이 평생을 통한 바울의 소원이었습니다.
8-9절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김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예수 안에서 자신이 새롭게 발견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예수 안에서 발견하였습니다.
예수 안에서 모든 일에 일체 만족하는 비결을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안에서 풍부에도 빈곤에도 비천에도 존귀에도 처 할 줄 아는 만능 인물이 되었으며 부족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약함과 죄 속에서 자신을 보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의 안에서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힘으로 일어 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예수를 목표로 삼고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초라하고 무능하고 약한 내 자신만을 보고 괴로워하고 우울해 하고 있어야겠습니까?
자꾸만 세상적인 것에 마음이 빼앗길 것만 같으니 바울은 예수님만 바라보고 좇아간 것입니다.
바울은 쉬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이 시간에 세상에 아주 익숙한 여러분들이 예수님만을 바라보기 위하여 힘을 써야하고 달려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리더 하는 삶을 사셔야 합니다.
여태까지 내 고집과 내 스타일로 내 감정으로만 살아 온 것을 접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나를 망하게 하고 나를 죽였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까?
2차 대전 시에 유태인 빅톨 프랭클 박사는 여러 해 동안 나치 수용소에서 수치와 학대를 당하면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석방되었습니다. 그는 게쉬타포에게 끌려가서 모든 것 집과 가족, 모든 소유물, 권리, 자유, 손목시계와 결혼반지까지 빼앗겨 버리고 그의 머리는 박박 밀었고 벌거벗겨져 야만적인 고문을 당했는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아무 것도 남겨주지 않았고 너무도 열악한 대우를 받으며 유태인들은 급속히 죽어갔습니다.
하루하루가 저주였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가 비참한 동물로 만들어져 갔고. 죽음보다도 못한 생활에서 그가 죽지 않고 무엇이 그를 살아남게 만들었던가?
그는 아직 자기에게 빼앗기지 않은 것이 있음을 알았다. 그렇다. 비록 목숨을 빼앗는 다해도 그것만은 아무
도 내게서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는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여전히 남아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누가 그에게 어떤 일을 행하든,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던, 삶의 태도를 선택하는 권한만은 그에게 있었습니다.
분노에 몸을 던져 버릴 것인가? 아니면 용서할 것인가? 삶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아름답게 살아갈 것인가? 참고 아직도 사람으로서 존엄성을 가지고 죽는 순간까지 갈 것인가? 자포자기 속에 그리고 자기 연민 속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하소연하고 슬퍼하고 동정 받고 이성이 마비되어 미쳐 갈 것인가? 이 상황에서 그는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아름답게 살아 갈 것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와 같이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은 거의가 거기서 죽었고 그저 몇몇 사람들만이 전쟁 후에 구출되었던 것이다.
후에 그는 로고테라피 라는 삶의 의미나 가치문제에 대한 현대인의 인격적 태도 변화를 정신치료의 획기적인 방법을 내놓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유명한 학자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얻었다함도 아니요 이루었다 함도 아닌 겸손한 태도로 한 일 뒤에 있는 것 즉 과거에 지나간 일에 내 자신을 묶어 두지 말고 그리스도를 목표로 삼고 달려가야 할 때가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너무 옛날에 집착하거나 뒤엣것에 집착하게 되면 발전이 없고 새로움이나 진전된 삶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구원의 성이나 축복의 땅은 뒤에 있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앞에 있습니다.
축복의 땅은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가로질러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라야 얻을 수 있는 것이지, 이미 출애굽을 했으면서도 애굽을 잊지 못하고, 옛날에 벽돌 구우며, 고기나 얻어먹던 그때만을 추억하며 생각하는 사람은 축복의 땅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소돔 땅에서 살던 롯의 아내는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못해서 그만 구원의 은총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불행입니다.
한번은 처칠 경에게 핼로우의 모교에서 학생들을 위하여 연설해 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그때에 교장은 모든 학생들에게 처칠 경의 연설을 하나도 빼놓지 말고 노트하도록 미리 준비시켰습니다.
마침내 처칠 경이 강단에 올라섰습니다.
돋보기안경을 끼고는 옛날 자신이 앉았던 그 의자에 않아 있는 학생들을 감개무량한 듯 한참동안 가만히 바라보면서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얼마 후 그는 입을열었습니다. \\결코 포기하지 마시오! 결코 포기하지 마시오! 결코 포기하지 마시오!
결코 결코...\\이것이 그의 연설이었습니다.
위대한 삶의 푯대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목적을 위하여 계속해서 우리는 결코포기하지 아니하고 전진해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부름에 합당한 상을 주실 것입니다.
기독인은 운돈 선수와 같습니다. 운동선수는 끝까지 목표 지점을 향해 달려야 합니다.
중단하거나 기권하면 상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자 그러면 인생의 목표가 정해졌고 그리고 살아가는 방식이 정해졌습니다.
오늘 확실한 내 인생을 발견하였으니 달려갈 일과 상 받을 일만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절망의 인생 할 일 없는 인생이 아니라 소망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내 값진 인생임을 아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를 위하여 산 것은 남은 것이 없습니다.
오직 주를 위하여 산 것만이 인정받고 남는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