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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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55회 작성일 2014-10-26 15:04본문
누가복음 8:22-25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오늘 본문은 네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입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고 믿습니다 하고 있지만 진작 주님 앞에서 믿음이 없는 자같이 되어 버리고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 라는 책망을 받습니다.
본문에 제자들은 나름대로 믿음이 있다고 생각이 되어 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잘못 믿고 잇다는 것입니다.
죽을 것만 같은 위기 앞에는 믿음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였습니다.
물어봅시다. 지금까지 내가 소유한 믿음이 얼마나 실력을 발휘하였습니까?
아니면 번번이 내 믿음이 아무런 힘이 없지는 않습니까?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내 믿음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실력을 발하는 믿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통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믿음은 백과사전에서 믿음은 어떠한 가치관, 종교, 사람, 사실 등에 대해 다른 사람의 동의와 관계없이 확고한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개인적인 심리 상태이다.
이것은 이방의 종교와 일치하는 것입니다.
불교를 보면 불교의 교학에 따르면 믿음(信)은 그 정의가 단순히 특정한 교의 또는 존재를 믿는 것은 아니다
믿음(信)은 모든 선(善)한 마음과 항상 함께 일어나는 마음작용(심소법)이며,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마음작용이며, 열반에 이르는 길로서의 불도(佛道)로 들어가는 첫걸음이 되는 마음작용이라는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차에 보면 맑고 깨끗하게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어떠한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으로 설명되어 있다. 철학, 사회, 정치 등의 분야에서는 일반적으로 신념(信念)이라 하며, 종교에서는 신앙(信仰), 신심(信心), 신앙심(信仰心)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것이 극히 인간적인 선이요 환경에 메일 수밖에 없는 나약한 마음에 믿음을 두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믿음이란 기독교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믿음은 반드시 대상이 있다.
기독교에서 믿음은 예수에 대한 신뢰를 말한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믿음이 성장할수록 점점 예수에 대한 신뢰가 온전하여지고, 삶의 안정감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믿음은 인간이 스스로 결정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이해해야 하며,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기독교인은 보편적으로 예수가 기독교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고,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이러한 믿음이 필요하다
그 믿음은 예수에 대한 믿음이 매우 중심이 되기 때문에 믿음의 종교라 불리기도 한다
갈릴리 호수에서의 제자들은 갑자기 광풍이 불기 시작하였을 때에 제자들은 믿음도 삽시간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풍랑 가운데 벗어나기 위해 모든 인간적인 경험을 동원해 노를 젓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윽 윽 소리를 내며 죽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바람과 물을 명하여 잔잔하게 하고 다시 한 번 제자들의 믿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내 믿음을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약한 인간의 마음에 두지 말고 말씀에 두어야 합니다
이제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입니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님 이십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리고 그 말씀에 착념하도록 하시는 분이 성령입니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그러므로 성경을 보시면서 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말씀을 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구약은 하나님 아버지가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복음서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은 아들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또한 사도행전부터 모든 서신서 그리고 계시록까지는 성령 하나님이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에 믿음을 두는 것입니다.
본문에도 분명히 누가복음서에는 누가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22절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배를 타고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십니다.
마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렇다면 행선하는 중에 광풍이 내리치고 큰 파도가 일어난다 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것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저편으로 건너가자 라고 하셨으니 믿으면 됩니다.
풍랑이 일어나도 감당하면서 가면 됩니다
그런데 말씀에 의한 믿음을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들이 직면한 현실 상황에 그 마음이 빼앗겨 버렸습니다.
말씀에 근거한 믿음이 없어져 버리니 그러자 불안공포가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마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말씀을 버리니 거의 죽음입니다.
말씀을 버리면 하나님을 버린 것과 같습니다.
삼상15:22-26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누가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셨습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즉, 예수님과 제자들의 항해는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광풍 앞에 이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만약 제자들이 이 항해가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것임을 잊지 않았다면 그들은 결코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태어난 것입니다.
렘1:4-5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나의 신앙생활 또한 내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것입니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결국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우리의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내 인생의 항해, 믿음의 항해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이 바다를 건너 저편 언덕에 이를 때까지 나의 일생을 인도해주시고 지켜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나는 삶에 대한 믿음은 없지만 주님이 주신 믿음은 있습니다.
때때로 나는 나를 믿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아니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내가 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서 주님은 본문과 똑같은 상황에서 마가는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막4:39-40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믿음을 다른 곳에 두고 있다는 말입니다.
믿음의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 아니십니까?
마16:24-25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믿음이 있는 대도 믿음을 사용하지 않으니까 없는 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미국 정신 신체 의학 세미나에서 만성 환자의 90%는 병을 두려워하는 데에서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평소 기침을 하거나 가슴앓이를 하고 위산 과다 현상을 보이고, 늘 온 몸이 쑤시고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병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기는 신체적인 증상이라는 것입니다.
실제 그 병이 든 것이 아니라 병을 두려워하므로 말미암아 그 두려움에 대한 신체적인 반응으로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믿음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마음속에 늘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의지하고 주의 말씀을 바라보았더라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풍랑이 일지만 나는 저편으로 간다
누가 가자고 했습니까? 주님입니다.
믿음과 두려움은 정반대입니다.
믿음은 두려움이 쫓겨 나가고 안 믿으면 두려움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내 주위에는 아니 내게 일어나는 상황은 나를 두려워하는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거의 죽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죽이지 못합니다.
주님은 세상을 이겼습니다. 제자들이 물속에 수장되지 않았습니다.
강을 건너갔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것을 이 사람들을 통하여 다 이루어 내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고 기도해 놓았습니다.
요17:11-14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누구는 크다 작다가 없습니다.
다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믿음입니다.
세상이 어찌 할 수 없는 믿음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입니다.
요한1서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흔히 인생을 항해로 비유를 한다.
항해란 단어는 분명한 목적지를 가지고 있을 때 사용된다.
만약 목적지가 없이 바람이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가는 배가 있다면 항해하는 것이 아니라 표류하는 것이다.
인생을 항해하는 자가 되어야지 언제 좌초 될지 모르는 표류하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풍랑은 비록 내가 원하지도, 계획하지도 않았지만 항해하는 한 반드시 만날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그러나 안심 할 수 있고 잘 갈 수 있음은 나와 함께 계신 예수님을 깨닫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나에게는 분명히 믿음이 있습니다. 그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 속에 들어와 있는 믿음, 이미 선물로 주신 그 믿음을 왜 지금 사용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왜 믿음으로 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의 대상이지 과학이나 철학적 토론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면 그를 따라 기도하고 끝까지 믿으십시오
세상에 패배자가 아니라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네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입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고 믿습니다 하고 있지만 진작 주님 앞에서 믿음이 없는 자같이 되어 버리고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 라는 책망을 받습니다.
본문에 제자들은 나름대로 믿음이 있다고 생각이 되어 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잘못 믿고 잇다는 것입니다.
죽을 것만 같은 위기 앞에는 믿음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였습니다.
물어봅시다. 지금까지 내가 소유한 믿음이 얼마나 실력을 발휘하였습니까?
아니면 번번이 내 믿음이 아무런 힘이 없지는 않습니까?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내 믿음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실력을 발하는 믿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통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믿음은 백과사전에서 믿음은 어떠한 가치관, 종교, 사람, 사실 등에 대해 다른 사람의 동의와 관계없이 확고한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개인적인 심리 상태이다.
이것은 이방의 종교와 일치하는 것입니다.
불교를 보면 불교의 교학에 따르면 믿음(信)은 그 정의가 단순히 특정한 교의 또는 존재를 믿는 것은 아니다
믿음(信)은 모든 선(善)한 마음과 항상 함께 일어나는 마음작용(심소법)이며,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마음작용이며, 열반에 이르는 길로서의 불도(佛道)로 들어가는 첫걸음이 되는 마음작용이라는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차에 보면 맑고 깨끗하게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어떠한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으로 설명되어 있다. 철학, 사회, 정치 등의 분야에서는 일반적으로 신념(信念)이라 하며, 종교에서는 신앙(信仰), 신심(信心), 신앙심(信仰心)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것이 극히 인간적인 선이요 환경에 메일 수밖에 없는 나약한 마음에 믿음을 두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믿음이란 기독교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믿음은 반드시 대상이 있다.
기독교에서 믿음은 예수에 대한 신뢰를 말한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믿음이 성장할수록 점점 예수에 대한 신뢰가 온전하여지고, 삶의 안정감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믿음은 인간이 스스로 결정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이해해야 하며,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기독교인은 보편적으로 예수가 기독교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고,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이러한 믿음이 필요하다
그 믿음은 예수에 대한 믿음이 매우 중심이 되기 때문에 믿음의 종교라 불리기도 한다
갈릴리 호수에서의 제자들은 갑자기 광풍이 불기 시작하였을 때에 제자들은 믿음도 삽시간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풍랑 가운데 벗어나기 위해 모든 인간적인 경험을 동원해 노를 젓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윽 윽 소리를 내며 죽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바람과 물을 명하여 잔잔하게 하고 다시 한 번 제자들의 믿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내 믿음을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약한 인간의 마음에 두지 말고 말씀에 두어야 합니다
이제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입니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님 이십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리고 그 말씀에 착념하도록 하시는 분이 성령입니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그러므로 성경을 보시면서 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말씀을 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구약은 하나님 아버지가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복음서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은 아들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또한 사도행전부터 모든 서신서 그리고 계시록까지는 성령 하나님이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에 믿음을 두는 것입니다.
본문에도 분명히 누가복음서에는 누가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22절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배를 타고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십니다.
마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렇다면 행선하는 중에 광풍이 내리치고 큰 파도가 일어난다 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것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저편으로 건너가자 라고 하셨으니 믿으면 됩니다.
풍랑이 일어나도 감당하면서 가면 됩니다
그런데 말씀에 의한 믿음을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들이 직면한 현실 상황에 그 마음이 빼앗겨 버렸습니다.
말씀에 근거한 믿음이 없어져 버리니 그러자 불안공포가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마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말씀을 버리니 거의 죽음입니다.
말씀을 버리면 하나님을 버린 것과 같습니다.
삼상15:22-26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누가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셨습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즉, 예수님과 제자들의 항해는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광풍 앞에 이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만약 제자들이 이 항해가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것임을 잊지 않았다면 그들은 결코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태어난 것입니다.
렘1:4-5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나의 신앙생활 또한 내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것입니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결국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우리의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내 인생의 항해, 믿음의 항해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이 바다를 건너 저편 언덕에 이를 때까지 나의 일생을 인도해주시고 지켜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나는 삶에 대한 믿음은 없지만 주님이 주신 믿음은 있습니다.
때때로 나는 나를 믿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아니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내가 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서 주님은 본문과 똑같은 상황에서 마가는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막4:39-40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믿음을 다른 곳에 두고 있다는 말입니다.
믿음의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 아니십니까?
마16:24-25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믿음이 있는 대도 믿음을 사용하지 않으니까 없는 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미국 정신 신체 의학 세미나에서 만성 환자의 90%는 병을 두려워하는 데에서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평소 기침을 하거나 가슴앓이를 하고 위산 과다 현상을 보이고, 늘 온 몸이 쑤시고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병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기는 신체적인 증상이라는 것입니다.
실제 그 병이 든 것이 아니라 병을 두려워하므로 말미암아 그 두려움에 대한 신체적인 반응으로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믿음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마음속에 늘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의지하고 주의 말씀을 바라보았더라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풍랑이 일지만 나는 저편으로 간다
누가 가자고 했습니까? 주님입니다.
믿음과 두려움은 정반대입니다.
믿음은 두려움이 쫓겨 나가고 안 믿으면 두려움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내 주위에는 아니 내게 일어나는 상황은 나를 두려워하는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거의 죽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죽이지 못합니다.
주님은 세상을 이겼습니다. 제자들이 물속에 수장되지 않았습니다.
강을 건너갔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것을 이 사람들을 통하여 다 이루어 내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고 기도해 놓았습니다.
요17:11-14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누구는 크다 작다가 없습니다.
다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믿음입니다.
세상이 어찌 할 수 없는 믿음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입니다.
요한1서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흔히 인생을 항해로 비유를 한다.
항해란 단어는 분명한 목적지를 가지고 있을 때 사용된다.
만약 목적지가 없이 바람이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가는 배가 있다면 항해하는 것이 아니라 표류하는 것이다.
인생을 항해하는 자가 되어야지 언제 좌초 될지 모르는 표류하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풍랑은 비록 내가 원하지도, 계획하지도 않았지만 항해하는 한 반드시 만날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그러나 안심 할 수 있고 잘 갈 수 있음은 나와 함께 계신 예수님을 깨닫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나에게는 분명히 믿음이 있습니다. 그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 속에 들어와 있는 믿음, 이미 선물로 주신 그 믿음을 왜 지금 사용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왜 믿음으로 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의 대상이지 과학이나 철학적 토론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면 그를 따라 기도하고 끝까지 믿으십시오
세상에 패배자가 아니라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