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새에 참여 합시다. 말씀과 성령으로 사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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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08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에스겔 37 : 1 - 6특새에 참여 합시다. 말씀과 성령으로사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피터 로드 목사가 쓴 하나님의 음성 듣기라는 책 내용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느 날 우리 집에서 결혼식 피로연이 열렸는데 피로연의 안내 역할을 맡은 한 청년이 로드 목사에게 묻기를 목사님 저 덤불 속에 18 가지 종류의 귀뚜라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라고 물었을 때에 아니 나는 이 집에 오래 동안 살았지만 귀뚜라미 소리를 의식적으로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러나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 곤충학을 전공하는 그 대학원생은 육신의 귀를 사용하여 200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귀뚜라미 소리를 분변(分辯)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우리는 듣는 법을 개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쳤으며 동시에 수많은 소리가 들리지만 듣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고 하였습니다.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음성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하나님의 음성이 내게 들렸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듣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어릴 때 하나님은 사무엘을 세 번이나 불렀지만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 줄 모르고 제사장 엘리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인 줄만 알았다는 아닙니까?
그는 하나님께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제사장 엘리에게로 찾아간 것입니다.
제사장 엘리가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일러주자 그제야 사무엘은 하나님의부르심에 응답을 하게 된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성도들이나 목회를 오래 한 목사님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의 종류가 무엇인지를 알고 난 후에, 여태까지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들은 것이 아니라 들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 줄 몰라서 무시한 적이 많았을 것입니다.
듣는 귀를 훈련시키지 않았고 듣는 방법을 몰랐던 것입니다.
신앙의 생활 역시 훈련을 통하여 세워지는 것입니다.
먼저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할 때는 입으로 말하는 육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할 때는 하나님이 우리와 교통하시는 방법 전체를 말한다.
영어로는 voice란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단어는 육성의 소리만이 아니라 의사를 표시하는 투표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드러내시는 모든 방법을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voice란 말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 일 수 있지만 성경에서 가장 많이 일러 주는 것은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씀하시지 만은 기도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 뜻을 일러 주어도 무시한 채로 지나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번 기회에 기도를 특별히 하게 하시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귀한 소식을 듣게 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새벽의 말씀 중에서 히스기야 왕이 기도 할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내가 처한 형편도 아시고 사정도 아시고 그 가운데 구원의 길도 능력도 아시지 만은 인간은 기도하지 않음으로서 그 모든 것이 가리어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기도 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심을 아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에게도 기도하므로 그 비밀한 일을 가르쳐 보여 주시겠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일러 주시기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에 잘 훈련이 되어 있는 선지자이었습니다.
또한 제사장으로 하나님 앞에 날마다 나아가 항상 하나님께 민감한 자였습니다.
백성들과 나라를 사랑하는 자로서 그들의 죄악상을 늘 안타까워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고 기도하는 선지자 이있었습니다.
이런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내용을 담는 구절이 에스겔서 전체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 하셨다는 단어가 187개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단어가 257개 그 외 하나님의 이상 예언 등의 단어까지 모두 합하면 500회를 훨씬 넘어서고 있으니 얼마나 영성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는지 모릅니다.
당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음성에 대하여 무지하고 있었으니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무던히도 말씀하였지만 듣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 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는 전혀 말씀 하시지 않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 하시는데 못들은 체 하고만 있으니 얼마나 답답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예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분으로 믿지 못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인류의 흥망성쇠(興亡盛衰)와 개인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마 하나님은 누구든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언제든지 항상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그의 영으로 내 곁에서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음성을 우뢰와 큰 물소리에 비유를 했는데 얼마나 크게 확실하게 들리며 그리고 그 역사하심이 굉장하심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말씀 하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안 들리신다고 하시는 분들은 들을 귀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내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찌어다
이번 특새는 하나님의 비밀한 큰일을 보고 듣는 시간이 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기회를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대수롭게 여기시다가 나중에 내게는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회를 타서 기도하면은 홍수도 너를 엄몰치 못하게 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에스겔은 이상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처한 형편을 바로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 앞에 나아오지만 자기 자신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많습니다.
잘 아셔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는 자입니다.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입니다.
오죽 하였으면 너 자신을 알라라는 유명한 철학자의 말이 있었을까요?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지혜가 신에 비하면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에서, 무엇보다 먼저 자기의 무지(無知)를 아는 엄격한 철학적 반성이 중요하다고 하여 이 격언을 자신의 철학적 활동의 출발점에 두었던 것입니다.
사람에게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탈레스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어려운 일이며, 쉬운 일이라면 남을 충고하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자만이 자신을 알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기도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아는 자입니다.
하나님께로 기도로 나아오지 않는 자는 자신이 얼마나 죄인이여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별 볼 일없는 인생임을 알지 못합니다.
굉장하고 대단한 존재로 여기지 만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코에 기식(氣息)이 끊어지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영성이 충만한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이 생명이라고 전혀 찾아 볼 수없는 해골이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하나님 앞에서 내 인생을 새롭게 발견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과 관계치 않으면 생명이 없는 자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실 별 볼일이 없는 인생이 아닙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알고 보니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되어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소리 지르지 않았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 앞에 자신을 보았을 때에 죄악 중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태까지 교회를 다닌다고 하지만 자신이 죄인 됨을 보지 못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찌니…….
이 사실이 우리 인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결과로 받아져 있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에게서 생명이 떠나가 보십시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때부터 가치가 없는 존재입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아합 왕도 적군의 화살에 전사를 하고보니 그 시신을 개가 핦고 있었습니다.
혹시 해골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얼마나 보기 흉합니까?
해골이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음산한 공포와 절망을 가져다줍니다.
그런데 에스겔이 본 골짜기에서는 이러한 해골이 한두 개 있는 것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이 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지금 이상황은 이스라엘의 신앙상태를 보여주는 계시입니다.
즉 하나님은 내 백성의 영적 상태가 해골과 같이 생명이 없는 종교행위만 하고 있었습니다.
생명이 없으니 소망도 없고 활동도 없고미래도 없음이 꼭 해골과같았습니다.
특히 본문의 골짜기는 힌놈의 골짜기인데 여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힌놈의 골짜기는 이방신에게 어린아이와처녀를 제물로 바쳤던 곳이요
또한 후일 예루살렘의 쓰레기를 태우느라고 일 년 내내불과 연기와 온갖악취가 가득했던 골짜기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골짜기를 지옥으로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불이 있고 연기가 있고 악취가 있고 제물로 드려지는 어린아이의 비명과 그들의 부모의 절규와 살타는 냄새 등 이루말할 수 없는 참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참상이 바로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단하시기에 이스라엘이 지옥과 같은 지경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곳은 지옥입니다.
오늘 내 삶을 보십시다.
그리고 이 사회를 보십시오.
모든 분야에 생명이 없고 소망도 없고 있다면 송장 썩는 것과 같은 역겨운 냄새와 해골 같은 추함만이 있을 뿐입니다.
혹 지옥같은 삶은 아니십니까?
그럼 이스라엘만 이러한 상태로 계속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까?
생명이 없는 삶을 계속 살아야만 합니까?
앞으로 내 인생을 이렇게 끔직하게 살아야 합니까?
절대로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살기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으로 살릴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말씀과 영으로 살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로 이끄사 보여 주시고는 “인자야 이 뼈들이 살겠느냐?” 물으셨습니다.
이때 에스겔은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하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살리시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죽은 인간이 스스로 살아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마른 뼈를 다시 살릴 수는 없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살 수는 없습니다.
마른 뼈처럼 저들에게서는 아무런 소망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 마른 뼈들이 살겠느냐고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살려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때 우리에게 어떤 믿음이 필요합니까? 주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기도하여야 합니다.
이번 기도회가 하나님 살려 주십시오 하는 간절함이 있는 기도회가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십니다. “저 마른 뼈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라! 내가 저들을 일으키리라”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마른 뼈들아 하나님의 군대로 일어서라!” 명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수 있다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도해야 합니다.
이게 초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베드로가 한번 말씀을 증거하니까 3000명이 생명을 얻었습니다.
요나도 해골 골짜기 같은 니느웨성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자 200만의 니느웨 사람들이 살아 나셨습니다.
루터의 대언에 의해 독일이 부활했고 웨슬리의 대언에 의해 영국이 부활했습니다.
무디의 대언에 의해 미국이 부활했습니다.
여러분의 대언을 통하여 내 주위의 인물들이 사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번 기도회에서 기도하는 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자가 나아가서 대언하게 될 것입니다.
그 말씀에 성령의 생명의 큰 역사가 일어 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에스겔이 되어 큰 구원의 소식을 알려 주어 이번 기회에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십자가 큰 군대가 되어 일어나는 역사가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피터 로드 목사가 쓴 하나님의 음성 듣기라는 책 내용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느 날 우리 집에서 결혼식 피로연이 열렸는데 피로연의 안내 역할을 맡은 한 청년이 로드 목사에게 묻기를 목사님 저 덤불 속에 18 가지 종류의 귀뚜라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라고 물었을 때에 아니 나는 이 집에 오래 동안 살았지만 귀뚜라미 소리를 의식적으로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러나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 곤충학을 전공하는 그 대학원생은 육신의 귀를 사용하여 200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귀뚜라미 소리를 분변(分辯)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우리는 듣는 법을 개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쳤으며 동시에 수많은 소리가 들리지만 듣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고 하였습니다.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음성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하나님의 음성이 내게 들렸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듣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어릴 때 하나님은 사무엘을 세 번이나 불렀지만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 줄 모르고 제사장 엘리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인 줄만 알았다는 아닙니까?
그는 하나님께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제사장 엘리에게로 찾아간 것입니다.
제사장 엘리가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일러주자 그제야 사무엘은 하나님의부르심에 응답을 하게 된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성도들이나 목회를 오래 한 목사님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의 종류가 무엇인지를 알고 난 후에, 여태까지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들은 것이 아니라 들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 줄 몰라서 무시한 적이 많았을 것입니다.
듣는 귀를 훈련시키지 않았고 듣는 방법을 몰랐던 것입니다.
신앙의 생활 역시 훈련을 통하여 세워지는 것입니다.
먼저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할 때는 입으로 말하는 육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할 때는 하나님이 우리와 교통하시는 방법 전체를 말한다.
영어로는 voice란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단어는 육성의 소리만이 아니라 의사를 표시하는 투표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드러내시는 모든 방법을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voice란 말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 일 수 있지만 성경에서 가장 많이 일러 주는 것은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씀하시지 만은 기도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 뜻을 일러 주어도 무시한 채로 지나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번 기회에 기도를 특별히 하게 하시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귀한 소식을 듣게 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새벽의 말씀 중에서 히스기야 왕이 기도 할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내가 처한 형편도 아시고 사정도 아시고 그 가운데 구원의 길도 능력도 아시지 만은 인간은 기도하지 않음으로서 그 모든 것이 가리어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기도 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심을 아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에게도 기도하므로 그 비밀한 일을 가르쳐 보여 주시겠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일러 주시기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에 잘 훈련이 되어 있는 선지자이었습니다.
또한 제사장으로 하나님 앞에 날마다 나아가 항상 하나님께 민감한 자였습니다.
백성들과 나라를 사랑하는 자로서 그들의 죄악상을 늘 안타까워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고 기도하는 선지자 이있었습니다.
이런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내용을 담는 구절이 에스겔서 전체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 하셨다는 단어가 187개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단어가 257개 그 외 하나님의 이상 예언 등의 단어까지 모두 합하면 500회를 훨씬 넘어서고 있으니 얼마나 영성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는지 모릅니다.
당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음성에 대하여 무지하고 있었으니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무던히도 말씀하였지만 듣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 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는 전혀 말씀 하시지 않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 하시는데 못들은 체 하고만 있으니 얼마나 답답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예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분으로 믿지 못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인류의 흥망성쇠(興亡盛衰)와 개인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마 하나님은 누구든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언제든지 항상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그의 영으로 내 곁에서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음성을 우뢰와 큰 물소리에 비유를 했는데 얼마나 크게 확실하게 들리며 그리고 그 역사하심이 굉장하심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말씀 하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안 들리신다고 하시는 분들은 들을 귀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내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찌어다
이번 특새는 하나님의 비밀한 큰일을 보고 듣는 시간이 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기회를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대수롭게 여기시다가 나중에 내게는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회를 타서 기도하면은 홍수도 너를 엄몰치 못하게 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에스겔은 이상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처한 형편을 바로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 앞에 나아오지만 자기 자신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많습니다.
잘 아셔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는 자입니다.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입니다.
오죽 하였으면 너 자신을 알라라는 유명한 철학자의 말이 있었을까요?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지혜가 신에 비하면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에서, 무엇보다 먼저 자기의 무지(無知)를 아는 엄격한 철학적 반성이 중요하다고 하여 이 격언을 자신의 철학적 활동의 출발점에 두었던 것입니다.
사람에게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탈레스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어려운 일이며, 쉬운 일이라면 남을 충고하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자만이 자신을 알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기도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아는 자입니다.
하나님께로 기도로 나아오지 않는 자는 자신이 얼마나 죄인이여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별 볼 일없는 인생임을 알지 못합니다.
굉장하고 대단한 존재로 여기지 만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코에 기식(氣息)이 끊어지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영성이 충만한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이 생명이라고 전혀 찾아 볼 수없는 해골이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하나님 앞에서 내 인생을 새롭게 발견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과 관계치 않으면 생명이 없는 자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실 별 볼일이 없는 인생이 아닙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알고 보니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되어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소리 지르지 않았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 앞에 자신을 보았을 때에 죄악 중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태까지 교회를 다닌다고 하지만 자신이 죄인 됨을 보지 못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찌니…….
이 사실이 우리 인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결과로 받아져 있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에게서 생명이 떠나가 보십시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때부터 가치가 없는 존재입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아합 왕도 적군의 화살에 전사를 하고보니 그 시신을 개가 핦고 있었습니다.
혹시 해골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얼마나 보기 흉합니까?
해골이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음산한 공포와 절망을 가져다줍니다.
그런데 에스겔이 본 골짜기에서는 이러한 해골이 한두 개 있는 것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이 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지금 이상황은 이스라엘의 신앙상태를 보여주는 계시입니다.
즉 하나님은 내 백성의 영적 상태가 해골과 같이 생명이 없는 종교행위만 하고 있었습니다.
생명이 없으니 소망도 없고 활동도 없고미래도 없음이 꼭 해골과같았습니다.
특히 본문의 골짜기는 힌놈의 골짜기인데 여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힌놈의 골짜기는 이방신에게 어린아이와처녀를 제물로 바쳤던 곳이요
또한 후일 예루살렘의 쓰레기를 태우느라고 일 년 내내불과 연기와 온갖악취가 가득했던 골짜기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골짜기를 지옥으로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불이 있고 연기가 있고 악취가 있고 제물로 드려지는 어린아이의 비명과 그들의 부모의 절규와 살타는 냄새 등 이루말할 수 없는 참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참상이 바로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단하시기에 이스라엘이 지옥과 같은 지경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곳은 지옥입니다.
오늘 내 삶을 보십시다.
그리고 이 사회를 보십시오.
모든 분야에 생명이 없고 소망도 없고 있다면 송장 썩는 것과 같은 역겨운 냄새와 해골 같은 추함만이 있을 뿐입니다.
혹 지옥같은 삶은 아니십니까?
그럼 이스라엘만 이러한 상태로 계속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까?
생명이 없는 삶을 계속 살아야만 합니까?
앞으로 내 인생을 이렇게 끔직하게 살아야 합니까?
절대로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살기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으로 살릴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말씀과 영으로 살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로 이끄사 보여 주시고는 “인자야 이 뼈들이 살겠느냐?” 물으셨습니다.
이때 에스겔은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하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살리시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죽은 인간이 스스로 살아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마른 뼈를 다시 살릴 수는 없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살 수는 없습니다.
마른 뼈처럼 저들에게서는 아무런 소망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 마른 뼈들이 살겠느냐고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살려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때 우리에게 어떤 믿음이 필요합니까? 주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기도하여야 합니다.
이번 기도회가 하나님 살려 주십시오 하는 간절함이 있는 기도회가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십니다. “저 마른 뼈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라! 내가 저들을 일으키리라”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마른 뼈들아 하나님의 군대로 일어서라!” 명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수 있다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도해야 합니다.
이게 초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베드로가 한번 말씀을 증거하니까 3000명이 생명을 얻었습니다.
요나도 해골 골짜기 같은 니느웨성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자 200만의 니느웨 사람들이 살아 나셨습니다.
루터의 대언에 의해 독일이 부활했고 웨슬리의 대언에 의해 영국이 부활했습니다.
무디의 대언에 의해 미국이 부활했습니다.
여러분의 대언을 통하여 내 주위의 인물들이 사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번 기도회에서 기도하는 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자가 나아가서 대언하게 될 것입니다.
그 말씀에 성령의 생명의 큰 역사가 일어 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에스겔이 되어 큰 구원의 소식을 알려 주어 이번 기회에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십자가 큰 군대가 되어 일어나는 역사가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