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일군은 주의 요구에 내 삶이 드려지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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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32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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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 : 6 - 8참된 일군은 주의 요구에 내 삶이 드려지는 자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화려하게만 느껴지는 직업을 가진 연예인들이 많이 괴로워하고 있으며 그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고 목숨을 끊어버리는 일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가수 유모(니)양이 지난 1월 21일에 목을 매 자살을 하여 그 가족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습니까?
어제는 탤런트 정모(다빈) 양이 친구 집에서 역시 목을 매어 자살을 하여 큰 충격을 연예가에 주고 있습니다.
화려하기만 한 연예인 세계가 힘 드는 줄은 알지만 이렇게 목숨까지도 버려야 한다니 안타깝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역시 탤런트 권모(상우)군은 김 모(태촌) 전도사님께 혼이 났다는 것 아닙니까?
상우야 너 피바다? 되어 볼래? 라고 말입니다.
조직 조폭 서방파의 두목 김 모(태촌)씨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난날을 회개를 하고 신학 공부도 하고 하여 전도사님이 되어 기독교 집회에 다니며 자신이 새롭게 되었음을 간증을 하고 다니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피바다를 운운하는 김 모(태촌) 전도사님이나 자살한 정모(다빈)양이나 유모(니)양을 제가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들이 한결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기독교인 이라는 점이기 때문입니다.
김 모(태촌)씨가 입는 티셔츠 앞면에는 뚜렷한 글씨로 Jesus is my라는 글귀가 뚜렷이 적혀져 있는 옷을 입고 다니기까지 하였습니다.
유모(니)양도 그 집안 식구들인 외할머니 어머니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그런 집의 자녀였습니다.
또한 정모(다빈)양 역시 그의 미니 홈피에 보면 그가 힘들어 하면서 주님의 도움을 바라며 은혜를 받아 감사하는 내용들을 찾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의 최근에 마지막 남긴 글을 보면 하나님...정말 얼마 만에 주님을 불러보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그동안 얼마나 나태해져있었는지.얼마나 소망을 잃고 잊고 살아왔는지.얼마나 게으름을 피워왔는지.모르겠습니다.오늘.주님께서 저에게 갑자기 은혜를 주시고.컴퓨터 앞에서 이리저리 불만만 하고 있던 제게 갑자기.뜨거운 눈물이 흐르게 하시는지...차가운 가슴을 뜨겁게 하시는지...주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저는 지금도 너무 당황스럽습니다.주님 왜 저에게 이런 은혜를 주시는지.제가 감히 받아도 되는 건지.지금 이 순간 주님은 저를 돌아보게 하시고 이렇게 글을 쓰게 하십니다.왜.그러시는지 알지 못하지만.좀 전까지 뭉쳐있던 아픔과 슬픔들이 지금 녹아내립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살아계신 주님이 제게 귀 기울이시고 있다는 걸.....못나고 못난 생각에 찌들어있는 제가 잠시.잊었었나봐요.주님 어찌 저를 사랑해주시는지.주님 어찌 저를 용서해주시는지.어찌 제게 평안을 주시는지.주님의 크시고 놀라운 사랑...이렇게 주시는군요.제가 원한다고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주님이 주시는 거였어요.애써 발버둥 쳐도 아프기만 했었는데...주님만이 아시고 주님만이 고쳐주시는군요.감사해요 주님.다시 노력할게요.주님 손에 의지하며…….행복해요. 오늘 저는 주님의 품을 느꼈으니까요.너무나 갑자기. 이렇게...고백합니다...살아계신 주님을.....아멘.
그런데 왜 이렇게도 주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진작 자신의 생명은 주님의 은혜가 그들의 생명을 지켜 주지 못하였다는 것입니까?
그 꽃다운 나이에 삶의 의미를 잊어 버렸느냐? 말입니다.
그것은 어떤 이는 우울증등 이라는 여러 가지로 말로 이야기 할 수가 있겠지만 은혜를 받은 내가 주께 지금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고 위로는 받고 축복도 받고 잘 나가고해서 그리고 감사도 하지만 그러나 진작 내 자신을 주님이 원하는 사람으로 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주시고 불러 주셨다고 생각이 되십니까?
내 자신의 충족만을 생각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불러 주신 것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사용하시지 원하심을 아셔야 합니다.
세상적인 충족이 나를 보호해 주고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주를 위하여 드릴 때에 내가 가장 건강한 영혼의 소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무엇을 하여야 하며 그리고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정체성을 잃어버릴 때에 누구에게나 일어 날 수 있는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 은혜를 사모하지만 우리 가운데서도 나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쉽게 인생을 포기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것도 아니요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함도 아닙니다.
그 은혜가 감사하다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드려질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내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의정체성을 잘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 정체성을 찾는 자가 이사야라는 선지자입니다.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된 것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고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하고 묵묵히 기도 할 때였습니다.
주전 739년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스라엘 나라는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매우 혼란한 상황에 처해있었습니다.
그 때에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가 내가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하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날마다 기도 할 때마다 이렇게 해 주세요 저렇게 해 주세요의 기도를 드리지 못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의 기도를 드립니다.
전적으로 나의 의지를 관철 시키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가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특별한 축복을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어떻게 할까요 하며 기도 할 때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서 자기 미래를 계획해나가고, 더 나은 발전을 도모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어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 한계를 극복하고 무엇인가 큰일을 이루는 인물이 될 수 있음은 기도를 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란 만난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축복과의 만남, 능력과의 만남, 기적과 이적의 만남, 성령과의 만남이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영국의 종교개혁자 존 낙스는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고 말했습니다.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말씀해 주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반드시 내 생각대로 할 수 밖에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나라의 어려운 상황을 보고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다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소명을 깨닫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할 수 있는 자는 기도하는 자입니다.
큰일을 하는 사람은 내 소원을 이루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입니다.
내 소리를 외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인도에서 평생 빈민을 위해 봉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녀의 봉사 뒤에 항상 기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CBS의 앵커맨인 댄 래더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로 하나님께 뭐라고 기도하십니까? 그녀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주로 듣지요. 의외의 대답에 당황한 래더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그때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녀가 미소로 답했습니다. 그분도 들으신답니다.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가 구할 것만 열심히 구하고 끝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기도하십시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맨 날 나는 아니라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찌 기도는 맨 날 하는데 주님의 이런 소리는 못 듣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주님은 내 기도를 안 들어 주신다고 만하고 있습니다.
가장 기도를 잘하고 응답을 잘들은 사람은 내가 주를 위하여 사용 되라고 하는 소리를 듣는 자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주님은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하고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는 일군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마 이 소리를 듣는 사람만이 큰일을 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자기 자신 만을 위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지도 못할뿐더러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돌리고 살아가는 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져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만드셔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선한 도구를 만드십니다.
이 시간에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다 만들어져서 하나님께 나온 자가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불러서 이만큼 이라도 만들어 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태어 날 때부터 사람 노릇할 줄 알아 태어나는 자 없습니다.
그냥 태어나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필요한 사람을 뽑을 때 완전한 자를 뽑기 위하여 심사숙고합니다. 살펴보고 다시 살펴봅니다.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그리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력서를 쓰기도 하고 신원 보증서를 만들기도 합니다.
추천서를 써서 소개하기도 합니다. 좋은 사람을 뽑기도 어렵고 뽑히기도 어렵습니다.
혹시 최선을 다해 사람을 선발했다 해도 그것이 최선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다르십니다. 얼굴을 보거나 경력을 보거나 조건을 보지 않습니다.
과거를 문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다릅니다.
뛰어난 능력을 과시하는 사람이 많아도 하나님께는 자랑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뽑으시되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는 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한계를 아시는 하나님은 사람을 불러서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있도록 만드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조건 되지 못함을 겁내지 말고 위축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실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입술이 아주 부정한 사람입니다.
툭하면 욕이 나오고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 음란하고 빈정되고 판단하고 이런 이사야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세워 시기 위하여 제단의 불로 지져 깨끗케 해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지금도 나를 불러서 만드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느낍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려고 만드시는데 내가 얼마나 뻣뻣하고 완악하고 세속적인지 절감을 합니다.
지금도 저를 계속 만들고 계셨습니다. 할렐루야!
내가 다 만들어졌다는 이만하면 되었다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셔야 합니다.
자원하고 자발적으로 만들어 지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고백을 하여야 합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할 때에 저 김 목사님이 가게 해주세요 저 김 집사나 이집사가 가게 해 주세요 나는 아니기 바랍니다.
내가 가겠습니다. 하고 싶지 않습니까? 얼울합니까? 감사합니까?
내가 그 위대하신 주님을 위하여 내 자신의 소욕이 사용되는 것이 얼마나 감사 할 일이 아닙니까?
이 세상에 왔다가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소리만 외치다가 그냥 주님 앞에 막 가도 되는 것입니까?
일도 하지 않고 그냥 목숨을 끊고 가시려고 합니까?
이래 봐도 저리 봐도 내가 해야 할 일이구나? 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이 인기가 있는 것은 지금도 당신이 필요하다 할 때에 있기가 있는 것이지 당신은 이제는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하면 그 때에는 귀찮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시니 얼마나 감사 할 일이 아닙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깨닭고 보니 자신이 은혜 받기 위하여 하나님께 나왔다가 하나님을 위하여 내가 드려져야 함을 느낀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은혜 받기를 위하여 올라오신 여러분 참 잘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위로를 주시고 소망을 주시고 힘도 주시고 인도도 하시고 축복도 하실 것입니다.
그것만이 나를 만족하게 하는 것이 압니다. 그것만이 나를 복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 앞에 내가 해야 할 일감을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무슨 요구에도 응하는 자세를 가지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께서 건너편 마을에서 어린 나귀을 가져 오라고 하십니다.
힘도 세고 일도 잘하는 장성한 나귀도 아닌 어린나귀를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아무 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 주님이 어린 나귀을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돈을 지불하고 어린 나귀을 얻고자 하심이 아니라 매여 있는 어린 나귀을 풀어 오라고 명하십니다. 물론 주인이 있는 어린 나귀입니다.
주님은 주인의 반발을 예상하시고 물으면 주가 쓰시겠다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주가 쓰시겠다고 대답하니 모든 문제는 풀어지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됩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 주님은 단순히 운송 수단으로 어린 나귀을 이용하고자 함이 아니었고 주의 나라와 복음을 위한 도구로 어린 나귀을 얻고자 함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가 쓰시겠다는 말씀 한 마디에 어린 나귀의 임자는 기꺼이 드리는 순종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어린 나귀 임자들이 나귀를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하여 돈을 생각하였다면 순순히 나귀를 내어줄 리가 만무합니다. 아무리 어린 나귀라 할지라도 손해를 보고 넘겨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 푼이라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세상 사람들이 아닙니까?
주가 쓰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에 아무 소리하지 않고 어린 나귀을 내어놓은 것은 거룩한 헌신에로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순종하고자 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어린 나귀을 구한 것은 부족한 부분을 채우시고자 함이 아니라 함께 주의 나라와 복음을 위한 일에 너도 함께 당신도 함께 동참하는 영광을 맛 보아라는 것입니다.
어린나귀을 돈으로 보느냐 아니면 어린 나귀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보느냐입니다.
우리 주님은 아무 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부족함이 없으십니다.
다만 나를 들어서 주의 영광에 동참 시키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대를 통하여 누군가를 쓰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 누군가가 다른 이가 아닌 나 자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세상을 위한 종으로 전략되시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주의 영광을 위한 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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