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풍요로운 삶은 내 자신을 드리는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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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392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마태복음 19:16-22 진정한 풍요로운 삶은 내 자신을 드리는데 있습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히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 이었어 하고 한번 불러 보는데 영 분위기가 잡히지 않아요
앞으로 알파 전도에 모실 게스트랑 호흡을 잘 맞추기 위해서는 한번 노래방이라도 가야겠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한 영혼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모습으로든지 자신을 드릴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고전 9;19-23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 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여러분은 아주 갓 난 어린아이와 교제를 할 때에 문자를 쓰거나 체면치례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쓰는 언어 행동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어린 아이와 통하지 않습니까?
이번 알파 전도를 통하여 게스트를 섬기는데 있어서는 할 수 있는 대로 먼저 믿는 우리 성도들이 많이 부서져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나의 삶이 풍요롭지 못하고 인정이 되지 못함은 내가 내 스스로를 챙기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너무 챙겼기 때문이요 스스로 내가 사람들과 함께 동화되어지기 위한 부셔지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한동대는 매년 신입생 MT 때마다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 행사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을 못 받아 그들이 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주여 저희들을 같은 대학에 부르신 뜻이 있는 줄 압니다. 졸업할 때까지 말씀 가운데 인도하소서 이 시간 씻기는 발로 열방을 향하게 하소서 라고, 그리고 발을 씻고 나서 이들은 서로 포옹하고 축복인사를 나눕니다.
이게 얼마나 아름다운 전통인지 모릅니다.
한동 비전 선언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써져 있습니다.
한동대학교는 기독교 정신으로 민족과 세계를 변화시키는 21세기 지도자들을 교육하는 국제적인 대학교가 될 것이며, 탁월한 자질과 훌륭한 기독교적 인성, 특히 정직과 봉사의 희생정신을 겸비한 새로운 지도자들을 배출할 것이다.첫째, 한동대학교는 사랑, 겸손, 봉사의 정신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각계각층의 정직한 그리스도인 지도자를 양성한다.둘째, 한동대학교는 전문성과 도덕성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와 국가 및 세계, 특히 개발도상국을 섬기고 봉사하는 정직한 국제적 지도자를 양성한다.셋째, 한동대학교는 기독교 세계관 아래 여러 학문 분야에 헌신하여 교육의 참된 목표를 확립하고 성경적 창조론을 회복하며, 훼파된 윤리 도덕을 회복시켜 나가는 유능하고 정직한 지성인을 양성한다. (이사야 58:12)
결국 한동대의 존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온 인류를 섬기고 봉사하고 헌신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니 MT 때에 선배가 후배의 때 묻는 발을 씻겨 줌으로 예수님의 섬김의 도를 본받는 것 아닙니까?
이 학교에서 배출되는 학생들은 어느 대학 출신보다 지식적으로도 유능함을 자랑할 만한 하지만 더 뛰어난 것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섬김의 정신이 더 매력적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사람의 진정한 삶의 매력과 삶의 풍성함은 어디에서 온다고 여겨지십니까?
절대로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인간적인 요구 조건의 충족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공산주의의 유물론 사상이 온 인류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이제는 이 땅에 그 이름조차 없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한지 모릅니다.
삶의 풍성은 오히려 자신을 드려짐으로서 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가슴은 그 누구보다 삶의 풍성함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녀에게 모든 것을 끊임없이 주는데서 생겨난 가슴입니다.
이 어머니라는 그 이름 앞에 마음이 감동이 되지 않는 자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한 젊은이가 자신의 삶의 풍요로움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의 풍요로움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누리지 못하였기에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로 한 것입니다.
이 청년은 세상에서 부러워하는 세 가지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젊음과 건강을 가진 자입니다.
젊음 그 자체가 참으로 아름다움입니다.
그리고 젊음은 미래를 기약 할 수가 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늙어서야 젊음의 소중함도 깨닫습니다.
저도 젊음이 너무 나도 복 된 것이 구나를 나이가 들어 갈수록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제가 젊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저 보다 연세가 많으신 어른 신들은 제가 아직 젊게 여겨질 것이요 아마 제 때를 부러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젊음이 있었지만은 젊음만으로 그의 삶은 풍요롭지 못했습니다.
젊은 자들도 방황하고 인생을 비관하여 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경제력도 있었습니다.
누가 말합니다.
오늘의 시대는 돈으로 다 해결이 될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이 답은 맞는 것 같지만 틀린 답입니다.
돈으로 할 수없는 것이 할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많습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돈으로 할 수 없는 것이 훨씬 중요한 것이 많습니다.
이 청년은 그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 그의 삶은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돈 없는 사람이 목을 매는 줄로 생각하는데 돈이 많은 사람도 목을 매는 것은 마찬 가지입니다.
한국의 최고의 재벌의 딸이 수천억의 재산이 있었지만 그 생명하나 구원해 주지 못합니다.
너무 돈돈하지 말고 돈으로 뻐기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그 뿐 아니라 이 청년은 관원이라는 명예와, 지위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 지위도 그의 인생이 행복해 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세상이 원하는 젊음 돈 지위를 다 가졌지만 그의 삶 하나를 충족시키지 못하였기에 예수님이라는 분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삶의 풍성을 위하여 그는 종교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보통 젊은이에게, 또 부한 자들에게, 또 권력이나, 인기 명예가 있는 자에게 없는 도덕적인 삶이 이 청년에게는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완벽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가 예수님께서 계명에 관한 말씀하셨을 때에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라고 자신 있게 반문한 것을 보아도 그의 선한 행실은 완벽했던 것입니다.
이만한 사람을 우리 가운데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어디에 내어 놓아도 훌륭한 신랑감이 되든지 사람들이 부러워 할 가정을 가졌다면 남편이요 아버지요 가장입니다.
그러나 본인의 실상은 외부에서 다른 이들이 보는 것같이 인생이 행복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자신을 채워 줄 만족을 찾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는 예수님을 만나 그의 고민을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요구를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근심만 더 생기게 되었습니다.
왜? 예수님을 만나면 만사가 해결 될 줄로 알았는데 믿으면 믿을수록 고민이 더 생기는 것입니까?
사실 그가 살아온 생활의 방식하고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을 위한 것으로 만들었으며 심지어 종교 생활도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삶의 방식을 보면 은 모두가 나를 위하여 아방궁을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결혼, 직장, 생업, 주위와의 사람들과의 관계, 생활스타일, 물론 생각하고 있는 머릿속의 사고까지 나를 위함이라는 전제로만 굳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스타일이 자신에게 먹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예수님을 찾았기 때문에 자신을 내어 놓으라는 주님의 말씀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의 방식이 아니라서 주의 말씀에 근심만이 생길 뿐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근심도 안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이는 나의 필요만 챙기면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번 알파 전도 프로그램은 나를 위함이 아니라 남을 위한 프로그램입니다.
물론 신앙 자체가 그러합니다.
주를 사랑하고 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다 내어 놓고 말입니다.
누구든지 우리는 나를 위한데만 익숙하여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기독인은 아니고 교인이었습니다.
무슨 교회 교인 무슨 교회 교인은 많지만 그리스도인은 별로 없습니다.
무슨 교회 무슨 교회를 자랑했지 예수 그리스도 자랑은 없었습니다.
교회를 위하여 교인으로 있었지 그리스도를 위한 기독인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교인이 되지 말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 땅에는 전 국민의 약 20%에 달하는 가량의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중에서 얼마나 참 그리스도인일까? 의구심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이 정도의 비율이면 이 나라와 이 사회를 엄청나게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말합니다.
바다의 소금물 농도는 3.5% 전체에 몇 %가 아니지만 바닷물을 짜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국회 의원 등 모든 분야의 엘리트는 그리스도인의 비율이 전체 그리스도인의 비율보다 훨씬 높습니다.
하지만 전혀 사회의 변호된 모습은 찾기 힘듭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유명인사가 되고 엘리트가 되고 돈은 많아졌고 생활은 윤택해졌지만 자신을 위하여 모든 것은 만들어 놓았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지는 않는 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자신을 위한 엘리트를 추구함이지 그리스도인으로서 남을 섬기겠다는 자세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 교회는 목요 봉사가 힘이 들지만 이것이라도 대 국민을 향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면 참으로 감사 할 뿐입니다.
1910년대 3.1운동 전후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인은 전체 인구의 1%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기독교인들은국가와 사회에 미친 영향력은 대단했다고 합니다.
정직하고 성실해서 예수를 믿는 신자에게 돈을 꿔줄 때는 영수증도 받지 않고도 꿔 줄 정도라고 합니다.
그 때에 비하면 엄청난 기독교인들이 늘어났지만 미치는 영향력은 아주 미비하기만 합니다.
이 청년은 자신을 위한 것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받았지만 남을 위하기는커녕 자신하나 만족함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 많은 것을 받고도 무슨 감사가 있었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주어서 그를 만족시키겠습니까?
이제는 자신을 드리는 일이 우선 입니다.
내 몸의 불편을 핑계거리만 되지 말고 내 몸을 아끼지 말고 사용하십시오
그러면 내 몸이 비록 건강하지 못해도 가치있는 몸이 될 것입니다.
내 시간을 선을 위하여 사용하십시오
그러면 헛된 나날이 되지 않고 무료하지 않고 인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처방전을 내립니다.
내가 가진 것을 다 팔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주어라는 것입니다.
고고하고 도도한 그 자리에서 내 것만을 자랑하지 말고 내 인격만을 내 세우지 말고 그 만큼 가졌다면 남을 위하여 내 놓을 줄도 알아라
그러면 하늘의 보화가 바로 네게 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1
자신을 드리지 못한 고 자신만으로 가득찬 그 사람에게 어찌 하늘의 은혜가 채워지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 갈 곳이 없지 않습니까?
내게 은혜가 임 할 곳이 많으시기 축원합니다.
이번 알파를 통하여 나를 위한 것으로 가득찬 나를 퍼내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채우시기를 축원합니다.
섬길 능력이 아니면 섬김을 받으십시오
섬김을 받았다고 여겨지시면 가만히 있지 말고 섬기시기 바랍니다.
어떤 의미로 보면 섬김 이가 게스트는 별개가 아니라 같이 그리스도의 정신입니다.
섬김은 내 자신이 가졌다고 여기는 것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최선을 다 드리는 것입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알파를 위하여 열심히 달려 왔습니다.
우리 가운데 자발적으로 알파를 위하여 금식을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자신을 죽이는 일에 이것보다 힘든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가운데 육신적인 몸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는 자들도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물질로 섬기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번 알파에 1000만원의 재정을 예산했는데 오늘 여러분들이 준비한 것을 드리겠습니다마는 우리 가운데 이미 이 돈을 지난 주중에 다 헌금하신 분이 계십니다.
기도로 응답은 받았지만 이렇게 빨리 하실 줄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볼 때에 넉넉하여 드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은 이 일로 시험스러운 일도 경제적으로 좀 힘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감수하고 드렸으며 마음에 감동이 되어 드렸습니다.
시험스러운 것도 힘든 것도 은혜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아끼다가 엉뚱한데 나가기도 하지 않습니까?
여기 나오는 청년같이 나의 것만 계수하고 나의 만족을 구하고 하늘의 무슨 은혜만을 구하기에 익숙한 나의 신앙의 형태에 주님의 말씀이 이번 알파를 통하여 나에게 새롭게 다가 올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하나님은 언제든지 우리의 수고를 헛되이 돌리지 않으시고 하늘의 보화를 약속하십니다.
주를 쫒는 신앙은 기꺼이 자신을 드림에 있습니다.
이번 알파를 향하신 주의 뜻이 나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히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 이었어 하고 한번 불러 보는데 영 분위기가 잡히지 않아요
앞으로 알파 전도에 모실 게스트랑 호흡을 잘 맞추기 위해서는 한번 노래방이라도 가야겠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한 영혼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모습으로든지 자신을 드릴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고전 9;19-23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 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여러분은 아주 갓 난 어린아이와 교제를 할 때에 문자를 쓰거나 체면치례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쓰는 언어 행동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어린 아이와 통하지 않습니까?
이번 알파 전도를 통하여 게스트를 섬기는데 있어서는 할 수 있는 대로 먼저 믿는 우리 성도들이 많이 부서져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나의 삶이 풍요롭지 못하고 인정이 되지 못함은 내가 내 스스로를 챙기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너무 챙겼기 때문이요 스스로 내가 사람들과 함께 동화되어지기 위한 부셔지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한동대는 매년 신입생 MT 때마다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 행사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을 못 받아 그들이 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주여 저희들을 같은 대학에 부르신 뜻이 있는 줄 압니다. 졸업할 때까지 말씀 가운데 인도하소서 이 시간 씻기는 발로 열방을 향하게 하소서 라고, 그리고 발을 씻고 나서 이들은 서로 포옹하고 축복인사를 나눕니다.
이게 얼마나 아름다운 전통인지 모릅니다.
한동 비전 선언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써져 있습니다.
한동대학교는 기독교 정신으로 민족과 세계를 변화시키는 21세기 지도자들을 교육하는 국제적인 대학교가 될 것이며, 탁월한 자질과 훌륭한 기독교적 인성, 특히 정직과 봉사의 희생정신을 겸비한 새로운 지도자들을 배출할 것이다.첫째, 한동대학교는 사랑, 겸손, 봉사의 정신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각계각층의 정직한 그리스도인 지도자를 양성한다.둘째, 한동대학교는 전문성과 도덕성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와 국가 및 세계, 특히 개발도상국을 섬기고 봉사하는 정직한 국제적 지도자를 양성한다.셋째, 한동대학교는 기독교 세계관 아래 여러 학문 분야에 헌신하여 교육의 참된 목표를 확립하고 성경적 창조론을 회복하며, 훼파된 윤리 도덕을 회복시켜 나가는 유능하고 정직한 지성인을 양성한다. (이사야 58:12)
결국 한동대의 존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온 인류를 섬기고 봉사하고 헌신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니 MT 때에 선배가 후배의 때 묻는 발을 씻겨 줌으로 예수님의 섬김의 도를 본받는 것 아닙니까?
이 학교에서 배출되는 학생들은 어느 대학 출신보다 지식적으로도 유능함을 자랑할 만한 하지만 더 뛰어난 것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섬김의 정신이 더 매력적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사람의 진정한 삶의 매력과 삶의 풍성함은 어디에서 온다고 여겨지십니까?
절대로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인간적인 요구 조건의 충족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공산주의의 유물론 사상이 온 인류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이제는 이 땅에 그 이름조차 없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한지 모릅니다.
삶의 풍성은 오히려 자신을 드려짐으로서 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가슴은 그 누구보다 삶의 풍성함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녀에게 모든 것을 끊임없이 주는데서 생겨난 가슴입니다.
이 어머니라는 그 이름 앞에 마음이 감동이 되지 않는 자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한 젊은이가 자신의 삶의 풍요로움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의 풍요로움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누리지 못하였기에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로 한 것입니다.
이 청년은 세상에서 부러워하는 세 가지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젊음과 건강을 가진 자입니다.
젊음 그 자체가 참으로 아름다움입니다.
그리고 젊음은 미래를 기약 할 수가 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늙어서야 젊음의 소중함도 깨닫습니다.
저도 젊음이 너무 나도 복 된 것이 구나를 나이가 들어 갈수록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제가 젊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저 보다 연세가 많으신 어른 신들은 제가 아직 젊게 여겨질 것이요 아마 제 때를 부러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젊음이 있었지만은 젊음만으로 그의 삶은 풍요롭지 못했습니다.
젊은 자들도 방황하고 인생을 비관하여 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경제력도 있었습니다.
누가 말합니다.
오늘의 시대는 돈으로 다 해결이 될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이 답은 맞는 것 같지만 틀린 답입니다.
돈으로 할 수없는 것이 할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많습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돈으로 할 수 없는 것이 훨씬 중요한 것이 많습니다.
이 청년은 그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 그의 삶은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돈 없는 사람이 목을 매는 줄로 생각하는데 돈이 많은 사람도 목을 매는 것은 마찬 가지입니다.
한국의 최고의 재벌의 딸이 수천억의 재산이 있었지만 그 생명하나 구원해 주지 못합니다.
너무 돈돈하지 말고 돈으로 뻐기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그 뿐 아니라 이 청년은 관원이라는 명예와, 지위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 지위도 그의 인생이 행복해 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세상이 원하는 젊음 돈 지위를 다 가졌지만 그의 삶 하나를 충족시키지 못하였기에 예수님이라는 분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삶의 풍성을 위하여 그는 종교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보통 젊은이에게, 또 부한 자들에게, 또 권력이나, 인기 명예가 있는 자에게 없는 도덕적인 삶이 이 청년에게는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완벽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가 예수님께서 계명에 관한 말씀하셨을 때에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라고 자신 있게 반문한 것을 보아도 그의 선한 행실은 완벽했던 것입니다.
이만한 사람을 우리 가운데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어디에 내어 놓아도 훌륭한 신랑감이 되든지 사람들이 부러워 할 가정을 가졌다면 남편이요 아버지요 가장입니다.
그러나 본인의 실상은 외부에서 다른 이들이 보는 것같이 인생이 행복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자신을 채워 줄 만족을 찾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는 예수님을 만나 그의 고민을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요구를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근심만 더 생기게 되었습니다.
왜? 예수님을 만나면 만사가 해결 될 줄로 알았는데 믿으면 믿을수록 고민이 더 생기는 것입니까?
사실 그가 살아온 생활의 방식하고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을 위한 것으로 만들었으며 심지어 종교 생활도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삶의 방식을 보면 은 모두가 나를 위하여 아방궁을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결혼, 직장, 생업, 주위와의 사람들과의 관계, 생활스타일, 물론 생각하고 있는 머릿속의 사고까지 나를 위함이라는 전제로만 굳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스타일이 자신에게 먹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예수님을 찾았기 때문에 자신을 내어 놓으라는 주님의 말씀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의 방식이 아니라서 주의 말씀에 근심만이 생길 뿐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근심도 안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이는 나의 필요만 챙기면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번 알파 전도 프로그램은 나를 위함이 아니라 남을 위한 프로그램입니다.
물론 신앙 자체가 그러합니다.
주를 사랑하고 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다 내어 놓고 말입니다.
누구든지 우리는 나를 위한데만 익숙하여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기독인은 아니고 교인이었습니다.
무슨 교회 교인 무슨 교회 교인은 많지만 그리스도인은 별로 없습니다.
무슨 교회 무슨 교회를 자랑했지 예수 그리스도 자랑은 없었습니다.
교회를 위하여 교인으로 있었지 그리스도를 위한 기독인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교인이 되지 말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 땅에는 전 국민의 약 20%에 달하는 가량의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중에서 얼마나 참 그리스도인일까? 의구심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이 정도의 비율이면 이 나라와 이 사회를 엄청나게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말합니다.
바다의 소금물 농도는 3.5% 전체에 몇 %가 아니지만 바닷물을 짜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국회 의원 등 모든 분야의 엘리트는 그리스도인의 비율이 전체 그리스도인의 비율보다 훨씬 높습니다.
하지만 전혀 사회의 변호된 모습은 찾기 힘듭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유명인사가 되고 엘리트가 되고 돈은 많아졌고 생활은 윤택해졌지만 자신을 위하여 모든 것은 만들어 놓았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지는 않는 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자신을 위한 엘리트를 추구함이지 그리스도인으로서 남을 섬기겠다는 자세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 교회는 목요 봉사가 힘이 들지만 이것이라도 대 국민을 향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면 참으로 감사 할 뿐입니다.
1910년대 3.1운동 전후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인은 전체 인구의 1%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기독교인들은국가와 사회에 미친 영향력은 대단했다고 합니다.
정직하고 성실해서 예수를 믿는 신자에게 돈을 꿔줄 때는 영수증도 받지 않고도 꿔 줄 정도라고 합니다.
그 때에 비하면 엄청난 기독교인들이 늘어났지만 미치는 영향력은 아주 미비하기만 합니다.
이 청년은 자신을 위한 것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받았지만 남을 위하기는커녕 자신하나 만족함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 많은 것을 받고도 무슨 감사가 있었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주어서 그를 만족시키겠습니까?
이제는 자신을 드리는 일이 우선 입니다.
내 몸의 불편을 핑계거리만 되지 말고 내 몸을 아끼지 말고 사용하십시오
그러면 내 몸이 비록 건강하지 못해도 가치있는 몸이 될 것입니다.
내 시간을 선을 위하여 사용하십시오
그러면 헛된 나날이 되지 않고 무료하지 않고 인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처방전을 내립니다.
내가 가진 것을 다 팔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주어라는 것입니다.
고고하고 도도한 그 자리에서 내 것만을 자랑하지 말고 내 인격만을 내 세우지 말고 그 만큼 가졌다면 남을 위하여 내 놓을 줄도 알아라
그러면 하늘의 보화가 바로 네게 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1
자신을 드리지 못한 고 자신만으로 가득찬 그 사람에게 어찌 하늘의 은혜가 채워지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 갈 곳이 없지 않습니까?
내게 은혜가 임 할 곳이 많으시기 축원합니다.
이번 알파를 통하여 나를 위한 것으로 가득찬 나를 퍼내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채우시기를 축원합니다.
섬길 능력이 아니면 섬김을 받으십시오
섬김을 받았다고 여겨지시면 가만히 있지 말고 섬기시기 바랍니다.
어떤 의미로 보면 섬김 이가 게스트는 별개가 아니라 같이 그리스도의 정신입니다.
섬김은 내 자신이 가졌다고 여기는 것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최선을 다 드리는 것입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알파를 위하여 열심히 달려 왔습니다.
우리 가운데 자발적으로 알파를 위하여 금식을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자신을 죽이는 일에 이것보다 힘든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가운데 육신적인 몸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는 자들도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물질로 섬기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번 알파에 1000만원의 재정을 예산했는데 오늘 여러분들이 준비한 것을 드리겠습니다마는 우리 가운데 이미 이 돈을 지난 주중에 다 헌금하신 분이 계십니다.
기도로 응답은 받았지만 이렇게 빨리 하실 줄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볼 때에 넉넉하여 드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은 이 일로 시험스러운 일도 경제적으로 좀 힘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감수하고 드렸으며 마음에 감동이 되어 드렸습니다.
시험스러운 것도 힘든 것도 은혜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아끼다가 엉뚱한데 나가기도 하지 않습니까?
여기 나오는 청년같이 나의 것만 계수하고 나의 만족을 구하고 하늘의 무슨 은혜만을 구하기에 익숙한 나의 신앙의 형태에 주님의 말씀이 이번 알파를 통하여 나에게 새롭게 다가 올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하나님은 언제든지 우리의 수고를 헛되이 돌리지 않으시고 하늘의 보화를 약속하십니다.
주를 쫒는 신앙은 기꺼이 자신을 드림에 있습니다.
이번 알파를 향하신 주의 뜻이 나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