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남은 삶은 복음 전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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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42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골로새서 1: 24-29 그리스도인의 남은 삶은 복음 전파입니다
지난 영광 교회 알파 컨퍼런스까지 4차에 걸쳐 우리 교회에서 20명의 교인들이 참여 시켰습니다.
교회에서 회비까지 다 내어 주면서 교육을 시킨 것은 물론 전도의 방법이 기존의 방식과 특별하기도 하였지만 컨퍼런스에 참여한 자들이 듣고 어떤 반응을 가져 올까?를 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지난해 10월에 컨퍼런스와 수련회를 참여를 하고 교인들을 참여시키면서 고민이 생겼습니다.
과연 우리 교회 토양에서 이것을 소화를 시킬 수 있을까? 이었습니다.
숫자도 적고 모두가 생업에 매달려 있으니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또한 우리 교회는 다른 이들을 대외적으로 섬겨보는 일을 그렇게 많이 해 보지 못했습니다.
소이 섬기는 일에 익숙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들끼리도 그럭저럭 교제를 하는데 그것도 몇몇이 안 되지만 서로 맞지 않아 힘이 들어 할 때도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이들을 섬기는 일에는 별로 서로가 사용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사실 노회를 연다 어떤 행사를 한다하면 섬기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나서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침 7시에 어떤 교회에서 모인다고 하면 그 이른 아침에 카페 문을 열고 차와 다과를 대접합니다.
이들의 교회 성도들은 섬기는 일을 많이 하다 보니 몸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일 년에 한 번도 잘 없습니다.
하여튼 역부족이겠구나? 생각만 하고 여러 모양으로 힘도 나지 않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인도자 공부 때에 기도를 시키면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파에 대하여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 봐라 지금 목사는 엄두도 내지 않는데 자기들이 무엇을 안다고 기도하고 있지 자신들이 할 자신은 있으면서 기도는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알파를 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하나님이 저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제가 알파를 누구랑 해 보자고 이야기 하겠습니까?
모두가 자신의 일에 바쁜데 그래서 알파를 위한 기도를 하는데 알파를 해야 하는 2가지 이유가 생겼습니다.
기도 중에 하나는 이 알파가 다른 어떤 이익을 위한 것도 아니고 순수하게 복음을 위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한 다면은 만사를 제쳐두고 이 알파가 교회에서 행하여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복음을 위한다는 데는 아무런 핑계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시기 적으로 알파가 언제가 적기 인가? 을 기도하는데 이것저것 다 제고 있는데 하나님은 제게 지금 이라는 것입니다.
차일피일 하다가는 아무 것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지금입니다.
여태까지 복음을 위하여 훈련받고 또 기도하고 오지 않았냐? 는 것입니다.
내일은 내 시간이 아니고 오늘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시간이다
약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내일에 일을 하기는커녕 내일에 내가 존재해 있을지도 의문인 것입니다.
더 이상 미룰 시간이 없다 이것저것 다 제다가는 시간을 다 낭비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날짜를 잡고 시작하는 것뿐이다 하고 결단을 내리고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다행히 여러 모양으로 협력하는 자들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지난 목요일에는 리허설을 했는데 좀 부족하지만 그래도 우리 교회 수준에는 하노라고 했습니다.
예산은 1000만 원을 잡았지만 이것저것 하다 보니 예산을 휼쩍넘어 1500만 원은 족히 들것 같은데 2000만원 가까이 헌금이 들어와 재정은 감당이 될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우리가 해야 할 것인가?
게스트를 30명 잡으면 1인당 50만을 투자합니다.
인건비등 모든 기반 경비를 다 빼고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가 다른 일에도 필요로 하는데 할지도 모릅니다.
그것 가지고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면 되지 돈 들고 힘들게 할 필요가 없어 하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일을 해야지 내 교회가 살고 내가 살기 때문입니다.
이것 안하면 여기 앞에선 김 목사부터 죽게 생겼습니다.
사표를 던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 새해 들어 3개월이 다 되어 가지만 등록 한 새 신자가 딱 한명입니다.
가끔 조깅을 하기 위하여 강변이나 올림픽 공원 쪽으로 나가 보면 멋있게 조깅 화를 신고 트레인 복을 입고 건강하게 걷고 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게 중에는 옷도 허름한 복장에 몸이 정상이 아닌 자들이 그 사이에 끼어 비틀비틀 거리며 걷는 사람도 있습니다.
손은 비틀어져있고 하체에는 힘이 없어 절둑절둑하고 있습니다.
왜? 가만히 집에나 있지 주책스럽게 그 꼴로 해서 왜 나왔지 하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몸이 비정상이라도 그는 그 몸을 질질 끌면서도 사용해야 합니다.
왜요? 그렇게라도 해야 수족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것저것 다 생각하면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무엇인가? 해 주기만 바라며 목이 빠지라고 기다리며 가만히 있어야만 합니다.
마치 성전 문에 구걸하는 앉은뱅이 같이 말입니다.
절대로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도 하려고 하니 교회의 분위가 바뀌지 않습니까?
낡은 의자가 리모델링하여 깨끗해졌고 섬김이 들의 마음가짐이 남을 섬길 수 있는 남을 포용 할 수 있는 넓은 마음으로 바뀌는 것 아닙니까?
매주 목요일마다 150-200명의 사람들이 밥 한 그릇의 사랑을 받기 위하여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섬김을 하려고 마음을 먹는 그 자체가 축복이 됩니다.
저는 사단의 정체를 알았습니다.
이것저것 핑계를 되어 주의 일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형편 저 형편 들어 차일피일 미루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 알파는 이것을 극복하는 알파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주의 일은 세상 적으로 무엇인가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한다고 합니다.
물론 능력 있는 사람들이 함께 해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이들이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오히려 세상 적으로 아무런 기대가 없는 사람일수록 더욱 믿음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알파를 벌려 놓고 모든 것 위에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인간적인 것으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이 알파는 인간 아무개가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이 인도하는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보라 세상 적으로 기대치를 가진 자는 결코 나아 올수가 없습니다.
눅14:16-20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사업 핑계 인생 핑계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을 높이 평가를 두는 자는 결코 나아 올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주의 일에 참여하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결코 세상일을 우선하는 것이 아닌 자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실 주의 부르심을 입고 사용되어 지는 자를 보면 은 세상 적으로 가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주를 믿는 것 아닙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주의 부름에 응한 자들을 보면 귀부인들과 관료들과 군관들과 심지어는 헤롯왕의 동생등 왕족까지 다 나아왔습니다.
이들이 남보다 못해서 나온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세상에 할 일이 없어 나온 자들도 아닙니다.
주의 부르심이 자신의 그 어떤 직업 신분 가문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사도 바울 역시 당대의 누구보다도 뒤지지 않는 인물입니다.
당대의 법학 박사요 유대인 한 사람 쯤 죽여도 문책을 받을 이유가 없는 권력가요 세도가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느냐? 는 것입니다.
배설물을 버리듯이 다 버렸다고 했습니다.
왜요? 예수를 아는 것은 가장 인생의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삶의 기쁨은 내 인생이 행해야 할 바른 목적을 찾았을 때에 있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칼럼니스트인 버나드 레빈은 인생은 거대한 수수께끼다 그러나 그 답을 찾을 시간이 내게는 없다 라는 글에서 자신이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생의 큰 성공을 이루었지만 헛된 꿈을 쫒느라 현실을 낭비했을까 두렵다고 하였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죽기 전에 내가 왜 태어났는가의 의미를 찾을 시간이 있을까?
나는 아직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얼마이든지 간에 앞으로 살날들은 이제껏 내가 살아온 날보다 짧을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이 문제를 방치해 두는 것은 분명히 위험한 일이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를 알아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우연이었다고는 믿지 않는다.
우연히 아니라면 반드시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의미에 대한 여러 가지 대답들을 들을 수 있었지만 모두가 불충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사도 바울은 이 의미에 대하여 발견을 하였으니 그의 삶 자체가 기쁨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바른 목적을 알고 보니 그 일을 이루기 위한 어떠한 어려움도 그에게는 기쁨이 되었습니다.
24절 내가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이라고 하였으니 곧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일군으로서의 자신을 알고 기뻐한 것입니다.
더 이상 인생을 방황하지 맙시다.
복음을 위한 삶의 전환을 어떤 모양으로도 가져 보십시오
여러분의 삶은 활기가 차고 기쁨의 윤활유가 생겨 잘 돌아 갈 것입니다.
바른 목적의 가치를 안다면 내 모든 것을 투자 할 수가 있습니다.
복음을 알지 못하니 엉뚱한 곳에 올 인을 하는 것입니다.
부천의 초등학교 2학년 박 모 군을 유괴하여 돈을 얻기 위하여 아이를 포대자루에 넣어 살아 있는 아이를 유수지에 던져 수장시킨 일이 얼마 전에 있지 않았습니까?
29세의 젊디젊은 사람이 돈 때문에 아이를 죽이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의 현장입니다.
이 얼마나 삶의 맥이 빠지게 하고 인생 자체가 부끄럽고 슬프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런 세상에 너무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세상 때문에 너무 실망하지도 마십시오
지금 어른의 세계뿐만 아니라 초 중고등 학교 아이들 사이에도 별별 일들이 벌어지는 있지 않습니까?
이 세상이 어디에 목적을 두고 가는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 방향 감각을 잃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나를 평안하게 해 줄 자가 나를 심히 두렵게 할 자로 여겨집니다.
어떻게 변 할지 모릅니다.
무서운 세상입니다.
부모 자식 간에 너무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망이 더 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 간에 무슨 이유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목적이 바르지 못한 부부 관계가 된다면 어떤 비극의 관계로 치 닫을지 모릅니다.
오늘 이와 같은 세상을 우리가 방치만 하고 정죄만 하고 있다면 너무나도 큰 죄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무엇을 투자 하더라도 이들의 가치관을 바꿔야 하며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복음을 심기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알파가 이런 정신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본문의 사도 바울도 이 복음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24절 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하였습니다.
29절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위한 투자만큼 확실한 투자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적어도 30배 60배 100배를 거둘 것이며 이 땅의 것을 심지만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이 같은 위대한 일에 나를 불러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곧 남을 살리는 일이 나의 일이지만 곧 나를 살리는 일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번 알파에 어떤 모습이라고 사용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남을 섬기든지 아니면 섬김을 받으십시오
나는 도움도 안 받고 도움도 안 준다는 나쁜 생각을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이번 알파가 나 때문에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기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영광 교회 알파 컨퍼런스까지 4차에 걸쳐 우리 교회에서 20명의 교인들이 참여 시켰습니다.
교회에서 회비까지 다 내어 주면서 교육을 시킨 것은 물론 전도의 방법이 기존의 방식과 특별하기도 하였지만 컨퍼런스에 참여한 자들이 듣고 어떤 반응을 가져 올까?를 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지난해 10월에 컨퍼런스와 수련회를 참여를 하고 교인들을 참여시키면서 고민이 생겼습니다.
과연 우리 교회 토양에서 이것을 소화를 시킬 수 있을까? 이었습니다.
숫자도 적고 모두가 생업에 매달려 있으니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또한 우리 교회는 다른 이들을 대외적으로 섬겨보는 일을 그렇게 많이 해 보지 못했습니다.
소이 섬기는 일에 익숙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들끼리도 그럭저럭 교제를 하는데 그것도 몇몇이 안 되지만 서로 맞지 않아 힘이 들어 할 때도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이들을 섬기는 일에는 별로 서로가 사용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사실 노회를 연다 어떤 행사를 한다하면 섬기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나서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침 7시에 어떤 교회에서 모인다고 하면 그 이른 아침에 카페 문을 열고 차와 다과를 대접합니다.
이들의 교회 성도들은 섬기는 일을 많이 하다 보니 몸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일 년에 한 번도 잘 없습니다.
하여튼 역부족이겠구나? 생각만 하고 여러 모양으로 힘도 나지 않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인도자 공부 때에 기도를 시키면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파에 대하여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 봐라 지금 목사는 엄두도 내지 않는데 자기들이 무엇을 안다고 기도하고 있지 자신들이 할 자신은 있으면서 기도는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알파를 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하나님이 저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제가 알파를 누구랑 해 보자고 이야기 하겠습니까?
모두가 자신의 일에 바쁜데 그래서 알파를 위한 기도를 하는데 알파를 해야 하는 2가지 이유가 생겼습니다.
기도 중에 하나는 이 알파가 다른 어떤 이익을 위한 것도 아니고 순수하게 복음을 위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한 다면은 만사를 제쳐두고 이 알파가 교회에서 행하여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복음을 위한다는 데는 아무런 핑계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시기 적으로 알파가 언제가 적기 인가? 을 기도하는데 이것저것 다 제고 있는데 하나님은 제게 지금 이라는 것입니다.
차일피일 하다가는 아무 것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지금입니다.
여태까지 복음을 위하여 훈련받고 또 기도하고 오지 않았냐? 는 것입니다.
내일은 내 시간이 아니고 오늘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시간이다
약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내일에 일을 하기는커녕 내일에 내가 존재해 있을지도 의문인 것입니다.
더 이상 미룰 시간이 없다 이것저것 다 제다가는 시간을 다 낭비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날짜를 잡고 시작하는 것뿐이다 하고 결단을 내리고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다행히 여러 모양으로 협력하는 자들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지난 목요일에는 리허설을 했는데 좀 부족하지만 그래도 우리 교회 수준에는 하노라고 했습니다.
예산은 1000만 원을 잡았지만 이것저것 하다 보니 예산을 휼쩍넘어 1500만 원은 족히 들것 같은데 2000만원 가까이 헌금이 들어와 재정은 감당이 될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우리가 해야 할 것인가?
게스트를 30명 잡으면 1인당 50만을 투자합니다.
인건비등 모든 기반 경비를 다 빼고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가 다른 일에도 필요로 하는데 할지도 모릅니다.
그것 가지고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면 되지 돈 들고 힘들게 할 필요가 없어 하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일을 해야지 내 교회가 살고 내가 살기 때문입니다.
이것 안하면 여기 앞에선 김 목사부터 죽게 생겼습니다.
사표를 던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 새해 들어 3개월이 다 되어 가지만 등록 한 새 신자가 딱 한명입니다.
가끔 조깅을 하기 위하여 강변이나 올림픽 공원 쪽으로 나가 보면 멋있게 조깅 화를 신고 트레인 복을 입고 건강하게 걷고 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게 중에는 옷도 허름한 복장에 몸이 정상이 아닌 자들이 그 사이에 끼어 비틀비틀 거리며 걷는 사람도 있습니다.
손은 비틀어져있고 하체에는 힘이 없어 절둑절둑하고 있습니다.
왜? 가만히 집에나 있지 주책스럽게 그 꼴로 해서 왜 나왔지 하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몸이 비정상이라도 그는 그 몸을 질질 끌면서도 사용해야 합니다.
왜요? 그렇게라도 해야 수족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것저것 다 생각하면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무엇인가? 해 주기만 바라며 목이 빠지라고 기다리며 가만히 있어야만 합니다.
마치 성전 문에 구걸하는 앉은뱅이 같이 말입니다.
절대로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도 하려고 하니 교회의 분위가 바뀌지 않습니까?
낡은 의자가 리모델링하여 깨끗해졌고 섬김이 들의 마음가짐이 남을 섬길 수 있는 남을 포용 할 수 있는 넓은 마음으로 바뀌는 것 아닙니까?
매주 목요일마다 150-200명의 사람들이 밥 한 그릇의 사랑을 받기 위하여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섬김을 하려고 마음을 먹는 그 자체가 축복이 됩니다.
저는 사단의 정체를 알았습니다.
이것저것 핑계를 되어 주의 일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형편 저 형편 들어 차일피일 미루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 알파는 이것을 극복하는 알파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주의 일은 세상 적으로 무엇인가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한다고 합니다.
물론 능력 있는 사람들이 함께 해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이들이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오히려 세상 적으로 아무런 기대가 없는 사람일수록 더욱 믿음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알파를 벌려 놓고 모든 것 위에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인간적인 것으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이 알파는 인간 아무개가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이 인도하는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보라 세상 적으로 기대치를 가진 자는 결코 나아 올수가 없습니다.
눅14:16-20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사업 핑계 인생 핑계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을 높이 평가를 두는 자는 결코 나아 올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주의 일에 참여하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결코 세상일을 우선하는 것이 아닌 자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실 주의 부르심을 입고 사용되어 지는 자를 보면 은 세상 적으로 가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주를 믿는 것 아닙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주의 부름에 응한 자들을 보면 귀부인들과 관료들과 군관들과 심지어는 헤롯왕의 동생등 왕족까지 다 나아왔습니다.
이들이 남보다 못해서 나온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세상에 할 일이 없어 나온 자들도 아닙니다.
주의 부르심이 자신의 그 어떤 직업 신분 가문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사도 바울 역시 당대의 누구보다도 뒤지지 않는 인물입니다.
당대의 법학 박사요 유대인 한 사람 쯤 죽여도 문책을 받을 이유가 없는 권력가요 세도가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느냐? 는 것입니다.
배설물을 버리듯이 다 버렸다고 했습니다.
왜요? 예수를 아는 것은 가장 인생의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삶의 기쁨은 내 인생이 행해야 할 바른 목적을 찾았을 때에 있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칼럼니스트인 버나드 레빈은 인생은 거대한 수수께끼다 그러나 그 답을 찾을 시간이 내게는 없다 라는 글에서 자신이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생의 큰 성공을 이루었지만 헛된 꿈을 쫒느라 현실을 낭비했을까 두렵다고 하였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죽기 전에 내가 왜 태어났는가의 의미를 찾을 시간이 있을까?
나는 아직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얼마이든지 간에 앞으로 살날들은 이제껏 내가 살아온 날보다 짧을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이 문제를 방치해 두는 것은 분명히 위험한 일이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를 알아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우연이었다고는 믿지 않는다.
우연히 아니라면 반드시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의미에 대한 여러 가지 대답들을 들을 수 있었지만 모두가 불충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사도 바울은 이 의미에 대하여 발견을 하였으니 그의 삶 자체가 기쁨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바른 목적을 알고 보니 그 일을 이루기 위한 어떠한 어려움도 그에게는 기쁨이 되었습니다.
24절 내가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이라고 하였으니 곧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일군으로서의 자신을 알고 기뻐한 것입니다.
더 이상 인생을 방황하지 맙시다.
복음을 위한 삶의 전환을 어떤 모양으로도 가져 보십시오
여러분의 삶은 활기가 차고 기쁨의 윤활유가 생겨 잘 돌아 갈 것입니다.
바른 목적의 가치를 안다면 내 모든 것을 투자 할 수가 있습니다.
복음을 알지 못하니 엉뚱한 곳에 올 인을 하는 것입니다.
부천의 초등학교 2학년 박 모 군을 유괴하여 돈을 얻기 위하여 아이를 포대자루에 넣어 살아 있는 아이를 유수지에 던져 수장시킨 일이 얼마 전에 있지 않았습니까?
29세의 젊디젊은 사람이 돈 때문에 아이를 죽이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의 현장입니다.
이 얼마나 삶의 맥이 빠지게 하고 인생 자체가 부끄럽고 슬프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런 세상에 너무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세상 때문에 너무 실망하지도 마십시오
지금 어른의 세계뿐만 아니라 초 중고등 학교 아이들 사이에도 별별 일들이 벌어지는 있지 않습니까?
이 세상이 어디에 목적을 두고 가는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 방향 감각을 잃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나를 평안하게 해 줄 자가 나를 심히 두렵게 할 자로 여겨집니다.
어떻게 변 할지 모릅니다.
무서운 세상입니다.
부모 자식 간에 너무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망이 더 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 간에 무슨 이유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목적이 바르지 못한 부부 관계가 된다면 어떤 비극의 관계로 치 닫을지 모릅니다.
오늘 이와 같은 세상을 우리가 방치만 하고 정죄만 하고 있다면 너무나도 큰 죄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무엇을 투자 하더라도 이들의 가치관을 바꿔야 하며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복음을 심기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알파가 이런 정신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본문의 사도 바울도 이 복음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24절 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하였습니다.
29절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위한 투자만큼 확실한 투자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적어도 30배 60배 100배를 거둘 것이며 이 땅의 것을 심지만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이 같은 위대한 일에 나를 불러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곧 남을 살리는 일이 나의 일이지만 곧 나를 살리는 일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번 알파에 어떤 모습이라고 사용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남을 섬기든지 아니면 섬김을 받으십시오
나는 도움도 안 받고 도움도 안 준다는 나쁜 생각을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이번 알파가 나 때문에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기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