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당신의 부모는 내 아들아 딸아 하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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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660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사무엘하 18:31-33오늘도 당신의 부모는 내 아들아 딸아 하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이번 주일은 나를 낳으시고 기르신 어버이를 생각하는 주일입니다.
어버이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면서 날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이제 이만큼 어른이 되어 자식을 낳고 양육을 하면서 보니 부모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 구나를 알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식 낳아 길러 보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부모의 마음은 낳을 때부터 시작하여 죽을 때까지 주야로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생각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오늘 우리 자녀 된 자들은 아셔야 합니다.
어버이 은혜라는 노래를 부르면 눈물이 날 것 같아 어버이 은혜라는 노래는 부르지 말기로 생각을 했는데 오늘 그 유명한 다윗 왕이 아들을 생각하는 눈물을 보고 또 다시 불러 보고 싶습니다.
다 같이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버이의 사랑은 한이 없어라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두 돌 판에 친히 손으로 쓰셔서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모세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10가지를 일러주셨지만 2가지로 요약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이 땅에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또 하나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상 숭배를 하지 않는데서 출발을 하고요 사람의 사랑은 어디에서부터 출발이 되어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사람 사랑의 출발은 여러 사랑이 있지만 부모를 공경하는 사랑을 먼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계명의 첫 계명인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으로 시작함으로 부모 공경이 사람 사랑의 근본임을 하나님께서 친히 밝히신 것입니다.
가족(FAMILY)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이렇다고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이 문장의 각 단어의 첫 글자를 합성한 것이라고 합니다.따라서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결코 정상적인 가정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네 자녀만을 열심히 사랑한다고 가정이 아름답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물론 부모라고 해서 성자는 아닙니다. 부모 역시 자식과 똑같은 인간입니다. 그래서 부모에게는 허물도 많고, 결점도 많을 수 있습니다. 자식이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아픔을 가진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에게 속을 섞이는 자녀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이기에 사랑하듯이 부모 또한 나를 낳아 주신 부모이기 때문에 사랑하라고 하십니다.자녀 없는 사람은 있어도 부모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모가 없이 이 땅에 태어 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 생명의 근원이 내 부모로부터 말미암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불평할지도 모릅니다.
난 원치 않는 상황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야라고 하는데 그러나 이는 허무맹랑한 거짓말입니다.
만약에 지금 내 생명이 다 할 죽게 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면 야호 난 이제야 죽게 되었구나 하고 쾌재를 부르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열이면 열, 다 허겁지겁 죽기 싫어하고 하고 그 자리에서 도망가기에 바쁠 것입니다.
모두 자신의 생명을 그만큼 소중하게 여긴다는 반증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생명은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자신을 위해 생명의 통로가 되어 준 부모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의 생명을 모독하는 짓입니다. 혹 백번 양보해서 부모님이 원하지 않은 아들로, 혹은 원하지 않은 딸로 태어났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왜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태어나게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하지 않는 부모님을 통해서라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야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이 시대의 나실 인으로 부르고 계십니다는 The call 이라는 집회에서 한 형제가 낙태를 왜 반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것을 간증하는 형제는 자기 어머니가 강도에게 강간당하여 태어난 참으로 원치 않는 아이였습니다.
주변에서 낙태시켜라, 그런 경우는 합법적으로도 낙태가 된다. 그러나 자기 어머니는 믿음의 여인이었기 때문에 끝까지 자기를 낳았다는 겁니다.그런데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세상의 정서로는 정상적으로 성장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그가 자랄 때에 누군지도 모르는 아버지가 저주스러웠고, 자기를 낳은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난 후에 왜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 땅에 보내셨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며……. 지금은 같은 처지에 있은 사람들을 돌보며 치유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끝까지 자기 생명을 지켜주고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어머니께 감사를 드린다는 멘트를 잊지 않았습니다. 생명은 아름답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정녕 아름다운 일입니다. 생명보다 더 귀한 보배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생명의 가치를 안다면, 자신에게 생명의 통로가 되어 준 부모를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여태까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모님을 다 용서하시고 더욱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부모의 심정은 내가 희생하더라도 내 자식 잘되기를 바랍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 참 신기합니다. 바로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한 알의 떨어진 밀알이 되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을 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특히 우리나라 부모는 이런 마음이 더욱 강합니다.
모 그룹의 회장은 아들이 매를 맞고 눈가가 찢어진 것을 볼 때에 너무 화가 나서 그룹의 힘을 동원해서 아들을 때린 자들을 찾아 폭행을 하다가 도가 넘쳐 그만 철장 신세를 지고 말았는데 어찌 되었든지 이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회사 직원의 아들이 맞았다고 이렇게 하겠습니까? 이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권사님 한 분이 임종 직전에 사랑하는 자제들을 모아 놓고 이런 고백을 하였답니다.일제 강점기에 세상이 정말 어려워서 먹을 것이 없을 때, 내가 시장 골목을 다니면서 콩나물을 훔쳐서 너희들을 먹여 살렸다. 내가 떳떳하지 못한 것으로 너희들을 먹여 살렸다는 죄책감 때문에 마음의 찔림을 받고 살았단다. 이제 세상을 떠나기 전에 너희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이 에미를 용서해 다오.그 이야기를 들은 자녀들은 다 울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모두 권사님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어머니, 용서해 달라니요. 그런 사정도 알지 못하고 어머님께 제대로 효도하지 못했던 우리들을 용서해 주세요.여러분이 오늘날 그 자리에 있기까지 우리의 부모는 참으로 많은 시간과 정성과 물질을 쏟았습니다. 그 어려웠던 시절, 하루 종일 굶은 여러분을 먹이시기 위해서 나의 어머니는 빵을 훔쳤을지도 모릅니다. 나의 필요한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는 몇 번이나 양심을 접었을는지 모릅니다. 나의 필요로 하는 것을 마련해 주기 위하여 부모님이 여러 차례 거짓말을 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때의 의롭지 못했던 당신들의 행동 때문에 오늘까지 남모르게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할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부모는 많은 수욕과 자존심을 상하면서도 참아 내었습니다.그렇다고 여러분의 부모를 불의한 자라고 지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공경해야 합니다.
내가 의롭고 떳떳하게 번 돈으로 나의 부모의 여생을 편안히 모셔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그 모든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 드려야 합니다.
아버지 왕 자리를 노리고 쿠데타를 일으키는 아들을 아버지 다윗은 왜 울면서 그 자리에서 떠나야 했습니까?
여기에 머물러 있다가 아들을 죽이겠습니까?아들로부터 죽임을 당하겠습니까?
이렇게 못난 아들이지만 더 악한 아들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정처 없이 어디 가서죽더라도 이 길을 떠나야 했다는 말입니다.이게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부모는 네만 잘 된다면 내야 무슨 짓을 못할 것이 어디 있고 나는 무엇이 되어도 괜찮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런 마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까?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이게 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아버지 다윗은 아들을 위하여 광야로 피난길을 떠나 정처 없이방황을 하게 됩니다.
마침내 두 진영에서 전쟁이 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계속 물어봅니다.
아버지의 관심사는 전쟁이 승리했느냐? 아니했느냐? 아닙니다.
오로지 내 아들 압살롬이 평안하냐?내 아들 압살롬이 무사하냐? 입니다.
불효는 고사하고이런 패륜아들이어디있습니까?
용서할 수 없는 이런 나쁜 아들이지만 부모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너를 대적으로 생각했고,원수로 생각하고 사람같이 여기지 않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저가 내 사랑하는 내 생명보다 귀중한 아들일 뿐입니다.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구스사람이 기어이 당신 아들이 죽었소라는 비보를 가지고 옵니다.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그는 아비로서의 심정으로 울음을 터트립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대신하여 죽었다면 좋았을 것을...하면서 계속 통곡을 하는 아버지의 통곡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천하에 죽일 놈이요. 못된 사람이요. 패륜아라고 했겠지만, 원수라고 했겠지만 아버지는 그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아니 자신의 생명이라고 아들의 죽음을 대신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내 자녀가 잘못 되었음을 다 나의 잘못으로 여깁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효(孝)를 주제로 하는 대담 프로에서 국문학자인 김열규 교수에게 사회자가 효에 대해서 물었을 때에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세대는 소위 자기 자신의 출세를 위하여 고향을 등지고, 부모를 버렸던 최초의 세대입니다. 이런 내가 과연 오늘 이 자리에서 효에 대해서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지 두렵습니다. 라고 했습니다.지금의 60-70대는, 김 교수의 고백처럼, 자신을 위해 고향과 부모를 등졌던 이 땅의 첫 세대들이라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본의 아니게 부모를 제대로 공경하지 못했던 첫 세대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그 자식인 지금의 젊은 세대로부터도 제대로 공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식들은 그들의 부모가 그 부모에게 어떻게 행한 대로 배우기 때문입니다.
왕의 보좌를 내놓고 피난을 가는 이유가 뭡니까?
다 내가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밧세바라는 여자에게 취해서 자기 밑에 있는 충성된 장군을 그 아내를 뺏기 위하여 죽였습니다.
이 사건을 나단선지자가 책망하시면서 너의 집에 칼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말씀을 합니다.
이 말씀을 가슴깊이 새겼습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들 형제들 간에 다투면서 죽이는 일이있었습니다.그럴 때에 이것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심판이라고요.아들이 아버지의 첩을 강간하는일도있었습니다.그래도 이것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심판이라고요.
그가 피난의 길을 나설 때에시므이라고 하는 사람이 다윗을저주합니다.옆에 있던 장군이 그대로 칼을 들어서 목을 내려치려고 합니다. 아서라.그러지 말라.하나님이 저를 저주하라. 하기때문에 하는 것 아니겠느냐?하나님 앞에서 받는 채찍이요. 심판이니까 나무라지 말라. 고 그리고 훌쩍 떠나서 정처 없는피난의 길을광야로 들어갑니다.
내 아들의 패륜이 다 내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 내 죄 때문에저 아들이 이러한 아들이 되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죽어야 하는데 내 대신 네가 죽었구나 하고 울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확신하는 것이 있습니다.
제 자녀의 잘못된 것은 전적으로 제게 있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이 못난 자가 아비가 되어 자녀하나 반듯이 키우지 못하고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못난 것은 다 내 때문이야 이게 부모의 심정입니다.
다윗은 오히려 아들이 어렸을 때잘못된 것을 보았고, 내가 좋지 못한 본을 보여 주어서 그 결과로 이 같은 일이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는 아들을나무라지 않았어요.
그래 너도 피해자다.이런 생각을 하고 그는 집을 나서게 된 겁니다.
오늘날 심리학자들은 버어지니아텍의 조승희를 보고 너도 피해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이라도 바로대고 잘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집 나간 자녀를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끝까지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 자기가 세운 아버지 상이 어떻습니까?이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라는 것은 시간과 함께변한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내가 4살 때 우리아빠는 슈퍼맨이었어요. 내가 6살 때 우리아빠는 박사셨어요. 모르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내가 10살 때 우리아빠는 내가 해달라는건 모든 걸 해주었지요. 내가 12살 때 우리아빠는 항상 일만 하시는 것처럼 보였어요. 내가 14살 때 우리아빠는 나의 수학문제조차 쩔쩔매시더군요.내가 16살 때 우리아빠는 나와는 항상 반대로 의견 차가 심하시더군요.내가 20살 때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였습니다. 아버지가 하는 것은 무엇이든 맞는 게 하나도 없더군요. 30대가 되어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면, 아버지 말씀 중엔 가끔 맞는 말도 있더라고요.40대가 되니까 아버지 말씀 중에는 귀담아 들을 만한 이야기가 많다고 여겨집니다. 50대가 되니까 이럴 때 아버지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실까 생각하게 되고, 이윽고 60대가 되니까 아버지의 말씀이 다 맞습니다. 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내 부모님이 이상이 땅에 계시지 않더군요.
부모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도 행치 않으면서, 자기 자식만 좋아라 여긴다면 그것은 자기 자식에게 불효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자기 자식에 대한 가장 확실한 가정교육입니다. 그렇기에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야말로 곧 자기 생명을 귀중하게 가꾸는 일입니다.
우리들의 부모의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내게 주신 부모님을 참으로 사랑하며 감사하는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기뻐하시며 약속하신 축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이번 주일은 나를 낳으시고 기르신 어버이를 생각하는 주일입니다.
어버이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면서 날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이제 이만큼 어른이 되어 자식을 낳고 양육을 하면서 보니 부모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 구나를 알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식 낳아 길러 보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부모의 마음은 낳을 때부터 시작하여 죽을 때까지 주야로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생각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오늘 우리 자녀 된 자들은 아셔야 합니다.
어버이 은혜라는 노래를 부르면 눈물이 날 것 같아 어버이 은혜라는 노래는 부르지 말기로 생각을 했는데 오늘 그 유명한 다윗 왕이 아들을 생각하는 눈물을 보고 또 다시 불러 보고 싶습니다.
다 같이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버이의 사랑은 한이 없어라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두 돌 판에 친히 손으로 쓰셔서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모세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10가지를 일러주셨지만 2가지로 요약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이 땅에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또 하나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상 숭배를 하지 않는데서 출발을 하고요 사람의 사랑은 어디에서부터 출발이 되어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사람 사랑의 출발은 여러 사랑이 있지만 부모를 공경하는 사랑을 먼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계명의 첫 계명인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으로 시작함으로 부모 공경이 사람 사랑의 근본임을 하나님께서 친히 밝히신 것입니다.
가족(FAMILY)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이렇다고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이 문장의 각 단어의 첫 글자를 합성한 것이라고 합니다.따라서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결코 정상적인 가정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네 자녀만을 열심히 사랑한다고 가정이 아름답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물론 부모라고 해서 성자는 아닙니다. 부모 역시 자식과 똑같은 인간입니다. 그래서 부모에게는 허물도 많고, 결점도 많을 수 있습니다. 자식이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아픔을 가진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에게 속을 섞이는 자녀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이기에 사랑하듯이 부모 또한 나를 낳아 주신 부모이기 때문에 사랑하라고 하십니다.자녀 없는 사람은 있어도 부모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모가 없이 이 땅에 태어 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 생명의 근원이 내 부모로부터 말미암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불평할지도 모릅니다.
난 원치 않는 상황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야라고 하는데 그러나 이는 허무맹랑한 거짓말입니다.
만약에 지금 내 생명이 다 할 죽게 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면 야호 난 이제야 죽게 되었구나 하고 쾌재를 부르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열이면 열, 다 허겁지겁 죽기 싫어하고 하고 그 자리에서 도망가기에 바쁠 것입니다.
모두 자신의 생명을 그만큼 소중하게 여긴다는 반증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생명은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자신을 위해 생명의 통로가 되어 준 부모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의 생명을 모독하는 짓입니다. 혹 백번 양보해서 부모님이 원하지 않은 아들로, 혹은 원하지 않은 딸로 태어났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왜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태어나게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하지 않는 부모님을 통해서라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야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이 시대의 나실 인으로 부르고 계십니다는 The call 이라는 집회에서 한 형제가 낙태를 왜 반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것을 간증하는 형제는 자기 어머니가 강도에게 강간당하여 태어난 참으로 원치 않는 아이였습니다.
주변에서 낙태시켜라, 그런 경우는 합법적으로도 낙태가 된다. 그러나 자기 어머니는 믿음의 여인이었기 때문에 끝까지 자기를 낳았다는 겁니다.그런데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세상의 정서로는 정상적으로 성장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그가 자랄 때에 누군지도 모르는 아버지가 저주스러웠고, 자기를 낳은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난 후에 왜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 땅에 보내셨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며……. 지금은 같은 처지에 있은 사람들을 돌보며 치유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끝까지 자기 생명을 지켜주고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어머니께 감사를 드린다는 멘트를 잊지 않았습니다. 생명은 아름답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정녕 아름다운 일입니다. 생명보다 더 귀한 보배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생명의 가치를 안다면, 자신에게 생명의 통로가 되어 준 부모를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여태까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모님을 다 용서하시고 더욱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부모의 심정은 내가 희생하더라도 내 자식 잘되기를 바랍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 참 신기합니다. 바로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한 알의 떨어진 밀알이 되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을 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특히 우리나라 부모는 이런 마음이 더욱 강합니다.
모 그룹의 회장은 아들이 매를 맞고 눈가가 찢어진 것을 볼 때에 너무 화가 나서 그룹의 힘을 동원해서 아들을 때린 자들을 찾아 폭행을 하다가 도가 넘쳐 그만 철장 신세를 지고 말았는데 어찌 되었든지 이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회사 직원의 아들이 맞았다고 이렇게 하겠습니까? 이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권사님 한 분이 임종 직전에 사랑하는 자제들을 모아 놓고 이런 고백을 하였답니다.일제 강점기에 세상이 정말 어려워서 먹을 것이 없을 때, 내가 시장 골목을 다니면서 콩나물을 훔쳐서 너희들을 먹여 살렸다. 내가 떳떳하지 못한 것으로 너희들을 먹여 살렸다는 죄책감 때문에 마음의 찔림을 받고 살았단다. 이제 세상을 떠나기 전에 너희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이 에미를 용서해 다오.그 이야기를 들은 자녀들은 다 울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모두 권사님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어머니, 용서해 달라니요. 그런 사정도 알지 못하고 어머님께 제대로 효도하지 못했던 우리들을 용서해 주세요.여러분이 오늘날 그 자리에 있기까지 우리의 부모는 참으로 많은 시간과 정성과 물질을 쏟았습니다. 그 어려웠던 시절, 하루 종일 굶은 여러분을 먹이시기 위해서 나의 어머니는 빵을 훔쳤을지도 모릅니다. 나의 필요한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는 몇 번이나 양심을 접었을는지 모릅니다. 나의 필요로 하는 것을 마련해 주기 위하여 부모님이 여러 차례 거짓말을 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때의 의롭지 못했던 당신들의 행동 때문에 오늘까지 남모르게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할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부모는 많은 수욕과 자존심을 상하면서도 참아 내었습니다.그렇다고 여러분의 부모를 불의한 자라고 지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공경해야 합니다.
내가 의롭고 떳떳하게 번 돈으로 나의 부모의 여생을 편안히 모셔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그 모든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 드려야 합니다.
아버지 왕 자리를 노리고 쿠데타를 일으키는 아들을 아버지 다윗은 왜 울면서 그 자리에서 떠나야 했습니까?
여기에 머물러 있다가 아들을 죽이겠습니까?아들로부터 죽임을 당하겠습니까?
이렇게 못난 아들이지만 더 악한 아들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정처 없이 어디 가서죽더라도 이 길을 떠나야 했다는 말입니다.이게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부모는 네만 잘 된다면 내야 무슨 짓을 못할 것이 어디 있고 나는 무엇이 되어도 괜찮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런 마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까?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이게 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아버지 다윗은 아들을 위하여 광야로 피난길을 떠나 정처 없이방황을 하게 됩니다.
마침내 두 진영에서 전쟁이 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계속 물어봅니다.
아버지의 관심사는 전쟁이 승리했느냐? 아니했느냐? 아닙니다.
오로지 내 아들 압살롬이 평안하냐?내 아들 압살롬이 무사하냐? 입니다.
불효는 고사하고이런 패륜아들이어디있습니까?
용서할 수 없는 이런 나쁜 아들이지만 부모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너를 대적으로 생각했고,원수로 생각하고 사람같이 여기지 않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저가 내 사랑하는 내 생명보다 귀중한 아들일 뿐입니다.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구스사람이 기어이 당신 아들이 죽었소라는 비보를 가지고 옵니다.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그는 아비로서의 심정으로 울음을 터트립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대신하여 죽었다면 좋았을 것을...하면서 계속 통곡을 하는 아버지의 통곡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천하에 죽일 놈이요. 못된 사람이요. 패륜아라고 했겠지만, 원수라고 했겠지만 아버지는 그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아니 자신의 생명이라고 아들의 죽음을 대신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내 자녀가 잘못 되었음을 다 나의 잘못으로 여깁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효(孝)를 주제로 하는 대담 프로에서 국문학자인 김열규 교수에게 사회자가 효에 대해서 물었을 때에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세대는 소위 자기 자신의 출세를 위하여 고향을 등지고, 부모를 버렸던 최초의 세대입니다. 이런 내가 과연 오늘 이 자리에서 효에 대해서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지 두렵습니다. 라고 했습니다.지금의 60-70대는, 김 교수의 고백처럼, 자신을 위해 고향과 부모를 등졌던 이 땅의 첫 세대들이라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본의 아니게 부모를 제대로 공경하지 못했던 첫 세대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그 자식인 지금의 젊은 세대로부터도 제대로 공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식들은 그들의 부모가 그 부모에게 어떻게 행한 대로 배우기 때문입니다.
왕의 보좌를 내놓고 피난을 가는 이유가 뭡니까?
다 내가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밧세바라는 여자에게 취해서 자기 밑에 있는 충성된 장군을 그 아내를 뺏기 위하여 죽였습니다.
이 사건을 나단선지자가 책망하시면서 너의 집에 칼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말씀을 합니다.
이 말씀을 가슴깊이 새겼습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들 형제들 간에 다투면서 죽이는 일이있었습니다.그럴 때에 이것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심판이라고요.아들이 아버지의 첩을 강간하는일도있었습니다.그래도 이것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심판이라고요.
그가 피난의 길을 나설 때에시므이라고 하는 사람이 다윗을저주합니다.옆에 있던 장군이 그대로 칼을 들어서 목을 내려치려고 합니다. 아서라.그러지 말라.하나님이 저를 저주하라. 하기때문에 하는 것 아니겠느냐?하나님 앞에서 받는 채찍이요. 심판이니까 나무라지 말라. 고 그리고 훌쩍 떠나서 정처 없는피난의 길을광야로 들어갑니다.
내 아들의 패륜이 다 내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 내 죄 때문에저 아들이 이러한 아들이 되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죽어야 하는데 내 대신 네가 죽었구나 하고 울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확신하는 것이 있습니다.
제 자녀의 잘못된 것은 전적으로 제게 있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이 못난 자가 아비가 되어 자녀하나 반듯이 키우지 못하고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못난 것은 다 내 때문이야 이게 부모의 심정입니다.
다윗은 오히려 아들이 어렸을 때잘못된 것을 보았고, 내가 좋지 못한 본을 보여 주어서 그 결과로 이 같은 일이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는 아들을나무라지 않았어요.
그래 너도 피해자다.이런 생각을 하고 그는 집을 나서게 된 겁니다.
오늘날 심리학자들은 버어지니아텍의 조승희를 보고 너도 피해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이라도 바로대고 잘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집 나간 자녀를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끝까지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 자기가 세운 아버지 상이 어떻습니까?이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라는 것은 시간과 함께변한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내가 4살 때 우리아빠는 슈퍼맨이었어요. 내가 6살 때 우리아빠는 박사셨어요. 모르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내가 10살 때 우리아빠는 내가 해달라는건 모든 걸 해주었지요. 내가 12살 때 우리아빠는 항상 일만 하시는 것처럼 보였어요. 내가 14살 때 우리아빠는 나의 수학문제조차 쩔쩔매시더군요.내가 16살 때 우리아빠는 나와는 항상 반대로 의견 차가 심하시더군요.내가 20살 때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였습니다. 아버지가 하는 것은 무엇이든 맞는 게 하나도 없더군요. 30대가 되어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면, 아버지 말씀 중엔 가끔 맞는 말도 있더라고요.40대가 되니까 아버지 말씀 중에는 귀담아 들을 만한 이야기가 많다고 여겨집니다. 50대가 되니까 이럴 때 아버지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실까 생각하게 되고, 이윽고 60대가 되니까 아버지의 말씀이 다 맞습니다. 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내 부모님이 이상이 땅에 계시지 않더군요.
부모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도 행치 않으면서, 자기 자식만 좋아라 여긴다면 그것은 자기 자식에게 불효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자기 자식에 대한 가장 확실한 가정교육입니다. 그렇기에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야말로 곧 자기 생명을 귀중하게 가꾸는 일입니다.
우리들의 부모의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내게 주신 부모님을 참으로 사랑하며 감사하는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기뻐하시며 약속하신 축복을 내리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