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일군들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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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34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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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11:10-19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일군들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는 많은 목사님들과 성도들의 축복 속에서 지난 주일에 처음으로 장로님을 세우고 그리고 제2차로 안수집사님과 권사님들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많은 일군들이 세워지고 보니 참으로 든든하기 짝이 없습니다.
앞으로 이들을 통하여 주의 일을 이루어 나갈 것을 생각하니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말씀으로 다져지고 기도와 헌신으로 자신을 드리려는 자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만들어져 가니 희망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제자반과 알파 프로그램과 새 가족 교육을 통하여 성도들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을 볼 때에 우리 교회는 성장하지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성장되는 것이 하나님의 열망입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성장의 열망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 가운데 부름을 받은 일군들을 통하여 이루어지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을 통하여 일을 이루십니다.
이스라엘의 다윗의 왕국이 세워진 것도 역시 하나님의 뜻이 계셨으며 또한 그 뜻을 붙잡은 일군들을 통하여 이루어져 갑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다윗의 나라는 다윗과 함께 하는 용사들이 다윗을 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건국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도 사랑하는 여러 성도들이 모두 일군임을 알고 일어 날 때에 이 교회는 든든히 세워 갈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이 교회 성장과 더불어 함께 복된 자가 될 것입니다.
수고한대로 하나님은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용사들은 어떤 정신을 가졌습니까? 하나님이 교회의 성장을 원하신다는 뜻을 알았습니다.
다윗의 나라가 세워지도록 이들이 힘을 합쳐서 노력을 한 이유는 10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신 말씀대로 함이었더라 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이와 같이 주의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가는 것은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성장의 큰 장애거리는 사람의 잘못된 생각입니다.
자꾸만 일군들이 하나님의 뜻을 말하기를 꺼려하고 내 생각에는 내 생각에는 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의 교회를 섬기면서 크게 느낀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내 생각에는 하는 소리로 인하여 교회가 교회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지 인간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니 여기까지 올 수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의 소리를 듣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병이 온 몸에 펴진 아람나라의 한 장군이 병 낫기를 위하여 이 짓 저 짓 인간이 할 수 있는 짓을 다 해 보았지만은 병은 점점 심하여 졌습니다. 이제 할 수없이 인간적인 것은 다 해보아도 안 되니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주의 종에게 찾아옵니다. 왜요 안수기도 받고 병이 낫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안수 기도도 안 해주고 상처도 만져주지 않고 듣기 좋은 소리도 안 해 주고 그 길로 요단강에 가서 목욕을 하면 낳을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 주지 않으니 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치유 방법을 말하고는 씩씩 거리며 돌아 갈 판입니다.
돌아가면 무엇하겠다는 것입니까? 딱 한 가지 방법 밖에 없습니다.
나병을 앓다가 손가락도 발가락도 떨어지고 코도 문 들어 지고 집에도 못 살고 식구들과 떨어져 평생 격리 수용되다가 죽는 일 밖에 더 없습니다. 그러면서 내 생각에는 내 생각에는 하고 죽을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분들을 보십시오
이것은 배우든지 배우지 못했든지 가졌든지 가지지 못했든지 자신의 주관이 얼마나 강한지 내 생각이 예수를 못 믿게 만들고 있습니다.
주의 일군은 내 생각에 메여 있는 자가 아닙니다. 주의 뜻에 메여 있는 자입니다.
어떤 사람이 야간에 고기를 잡고 밥 먹고 사는 자인데 그날따라 자신의 상식과 경험이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만 허탕을 치게 되었습니다.
힘없이 돌아오면서 오늘은 밑진 장사지만 내일은 좋은 일이 생기겠지 하고 막연히 내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내일이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꼭 안 되는 사람들이 막연히 내일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내년에는 잘 되겠지 우리 자녀들은 잘 되겠지 하지만 보장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내가 어떻게 하느냐? 가 내일이 어떻게 될 것을 기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복을 받으려고 하니 생각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게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내일까지 기다릴 필요 없다 너 상식에 견주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당장한번 해 봐라 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 고집을 피우지 않고 예 알겠습니다.
누구 말씀인데 감히 제 고집을 피우겠습니까? 하고는 예수님의 뜻을 따라 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자신이 평생에 경험해 보지 못한 기적이 일어 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주의 일을 하면서 얼마든지 잘살고 잘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주의 일군은 자신의 주장 할 만한 그 어떤 이유가 있지만 그것을 다 내 세우는 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뜻이라면 하고 주의 뜻에 자신을 드리는 자입니다.
이런 자들을 통하여 다윗의 나라는 만들어져 가고 주의 교회는 든든히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의 뜻 앞에 자신이 죽는 것입니다.
여성이지만 주의 뜻이라면 목숨이라도 거는 자가 있음으로 민족이 구원을 받고 큰일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여성 에스더를 통하여 민족이 살고 여성 마리아를 인류의 구원을 가져 오는 길을 열었습니다.
주의 일군은 사사로운 변론을 세우지 말고 주의 뜻에 인생을 거는 자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온 천하는 여호와 앞에 입을 다물어 라고 하였습니다.
지혜서의 잠언에서는 말은 은이지만 침묵은 금이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일군은 주의 뜻이 무엇인가를 살피는 자입니다.
그리고 주의 뜻을 찾아내는 자입니다. 그리고 그 뜻에 운명을 거는 자입니다.
다윗은 이런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주의 뜻을 기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으며 모세는 주의 뜻에 즐겨 따르는 자의 복은 무엇을 하든지 축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제발 뒤에서 빈정대는 자가 아니라 앞에서 순종하여 나가는 대장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를 통하여 주의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가는복된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저것 인간 생각을 말하다가 사람 다 사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다시 살리셨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종교와 학문은 어떠합니까? 인간적인 생각을 말하다가 다 사망입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먹을 것도 아닙니다. 금덩어리도 아닙니다. 인간의 인정도 아닙니다.
죽음에 자리에서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물에 빠져 살려달라고 허우적거리는 사람에게 석가모니가 다가가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그렇게 되었는고 업이로다 하면서 지나가더랍니다.
잠시 후에 공자가 지나가더니, 숨을 가쁘게 쉬면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에게 이렇게 뭇습니다. 자네 생년월일이 무엇인고? 여보시오. 지금 내가 죽게 되었는데 무슨 생년 월이요 하니, 이 사람아 그것을 알아야 건져 줄 것이 아닌가? 어서 말해보게나 아이고, 사람 죽겠네, 아무년 아무월 아무날 아무시오
갑자 을축 병인 정묘 하더니 자네 물에 빠져죽을 팔자일세 하면서 그냥 지나가더랍니다.
이제는 더 이상 변론을 삼가 할 때가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일군 즉 주의 교회의 일군은 어떤 자입니까? 선을 위하여 일어나는 자입니다.
선을 알고도 행치 않는 것이 악입니다. 나쁜 짓을 안 해서니 괜찮다는 것 아닙니다.
자기 윤리 도덕 기준으로 열심히 산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선의 요구에 내 자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루마니아의 신학자 조셉 티손(Joseph Tson)목사가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고국 루마니아로 돌아가려고 할 때 많은 친구들이 그를 말렸습니다. 그 당시 루마니아는 공산당 정권이 지배하면서 수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을 죽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티손목사는 어려움에 처한 고국 루마니아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고는 순교를 각오하고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상대로 그는 체포되었고 많은 고문을 받았습니다. 공산당 관리는 티손목사에게 더 이상 복음을 전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티손 목사는 당신이 가진 무기는 죽이는 것이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는 죽어 순교하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나의 설교 테이프는 전국에 배포되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죽이면 수많은 사람이 피로 물든 순교자의 메시지를 들으려고 야단일 것입니다. 나는 순교 당하는 것을 최상의 승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공산당 관리는 순교를 결심한 티손목사를 집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자유롭게 설교하고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티손 목사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지나간 25년 간 나는 살기를 원했기 때문에 겁에 질려 나약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 왔다.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공산당 정권의 규정에 순종한 것은 죽음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순교를 각오한 뒤로는 두려울 게 없었다. 나는 가고 싶은 곳에 가서 마음껏 복음을 증거하였지만 그들은 나를 죽이지 못하였다. 지나간 25년 나는 내 목숨을 살리려다 잃어버린 삶을 살았다. 그러나 이제 스스로 내 목숨을 선을 위하여 버리려고 하자 나의 삶을 되찾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왜 나를 통하여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가?입니다. 내가 살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선을 어떤 것으로든지 핑계 삼아 피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용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방의 나라 블레셋이 무고한 백성들을 죽이고 위협하고 재산을 빼앗아 폭행을 할 때에 한 발자국도 물러가지 않고 블레셋을 치고 그 밭을 지켜내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선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에게는 주의 일 앞에는 핑계거리를 많이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날마다 세상에 항복을 하고 맙니다.
이런 사람들은 믿을 수 없고요 주의 일도 절대로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이룰 수도 없습니다.
죄가 무엇이 죄가 됩니까?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않는 것입니다.
왜 내가 기분 나빠서 주의 일을 못하겠다는 것입니까?
왜 누구 때문에 못하겠다는 것입니까? 그 속을 들어다보면 다른 이를 핑계 삼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입니다.
사람들이 왜 예수를 믿지 못합니까? 자기를 더 사랑하고 세상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한번 시험된 일이 닥치면 그 사람의 본심이 나오는 것입니다.
선을 추구한 사람은 선을 죽어도 쫒습니다.
그러나 위선적으로 행한 자는 언제 내가 그랬나 하고 그 자리를 피해 버립니다.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배를 불리는 기적 각종 병을 고치는 신유의 기적이 일어 날 때에는소히 억수로 모여 들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막상 십자가를 지시게 될 때에는 다 도망가지 않았습니까?
아직도 나의 신앙이 이렇게 치사하고 불완전한 신앙인으로 남아 있음이 부끄럽지 않습니까?
왜 이순신 장군을 불멸의 이순신이라고 불리웁니까?
죽어가면서도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고 끝까지 북을 울려라 이것입니다.
죽어서도 말을 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죽더라도 굳은 의지는 살아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 기독의 정신은 죽어도 사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자가 아닙니까?
다윗의 용사는 어떤 자입니까? 교회의 위계질서를 따라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도 잘 하는 자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바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바르지 못합니다.
이해가 되고 용납이 되는 것만이 내가 행할 것으로 여기니 문제입니다. 이것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질서입니다. 하나님은 어지럽힘의 하나님이 아니요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은 적당하고 질서대로 하라
다윗으로 하여금 용사들은 이해가 되지 않고 용납이 되지 않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위계질서를 지키는 한 척도가 되었습니다.
왜 블레셋 사람들이 진치고 있는 베들레헴의 우물물을 마시고 싶다고 했는가? 입니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 뿐인 아들 이삭을 재물로 바치라고 하는가? 입니다.
계속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럴 수가 있습니까? 하고 인생을 따지다가 다 보낼 작정입니까?
그래서 무엇이 남습니까? 허울 좋은 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위계질서를 지킴으로 나는 없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남을 줄 믿습니다.
이제 이들은 인정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사건이후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줄로 인정이 되었고요
다윗의 용사들은 하나님께 인정이 되었습니다.
용사들이 목숨을 걸고 가져온 것은 하나님께 드려지게 된 것입니다.
충성스러운 일군들은 지휘관으로 하여금 내가 이 부하들을 위해서라면 내 모든 것 버리겠다, 나를 위해서 부하들의 목숨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부하들을 위해서 내 목숨을 버리겠다는 맹세를 하게 합니다.어떤 이들은 내가 이들을 위하여 무엇을 해 주겠어 욕이나 안하고 저주나 안 하는 것이 다행인 줄 알아 이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충성스러운 교인들은 목사로 하여금 내가 이 성도들을 위해서라면 내 목숨 모두를 아낌없이 불사르겠다는 서원을 새롭게 하게 만듭니다.
충성스러운 성도는 교역자에게 도전을 줍니다. 훌륭한 교역자가 되게 합니다. 좋은 목사가 좋은 교회를 만드는 법입니다만 반대로 좋은 성도가 좋은 교역자를 만들기도 합니다. 본문 후반에는 나머지 건국 인물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잘 알지 못하지만 다윗의 눈에는 너무나 선명한 자들이요,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자들이었음에 분명합니다.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헌신과 충성이 없었다면 그와 같은 왕권을 이루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다윗의 위업과 공적, 명성 그 이면에는 이런 숨어 있는 사람들의 땀과 피가 있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 공동체 안에도 주의 교회를 일구어 내는 숨어 있는 일군들이 있습니다.
한 번 언급되면 언제 다시 무대 위에 오를지 모르는 무명의 헌신 자들이 있습니다. 조명이 비춰진 무대가 아니라 할지라도 조명 없는 그 자리에서 헌신하고 수고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른 자들을 기억하고 나 역시 이런 반열에 서는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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