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새롭게 살아야 할 나의 인생 길

페이지 정보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00회 작성일 2009-05-27 09:41

본문

누가복음 5 : 1-11 이제라도 새롭게 살아야 할 나의 인생 길
제가 한 20년 전에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약 한 달간 미국 전역을 여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미 동부 플로리다 주의 멕시코 만을 따라 내려 가다보면 키웨스트라는 미국 땅 끝 마을 이라고 불리고 있는 인구 2-3만 명의 아름다운 작은 도시가 하나 있습니다. 쿠바와 멕시코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거기에는 노벨 문학상을 탄 소설가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의 시나리오를 썼다는 조그마한 서제가 바닷가에 있었습니다. 헤밍웨이는 아주 세상을 낙천적으로 보냈다는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낙천적이면 통상 술과 여자를 즐기고 그가 자주 다니는 술집의 남자 소변기를 뜯어 와서 자신의 정원의 어항을 만들어 놓기도 하고 재미있는 인생을 살았던 것 같았는데 그의 나이 62세에 엽총으로 자살로 그 인생을 끝냈다고 합니다.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은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라는 말도 합니다 그가 85일이라는 긴 항해 끝에 큰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이제 노인은 항구로 향하여 물고기를 끌고 오는 길에 상어 떼를 만나게 되어 물고기는 상어의 밥이 되고 앙상한 뼈만 남게 되었습니다.
참 허무하지 않습니까?
어쩌면 헤밍웨이는 자신의 삶을 이 글에 표현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하게 합니다.
아니 이것은 헤밍웨이의 모습이라고만 할 수 없고 하나님이 없는 우리 인생의 마지막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일찍이 모세는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편 90:10)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자랑할 것이 없는 인생입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도서 1:2-3) 라고 했습니다.
저도 한 두 주 전에 캄보디아 앙코르왓 유적지를 둘러보고 죽지 않고 무사히 돌아 왔지만 어떤 분들은 시신(屍身)이 되어 가족들에게 돌아왔습니다.
이들에게 주어진 삶이 무엇으로 유익한가입니다.
솔로몬은 그의 전도서에서 사람이 해아래서 수고하는 것이 자기에게 무엇으로 유익한고 라고 묻지 않았습니까?
어쩌면은 우리 인생은 너나 할 것 없이 내 인생에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 일에 세월을 소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갈릴리 호수의 어부 인 베드로 역시 보통 사람들과 같이 허무를 느끼며 또 내일 역시 그런 허무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데 그는 더 이상 허무 하지 않는 인생의 새로운 방향 전환을 가져 오게 되었습니다.
5절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만은 이것으로 끝내지 않고 말씀에 의지하여 새로운 인생을 경험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는 더 이상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하루하루 인생을 연명해 가는 자가 아니라 많은 사람을 위하는 인생으로 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 여기 모인 우리 모두가 다 힘겹게 살아가는 인생임을 실감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신앙의 유무와 상관이 전혀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경제적으로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만 있으면 만사가 형통인데 하고 돈이 원수가 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부부 문제로 자식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누구만 나를 속상하지 않게 하면 우리 가정은 행복 하는 데 하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그 외 직장 건강 등등의 문제로 인생이 참으로 힘겨운 짐이 되어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 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의 해결만이 최고의 삶이라고 여기며 고민하고 기도하고 벗어나기에 안간 힘을 쏟고 있습니다만 은 실상은 그렇지 않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문제가 더 힘들어 지고 나중에 하는 말이 헛살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제가 어떤 한 분을 만나 상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괜찮은 집안 같습니다.
그러나 어떤 문제 하나로 인하여 그가 하는 말이 딱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을 하였습니다.
내가 세상을 지금까지 헛살았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헛살았다고 할 삶을 내 인생 참 잘 살았다고 할 수 있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팔자를 바꿔야 합니다.
여자가 남자하나 잘 만나면 팔자가 바뀐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은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면 팔자가 바뀝니다. 할렐루야!
역사적으로 팔자가 바뀐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생각만 바뀌고 사고만 조금 바꿔도 삶이 달라 질수 있습니다.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 (Thomas Edison)은 저능아라는 이유로 초등학교에서 쫓겨났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천여 가지의 발명품을 만들어 인류 문명에 큰 공헌을 한 발명가가 되었습니다.
유명한 과학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4살이 되도록 말을 하지 못하고 7살 때까지 글도 읽을 줄 몰랐지만, 후에 세계적인 석학이 되었습니다.
베토벤(L. von Beethoven)은 학교 다닐 때 음악에 대한 재능이 없다고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후에 위대한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월트 디즈니(Walt Deseny) 는 너무 가난하여 교회 지하실에 쭈그려 앉아 자신을 비관하면서 지낼 때도 있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미키 마우스 그림을 그려 마침내는 유명한 디즈니랜드를 만들어 성공적인 기업가가 된 것입니다.
이제라도 내가 찾을 수 있는 새롭게 살 길은 무엇입니까?
삶의 방향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오직 본능적인 욕구를 만족하기 위한 대로만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모든 사람들 특히 예수 믿는 성도들도 마찬가지 육체적인 자신들의 소욕만 잘되기를 바라고 살아 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한번 물어 봅시다.
여러분들은 하는 일이 잘되기를 바라시죠? 여러분들은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를 바라시죠?
여러분들의 가정이 행복하기를 바라시죠?
누구나 잘 되기를 바라는데 잘못되었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잘 되기를 바라는데 잘 안되는데 있습니다.
누가 잘못되라고 하십니까? 그런데 잘못되더라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의 인생이 사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지 않습니까?
밤잠도 안자고 수고를 하였지만 의도하는 바대로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잘되고 잘 안 되고는 그 소관이 우리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농사를 잘 지으려고 하는데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내 의지와 상관이 없이 농사를 망치는 것입니다.
농사를 잘 지어도 농산 가격이 폭락을 하면 하나 팔지도 못하고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러니 내 욕심만 앞장서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고 낙을 누리는 것이 다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문제가 하나님의 선물에만 관심이 있고 하나님께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자 보실까요?
베드로는 고기를 잡는 어부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부로서 고기를 많이 잡아야 하는 그 밤이 한 마리의 고기를 잡지 못하고 바다에서 돌아와야만 하는 매우 허탈하고 슬픔의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이 빈 그물에 가득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셨고,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행하여서 그가 원하는 고기를 심히 많이 잡아 친구의 배에도 가득 채워 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 성도가 가져야 할 것은 내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중(意中)입니다.
그리고 관심이 하나님의 의지이어야 합니다.
그만 베드로는 주님 앞에 엎드려 하는 말이 내가 여태까지 헛살았습니다.
대단히 잘못 살았습니다. 내가 죽을 죄인입니다. 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참으로 복된 자가 되려고 하면은 자꾸 세상일만 말하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말하시기 바랍니다.
자꾸 내 소리만 들어 달라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도 막연하게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인생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절대로 잘 될 일이 없는 줄 미리 아시기 바랍니다.
이제 더 이상 실망 할 일을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는 믿음이 되지 마시고 내가 주의 뜻에 드려지기를 힘쓰는 믿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때때로 내 이성과 상식과 경험으로 덤벼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은혜의 풍성함을 경험하지 못하는 자는 자기 수준의 신앙에 있기 때문입니다.
왜 어떤 사람은 은혜가 되는데 자신은 은혜가 안 됩니까?
왜 어떤 사람은 날마다 은혜라고 하는데 자신은 한 평생을 살아도 은혜가 되지 않습니까?
옥스퍼드의 대학교수였던 요한 웨슬레(John Wesley) 는 합리주의적, 지성적으로 기독교를 해석하려고 했지만 구원의 확신이 생기지 않고 자꾸 삶의 불안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는 올더스게이트(Alderstate)의 어느 작은평신도 집회에 참석했다가 평신도들이 모여 성경을 읽으면서 기도하는 모습에서 마침내 그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구원받았다는 확실한 체험을 하고 나서 오늘의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내 인성과 내 생각으로 축복을 가로 막고 삶의 풍요로움을 가로 막고 기갈에 빠지게 하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아직도 내 생각에는 내 생각에는 하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은 나를 복되게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나로 풍성한 삶을 살게 하려 오셨습니다.
요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제 내가 달려가야 할 새롭게 산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길이 나를 살리는 길입니다. 나만 살려고 하니 다 죽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 온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은 이제부터 사람을 취하라고 하였습니다.
고기만 얻으려고 하지 말고 내 자신만을 위한 삶에만 인생을 보내지 말고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람을 낚아보지 않겠느냐? 는 것입니다.
이제 새롭게 살 길은 복음입니다.
사람에게 올바른 지식이 있으면 올바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올바른 지식이 있을 때 인생의 삶도 올바르게 살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할 때 그는 그릇된 인생을 살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갖게 되는 이 지식이라는 것은 생명과도 같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안다고 하고 천하 만물을 다 안다는 식으로 떠들고 다닙니다.
나는 하나님 없이도 내가 누구인지 안다고 하지만 그것은 자기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일 것입니다.
인생은 자신을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이 자기 자신이라고 하지만 도리어 자기를 알지 못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고 나는 죄인입니다. 이 죄 많은 인생 앞에 하나님이 오시다니, 나를 떠나 주시옵소서, 하고 주님 앞에 간청했던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베드로에게 축복하시면서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학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퀴리부인은 어려서 부터 자신의 어머니에게 단 한 번도 키스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퀴리 부인의 마음에는 언제나 나는 주어다 기른 아이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의심은 퀴리부인의 삶과 인격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바로 알고 보니 그녀의 어머니는 평생 결핵을 앓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딸에게 키스를 해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의 삶에 전인격적인 영향을 미치게 마련입니다.
이제 베드로는 과거에는 전혀 생각 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애지중지(愛之重之) 했던 그것만을 위하여 살아갔던 그 모든 것을 버릴 수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쫒으니 라고 했습니다.
그전에는 고기를 잡기 위한 베드로였으나, 새 사람 된 베드로는 이제 사람을 살리는 어부가 되리라 하셨습니다.
여태까지 우리의 삶은 먹고 살기 위한 삶이었는데 이제는 주를 위하여 사는 자로 바뀌어 버리지 않았습니까?
이게 원통하고 분통한 일입니까?
얼마나 감사하고 축복된 일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과거에는 모든 것을 나를 위하여 사용되었는데 그것도 부족하여 남을 위하고 주를 위하는데 는 눈곱만큼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하여 쓸 것은 없어도 주를 위하여 쓸 것은 언제든지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평생 고기나 잡아먹다 이름 없이 사라져 버릴 무식한 어부 시몬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말씀에 깊이 의지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했으며, 오늘도 우리에게 큰 감명을 주며, 그의 명예 또한 그리스도의 수제자가 되었으며, 하늘나라 24보좌 장로의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갈릴리의 소박한 어부들이 주님의 도구로 부르심 입었을 때 그들은 세계를 변혁시켰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사람의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통해서 아시아 대륙을 복음화 시키려는 계획을 가지셨기 때문에 오늘 한국은 밥을 먹고 살고 장차 이 나라는 만민위에 뛰어난 민족이 될 것입니다.
이 민족의 희망은 자동차 반도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입니다.
이제 교회는 또 다시 제2기 알파를 위하여 총 진군을 하려고 합니다.
자신 스스로를 세우지 못하는 자가 10명의 게스트를 초청하기로 힘쓴다는 것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남선 권사님은 연로하신 몸을 이끄시고 풍납동 이곳저곳 다니시며 3명의 게스트를 초청하시는 일을 하였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주님은 나에게 새롭게 살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아직도 나를 위하여 살겠다고 다짐하면 크나큰 허무를 맛 볼 것입니다.
주를 위하여 나의 삶의 사이클을 맞춰 보십시오 놀라운 일이 일어 날 것입니다.
고기 잡는 것 주님의 말씀 한마디에 있습니다.
이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냥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제라도 주를 위한 도구로 일어나십시오 절대로 후회 없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Total 914 건 | 1 / 92 page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