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여정에 꼭 이루어야 할 또 하나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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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86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사도행전19 : 21-22내 인생 여정에 꼭 이루어야 할 또 하나의 과제
저는 지난 5월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미스 유니버스 선발 대회를 보게 되었는데 마침 백 수십 개국의 후보 중에 10명을 뽑는데 우리나라 이하늬라는 후보가 선발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과연 어떻게 될까? 하고 보는데 5명 중에 뽑히고 그 중에 4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최종 인터뷰 중에서 미의 사절단이 되면 은 무엇을 하고 싶으냐? 의 진행자의 질문에 각국을 다니면서 한국을 알리며 선교 사업이 꿈이라는 것을 세계의 무대에서 당당히 밝히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이하늬가 누군가 하고 관심을 보았습니다. 비록 나이는 24세에 많은 인생을 경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또 하나 꼭 이루어야 할 선교의 꿈을 가졌다는 것에 대하여 너무나도 귀한 자가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삶의 고백은 그냥 외식적으로 들어보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살아온 삶의 모습입니다.
지난 2일 campus mission CM2007개막행사에 참석해서 간증하기를 2006 미스코리아 대회 중 기독인 참가자들과 매일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놀랍게도 이때 함께 기도한 이들이 모두 진·선·미를 차지했습니다.그는 이번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도 예배드리기를 간구했고 하나님께서는 세계의 기독인 참가자들과 기도 모임을 갖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그의 범사의 생활이 어떠하였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삶의 현장에 나가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자들과는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그의 가족사를 보면 그 아버지는 국정원 2차장이며 그의 어머니는 중요무형 문화재 보유자인 대학 교수며 그의 외삼촌은 열린 우리당 의장을 지낸 문희상씨 이었습니다.
그 집안을 소개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가족이 열심 있는 기독인이라는 점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국악찬양을 전하는 자였습니다.
고교 때는 예람이라는 기도모임을 가지고 선교의 꿈을 꾸준히 키웠다고 하였습니다.
결코 그냥 달려온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의 아름다운 몸매만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그의 얼굴도 아름답지만 그의 살아가는 선교의 꿈을 펼치는 삶이야말로 더욱 더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는 이 나이가 들 때까지 아직도 세상적인 소욕에만 초점을 두고 인생을 살아가고 아니 내 인생을 다 허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내 인생에 세상적인 목표와 더불어 꼭 이루어야 할 또 다른 과제 선교의 과제가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학생들과 청년들이 이 꿈을 가진 다면 그들의 장래는 너무나도 놀랍게 열려질 것입니다.
그리고 청장년의 세월을 그냥 다 보냈다고 여겨지시는 분이라도 이제라도 새로운 인생의 선교의 장을 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새로운 장이 펼쳐 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그 유명한 인물 사도 바울은 그의 또 다른 인생의 장인 선교의 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는 그 누구보다 띄어난 세상적인 능력을 가졌습니다.
돈도 있고 권력도 있고 지식도 있고 신분도 좋고 뭐하나 뒤질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 하나 만으로 내 인생을 잘 살았다 성공 하였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 이루어야 할 선교의 자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하여도 선교를 위하지 못한다면 이 이루어 놓은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 인생이 이 일을 위하여 태어났고 또한 존재하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한 부분만을 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밸런스가 잡히지 않고 조화가 되지 않아 항상 불안하고 끼우뚱하고 한 쪽으로 치우쳐져 있었으니 얼마나 인생이 잘 돌아가지를 않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 좀 오래 된 세탁기가 하나 있는데 빨래도 잘되고 지금도 고장이 나지 않고 잘 돌아갑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탈수를 할 때에 돌아가다가 다 돌아가지 못하고 정지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 속에 있는 세탁물이 고루고루 밸런스를 맞추지 못하고 한쪽을 치우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때마다 열어서 세탁물을 잘 펼쳐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세탁기가 잘 돌아갑니다.
왜 내 인생이 잘 돌아가야 할 텐데 왜 안돌아 가는 가 그것은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 가정이 열심히 돈을 벌고 열심히 자녀들은 공부를 하고 모두다 열심히 하는데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너무 세상적인 소욕만을 위하여 한 곳으로만 치우쳤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 내 가정이 잘 돌아 갈려면 이제라도 복음적인 면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할렐루야!
너무나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에만 몰두하였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부터 복음에 눈을 뜨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세상적인 문제를 가지고 오신 분들도 있지만 그것은 지금까지 이 나이 들도록 내가 신경을 쓰도 다 해결을 보지 못한 것 아닙니까?
이 가운데 어떻게 하면 복음에 신경을 쓸까?
내 자녀 내가 먹이지 못하고 공부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였다고만 생각하고 마음 아파하지 마시고 공부하라 잘해보라는 세상 적으로만 힘을 썼지 교회 생활 제대로 하라고 하지는 못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이런 시각의 눈을 떠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곳 저곳 다니면서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고린도 에베소등 즉 아가야 지방 마케도니아 지방 예루살렘지방 뿐만 아니라 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그 곳에서도 선교의 사업을 펼쳐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내 가정, 내 직장, 내 생업 등등에서 세상적인 필요만을 산출하는 곳만을 만들지 말고 복음을 위한 곳으로 보이시기를 축원합니다.
개의 눈에는 그것만 보인다고 그리스도인의 눈에는 복음을 위한 것이 보이게 마련입니다.
인생이란 눈을 뜨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보는 세계와 깨닫는 세계가 작습니다. 눈이 감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돼 가면서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자신에 대해서 눈을 뜨기 시작하며, 사랑에 대해서 눈을 뜨기 시작하고, 이성에 대해서도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 대해서도 눈을 뜨기 시작하고, 자기의 성공에 대해서도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에 대해서 눈을 뜨기 시작한 것입니다. 영혼에 대해서 눈을 뜨기 시작한 것입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어떤 일이 잘못 되었을 때에 그것은 잘못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하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새로운 것을 보라고, 지금까지 보던 것을 보지 말고 새로운 시각으로 보라고하는 하나님의 싸인 일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자신만을 위하는 것으로만 보여주시기를 원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온 세계를 위하여 있는 자로 보여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눈을 뜨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전신마미의 지체를 가진 송명희 씨는 그의 불구된 몸만을 보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그것만을 보았으면 그는 인생은 더 이상 살 의미가 없는 종말을 고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는 믿음의 눈을 뜨고 더 나아가 복음의 눈을 뜨게 되었을 때에 그는 웃을 수가 있었고 그의 존재는 너무나도 존귀한 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가진 재물 없으나 나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남이 가진 것 나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이러한 눈은 뜨면 뜰수록 축복이 됩니다.
그러면 그의 삶의 구상이 바뀌게 됩니다.
복음을 따가 가야지 살길이 열리지 물질을 따라 가면은 길이 닫히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의 재산 분배 토지 분배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선택권을 먼저 쥔 롯은 앞도 뒤도 생각 할 겨흘히 없이 내가 이 땅을 선택하면 잘 먹고 잘 살겠구나하고 인간적인 욕심만을 위한 땅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믿음으로 복음적인 땅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결과 욕심을 따라간 롯은 그 땅에서 사망을 맛보고 많은 수치와 부끄러움을 남기고 자자손손 문제를 일으키는 후손들이 생산을 하였습니다.
믿음의 선택한 아브라함은 많은 사람들을 복을 받게 하고 옳은 데로 인도하는 열국의 아비가 되고 그 자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좋은 생각은 일상의 생활 가운데 늘 자리 잡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즉 복음이 꿈이고 비전입니다.
여러분은 복음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계십니까?
이번 제2기 알파에 대하여 얼마큼 비전을 가지고 계십니까?
꿈을 꾸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적으로 목적을 걸고 있습니다.
허망하게 사는 사람들은 매일 매일 열심히 살아가는 것 같은데 목적지가 없습니다.
목적지가 없으니 방황을 하게 됩니다.
마냥 잘 살아 보자가 목적이 아닙니다.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들 10명이 낙제를 했는데, 그 중 9명이 한국계 미국인이었다고 합니다. 대학 당국에서 상담을 목적으로 그 원인을 연구해 보았더니 그들은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후 인생의 장기적인 목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막연히 공부 잘하는 것 그것 목적이 아닙니다.
오늘날 막연히 잘 되는 것 막연히 공부 잘하는 것 막연히 결혼하는 것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닉슨 대통령 당시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키신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모르면 어떠한 도로도 당신을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수 없습니다. 지금 세계의 위기는 비전 상실의 위기입니다.
비전이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실력 있는 자녀로 길러야 합니다. 동시에 그 실력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녀들의 가슴속에 미래의 비전을 갖도록 준비시켜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는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가령 내가 어떤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면, 이 사업을 운영해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 목적이 있습니다.
같은 돈을 벌어도 목적이 있고, 이유가 있는, 비전이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무작정 돈을 버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발 먹고 살기 위해서 내가 이 일을 하고 죽지 못해서 이 일을 하고 막연히 남보다 잘 살기 위해서 하고 이제 더 이상 그런 마음을 품지 마시기 바랍니다.
1939년 7월 7일 뉴욕 항을 떠나 독일로 가는 배에 한 청년 본 훼퍼 라는 한 청년 신학자가 당시의 독일은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잔인무도한 만행을 자행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가기를 꺼려하는 곳에 가면서 그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나의 장래에 대하여 그 동안 파도처럼 일던, 몹시도 불안했던 마음이 이제 잔잔해졌다. 이는 내가 갈 길을 확실히 알게 되였기 때문이다.독일로 돌아 간 그는 나치 학정에도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교회를 일깨우고 히틀러의 만행을 경고하고 그 유명한 나치 정권을 반대하는 바르멘 선언을 했습니다. 그 결과 독일은 그를 감옥에 집어넣고 1945년 4월 9일, 39세의 젊은 나이에 사형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본 훼퍼는 유니온 신학교 교장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보냈습니다.나는 내가 독일에 돌아 온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힘차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이런 사람들이 죽어서도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또 다른 내가 이루어야 할 과제를 가진 사람은 모든 역경을 극복하는 힘이 생깁니다.
왜 사람이 살아가는데 비관을 잘하고 불평을 잘하고 실망을 잘하고 시험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누가 말합니다.
그것은 내 뜻대로 안되기 때문이라고 너무 살아가기 힘이 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그러나 정답은 아닙니다.
고난의 대 명사인 욥이라는 사람이 말했듯이 인간은 고난을 위하여 태어났나니 라고 했습니다.
고난을 피 할 수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고난을 나무라고 왜 고난이 나에게 하고 있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고난 가운데 복음의 길을 보는 것이요 복음이 고난을 잠재우는 것입니다.
바울의 인생 여정은 환란과 핍박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것은 그의 목적을 이루는데 장애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시편 119편에서는 다윗 왕은 고난이 오히려 내게 유익이 되었다고 했는데 이 고난이 주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유익하다고 하였습니다.
역설적이지만 바울은 오래 전부터 로마로 가기를 꿈꾸었는데 그 꿈이 결국 고난과 핍박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는 죄수의 몸으로 재판받기 위해 로마에 가게 되었습니다.
고난 때문에 망가지는 인생이 되지 말고 복음으로 새롭게 피어나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 인생의 새로운 과제는 하나님과의 약속 있는 축복입니다.
한 사람의 비전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의 평생의 비전, 로마의 비전은 오늘 이방세계, 우리 한국까지 복음이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바울의 로마 비전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쩌면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민족이었을지도 모릅니다.비전 중에 가장 큰 비전은 복음 비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이 복음 비전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한 지역에 우리는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영역을 한 지역에만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가 한국 땅에 있든, 북미 땅에 있든 복음의 비전은 동일하게 품고 있어야 합니다. 그 방법은 다를지라도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같습니다.
땅 끝 비전입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리라는 비전입니다.
이 비전을 상실하면 우리는 헛된 인생 살다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상실하면 그는 어쩌면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일지는 몰라도 말입니다.
영어에 TO SEE IS TO GET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는 것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복음의 비전을 보고 살면 우리는 복음의 열매를 얻을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됩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으로 새로운 인생을 사시는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지난 5월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미스 유니버스 선발 대회를 보게 되었는데 마침 백 수십 개국의 후보 중에 10명을 뽑는데 우리나라 이하늬라는 후보가 선발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과연 어떻게 될까? 하고 보는데 5명 중에 뽑히고 그 중에 4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최종 인터뷰 중에서 미의 사절단이 되면 은 무엇을 하고 싶으냐? 의 진행자의 질문에 각국을 다니면서 한국을 알리며 선교 사업이 꿈이라는 것을 세계의 무대에서 당당히 밝히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이하늬가 누군가 하고 관심을 보았습니다. 비록 나이는 24세에 많은 인생을 경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또 하나 꼭 이루어야 할 선교의 꿈을 가졌다는 것에 대하여 너무나도 귀한 자가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삶의 고백은 그냥 외식적으로 들어보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살아온 삶의 모습입니다.
지난 2일 campus mission CM2007개막행사에 참석해서 간증하기를 2006 미스코리아 대회 중 기독인 참가자들과 매일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놀랍게도 이때 함께 기도한 이들이 모두 진·선·미를 차지했습니다.그는 이번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도 예배드리기를 간구했고 하나님께서는 세계의 기독인 참가자들과 기도 모임을 갖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그의 범사의 생활이 어떠하였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삶의 현장에 나가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자들과는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그의 가족사를 보면 그 아버지는 국정원 2차장이며 그의 어머니는 중요무형 문화재 보유자인 대학 교수며 그의 외삼촌은 열린 우리당 의장을 지낸 문희상씨 이었습니다.
그 집안을 소개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가족이 열심 있는 기독인이라는 점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국악찬양을 전하는 자였습니다.
고교 때는 예람이라는 기도모임을 가지고 선교의 꿈을 꾸준히 키웠다고 하였습니다.
결코 그냥 달려온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의 아름다운 몸매만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그의 얼굴도 아름답지만 그의 살아가는 선교의 꿈을 펼치는 삶이야말로 더욱 더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는 이 나이가 들 때까지 아직도 세상적인 소욕에만 초점을 두고 인생을 살아가고 아니 내 인생을 다 허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내 인생에 세상적인 목표와 더불어 꼭 이루어야 할 또 다른 과제 선교의 과제가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학생들과 청년들이 이 꿈을 가진 다면 그들의 장래는 너무나도 놀랍게 열려질 것입니다.
그리고 청장년의 세월을 그냥 다 보냈다고 여겨지시는 분이라도 이제라도 새로운 인생의 선교의 장을 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새로운 장이 펼쳐 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그 유명한 인물 사도 바울은 그의 또 다른 인생의 장인 선교의 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는 그 누구보다 띄어난 세상적인 능력을 가졌습니다.
돈도 있고 권력도 있고 지식도 있고 신분도 좋고 뭐하나 뒤질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 하나 만으로 내 인생을 잘 살았다 성공 하였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 이루어야 할 선교의 자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하여도 선교를 위하지 못한다면 이 이루어 놓은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 인생이 이 일을 위하여 태어났고 또한 존재하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한 부분만을 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밸런스가 잡히지 않고 조화가 되지 않아 항상 불안하고 끼우뚱하고 한 쪽으로 치우쳐져 있었으니 얼마나 인생이 잘 돌아가지를 않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 좀 오래 된 세탁기가 하나 있는데 빨래도 잘되고 지금도 고장이 나지 않고 잘 돌아갑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탈수를 할 때에 돌아가다가 다 돌아가지 못하고 정지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 속에 있는 세탁물이 고루고루 밸런스를 맞추지 못하고 한쪽을 치우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때마다 열어서 세탁물을 잘 펼쳐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세탁기가 잘 돌아갑니다.
왜 내 인생이 잘 돌아가야 할 텐데 왜 안돌아 가는 가 그것은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 가정이 열심히 돈을 벌고 열심히 자녀들은 공부를 하고 모두다 열심히 하는데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너무 세상적인 소욕만을 위하여 한 곳으로만 치우쳤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 내 가정이 잘 돌아 갈려면 이제라도 복음적인 면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할렐루야!
너무나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에만 몰두하였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부터 복음에 눈을 뜨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세상적인 문제를 가지고 오신 분들도 있지만 그것은 지금까지 이 나이 들도록 내가 신경을 쓰도 다 해결을 보지 못한 것 아닙니까?
이 가운데 어떻게 하면 복음에 신경을 쓸까?
내 자녀 내가 먹이지 못하고 공부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였다고만 생각하고 마음 아파하지 마시고 공부하라 잘해보라는 세상 적으로만 힘을 썼지 교회 생활 제대로 하라고 하지는 못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이런 시각의 눈을 떠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곳 저곳 다니면서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고린도 에베소등 즉 아가야 지방 마케도니아 지방 예루살렘지방 뿐만 아니라 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그 곳에서도 선교의 사업을 펼쳐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내 가정, 내 직장, 내 생업 등등에서 세상적인 필요만을 산출하는 곳만을 만들지 말고 복음을 위한 곳으로 보이시기를 축원합니다.
개의 눈에는 그것만 보인다고 그리스도인의 눈에는 복음을 위한 것이 보이게 마련입니다.
인생이란 눈을 뜨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보는 세계와 깨닫는 세계가 작습니다. 눈이 감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돼 가면서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자신에 대해서 눈을 뜨기 시작하며, 사랑에 대해서 눈을 뜨기 시작하고, 이성에 대해서도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 대해서도 눈을 뜨기 시작하고, 자기의 성공에 대해서도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에 대해서 눈을 뜨기 시작한 것입니다. 영혼에 대해서 눈을 뜨기 시작한 것입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어떤 일이 잘못 되었을 때에 그것은 잘못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하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새로운 것을 보라고, 지금까지 보던 것을 보지 말고 새로운 시각으로 보라고하는 하나님의 싸인 일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자신만을 위하는 것으로만 보여주시기를 원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온 세계를 위하여 있는 자로 보여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눈을 뜨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전신마미의 지체를 가진 송명희 씨는 그의 불구된 몸만을 보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그것만을 보았으면 그는 인생은 더 이상 살 의미가 없는 종말을 고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는 믿음의 눈을 뜨고 더 나아가 복음의 눈을 뜨게 되었을 때에 그는 웃을 수가 있었고 그의 존재는 너무나도 존귀한 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가진 재물 없으나 나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남이 가진 것 나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이러한 눈은 뜨면 뜰수록 축복이 됩니다.
그러면 그의 삶의 구상이 바뀌게 됩니다.
복음을 따가 가야지 살길이 열리지 물질을 따라 가면은 길이 닫히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의 재산 분배 토지 분배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선택권을 먼저 쥔 롯은 앞도 뒤도 생각 할 겨흘히 없이 내가 이 땅을 선택하면 잘 먹고 잘 살겠구나하고 인간적인 욕심만을 위한 땅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믿음으로 복음적인 땅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결과 욕심을 따라간 롯은 그 땅에서 사망을 맛보고 많은 수치와 부끄러움을 남기고 자자손손 문제를 일으키는 후손들이 생산을 하였습니다.
믿음의 선택한 아브라함은 많은 사람들을 복을 받게 하고 옳은 데로 인도하는 열국의 아비가 되고 그 자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좋은 생각은 일상의 생활 가운데 늘 자리 잡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즉 복음이 꿈이고 비전입니다.
여러분은 복음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계십니까?
이번 제2기 알파에 대하여 얼마큼 비전을 가지고 계십니까?
꿈을 꾸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적으로 목적을 걸고 있습니다.
허망하게 사는 사람들은 매일 매일 열심히 살아가는 것 같은데 목적지가 없습니다.
목적지가 없으니 방황을 하게 됩니다.
마냥 잘 살아 보자가 목적이 아닙니다.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들 10명이 낙제를 했는데, 그 중 9명이 한국계 미국인이었다고 합니다. 대학 당국에서 상담을 목적으로 그 원인을 연구해 보았더니 그들은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후 인생의 장기적인 목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막연히 공부 잘하는 것 그것 목적이 아닙니다.
오늘날 막연히 잘 되는 것 막연히 공부 잘하는 것 막연히 결혼하는 것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닉슨 대통령 당시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키신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모르면 어떠한 도로도 당신을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수 없습니다. 지금 세계의 위기는 비전 상실의 위기입니다.
비전이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실력 있는 자녀로 길러야 합니다. 동시에 그 실력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녀들의 가슴속에 미래의 비전을 갖도록 준비시켜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는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가령 내가 어떤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면, 이 사업을 운영해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 목적이 있습니다.
같은 돈을 벌어도 목적이 있고, 이유가 있는, 비전이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무작정 돈을 버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발 먹고 살기 위해서 내가 이 일을 하고 죽지 못해서 이 일을 하고 막연히 남보다 잘 살기 위해서 하고 이제 더 이상 그런 마음을 품지 마시기 바랍니다.
1939년 7월 7일 뉴욕 항을 떠나 독일로 가는 배에 한 청년 본 훼퍼 라는 한 청년 신학자가 당시의 독일은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잔인무도한 만행을 자행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가기를 꺼려하는 곳에 가면서 그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나의 장래에 대하여 그 동안 파도처럼 일던, 몹시도 불안했던 마음이 이제 잔잔해졌다. 이는 내가 갈 길을 확실히 알게 되였기 때문이다.독일로 돌아 간 그는 나치 학정에도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교회를 일깨우고 히틀러의 만행을 경고하고 그 유명한 나치 정권을 반대하는 바르멘 선언을 했습니다. 그 결과 독일은 그를 감옥에 집어넣고 1945년 4월 9일, 39세의 젊은 나이에 사형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본 훼퍼는 유니온 신학교 교장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보냈습니다.나는 내가 독일에 돌아 온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힘차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이런 사람들이 죽어서도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또 다른 내가 이루어야 할 과제를 가진 사람은 모든 역경을 극복하는 힘이 생깁니다.
왜 사람이 살아가는데 비관을 잘하고 불평을 잘하고 실망을 잘하고 시험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누가 말합니다.
그것은 내 뜻대로 안되기 때문이라고 너무 살아가기 힘이 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그러나 정답은 아닙니다.
고난의 대 명사인 욥이라는 사람이 말했듯이 인간은 고난을 위하여 태어났나니 라고 했습니다.
고난을 피 할 수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고난을 나무라고 왜 고난이 나에게 하고 있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고난 가운데 복음의 길을 보는 것이요 복음이 고난을 잠재우는 것입니다.
바울의 인생 여정은 환란과 핍박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것은 그의 목적을 이루는데 장애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시편 119편에서는 다윗 왕은 고난이 오히려 내게 유익이 되었다고 했는데 이 고난이 주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유익하다고 하였습니다.
역설적이지만 바울은 오래 전부터 로마로 가기를 꿈꾸었는데 그 꿈이 결국 고난과 핍박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는 죄수의 몸으로 재판받기 위해 로마에 가게 되었습니다.
고난 때문에 망가지는 인생이 되지 말고 복음으로 새롭게 피어나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 인생의 새로운 과제는 하나님과의 약속 있는 축복입니다.
한 사람의 비전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의 평생의 비전, 로마의 비전은 오늘 이방세계, 우리 한국까지 복음이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바울의 로마 비전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쩌면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민족이었을지도 모릅니다.비전 중에 가장 큰 비전은 복음 비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이 복음 비전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한 지역에 우리는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영역을 한 지역에만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가 한국 땅에 있든, 북미 땅에 있든 복음의 비전은 동일하게 품고 있어야 합니다. 그 방법은 다를지라도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같습니다.
땅 끝 비전입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리라는 비전입니다.
이 비전을 상실하면 우리는 헛된 인생 살다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상실하면 그는 어쩌면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일지는 몰라도 말입니다.
영어에 TO SEE IS TO GET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는 것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복음의 비전을 보고 살면 우리는 복음의 열매를 얻을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됩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으로 새로운 인생을 사시는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