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에 아직도 꿈같은 약속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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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611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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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편 126 : 1 - 6 당신의 인생에 아직도 꿈같은 약속이 남아 있습니다.
하늘을 쳐다보니까 참말로 맑았습니다. 아무리 구름을 찾아보려고 해도 구름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도 저 하늘처럼 말끔하면 얼마나 좋을까, 저 하늘에도 슬픔이 있을까요. 1964년 12월20일 당시 대구 명덕초등학교 4학년 이윤복군 의 일기의 내용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은 6·25 전쟁의 참화를 채 벗어나지 못한 1960년대는 큰 길 가에도 비가 오면 온 땅이 비포장으로 질퍽질퍽하고 발이 쑥쑥 빠졌습니다. 우마차가 다니고 집집마다 끼니 걱정을 해야 하던 어려운 시절 대구 남구 대명동의 한 허름한 주택에 새들어 살던 이윤복 소년의 가족 역시 그 삶의 현실이 고달팠습니다. 아버지는 술과 노름에 찌들어 살았고 어머니는 윤복이가 초교 1학년 때 집을 나가버렸다. 그때부터 동생 셋을 돌보는 소년 가장이었습니다. 윤복이는 깡통을 들고 이집 저집 밥 동냥을 하러 다녀야 했고, 껌팔이와 구두닦이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윤복이의 얘기가 알려진 것은 일기장 덕분인데 담임선생님이 발견하고 적은 일기를 1964년 책으로 펴냈고, 이후 세간의 화제가 된 윤복이 일기장을 바탕으로 김수용 감독이 1965년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저도 이 영화를 보러 간 기억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전국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왔고, 온 국민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일본 등 동남아 지역에서도 상영됐고 영화가 나온 뒤 대구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격려편지와 성금이 답지했고 심지어 외국에서도 편지가 날아들었습니다. 영화 제작을 계기로 윤복이 네는 일어섰고 집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집을 나갔던 어머니도 돌아왔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술을 끊지 못했고 어머니는 다시 집을 나갔고 어떻게 되었는지 집안 형편은 다시 어려워졌고 또 다시 인생을 그는 행복하기 보다는 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제목처럼 슬픔 쪽에 가까운 사람이 되어 우울한 사람의 되어 1984년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간염 악화로 슬픔의 인생은 그렇게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윤복이에게 찾아온 축복의 기회도 결코 행복이 되지 못하였고 역시 슬픔을 노래하고 말았습니다.
대구의 대명동에 역시 남산 초등학교에 다니는 윤복군과 나이가 똑같은 한 소년이 있었는데 그 윤복군과 다른 점이 있다면 주일날만 되면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년은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고 윤복군과 같은 대박이 터지는 일이 없지만 그 꿈을 꺾지 않고 하나하나 이루고 꿈을 오늘도 꾸고 있었습니다. 윤복군은 힘겨운 삶을 연약한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가려고 하니 온통 세상은 슬픔으로 가득 찼고 좀 더 나은 삶이 왔지만 그것 또한 자신을 만족하게 하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또 다른 슬픔의 요소가 그를 슬프게 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 슬픔은 자신을 참으로 슬픈 인생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깡통을 차고 밥을 얻으려 다니지는 않았지만 한 때는 잘 집도 없어 여기 저기 다니기도 하고 먹을 양식이 없어 배를 쫄쫄 굶은 경험을 하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매주 다니는 교회의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이 꿈이요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지금은 그 아이는 자라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살아가지만 역시 하나님이 꿈이요 그의 힘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을 여러분도 말 하면은 아하 이 사람이구나 할 것입니다.
성은 김이요 이름은 주철이라는 자입니다.
바로 제가 알고 보니 윤복이랑 같은 나이요 같은 동네에 살았습니다.
진짜 꺼져가는 것 같은 인생이었는데 결코 꺼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향한 꿈을 얼마든지 가질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꺼져가는 등불도 꺼지 않으시고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꿈을 반드시 이루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사실 제 욕심이 너무 많아서 그렇지 하나님은 이루어 주신 것은 훨씬 더 많으십니다.
개인적으로 찾아 오십시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루어 주실 것은 더 놀라운 것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을 하니 가슴이 터질 것같이 흥분이 됩니다.
왜 제 같은 자가 뭐가 잘나서 이렇게 기대 하겠습니까?
저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여기 계시는 어떤 분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기대를 가질 수 있고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어떠하십니까?
슬프고 눈물 나는 인생이 아닙니까? 내 자신과 내 형편만을 보고 우울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천지를 지으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이 시간부터 우울함이 싹 물러가고 하나님의 유쾌하게 하는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 날수 있습니까?
이것은 전적으로 약한 인간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조건입니다.
본문의 이스라엘은 남의 나라의 포로로 종살이 70년을 하였습니다.
문화와 언어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에게서는 전혀 가능성을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들이 해방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유를 얻고 나라를 얻고 문화를 회복하고 고토로 돌아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에 말을 빌려 표현을 한다면 꿈을 꾸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꿈같은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무엇이 축복이 말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볼 때에 모두가 꿈같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자들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 날 수가 있습니까?
인간의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꿈과 희망은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덴막이라는 나라는 황무지를 개간하여 지상천국이라고 느낄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고, 밤이건 낮이건 범죄가 없고, 교통사고가 없는 나라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형무소가 하나있는데, 죄수가 없는 날이 많답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흰 깃발을 올려서 죄수가 없다는 것을 알리고, 죄수가 어쩌다가 들어오면 노란 깃발을 올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깃발을 보고 교회는 종을 울리고 국민들은 회개하면서 눈물을 흘린다는 것입니다. 사실 덴막은 1864년 푸러시아 전쟁에서 모두 잃었습니다. 좋은 옥토의 땅도, 젊은 청년도 전쟁에서 모두 잃었습니다. 폐허만 남은 덴막의 국민들, 지금의 얼음으로 덮인 유트란드 반도로 쫓겨 왔습니다. 돌작밭, 험한 산이 전부입니다. 매일 노름이요, 술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할 것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이때에 하늘 음성처럼, 구른드비 목사와 달가스의 외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살길은 그것뿐이다 이때에 벌린 운동이 3애 정신운동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이 땅을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으니 생각이 바꾸어지고 생각이 바꾸니 생활이 바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상황을 완전 변화시켰습니다. 이 변화는 스위스에도, 노르웨이에도 불었습니다.
불황속에서도, 실패 속에서도 고통 속에서도 한 가지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민족이 돌아오면 민족이 살고 나라가 돌아오면 나라가 살고 가정이 돌아오면 가정이 살고 내가 돌아오면 내
덴막의 국기는 십자가입니다.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 오직 말씀으로 세운 나라라는 뜻입니다. 말씀이 있고, 십자가가 있는 나라 복 받는 나라입니다.
미국의 국기는 성조기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라본 별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저들은 그렇게 말씀과 믿음으로 나라를 세웠습니다.
아직도 미국은 꿈의 대륙이라고 합니다. 이 꿈은 다른 꿈이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실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 말씀과 상관이 없이 무엇을 이루어 보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김칫국 마시지 마십시오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약속은 이루십시다.
내가 죽기 전에 약속함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미국 장로교 외지 선교 보고에 의하면 일제의 핍박 때문에 당시 5,000여 곳의 프로테스탄트 교회 중에서 1,200여 교회가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2,000여 신도가 투옥이 되고, 50여명의 종들이 순교의 피를 흘리는 아픔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70만을헤아리던 프로테스탄트교회 신자의수는 그 반으로 줄어들고 말았습니다.심지어 1945년 8월 18일을기하여 한국 전역에 산재하는 기독신자들을 진멸 할 계획을 세워 놓고 은밀히 진행 중이었음이 해방 이후 저들의 비밀문서에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그루터기를 남겨 주시기 위하여,택자을 위하여 환난의 날들을 감하사 3일전에 일본을 심판하고 항복하도록 역사를 주장했습니다. 그것이 바로1945년 8월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을 떨어트려 연합군에게항복하게 만든 것이 그 해 8월 15일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날8월15일은 하나님이 이 땅에 해방을 주시던 그 날은 이 땅의 그리스도인이 마치 꿈꾸는 것같았습니다. 나가사키에도 원폭이 떨어졌는데 사실 그 곳에서 현장을 보고 녹화된 영상을 볼 때에 그 참흑상은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메데인 고레스를 들어 무혈 혁명을 일으켜 바벨론나라가 멸망을 당하고 이스라엘에게 꿈꾸는 해방을 주셨습니다.
이 약하고 힘없는 이 민족 영원히 일본의 속국이 될 뻔 했습니다.
아니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영원히 살아질 수도 있습니다.
언어도 바꾸었고 성도 바꾸고 문화도 교육도 모두를 바꿔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통하여 이 민족에게 참으로 꿈꾸는 것 같은 해방을 주신 것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오늘 나에게도 하나님은 생각 할 수 없는 참으로 꿈을 꾸는 것 같은 일을 행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꿈을 이루시는 것을 믿는 사람은 그 삶의 모습이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뀐다는 것을 또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게 주어진 일이 하나님께 합한 삶을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서 무엇을 거둘 것인가 라는 질문은 결국 나는 무엇을 심었고 얼마나 수고와 희생을 하였느냐 는 질문입니다.
가끔 내가 장차 무엇이 될 것인가 염려들을 하는데 해답이 벌써 나와 있습니다.
어린아이들 장차 무엇이 될 것인가?
아이가 변화가 되지 않는 이상 벌써 해답이 보입니다.
우리 성도들 장차 무엇이 되겠다 벌써 나는 이렇게 될 것입니다 하고 보이고 있습니다.
척보면 압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 가 바로 나의 장래입니다.
엉뚱한 것이 나올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엉뚱한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농부들은 씨를 뿌릴 때, 손으로 씨앗을 움켜쥐고 땅에 던지기도 하였지만, 이것을 좀 더 편리하게 하기위하여 나귀에 씨앗을 가득 담은 자루를 싣고 그 자루에 구멍을 내서 나귀를 몰고 가며 나귀의 발자국마다 씨앗이 떨어지게 하는 방법도 있었다고 합니다.
나의 삶의 발자취는 나의 장래를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 꿈꾸는 것 같은 일이 그냥 찾아오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 출석으로 무슨 큰 일이 일어나는 줄만 아는데 물론 큰 일이 일어나지요
자신들이 예수 이름으로 구원함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구원이 내 삶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적용을 해야 합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가 기쁨으로 거두고 그 단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울며 뿌리는 것을 안 하려고 합니다.
수천 명의 수만 평의 땅이 있으면 무엇합니까?
갈고 가꾸고 해서 경작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있으면 무엇합니까?
하나님이 능력이 있다고 말만 하면 무엇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그 능력을 힘입고 살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울며 믿음의 수고를 좀 하십시오
이제 부터라도 하나님 앞에서 울기 시작 하십시오
저는 하나님 앞에 제가 부족해서 많이 울었습니다.
하나님을 못 믿고 내 마음대로 한 것에 대하여 울어야 합니다.
지난주일 밤에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는 기독교인 10만이 모여 울었습니다.
이 민족을 살려 달라고 내가 잘못했다고 울었습니다.
앞으로 잘 하겠다고 울어야 합니다.
오죽하면 눈물이 없는 이 민족에게 눈물을 돌려 달라고 하였겠습니까?
이스라엘의 각성 자들은 민족을 위해 많이 울었습니다.
예레미야가 뿌린 눈물, 에스겔이 뿌린 눈물의 씨, 다니엘이뿌린눈물, 에스라, 느헤미야, 스룹바벧같은자들은 70년의 기간 동안 많은 눈물의 씨를 뿌린 줄 압니다.
민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도 울어야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 내 가족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의 여자들에게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를 위해 울어라고 했습니다.
우는 것은 회개가 있고 앞으로는 잘 하겠다는 뜻의 울음을 말합니다.
억울해서 울고 신세 한탄해서 울고 창피해서 자존심 때문에 울고 한를 맺는 울음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성전에서 슬피 울며 부르짖는 세리의 눈물은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베드로의 통회의 눈물은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았습니다.
제발 가증된 눈물은 없어야 합니다.
마리아의 눈물은 예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의 눈물은 많은 영혼을 위하여 선교하는데 혼신을 다 바치게 하였습니다.
히스기야의 눈물은 자신을 위해 후손을 위해 민족을 구원하는 결실을 가져왔습니다.
다윗의 눈물은 시온의 나라를 세우는 눈물이었습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약속은 유효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꿈을 나에게 참으로 꿈꾸는 것 같은 꿈을 이루실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께 울어야 할 심어야 할 수고만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잘 울고 잘 심어 깜짝 놀랄 일이 입이 떡 벌어 질 일이 여러분의 인생에 많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지금 그렇게 살아가는 자는 이 꿈이 내 눈에 선하게 보이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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