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상처는 하나님께로 돌아가 치유를 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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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80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호세아 6 : 1 - 3모든 상처는 하나님께로 돌아가 치유를 받읍시다.
지난주에 어제 어떤 분과 상담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로 나아 올 수 있는가? 이였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현재의 내 생활이 복잡하기 때문에 그것이 정리가 되어야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나온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모습을 보고 어찌 예수님과 상담을 했던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의 사람들과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을 하니 사람은 지금에 살고 있는 자가 2000년 전의 사람이나 창조 될 당시나 다 똑같은 사람이 구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 장사를 하고 어떤 사람은 작별인사를 하고 어떤 사람은 시집 장가를 갔으니 어떤 사람은 사업 때문에 등등 모양도 가지각색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태도는 합당한 생각이 아니다 고 하였습니다.
그 일을 정리하고 나온다는데 왜 그러실까? 하고 생각을 해보니 이 세상은 내가 하나님께로 나올 수 있도록 내 주변을 정리해 주기 보다는 더 못나오게 복잡하게 만들 뿐입니다.
사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이 내 주변이 평안하여서 주께 나온 것이 아니라 나오고 보니 정리가 하나하나 되어 가는 것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은 우리의 생활이 정리가 되고 안정이 되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취미로 가지는 기호 식품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일단 하나님께로 나올 때에 내 인생이 정리가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내 인생의 정리에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참으로 가슴 아프고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칼로 찢어지고 몽둥이로 맞아 상 할 대로 상한 인생이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 문제를 다 해결하고 하나님께로 나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온갖 문제들이 많지만 그 문제에 골머리를 싸고 한숨을 쉬고 머리아파하고 걱정만 하고 있지 말고 그냥 하나님께 나와 보자
예수님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찢어졌으나 낫게 될 것이고 두들겨 맞았으나 싸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께서 누구를? 나를 언제? 돌아오기만 하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기가 그리 쉽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는 일주일에 한번 나오는 것도 힘이 듭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을 나오는 자들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 자신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만 안 돼 오직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만 돼 하는 자는 하나님께로 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이 자신의 위치가 어떠하다고 아는 자만이 인생의 상처를 치유를 받을 수 가 있습니다.
열심히 열심히 나와서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자입니다.
예배 시간마다 올라오고 새벽에도 올라오고 저녁에도 오라오고 나 여기 있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나 지금 이렇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밤 낮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겠느냐?
여러해 전에 미국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요트 한 척이 침몰되었습니다. 침몰 직전, 해안 구조대에 SOS신호가 왔습니다. 구조대 통신원이 회신을 했습니다. 알았다, 곧 구하러 가겠다. 현재 당신의 위치를 알려라. What is your position? 이때에 대답이 왔습니다. 나는 한국에 있는 모 은행의 은행장이다. 그리고 회신이 뚝 끊어졌습니다. 결국 이 배는 구조되지 못했습니다.
이 말을 잘못 알아들은 탓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지금 내가 어디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 입니다.
나는 지금 구조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말해야 했습니다.
나는 부족하고 연약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이것보다 더 확실하게 자신을 알림이 없습니다.
사람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을 못 본다는 것이요 자신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있을 때입니다.
정신 질환을 앓은 전문으로 치료하는 전문의들의 말에 의하면 이상하게도 정신의 이상을 가진 자들은 하나같이 자기중심적이다 고 합니다.
제 정신이 들었건, 혹 정신이 있건 없건 간에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잘못했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전혀 없답니다.
다 많이 알고, 잘났고, 똑똑하다고 한답니다.
그래, 이런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정신병자가 나는 나폴레옹이다 라고 소리를 지르니 뒤에 있던 정신병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언제 너를 나폴레옹으로 임명했느냐? 하고 호통을 친다는 것 아닙니까?
나는 내 자신을 모르고 있는 정신 질환자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정신과 의사들이 말합니다.
현대의 모든 사람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자칫하면 정신이 돌아 버릴 것 같아요
내 용량으로는 세상이 너무 용량이 커서 감당하지를 못하겠어요
그러면 우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부족한 사람이요 그리고 죄인이라고 그렇게 고백하면 되는 것입니다.
역사상에서 이런 고백을 할 줄 아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대왕 다윗 왕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인 줄 알았고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 역시 자신이 죄인인 줄을 알았습니다.
신약 시대에 가장 훌륭한 전도자 사도 바울은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라고 했습니다.
자본이 없는 게 아니요, 기술이 없는 게 아니요, 지식이 없어서 망합니다. 알고 보면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생각이 부족해서 망하고, 정치적으로도 무식해서 그렇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말했습니다. 죄는 한 가지뿐인데 그것은 무식이다. 알아야 될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련의 모든 도덕적인 패륜행위도 알고 보면 바로 알아야 될 것을 모르는 데서부터 비롯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면서 당신에게 못을 박고 십자가를 지우는 군병을 보시면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주시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라고 그렇습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무식의 소치입니다. 그런고로 꼭 알아야 할 것을 알아야 합니다.
헬라의 유명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는 그노티 세 아우톤 곧 네 자신을 알라고 말했습니다.
우주의 이치, 우주의 원리,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안다고 자랑하는 게 많았어요.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볼 때에는 정말 알아야 될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네 자신을 알라 네 자신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는데 그 외에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자신을 잘 아는 자는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못나서 하나님이 나라도 찢으셨고 가정도 사회도 경제도 찢으셨다 우리가 미련하여 몽둥이를 맞아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찢어지고 상하였기 때문에 치료자 되시고, 위로자 되시는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에 의해서 짓밟히고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자존심과 마음, 육체가 찢기고 상하였습니다.
불순종하여 범죄한 후에 인간은 가장 불쌍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피하여 숨어 버렸습니다.
창 3:14-24에서 보면 인간의 찢기고 상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잉태의 수고로 자녀를 낳는데, 그 자녀로 말미암아 고통 받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자녀가 없으면 없어서 고통, 있으면 있어서 걱정입니다.
잉태의 고통은 인간이 겪는 고통 가운데 최고의 아픔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자들이 아이를 낳은 후에는 독해진다고 합니다.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을 경험하기에, 그 이후에는 무서운 게 없다고 합니다.
가정은 협력의 관계로 하나님이 만드셨는데, 여자는 남편을 기다리고, 남편은 여자를 다스리는 관계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에서 오는 가정의 갈등은 끝이 없습니다.
창 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종신토록 땀 흘려 수고해야할 뿐만 아니라, 그래도 제대로 얻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결국 흑으로 돌아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죽음의 고통은 인간이 맞이하는 가장 큰 고통입니다. 죽음 앞에 두려워 떨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찢긴 심령이 아닙니까?
가정 문제가 오늘 우리를 짓누르고 있지 않습니까?
부부문제, 자녀문제, 등등
사는 문제가 오늘 우리를 짓누르고 있지 않습니까?
실업, 고물가, 돈은 있어도 있어도 모자라는 체제로 되어 있습니다.
죽음의 문제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누구에게나 있는 병마, 우리 몸에는 언제든지 우리 몸을 썩게 하는 암 세포가 호시 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고 미국의 성수대교 같은 참사
정신적이고 영적인 문제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영적인 갈급함, 영적인 공허
이런 문제 앞에 마음이 찢기고, 가정이 찢기고, 육체가 찢긴 것이 오늘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찢기고 상한 심령은 주님께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돌아가라는 말입니까?
돌아가는 단어는 메타노오에로 마음을 바꾸다, 회개하다는 말입니다.
구원의 예수님을 맞이하라고 외치는 세례 요한의 첫 소리가 ‘회개하라’는 메시지요 구원의 예수님이 오셔서 처음하시는 말씀도 회개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성령을 받은 주님의 제자들이 가장 먼저 외침 메시지도 회개하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믿기로 한 나에게도 들려주시는 말씀이 있다면 역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회개하라는 말입니까?
타고난 발명가인 아이작 뉴턴은 그 유명한 발명품을 두고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세상 사람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여지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나 자신은 해변에서 노는 소년과 같이 예쁜 조개껍질을 들고 즐거워하는 생을 살고 있다 사실 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네 다 몰라도 괜찮습니다.
모르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모든 것을 아는 자입니다.
아이작 뉴턴은 말년에 기억 상실증에 빠져서 모든 것을 다 망각해 버렸습니다. 자기 이름도 나이마저도 잊었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아는 것이 무엇입니까?내가 아는 것은 두 가지요. 내가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께서 내 구주라는 것, 그것만 알 뿐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회개하는 것입니까?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고백하는 자만이 모든 사람에게 다 은혜를 입은 자로 생각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놀라운 영 육간에 치유의 역사가 일어 날 것입니다.
2절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신다 고 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 된 병자가 누워 있었습니다. 연못물을 천사가 동하게 할 때 먼저 뛰어들면 치료된다는 전설 때문에 수많은 환자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을 찾아오신 주님에게 38년 된 병자는 물이 동할 때 나를 넣어 줄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누워 있다 고 신세타령을 늘어놓았습니다.
그 사람에게 주님은 즉시 일어나라 그리고 네 침상을 메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그 시간 이후로 38년 된 그의 절망과 고통과 불행이 사라지고 찬란한 인생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에 한 평생 고민하고 치유되지 못한 일들이 치유하고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반드시 만족하게 하실 것입니다.
기독교 방송 드라마에 맹인 목사인 윤인수 목사의 간증 드라마가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중병으로 앓아누워 있는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어린 소년 윤인수가 길거리에 나가 신문을 팔고 구두 닦기를 시작했습니다. 친구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윤인수로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윤인수는 열심으로 일을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기뻐하며 그 돈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돈을 내놓았습니다. 돈을 받아 든 어머니는 윤인수의 등을 두들겨 주며 십일조를 먼저 떼자고 했습니다. 윤인수는 버럭 화를 냈습니다. 십일조는 무슨 십일조인가, 하나님이 우리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나의 눈은 멀게 했고 엄마는 병들게 했고 공산당에게 쫓겨 피난민 신세가 되게 했고 재산도 다 빼앗기게 한 그런 하나님께 무슨 놈의 십일조를 내라느냐며 항변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병든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손을 꼬옥 쥔 다음 인수야 고향 잃어버린 것도 한스럽고 집 잃어버린 것도 원통하고 건강 잃어버린 것도 서러운데 하나님까지 잃어버리고 믿음까지 잃어버리면 뭐가 남겠니? 라고 말했습니다.
아직도 나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할렐루야!
이 하나님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주에 어제 어떤 분과 상담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로 나아 올 수 있는가? 이였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현재의 내 생활이 복잡하기 때문에 그것이 정리가 되어야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나온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모습을 보고 어찌 예수님과 상담을 했던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의 사람들과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을 하니 사람은 지금에 살고 있는 자가 2000년 전의 사람이나 창조 될 당시나 다 똑같은 사람이 구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 장사를 하고 어떤 사람은 작별인사를 하고 어떤 사람은 시집 장가를 갔으니 어떤 사람은 사업 때문에 등등 모양도 가지각색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태도는 합당한 생각이 아니다 고 하였습니다.
그 일을 정리하고 나온다는데 왜 그러실까? 하고 생각을 해보니 이 세상은 내가 하나님께로 나올 수 있도록 내 주변을 정리해 주기 보다는 더 못나오게 복잡하게 만들 뿐입니다.
사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이 내 주변이 평안하여서 주께 나온 것이 아니라 나오고 보니 정리가 하나하나 되어 가는 것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은 우리의 생활이 정리가 되고 안정이 되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취미로 가지는 기호 식품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일단 하나님께로 나올 때에 내 인생이 정리가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내 인생의 정리에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참으로 가슴 아프고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칼로 찢어지고 몽둥이로 맞아 상 할 대로 상한 인생이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 문제를 다 해결하고 하나님께로 나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온갖 문제들이 많지만 그 문제에 골머리를 싸고 한숨을 쉬고 머리아파하고 걱정만 하고 있지 말고 그냥 하나님께 나와 보자
예수님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찢어졌으나 낫게 될 것이고 두들겨 맞았으나 싸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께서 누구를? 나를 언제? 돌아오기만 하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기가 그리 쉽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는 일주일에 한번 나오는 것도 힘이 듭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을 나오는 자들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 자신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만 안 돼 오직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만 돼 하는 자는 하나님께로 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이 자신의 위치가 어떠하다고 아는 자만이 인생의 상처를 치유를 받을 수 가 있습니다.
열심히 열심히 나와서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자입니다.
예배 시간마다 올라오고 새벽에도 올라오고 저녁에도 오라오고 나 여기 있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나 지금 이렇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밤 낮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겠느냐?
여러해 전에 미국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요트 한 척이 침몰되었습니다. 침몰 직전, 해안 구조대에 SOS신호가 왔습니다. 구조대 통신원이 회신을 했습니다. 알았다, 곧 구하러 가겠다. 현재 당신의 위치를 알려라. What is your position? 이때에 대답이 왔습니다. 나는 한국에 있는 모 은행의 은행장이다. 그리고 회신이 뚝 끊어졌습니다. 결국 이 배는 구조되지 못했습니다.
이 말을 잘못 알아들은 탓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지금 내가 어디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 입니다.
나는 지금 구조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말해야 했습니다.
나는 부족하고 연약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이것보다 더 확실하게 자신을 알림이 없습니다.
사람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을 못 본다는 것이요 자신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있을 때입니다.
정신 질환을 앓은 전문으로 치료하는 전문의들의 말에 의하면 이상하게도 정신의 이상을 가진 자들은 하나같이 자기중심적이다 고 합니다.
제 정신이 들었건, 혹 정신이 있건 없건 간에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잘못했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전혀 없답니다.
다 많이 알고, 잘났고, 똑똑하다고 한답니다.
그래, 이런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정신병자가 나는 나폴레옹이다 라고 소리를 지르니 뒤에 있던 정신병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언제 너를 나폴레옹으로 임명했느냐? 하고 호통을 친다는 것 아닙니까?
나는 내 자신을 모르고 있는 정신 질환자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정신과 의사들이 말합니다.
현대의 모든 사람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자칫하면 정신이 돌아 버릴 것 같아요
내 용량으로는 세상이 너무 용량이 커서 감당하지를 못하겠어요
그러면 우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부족한 사람이요 그리고 죄인이라고 그렇게 고백하면 되는 것입니다.
역사상에서 이런 고백을 할 줄 아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대왕 다윗 왕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인 줄 알았고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 역시 자신이 죄인인 줄을 알았습니다.
신약 시대에 가장 훌륭한 전도자 사도 바울은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라고 했습니다.
자본이 없는 게 아니요, 기술이 없는 게 아니요, 지식이 없어서 망합니다. 알고 보면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생각이 부족해서 망하고, 정치적으로도 무식해서 그렇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말했습니다. 죄는 한 가지뿐인데 그것은 무식이다. 알아야 될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련의 모든 도덕적인 패륜행위도 알고 보면 바로 알아야 될 것을 모르는 데서부터 비롯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면서 당신에게 못을 박고 십자가를 지우는 군병을 보시면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주시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라고 그렇습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무식의 소치입니다. 그런고로 꼭 알아야 할 것을 알아야 합니다.
헬라의 유명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는 그노티 세 아우톤 곧 네 자신을 알라고 말했습니다.
우주의 이치, 우주의 원리,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안다고 자랑하는 게 많았어요.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볼 때에는 정말 알아야 될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네 자신을 알라 네 자신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는데 그 외에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자신을 잘 아는 자는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못나서 하나님이 나라도 찢으셨고 가정도 사회도 경제도 찢으셨다 우리가 미련하여 몽둥이를 맞아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찢어지고 상하였기 때문에 치료자 되시고, 위로자 되시는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에 의해서 짓밟히고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자존심과 마음, 육체가 찢기고 상하였습니다.
불순종하여 범죄한 후에 인간은 가장 불쌍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피하여 숨어 버렸습니다.
창 3:14-24에서 보면 인간의 찢기고 상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잉태의 수고로 자녀를 낳는데, 그 자녀로 말미암아 고통 받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자녀가 없으면 없어서 고통, 있으면 있어서 걱정입니다.
잉태의 고통은 인간이 겪는 고통 가운데 최고의 아픔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자들이 아이를 낳은 후에는 독해진다고 합니다.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을 경험하기에, 그 이후에는 무서운 게 없다고 합니다.
가정은 협력의 관계로 하나님이 만드셨는데, 여자는 남편을 기다리고, 남편은 여자를 다스리는 관계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에서 오는 가정의 갈등은 끝이 없습니다.
창 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종신토록 땀 흘려 수고해야할 뿐만 아니라, 그래도 제대로 얻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결국 흑으로 돌아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죽음의 고통은 인간이 맞이하는 가장 큰 고통입니다. 죽음 앞에 두려워 떨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찢긴 심령이 아닙니까?
가정 문제가 오늘 우리를 짓누르고 있지 않습니까?
부부문제, 자녀문제, 등등
사는 문제가 오늘 우리를 짓누르고 있지 않습니까?
실업, 고물가, 돈은 있어도 있어도 모자라는 체제로 되어 있습니다.
죽음의 문제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누구에게나 있는 병마, 우리 몸에는 언제든지 우리 몸을 썩게 하는 암 세포가 호시 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고 미국의 성수대교 같은 참사
정신적이고 영적인 문제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영적인 갈급함, 영적인 공허
이런 문제 앞에 마음이 찢기고, 가정이 찢기고, 육체가 찢긴 것이 오늘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찢기고 상한 심령은 주님께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돌아가라는 말입니까?
돌아가는 단어는 메타노오에로 마음을 바꾸다, 회개하다는 말입니다.
구원의 예수님을 맞이하라고 외치는 세례 요한의 첫 소리가 ‘회개하라’는 메시지요 구원의 예수님이 오셔서 처음하시는 말씀도 회개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성령을 받은 주님의 제자들이 가장 먼저 외침 메시지도 회개하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믿기로 한 나에게도 들려주시는 말씀이 있다면 역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회개하라는 말입니까?
타고난 발명가인 아이작 뉴턴은 그 유명한 발명품을 두고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세상 사람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여지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나 자신은 해변에서 노는 소년과 같이 예쁜 조개껍질을 들고 즐거워하는 생을 살고 있다 사실 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네 다 몰라도 괜찮습니다.
모르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모든 것을 아는 자입니다.
아이작 뉴턴은 말년에 기억 상실증에 빠져서 모든 것을 다 망각해 버렸습니다. 자기 이름도 나이마저도 잊었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아는 것이 무엇입니까?내가 아는 것은 두 가지요. 내가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께서 내 구주라는 것, 그것만 알 뿐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회개하는 것입니까?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고백하는 자만이 모든 사람에게 다 은혜를 입은 자로 생각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놀라운 영 육간에 치유의 역사가 일어 날 것입니다.
2절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신다 고 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 된 병자가 누워 있었습니다. 연못물을 천사가 동하게 할 때 먼저 뛰어들면 치료된다는 전설 때문에 수많은 환자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을 찾아오신 주님에게 38년 된 병자는 물이 동할 때 나를 넣어 줄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누워 있다 고 신세타령을 늘어놓았습니다.
그 사람에게 주님은 즉시 일어나라 그리고 네 침상을 메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그 시간 이후로 38년 된 그의 절망과 고통과 불행이 사라지고 찬란한 인생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에 한 평생 고민하고 치유되지 못한 일들이 치유하고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반드시 만족하게 하실 것입니다.
기독교 방송 드라마에 맹인 목사인 윤인수 목사의 간증 드라마가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중병으로 앓아누워 있는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어린 소년 윤인수가 길거리에 나가 신문을 팔고 구두 닦기를 시작했습니다. 친구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윤인수로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윤인수는 열심으로 일을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기뻐하며 그 돈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돈을 내놓았습니다. 돈을 받아 든 어머니는 윤인수의 등을 두들겨 주며 십일조를 먼저 떼자고 했습니다. 윤인수는 버럭 화를 냈습니다. 십일조는 무슨 십일조인가, 하나님이 우리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나의 눈은 멀게 했고 엄마는 병들게 했고 공산당에게 쫓겨 피난민 신세가 되게 했고 재산도 다 빼앗기게 한 그런 하나님께 무슨 놈의 십일조를 내라느냐며 항변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병든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손을 꼬옥 쥔 다음 인수야 고향 잃어버린 것도 한스럽고 집 잃어버린 것도 원통하고 건강 잃어버린 것도 서러운데 하나님까지 잃어버리고 믿음까지 잃어버리면 뭐가 남겠니? 라고 말했습니다.
아직도 나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할렐루야!
이 하나님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