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인내로 결실을 맛보자
페이지 정보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90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누가복음 8:11- 15긍정적인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인내로 결실을 맛보자
프랑스의 세계적인 화가 장 프랑소와 밀레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던 초기의 무명 시절엔 무척 가난하였기 때문에 이것저것 생각 할 겨흘이 없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누드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밀레가 멀쩡한 두 사람이 맥주잔을 들이키면서 음담패설을 늘어놓은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들의 하는 짓이 겉과 속이 다른 얼마나 추해 보였든지, 이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을 하고는 그 날부터 자기가 그리는 그림의 방향을 바꾸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서 사는 것도 좋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욱 인간적인 미가 깃든 그림을 그릴 것이다 이러한 밀레의 생각은 그의 삶의 목적이 달라지는, 즉 그의 인생을 새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새로운 생각을 굳힌 이후로 그림의 소재를 농가 쪽으로 옮겨서 주로 열심히 노동을 하는 농부의 삶을 그의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의 그림 속에는 누런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의 농심이 가득했고 거기에는 늘 농부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그에게 있어 가난과 굶주림의 대명사였던 농부가 오히려 영원불멸의 명성을 가져다 준 풍요로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밀레는 \\농부의 화가\\로 널리 알려졌고, 그는 \\씨뿌리는 사람\\, \\이삭 줍는 사람\\, \\양치는 사람\\, \\만종\\ 등의 명작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바꾸었더니 위대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성도들의 마음을 밭에다가 비유로 하셨습니다.
왜 이런 비유를 하셨을까요?
신앙생활을 자신 나름대로 하기는 하는데 실제적으로 무엇인가? 그 인생에 결실이 있어야 하는데 결실이 없기에 안타까운 것입니다.
이것은 본인에게도 슬픈 일이고 주위에서 보는 사람도 답답할 뿐입니다.
여태까지 신앙 생활하면서 무엇을 하였느냐? 는 말입니다.
저 역시 한 교회의 목사로서 성도들을 위하여 양육하고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도 하고 복되게 살기를 원하여 인도하기 위하여 애를 쓰지만 그런 사람에게서 무엇인가? 결실이 없을 때에는 목회의 환멸(幻滅)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도 답답할 뿐입니다.
오늘 우리 주님은 4가지의 마음의 밭을 소개하시고 결실 없는 마음이 되지 말고좋은 밭이 되어 100배나 결실하는 마음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할렐루야!
예수님 당시 중동 지역 팔레스틴에서는 씨를 뿌릴 때에 주로 씨앗을 손에 쥐고 훨훨 뿌리는 방법과 당나귀 등에 씨앗 자루를 얻고 거기에 구멍을 내서 짐승이 움직이는 대로 씨앗이 떨어지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 씨앗이 여기 저기 떨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씨앗을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진 씨는 사람들에게 밟히든지 공중의 새들이 와서 먹어 버림으로 결실은 아예 생각 할 수가 없습니다.
또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는데 이 암반 위에 흙이 얇게 덮여져 있어 그 위에 씨앗이 떨어지면 곧 촉이 트고 싹이 나오지만 흙이 깊지 않아 태양이 떠오르면 습기가 없으므로 말라서 금방 죽고 맙니다.
더러는 가시 떨기 속에 떨어져서 자라기는 자라지만 잡초가 더 무성하고 생명력이 있어 영양분을 다 빼앗기고 그늘이 져서 제대로 된 열매를 기대하지를 못합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백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떨어진 씨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받아드리는 밭이 문제입니다.
꼭 축복을 받지 못하는 자가 하는 변명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문제가 있는 것같이 여기시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전혀 보지 못한 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 드리는 나의 마음의 자세가 문제 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므로 100배나 결실을 기대가 되는 성도도 있지만 전혀 결실은커녕 싹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굳을 대로 굳은 성도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주시는 것은 제아무리 결실을 할 수 없는 사람도 여태까지 은혜 경험이 없는 사람도 마음하나 바로 가져 마음이 좋은 마음이 되어 100배의 결실을 가져 보라는 주님의 음성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도 좋은 마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결실을 가져 오는 좋은 마음을 소유하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말씀을 사모하는 자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해야 합니다.
무슨 말씀을 주시든지 내 것으로 만드시기를 축원합니다.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은 유아세례를 받은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닌 자였지만 교회는 거의 습관적으로 출석을 했고 교인이지만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교인이지만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면서 이런 의문이 생겼습니다.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교회에 출석했는데, 나는 이렇게 익숙하게 종교적 환경에 접했는데, 나는 설교를 수없이 들어 왔는데, 어찌 이렇게 내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없으며 여전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상태로 있을까? 그러면서 뜨거운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믿음생활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믿고 싶어도, 한번 화끈하게 믿어보고 싶어도 안 믿어지니까 문제입니다.
여러분!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 줄 아십니까? 문제는 마음 밭 때문입니다.
믿음은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하지 않습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는데,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드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믿음이 도무지 생겨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신학자와 목회자인 토레이 박사에 의하면, 만일 그리스도인이 그의 생활과 신앙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충분히 경험하기 원한다면, 그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육체의 건강을 지킬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생명력은 유지될 수 없습니다.
예배 시간마다 참여하는 것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 모임에 참여 하는 것 그 자체가 축복임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이 없이 축복을 받으려고 하는데 그런 축복은 없습니다.
사울 왕이 말씀을 버리고 보니 그의 전부가 버림을 받았던 것입니다.
다윗은 말씀을 자신이 사모하는 것보다 더 사모하고 송이 꿀보다 더 달게 여겼더니 그 말씀이 자신을 살릴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 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말씀은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요 지혜요 능력이요 소망이요 나의 바라는 모든 것이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잘 받아 드리는 자가 기도도 잘 드리는 기도를 드리고 응답도 잘 받을 수 있습니다.
요일 5:14-15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캄캄한 밤에 헤매는 것 같은 기도에서 벗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이 말씀을 받아 드리지 못하면 마귀가 와서 구원의 축복을 받지 못하도록 내 마음에서 빼앗아 가 버립니다.
맨 날 맨 날 축복을 해 주어도 맨 날 맨 날 마귀에게 다 빼앗겨야 되겠습니까?
이 길가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건성으로 듣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귀한 줄을 몰라요
예수님이 귀 있는 자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건성으로 듣는 자들입니다.
바리새인들 마냥 늘 읽고 듣던 말씀이라 하여 건성으로 들어 넘기니 그 사람들 주변에는 늘 마귀가 들끓어 예수님조차도 십자가에 못을 박게 하는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을 빼앗아 가는 마귀의 역사도 경계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100배의 좋은 결실을 가지려면 인간적인 요소를 배제(排擠)해야 합니다.
두 번째 마음 밭을 가진 자는 말씀을 들을 때는 기쁨으로 받아 드리고 말씀에 대한 나쁜 선입견도 없습니다.그리고 마음에 다짐도 합니다.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눈물도 흘립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오래 지속시키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13절에 보면 처음에는 기쁨으로 잠깐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시험이란 하나님의 Test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의 믿음이 자랐나 Test를 하십니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넘어 집니다.
왜요 실력이 없어서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냥 축복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 만큼 축복을 받을 그릇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내게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축복을 내가 가진 성질, 성격, 언어, 행동, 생각, 비전 등등 인간적인 것으로는 감당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 믿음이 이제 들어갔겠지 한번 건 들어 확인 해 볼까?
참 기가 막혀 믿음이 없는 거예요
갈릴리 호수의 제자들이 풍랑이 일어 날 때에 그들의 믿음은 없는 것을 예수님이 알았습니다.
여태까지 뭐를 믿었다는 거야 제발 믿음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우리 가운데도 한둘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사랑하는 외아들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시험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주를 위하여 뭐 좀 할 수 없겠나 하면 주께 받을 것만 생각했지 주를 위하는 데는 얼마나 아까워하는지 모릅니다.
아브라함이 말씀대로 시험을 잘 치룬 후에 얼마나 축복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준비 해 주시는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여호와 이례 항상 내 나아가는 인생길에 항상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100배의 결실을 가져 오는 밭은 모든 염려를 마기고 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세상적인 염려 걱정 근심 그리고 세상적인 유혹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깨어 기도하라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하여
너희 중에 염려하는 자가 있느냐?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부족함이 없게 하리라 할렐루야!
가시밭에 떨어진 씨앗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3가지는 첫째는 이생의 염려(life\\s worris)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생의 염려란 온갖 인생살이에 대한 염려입니다.
예수님은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 하셨습니다.
내 인생은 어떠하며 장래는 어떻게 될까? 하는 염려로 시간을 빼앗기고 거기에 기운이 다 빼앗겨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어떤 분은 이혼을 당할 것을 미리 염려 하여 시집을 가지 않고 있는 이도 있습니다.
둘째는 재리(財利)의 염려 곧 더 가지고자 하는 욕심입니다.
야고보서 1;15절에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였고, 디모데서전서 6:9,10절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더나 많은 근심으로서 자기를 찔렀도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돈에 욕심을 가지다가 별별 죄악에 다 빠지고 모두가 죽게 생겼더라고요
그래요 안 그래요
이제 은혜 받고 물질에 자유를 누리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는 일락(pleasures) 때문인데 일락(一樂)이란 세상 즐거움, 육신의 쾌락을 쫓는 마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를 쓰면서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떠났고 했습니다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세상 쾌락으로 음란 비디오나 속된 책 속으로 빠져들기 쉽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다 그기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오락기 다 가지고 다니고 소히 머리에 소똥도 벗지 않는 아이들이 남녀 짝을 맞춰 별별 짓을 다하고 다닙니다.
설교 시간에는 꾸벅꾸벅 졸다가 찬송 부르는 시간에는 입만 달삭달삭 하다가 노래방에 가서는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목청껏 목이 터져라 온 몸을 불사르며 신나게 부릅니다.
이렇게 세상 일락을 좋아하니까 신앙에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 같은 것으로 가득찬 내 마음을 정화시키고 깨끗하게 하고 그리고 하나님으로 채 울 수 있는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 갈 수 없느니라
아이를 괴롭히는 더러운 귀신도 기도하니 물러 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여튼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만드시기를 축원합니다.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만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많은 은혜를 가지시고 주시려고 기도하기만 기다리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래부터 옥토인 땅은 없습니다. 우리 집에서 농사짓던 땅도 옥토가 아니었습니다. 매년마다 두엄을 나르고 밭에 있는 돌들을 빼어내서 밭 밖으로 옮기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 농부들에게는 그 땅이 옥토가 되는 것이죠. 땀의 결과가 그렇게 옥토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옥토가 아니라고 그냥 버려두거나 무관심해서는 안 되고 열심히 일구어 옥토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내 인생 100배나 결실 가져오는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화가 장 프랑소와 밀레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던 초기의 무명 시절엔 무척 가난하였기 때문에 이것저것 생각 할 겨흘이 없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누드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밀레가 멀쩡한 두 사람이 맥주잔을 들이키면서 음담패설을 늘어놓은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들의 하는 짓이 겉과 속이 다른 얼마나 추해 보였든지, 이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을 하고는 그 날부터 자기가 그리는 그림의 방향을 바꾸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서 사는 것도 좋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욱 인간적인 미가 깃든 그림을 그릴 것이다 이러한 밀레의 생각은 그의 삶의 목적이 달라지는, 즉 그의 인생을 새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새로운 생각을 굳힌 이후로 그림의 소재를 농가 쪽으로 옮겨서 주로 열심히 노동을 하는 농부의 삶을 그의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의 그림 속에는 누런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의 농심이 가득했고 거기에는 늘 농부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그에게 있어 가난과 굶주림의 대명사였던 농부가 오히려 영원불멸의 명성을 가져다 준 풍요로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밀레는 \\농부의 화가\\로 널리 알려졌고, 그는 \\씨뿌리는 사람\\, \\이삭 줍는 사람\\, \\양치는 사람\\, \\만종\\ 등의 명작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바꾸었더니 위대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성도들의 마음을 밭에다가 비유로 하셨습니다.
왜 이런 비유를 하셨을까요?
신앙생활을 자신 나름대로 하기는 하는데 실제적으로 무엇인가? 그 인생에 결실이 있어야 하는데 결실이 없기에 안타까운 것입니다.
이것은 본인에게도 슬픈 일이고 주위에서 보는 사람도 답답할 뿐입니다.
여태까지 신앙 생활하면서 무엇을 하였느냐? 는 말입니다.
저 역시 한 교회의 목사로서 성도들을 위하여 양육하고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도 하고 복되게 살기를 원하여 인도하기 위하여 애를 쓰지만 그런 사람에게서 무엇인가? 결실이 없을 때에는 목회의 환멸(幻滅)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도 답답할 뿐입니다.
오늘 우리 주님은 4가지의 마음의 밭을 소개하시고 결실 없는 마음이 되지 말고좋은 밭이 되어 100배나 결실하는 마음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할렐루야!
예수님 당시 중동 지역 팔레스틴에서는 씨를 뿌릴 때에 주로 씨앗을 손에 쥐고 훨훨 뿌리는 방법과 당나귀 등에 씨앗 자루를 얻고 거기에 구멍을 내서 짐승이 움직이는 대로 씨앗이 떨어지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 씨앗이 여기 저기 떨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씨앗을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진 씨는 사람들에게 밟히든지 공중의 새들이 와서 먹어 버림으로 결실은 아예 생각 할 수가 없습니다.
또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는데 이 암반 위에 흙이 얇게 덮여져 있어 그 위에 씨앗이 떨어지면 곧 촉이 트고 싹이 나오지만 흙이 깊지 않아 태양이 떠오르면 습기가 없으므로 말라서 금방 죽고 맙니다.
더러는 가시 떨기 속에 떨어져서 자라기는 자라지만 잡초가 더 무성하고 생명력이 있어 영양분을 다 빼앗기고 그늘이 져서 제대로 된 열매를 기대하지를 못합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백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떨어진 씨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받아드리는 밭이 문제입니다.
꼭 축복을 받지 못하는 자가 하는 변명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문제가 있는 것같이 여기시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전혀 보지 못한 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 드리는 나의 마음의 자세가 문제 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므로 100배나 결실을 기대가 되는 성도도 있지만 전혀 결실은커녕 싹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굳을 대로 굳은 성도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주시는 것은 제아무리 결실을 할 수 없는 사람도 여태까지 은혜 경험이 없는 사람도 마음하나 바로 가져 마음이 좋은 마음이 되어 100배의 결실을 가져 보라는 주님의 음성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도 좋은 마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결실을 가져 오는 좋은 마음을 소유하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말씀을 사모하는 자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해야 합니다.
무슨 말씀을 주시든지 내 것으로 만드시기를 축원합니다.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은 유아세례를 받은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닌 자였지만 교회는 거의 습관적으로 출석을 했고 교인이지만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교인이지만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면서 이런 의문이 생겼습니다.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교회에 출석했는데, 나는 이렇게 익숙하게 종교적 환경에 접했는데, 나는 설교를 수없이 들어 왔는데, 어찌 이렇게 내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없으며 여전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상태로 있을까? 그러면서 뜨거운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믿음생활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믿고 싶어도, 한번 화끈하게 믿어보고 싶어도 안 믿어지니까 문제입니다.
여러분!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 줄 아십니까? 문제는 마음 밭 때문입니다.
믿음은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하지 않습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는데,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드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믿음이 도무지 생겨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신학자와 목회자인 토레이 박사에 의하면, 만일 그리스도인이 그의 생활과 신앙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충분히 경험하기 원한다면, 그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육체의 건강을 지킬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생명력은 유지될 수 없습니다.
예배 시간마다 참여하는 것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 모임에 참여 하는 것 그 자체가 축복임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이 없이 축복을 받으려고 하는데 그런 축복은 없습니다.
사울 왕이 말씀을 버리고 보니 그의 전부가 버림을 받았던 것입니다.
다윗은 말씀을 자신이 사모하는 것보다 더 사모하고 송이 꿀보다 더 달게 여겼더니 그 말씀이 자신을 살릴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 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말씀은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요 지혜요 능력이요 소망이요 나의 바라는 모든 것이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잘 받아 드리는 자가 기도도 잘 드리는 기도를 드리고 응답도 잘 받을 수 있습니다.
요일 5:14-15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캄캄한 밤에 헤매는 것 같은 기도에서 벗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이 말씀을 받아 드리지 못하면 마귀가 와서 구원의 축복을 받지 못하도록 내 마음에서 빼앗아 가 버립니다.
맨 날 맨 날 축복을 해 주어도 맨 날 맨 날 마귀에게 다 빼앗겨야 되겠습니까?
이 길가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건성으로 듣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귀한 줄을 몰라요
예수님이 귀 있는 자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건성으로 듣는 자들입니다.
바리새인들 마냥 늘 읽고 듣던 말씀이라 하여 건성으로 들어 넘기니 그 사람들 주변에는 늘 마귀가 들끓어 예수님조차도 십자가에 못을 박게 하는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을 빼앗아 가는 마귀의 역사도 경계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100배의 좋은 결실을 가지려면 인간적인 요소를 배제(排擠)해야 합니다.
두 번째 마음 밭을 가진 자는 말씀을 들을 때는 기쁨으로 받아 드리고 말씀에 대한 나쁜 선입견도 없습니다.그리고 마음에 다짐도 합니다.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눈물도 흘립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오래 지속시키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13절에 보면 처음에는 기쁨으로 잠깐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시험이란 하나님의 Test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의 믿음이 자랐나 Test를 하십니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넘어 집니다.
왜요 실력이 없어서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냥 축복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 만큼 축복을 받을 그릇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내게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축복을 내가 가진 성질, 성격, 언어, 행동, 생각, 비전 등등 인간적인 것으로는 감당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 믿음이 이제 들어갔겠지 한번 건 들어 확인 해 볼까?
참 기가 막혀 믿음이 없는 거예요
갈릴리 호수의 제자들이 풍랑이 일어 날 때에 그들의 믿음은 없는 것을 예수님이 알았습니다.
여태까지 뭐를 믿었다는 거야 제발 믿음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우리 가운데도 한둘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사랑하는 외아들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시험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주를 위하여 뭐 좀 할 수 없겠나 하면 주께 받을 것만 생각했지 주를 위하는 데는 얼마나 아까워하는지 모릅니다.
아브라함이 말씀대로 시험을 잘 치룬 후에 얼마나 축복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준비 해 주시는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여호와 이례 항상 내 나아가는 인생길에 항상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100배의 결실을 가져 오는 밭은 모든 염려를 마기고 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세상적인 염려 걱정 근심 그리고 세상적인 유혹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깨어 기도하라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하여
너희 중에 염려하는 자가 있느냐?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부족함이 없게 하리라 할렐루야!
가시밭에 떨어진 씨앗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3가지는 첫째는 이생의 염려(life\\s worris)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생의 염려란 온갖 인생살이에 대한 염려입니다.
예수님은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 하셨습니다.
내 인생은 어떠하며 장래는 어떻게 될까? 하는 염려로 시간을 빼앗기고 거기에 기운이 다 빼앗겨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어떤 분은 이혼을 당할 것을 미리 염려 하여 시집을 가지 않고 있는 이도 있습니다.
둘째는 재리(財利)의 염려 곧 더 가지고자 하는 욕심입니다.
야고보서 1;15절에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였고, 디모데서전서 6:9,10절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더나 많은 근심으로서 자기를 찔렀도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돈에 욕심을 가지다가 별별 죄악에 다 빠지고 모두가 죽게 생겼더라고요
그래요 안 그래요
이제 은혜 받고 물질에 자유를 누리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는 일락(pleasures) 때문인데 일락(一樂)이란 세상 즐거움, 육신의 쾌락을 쫓는 마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를 쓰면서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떠났고 했습니다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세상 쾌락으로 음란 비디오나 속된 책 속으로 빠져들기 쉽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다 그기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오락기 다 가지고 다니고 소히 머리에 소똥도 벗지 않는 아이들이 남녀 짝을 맞춰 별별 짓을 다하고 다닙니다.
설교 시간에는 꾸벅꾸벅 졸다가 찬송 부르는 시간에는 입만 달삭달삭 하다가 노래방에 가서는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목청껏 목이 터져라 온 몸을 불사르며 신나게 부릅니다.
이렇게 세상 일락을 좋아하니까 신앙에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 같은 것으로 가득찬 내 마음을 정화시키고 깨끗하게 하고 그리고 하나님으로 채 울 수 있는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 갈 수 없느니라
아이를 괴롭히는 더러운 귀신도 기도하니 물러 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여튼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만드시기를 축원합니다.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만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많은 은혜를 가지시고 주시려고 기도하기만 기다리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래부터 옥토인 땅은 없습니다. 우리 집에서 농사짓던 땅도 옥토가 아니었습니다. 매년마다 두엄을 나르고 밭에 있는 돌들을 빼어내서 밭 밖으로 옮기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 농부들에게는 그 땅이 옥토가 되는 것이죠. 땀의 결과가 그렇게 옥토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옥토가 아니라고 그냥 버려두거나 무관심해서는 안 되고 열심히 일구어 옥토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내 인생 100배나 결실 가져오는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