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수고 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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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40회 작성일 2015-08-0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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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55:1-3 내가 수고 하는 것은
이태리의 출신 독일의 유명한 화가 베첼리오 티치아노는 누드 그림을 그려 생활을 하는데 하루는 교회의 요청에 의해 아무 뜻 없이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형상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누드모델이 이 그림은 누구를 그린 것이냐 고 물었을 때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예수 그리스도가 만민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형상이라고 일러 주자 그 모델 아가씨가 그렇다면 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저씨의 죄를 위해서도 죽으셨겠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서슴없이 그렇다고 한 후에 그 대답이 자신의 양심을 너무 찔렀습니다.
그 후에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의 진정한 뜻을 깨달고 그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죽음에 감격하여 생활을 위한 그림을 그리지 않고 진정한 왜 그림을 그려야 하느냐의 의미를 알고 다시 그린 그림이 유명한 에케호모 즉 이 사람을 보라는 성화입니다.
생활을 위한 그림을 그리던 자가 왜 내가 그림을 그려야 하는 본연의 의미로 돌아오게 되어 이 그림은 많은 사람에게 그리스의 속죄를 알리는 그림이 되었습니다.
이 그림을 본 영국의 유명한 여류 찬송 작가 프랜시스 리들리 해버갈 양이 내 너를 위하여의 찬송시를 썼고, 그의 성화에 감동 받은 진젠돌프 백작은 평생 주를 위해 헌신하기로 다짐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내가 무엇을 위하여 수고하며 사느냐?
굉장히 중요하지 않습니까?
본문의 이사야 선지자는 포로 생활로 지쳐있는 자들에게 생활의 사고방식을 바꾸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절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인간은 육신의 빵을 구하기만 위하여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실망하고 만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값을 지불하고 수고하지 말라고 합니다.
진짜 취할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가장 좋은 음식이요 기름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으로 얻는 양식이 진짜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이 양식은 원하면 누구든지 얻게 됩니다.
그냥 공짜로 주시는 것입니다.
1절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이스라엘에도 이처럼 장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가죽 부대에 물과 포도주와 우유를 담아서 물 사세요! 포도주 사세요! 우유 사세요! 라고 외치며 다녔습니다.
그런데 보통 장사꾼들은 얼마라고 외쳤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물과 포도주와 우유는 모두 값없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기록된 물과 포도주와 젖은 모두 상징성을 지녔습니다.
먼저 물은 생명 그 자체입니다.
인체는 70%가 물로 이루어졌습니다. 몸속에 수분이 2%가 부족하면 심한 갈증이 일어나고, 5%가 부족하면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그리고 12%를 잃으면 사망하게 됩니다.
이처럼 물은 생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악을 징계하실 때에는 하늘 문을 닫으시고, 비를 내리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 사회에는 인심이 흉측해지고 재앙과 죽음이 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물을 사라는 것은 생명을 사라는 말씀입니다.
생명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거저주시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을 돈 주고 사신 분이 계십니까?
육신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거저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도 은혜로 거저 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이렇게 서술했습니다.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육신의 생명을 거저 주셨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 참된 생명도 믿는 자에게 거저 주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포도주는 기쁨을 상징합니다.
시4: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기쁨은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말씀으로부터 거저 주어지는 것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젖은 영적인 양식, 곧 복음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벧전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값없이 영적인 양식을 누구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돈 없는 자도, 목마른 자도 오라고 선포합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복음입니다.
인간이 영생과 구원을 얻기 위해서 기여하거나 공헌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영생과 구원과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이요,
그러므로 일상의 생활에서 먼저 구해야 할 것이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요 그의 말씀입니다.
돈이 된다면 여태까지 믿었다고 생각하던 믿음을 것을 헌신짝 벗어버립니다.
학개서에 보면 우선순위가 바뀔 때 다가오는 결과를 보여 준다.
학1:6-11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
우선순위가 뒤바뀌는 생활은 결코 복될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의 우선순위와 나 개인의 우선순위가 갈등을 일으킬 때 하나님의 우선순위를 선택하는 것이 복된 것이 된다.
모든 것은 세상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이클 샌델이 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무엇이 가치를 결정 하는가 에는 수많은 원인이 있지만 한마디로 말 한다면 탐욕의 극대화를 하기 위한 사회적 공감이 상식적으로 교차되는 시장경제의 테두리 안에서 모든 것이 가치를 결정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복음은 전해질 때에 경제적 가치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순수한 복음 그 자체만 전해지고 부패한 인생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것이 천하의 어떤 가치보다 크게 여겼습니다.
고전9: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그런데 복음이 인간의 구원에 가치를 두지 않고 돈으로 그 가치를 측량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의 교회가 과연 복음적일 수 있는가? 라고 묻고 싶습니다.
마10:8-10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이제라도 참된 양식을 위하여 살아야
3절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돈에 목마른 자, 명예에 목마른 자, 정욕에 목마른 자, 권력에 목마른 자, 세상에 있는 여러가지에 목마른 자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어도 진리에 목마른 자는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세상에 목말라만 하지 말고 진리에 목말라 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들은 누구나 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들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 인생의 목마름은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 당시에 사마리아에 한 목마른 여인이 나옵니다.
이 여인은 영혼의 목마름을 결혼을 잘하여 그 마음의 비어있는 공허를 어떤 남자에게서 얻어 보려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 때에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여태까지 채워지지 인생의 기갈이 해결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요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참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인생은 고독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고하를 불문하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기만 하면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공짜이지만 주님은 어떤 일을 해놓고 오라고 부르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희생으로 그 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영국의 극작가 엘리어트는 인간은 알게 모르게 5가지의 감옥에 갇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로, 이기주의라는 욕심의 감옥이 나만 생각하는 비참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사람들은 근심과 걱정이라는 감옥이 몸도 상하고 마음도 상하여 인격이 파괴되고 질서가 흩어집니다.
셋째로 미움이라는 감옥이 자기도 태우고 다른 사람도 태웁니다.
넷째로, 과거의 감옥이 현재를 그르치고 망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섯째로, 남의 것만 좋게 보이는 비교하는 감옥이 자기 자학의 길로 가게 합니다.
이제 여기서 해방되고 자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라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청종하라 - 들으라
하나님 앞에 나아와 청종하고 들어야 풍성한 은혜로 그 영혼이 삽니다.
서양 격언에 햇볕이 쨍쨍 났을 때 건초더미를 만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때 그 시기에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넘기거나 기회를 놓쳐버리게 되면 나중에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때가 오는 법입니다.
고후6:1-2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게으름을 피우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나아와서 청종하면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
그 영원한 언약은 다윗에게 허락하신 확실한 은혜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사야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하시는 언약은 다윗의 언약이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 낙심과 좌절 가운데 있는 유대백성들에게 다윗과 맺은 언약을 상기 시키며 그 언약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다윗과 맺은 확실한 은혜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언약은 언약을 맺을 합당한 대상을 찾지 않으시고 언약을 맺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드신다는 뜻이다. 언약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으로 하나님이 친히 스스로 이루신다.
언약에 대한 하나님은 신실하심으로 반드시 그 언약을 지키신다.
이 다윗과 맺은 언약은 계시적이니 그 언약의 구체성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세후 죄가 이 땅에 들어왔을 때에 그 약속을 반포하셨습니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자의 후손
그리고 노아에게 다시한번 반포되고 아브라함에게서 다시 이루어졌다.
그리고 다윗에게 그 언약의 그 중심적 내용이 나타났다.
삼하7:8-9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하나님께서 다윗과 언약을 맺으신 확실한 언약은 이렇다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겠다.
네 이름을 존귀케 하여 주시겠다.
네 대적을 물리쳐 평안하게 하여 주시겠다.
네 나라와 그 위를 영원토록 견고케 하여 주시겠다.
절대로 너와 맺은 언약을 폐하지 않겠다. 행위와 상태와 관계없이 말이다. 절대 은총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맺은 언약대로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울왕 때처럼 그의 위를 폐하지 않으셨다. 절대적 은총이었다.
아들 솔로몬 때에도 그리고 그 후손들이 악을 범하고 심지어는 바벨론에 의해 패망직전에도 비록 바벨론에 의해 짓 발피고 유린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은 깨어졌다고 생각지 말라고 한다.
다윗과 맺은 언약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 언약은 하나님이 친히 지킬 것이다.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확실하게 이루진 것입니다.
시18:50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마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우리의 삶에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
이때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이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약속, 그것은 우리 영혼을 살리는 확실한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이 아닌 것을 위하여 너무 애쓰지 마세요.
말씀을 위한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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