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눈을 뜨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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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97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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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6 : 14-19믿음의 눈을 뜨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노벨상을 수상한 영국의 시인이며 소설가인 조셉 키플링은 30세가량 되었을 때, 인도에서 신문사의 기자로 근무하면서 \\정글북\\을 썼는데, 그 책은 곧 베스트셀러가 되어 그는 영국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번은 어떤 소녀가 키플링을 만나기를 소원하였습니다.
당시는 영상이 발달되지 않았던 터라 소녀가 키플링을 만나게 되었는데, 소녀는 키플링을보자마자 흐느껴 울기에 키플링과 주위의 사람들은 그 소녀가 너무 감격하여 우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왜 우는지를 물었을 때에 소녀의 대답은 나는 아저씨가 매우 잘생긴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같이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이 바라보는 관점이 자신의 육신을 즐겁게 하고 만족시키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진작 바라보아야 할 중요한 것에 대하여는 눈이 가려져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눈이 가려져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불 말과 불 병거로 진치고 있음은 보이지 않고 자신을 해하려는 아람 군사들의 말과 병거만이 눈에 보였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만사를 바라보고 있으니 진작 볼 것을 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향한 내 자신이 얼마나 불안하고 불확실한 존재임을 알고 두려움에 빠져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모두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두고 매우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불신자들을 대하게 되는데 놀라운 일은 세상을 상당히 두려워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 하고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기도 제목만을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거의가 자신에 대한 것이요 그리고 불확실 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살까? 어떻게 될까? 기도 제목 자체도 불안한 것입니다.
이 밤에도 잠 못 이루는 밤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서도 마음을 붙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물질 때문에, 가정 때문에, 자신의 진로 때문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난날의 상처 때문에, 지은 죄로 인하여 등등 안정감을 잃고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사실 눈을 다시 새롭게 뜨게 된다면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됩니다.
각도를 조금만 바꾸어도 바꿔 보입니다.
옛날에는 된장찌개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을 줄 알았지만 이제는 없어도 밥 잘만 먹습니다.
본문에서 한 사환은 현실의 문제로 고통스러워하며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아람나라와 전쟁 중이었는데 아람왕은 어떻게 해서든 이스라엘을 점령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아람 왕이 우리가 아무데 진을 치리라 생각하기만 하면 그 작전 계획은 곧 이스라엘 왕이 알고서 그곳에 군사를 보내어 방비를 하는 것이니 늘 실패를 하게 됩니다.
이에 아람왕은 그들 중에 적과 내통하는 자가 숨어 있는가하고 몹시 번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가 왕이 침실에서 은밀하게 하신 말씀이라도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고하나이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왕하 6장 12절
이에 수소문하고 엘리사가 도단성에 있다는 정보를 얻은 아람왕은 많은 군사와 병거를 보내어 엘리사가 잠자고 있는 그 성을 에워싸고 엘리사를 생포하려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이른 아침 일어나보니 아람군대가 엄청난 군사와 화력을 가지고 성읍에 에워 싼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놀란 사환은 급히 엘리사에게 달려가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왕하 6:15)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엘리사를 수종하던 사환은 지금 펼쳐진 상황은 자신에게 엄청난 충격이요 공포로 찾아 왔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으니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왜 이렇게 다르게 말하고 있습니까?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환의 두려움은 무엇으로 비롯되었습니까?
자신의 형편과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능력등 자신의 한계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곧 육안으로 보는 것이 그에게는 전부이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불안과 초조와 공포와 염려와 걱정이 생기게 됩니다.
이 세상은 강하고 우리는 약합니다.
당연히 세상을 향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런 반면에 주의 종 엘리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훨씬 더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16절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왜요 하나님 편에서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모든 만물에서 언제든지 하나님의 승리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불안과 공포는 환경의 산물이 아닙니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오는 부산물인 것입니다.
똑같은 곤고와 고통과 괴로움에 직면했어도 어떤 사람은 마음이 평안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엘리사와 그 사환이 같은 환경, 같은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엘리사의 사환만이 아람군대에게 포위된 것이 아니라 엘리사 자신도 포위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왜 이렇게 나만 고통스러운가?
왜 나만 이렇게어려움을 당하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은 같은 환경과 같은 상황과 같은 처지에 갇혀 있다는 점입니다.
돈이 많으냐 적으냐, 젊으냐 늙었느냐의 차이뿐이지 돈 많은 사람도, 젊은 사람도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불안하지 않습니다. 두렵지 않습니다.
다만 엘리사의 사환만이 불안과 공포와 답답함을 맛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를 생각해 보십시오.
갈릴리 바다를 걸어 주님을 향해 가던 베드로는 자기를 덮쳐오는 풍랑과 바람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현실적인 눈으로 상황을 보게 되므로 그만 물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사도행전 12장에 나타나는 베드로의 모습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헤롯의 칼에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절대 절명의 순간에도 베드로는 감옥에서 편안히 잠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보는가? 거기에 따라 어떤 사람은 평안을 소유하며어떤사람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실패를 보고 어떤 사람은 승리를 보게 됩니다.
엘리사의 사환은 아람군대의 많은 군사와 병거를 보았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군대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불행합니까? 행복합니까?
불안합니까? 평안하십니까? 실패만 보이십니까? 인생 승리가 보이십니까?
영국의 유명한 작가 버나드 쇼우는 어느 날 어떤 사람이 그에게 선생님! 어떤 사람이 낙천주의자이고, 어떤 사람이 염세주의자입니까? 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버나드쇼우는 말하기를 자, 여기에 내가 한 컵의 물을 반만 먹고 놓아두었습니다. 이때 그 반 정도 남은 물 컵을 바라보고 아직도 반이나 남았는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낙천주의자이고, 반밖에 안 남았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염세주의자입니다. 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낙천주의자와 염세주의자는 같은 물 컵을 바라보지만 생각하고, 표현하고,대처하는 방법이 전혀 다릅니다.
오늘 내게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고 바라보고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내 인생은 좌절 되거나 실패하거나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할렐루야!
오늘 이런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눈이 열릴 수 있습니까?
제가 요사이는 눈이 조금 흐려지는 기분이 들어 돋보기를 가끔 쓰게 됩니다.
들었다 벗었다 하니 그 분이 하는 말이 가격은 좀 비싸지만 다 초점 안경을 쓰면 너무 너무 편안하게 사물을 잘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걸 한번 써보니 거리에 상관이 없이 다 초점이니 여기 저기 얼마나 보기에 편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눈이 흐려지거나 침침해 보십시오
얼마나 답답하고 신경이 쓰이는지 모릅니다.
얼마 전에 또 제게 찾아 와서 다 초점 안경 쓰느냐고 하기에 아직 이라고 하니 빨리 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니 빨리 하라고 종용을 했습니다.
다 초점 안경을 한번 써 보면 다 잘 보이듯이 이 세상을 확실히 성공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영안이 열리는 것인데 그 영안이 열리는 것은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하니 사환의 눈이 열렸고 물론 기도하는 종 엘리사는 영안이 원래 열려있으니 아람 군대의 작전도 다 알고 하나님의 군대도 보게 되었습니다.
이 기도는 다른 이의 눈도 열었다가 닫았다가 하는 것 같습니다.
아람 군대의 눈을 멀게도 하고 다시 보게도 하고 할렐루아!
솔직히요 기도하지 않고 길을 열어달라는 것은 입을 열지도 않고 먹겠다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먼저 기도한 사람들이 기도의 중요성을 얼마나 잘 알려 주고 있지 않습니까?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든지 인간의 소리를 내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인간의 소리는 언제든지 망한다는 부정과 불안의 소리요 하나님의 소리는 승리와 평안의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내 인생이 복되고 내 가정이 복되고 내 사업이 복되라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인간적인 소리를 내는 사람으로 이루어져 가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이 일러 주는 하나님의 뜻을 통하여 이루어져 갑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음을 받아서 존재하고 움직입니다.(계 4:11).
사람의 생명과 땅의 경계(행 17:26,28), 국가의 흥망성쇠, 동식물의 생명 등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에 따라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없으면, 키가 한자도 자라지 못하고,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마 10:29).
이처럼 하나님의 뜻은 크고 넓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기도해야 합니다.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은 주로 기도를 통해 알려진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하고 찾고 두드릴 것을 가르치셨다(마 7:7).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려 하시는데 그 좋은 것은 구하는 과정을 통해 주어집니다.
구하지 않으면 얻지 못합니다.(약 4:2).기도도 제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니 안 주시니 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일러 주십니다.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축출을 당한 하갈이 자기 몸에서 난 이스마엘을 데리고 가느라고 간 곳이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나올 때에 가지고 온 물과 양식은 떨어진 지 오래되니 드디어 아들 이스마엘은 탈진이 되어 사막 벌판에 넘어지고 시체를 뜯어먹으려는 주린 솔개가 공중에서 엿보고 있는 이 장면은 정말 비참했을 것입니다.
하갈은 하나님께 울부짖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하갈의 눈이 밝아지게 하여 자기에게 얼마 멀지 않은 거리에서 생수를 발견하게 됩니다.(창 21:19).
하갈의 말로가 나의 인생입니다.
인생들은 모두가 촌음(寸陰)에 걸린 생명을 생각하고 광야에서 울고 있습니다.
억울하고 원통하고 대책은 없고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생수를 얼마 멀지 않고 곳에 두고 울다가 죽을 것입니다.
내 인생 길에 쉽게 마실 수 있는 영생수가 있건만 이것을 알지 못하고 울고 있으며 또한 죽어 가는 영혼이 많습니다.
우리 눈을 열어 생수의 근원 되는 예수님을 바라보라! 우리를 살릴 생수가 그곳에 흐르고 있습니다(요 4:10).
여러분들의 눈을 밝게 해 주실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영의 눈이 어두워서 우물가에 앉으신 메시아를 몰랐습니다.
이 여인의 눈이 예수님과 함께 하는 동안 점점 밝아짐에 따라서 예수를 깨닫는 지식이 점점 깊어갔다(요 4:25-26).
처음에는 유대인의 남자로, 그 다음에는 선지자로, 그 다음에는 메시아로, 메시아로 알아질 때에는 물동이를 버리고 성으로 뛰어 들어가서 성에 있는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생수의 근원 되신 메시아를 만날 때에 영원토록 갈급이 없는 생수가 맘속에 솟아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을 보면 그 신앙생활은 남이 떠다 주는 물만 마시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가서 목사가 떠 주는 물을 한 컵 마시고 예배 때에 심방 때에 갈증이 나서 한 사발 마시고 하니 또 갈증이요 또 갈증이 납니다.
이제 생수 되신 예수님을 심령에 모셔 들여서 생수가 강같이 흐르는 생애를 보내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새벽기도회 심야 기도회 아니면 교회에서 주무세요 숙박비를 받지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했고 사무엘이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들은 나라를 세우고 나라를 구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수가 보이지 않습니까? 기도로 믿음의 눈을 뜨십시오
수가 보입니다. 어떠한 문제에도 주님은 길이 되십시다
바다도 강도 요새도 사막도 길이 생깁니다.
살리는 생명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인생 성공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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