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믿음이 더 큰 구원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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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81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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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 : 11-19 감사하는 믿음이 더 큰 구원을 받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3가지 종류의 삶으로 행동을 구분을 하였습니다.첫째는 푸쉬케의 삶입니다. 생물학적인 신진대사를 의미하며 밥을 먹어 소화하고 숨을 쉬어 몸이 활동할 수 있게 하는 모든 움직임을 말합니다.
둘째 비오스적인 삶입니다.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추구하는 모든 경제적인 활동셋째. 죠에의 삶입니다. 타인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얻는 기쁨, 행복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사람은 관계성을 통하여 만족과 그리고 삶의 풍성함과 구원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생의 행복과 기쁨과 축복을 그리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더욱 느끼는 계절이 온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이라는 말은 이 내 모든 삶을 유지하는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물론 내 생명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 알파 성령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하나님이라는 분을 다시한번 생각하였습니다.
알파가 진행되는 동안에 저는 계곡에 3번이나 찾아가서 물 흐르는 모습을 물그머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물 속에 여름내 살진 송사리 떼가 무리를 지어 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잘도 키우시고 어떤 의미에서는 보호까지 하고 계셨습니다.
그 옆으로 다람쥐 한 마리가 지나갑니다. 나도 살아 있습니다.
그 앞에 굴뚝새가 머리를 까딱까딱하며 주의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이런 동물원이 없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밭에는 무가 허연 다리를 들어내고 살이쪄 가고 배추는 그 가슴이 터질 것같이 그 속이 가득차고 익어 있었습니다.
고추가 마지막 태양의 에너지를 축적하려고 안 갓 힘을 기우려 달려 있었습니다.
이게 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게 주시는 것 아닙니까?
공중의 나는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그것들이 곡식을 모아 곡간에 쌓지 아니하고 옷을 위하여 길쌈도 하지 않지만 너희 천부께서 먹이고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 일까? 보야 믿음이 적은 자들아 라고 책망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1기 때에도 그러했지만 이번 2기 때에는 하나님이 더 큰 은혜를 내려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이 각 심령에 기갈을 해결 시켜 주시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 할 때에 하나님은 이렇게도 역사하시는 구나? 실감합니다.
아마 참여하시지 못하신 분은 무슨 말인지 모르실 것입니다.
참고로이번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큰 일 날 번하였다는 것이 참여 한 자들의 고백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고백들이었습니다.
다 말을 드릴 수는 없고 한 여 성도님은 남편이 지병으로 오래 병치레로 고생하였다가 먼저 가셨습니다.
그러니 그 동안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이 들었겠습니까?
남편이 돌아가신지 10여년이 지나도록 마음에 원망과 용서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그 남편이 용서가 되고 오히려 긍휼히 여김을 얻게 되었다고 하니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그 외에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한 것을 다 말 할 수가 없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은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은혜를 주시고 그 은혜를 받고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있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기만 하였지 사실 그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에 대하여는 진작 감사를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감사를 하면 더 놀라운 은혜를 받고 여태까지 생각하지도 못한 큰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될 것인데 말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러합니다.
10명의 나환자가 세상 사람과 함께 살지를 못하고 물론 정상인의 삶을 살지도 못하고 참으로 비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모든 생활이 정상적으로 살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서도 그러하다고 생각이 되어 집니다.
내게 주어진 어떤 장애로 인하여 환경으로 인하여 장애 아닌 장애인이 되어 비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술과 도박으로 인생을 보내는 자, 혹은 쾌락과 본능적으로 살아가지 않습니까?
여태까지 내 인생 정상적으로 돌아가 보지를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전혀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한 많은 인생을 노래하다가 끝 날 팔자입니다.
그런 나환자를 주님은 그 흉악한 썩어 부패한 몸을 깨끗하게 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무엇입니까?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이들이 왜 감사하지 않는가? 대하여 9명이니 각자 그 변명을 들어 보겠습니다.
우연히 나아겠지? 내 몸이 점점 건강해 지니 나앗겠지?
내가 지금까지 병으로 고생했는데 그 보상으로 나은 거야
지금은 나앗지만은 앞으로 두고 나야지?
나는 너무 바빠서 감사할 여유가 없어?
나는 가진 것이 없어서 못해 나는 지금까지 즐기지 못한 것을 즐겨야 해
나는 병들었을 때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야 해
병이 나았으면 그만 이지 더 이상 그 분이 필요 없어 등등 감사하지 못할 이유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많은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들이 이유가 아닌 줄 알고 감사한 자가 10명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나아와 사례하는 감사를 표했습니다.
이 감사는 내가 얻은 것을 온전케 하고 그리고 더 나은 것을 얻게 됩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 감사가 곧 믿음입니다.
감사 할 줄 아는 믿음이 구원을 가져 온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말만을 했지 감사가 없다면 믿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참으로 섭섭하게 생각합니다.
아니 섭섭함이 아니라 답답하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아니 안타깝게 생각하십니다.
열명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찾고 게십니다.
저도 종종 이런 마음이 듭니다. 왜 은혜를 받고 감사하지 않을까?
감사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자신에게도 온전케 되는 축복을 받을 것인데 하는 마음이 들어 상당히 힘이 들 때가 잇습니다.
감사의 기회를 인간적으로 도리 버리면 은 인간적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하나님과 상관을 맺지 못하니 인간적으로 돌아 가 버립니다.
9명의 감사치 못하는 인간적인 변명을 볼까요?
우연히 나아겠지? 예 우연히 다시 병이 들것입니다.
내 몸이 점점 건강해 지니 나앗겠지? 내 몸이 점점 약해 질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병으로 고생했는데 그 보상으로 나은 거야
그래 지금부터 지은 죄의 보상으로 다시 병이 찾아 올 거야
지금은 나았지만은 앞으로 두고 나야지?
그래 지금은 나은 것 같지만 앞으로 질고가 찾아 올 거야
나는 너무 바빠서 감사할 여유가 없어?
그래 안 바쁘게 해 줄게
나는 가진 것이 없어서 못해
그래 너 있는 것 내가 다 가져갈게
나는 지금까지 즐기지 못한 것을 즐겨야 해
한번 즐겨봐 그것이 진정 너를 즐겁게 하는 것인지
나는 병들었을 때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야 해
다 만나봐 더 이상 만날 사람이 없을 거야
병이 나았으면 그만 이지 더 이상 그 분이 필요 없어
그래 더 이상 나를 찾아오는지 안 찾아오는지 보자라고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고 살아오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사람이 즐기고 있는 것 아닙니까?
자연을 누리게 하시고 우리 생명과 육체를 가지고 행복하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우리 성도 가운데 마라톤 완주를 하고 자신의 육체를 대견히 여기고 만족해하지 않습니까?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만족해하지 않습니까?
어제 저녁에 한 식당에 갔는데 일이백 명은 족히 식사를 하는데 식사 후 나오는 사람들을 보니 모두가 행복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감사하지 못합니까?
우리 모두는 죽음의 자리에서 구원이라는 엄청난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죄인이 되어 살아야 합니다.
저주 받아 살아야 합니다.
그 가운데서 이젠 자유 함을 얻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지금 감사에 매우 인색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중심에서 생각하고 살고 있기 때문에 감사가 없습니다.
자신의 필요한 것만을 바라고 챙기는 아주 이기적인 자입니다.
아직도 다고 다고 하다가 배 터져 죽을 지도 모릅니다.
열 명이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 다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은택은 모든 사람에게 미칩니다.
평소에도 우리는 맑은 공기와 물을 마시고 살며 하나님이 주시는 각종 식물들, 채소들과 산나물들과 약초들을 먹고 삽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나, 바다의 물고기들도 굽거나 삶아서 먹습니다.
자연 속에서 금은이나 철, 구리 등의 광물질도 캐내고 땅 속에서 석유나 가스도 채취합니다.
추수 때가 되면, 이런 은택들은 더욱 풍성해집니다.
곡식들과 열매들이 풍성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하나님의 풍성한 자연 은총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모든 성도는 예외 없이 하나님의 귀한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은 속죄의 은혜입니다.
그것은 나병보다 더 지독한 죄의 용서입니다.
그것은 지옥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천국을 얻는 것이요 이 세상의 삶과 비교할 수 없이 복된 부활과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진실한 신자들이 지금 이 세상에서 받아 누리고 있는 구원의 복입니다.
그런데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감사하는 자를 보고도 감사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사마리아인은 병이 낫자마자 다른 모든 감정들을 뒤로 미루고 고쳐주신 예수님을 찾아가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아홉은 이 좋은 모범을 본받거나 감동을 받지 않았습니다.
사실 감사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작은 일에 아니 주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눈물 흘리고 감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을 보고도 감동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감동적인 감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감동이 없다면 그것은 성령이 역사하지 못하는 완악한 마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삶의 우선순위가 감사라는 말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 면은 감사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감사로 새로운 은혜를 받을 기회를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께 무지하여 배은망덕한 자가 되지 맙시다.
문둥병보다 더 무서운 병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냉담해지는 병입니다. 주님의 은혜에 대해서 무관심해지는 병입니다. 주님께로부터 받은바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 배은망덕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질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때 거기서부터 불행히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본문은 감사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감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는 데서 나옵니다.
오곡이 풍성히 익어 열매를 거두는 이때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육신의 병이 낫는 것은 일시적인 축복입니다. 영원한 축복은 영혼의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놀라운 축복을 선언하셨습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받은바 은혜를 족하게 알고 늘 감사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이 우리의 삶 속에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바른 감사를 드림으로 영육 간의 진정한 축복을 받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내 자신을 드리는 헌신입니다.
마음을 드리고 몸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내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립니다.
이번 추수 감사절에 감사 예물을 드릴 때에 한번 제목을 적어서 드립시오
그러면 감사 할 것이 많을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드리지 마시고 힘껏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열납하시고 축복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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