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위임식에 성령의 풍성한 은혜가 임합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14회 작성일 2009-05-27 09:41

본문

출애굽기 29 : 1-9준비된 위임식에 성령의 풍성한 은혜가 임합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결혼식을 하지 않고 그냥 아들 딸 놓고 사시는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부모가 반대하기 때문에 혹은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아서 속도위반 등이 이유가 될 것입니다. 결혼식을 하지 않고도 잘 살아 가는 분들도 있지만 그러나 늘 마음속에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결혼식을 언젠가는 한번 해야 하는데 하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결혼 생활이 별로 재미가 없든지 의미가 없든지 하면은 결혼식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교회를 설립한 후에 여러 가지 어려움과 여건상 허락이 되지 않아서 목사 된지 20년이 넘었지만 위임식을 하지 않고 지내 왔습니다.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일학년 되던 그 해에 3월에 결혼식을 하고 그해 9월에 화평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새 신랑 새 색시가 새 교회를 개척한 것입니다.
신학교 시절 때부터 합하면 화평 교회를 섬겨 온지가 벌써 25년이요 목사가 된지 21년이 되었습니다.
개척 교회를 하다 보니 어떻게 세월이 지나 간지 모르겠어요 우리 집 사람의 얼굴을 보니 주름살이 자끌자끌 한 것을 보니 세월이 지나 갔구나?
제 자신 역시 피곤이 빨리 빨리 풀리지 않는 것을 보면서 많은 세월이 자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 목회를 하면서 위임을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그냥 그렇게 보내야만 하는 이유가 더 많았기에 불편 하지만 결혼식하지 않는 부부같이 그냥 목회를 하였습니다.
부부 사이는 좋고 자식은 놓고 살림은 늘어 가지만 문제는 법적으로는 부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노회에서는 위임 목사가 아니기 때문에 노회 일을 하는데 상당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올 해에 하나님의 은혜로 장로님 2분을 세우고 교회가 담임 목사를 청빙 할 수 있는 자격이 되어 제가 여러 성도들의 위임 투표를 받아 다행히 한 사람도 반대를 하지 않고 만장일치로 위임을 받아 이번 토요일에 위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지나온 과거는 생각하고 싶지를 않습니다. 솔직히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날까봐 그렇습니다.
다만 앞으로 어떻게 하여야 할 것만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위임을 받는 다는 생각을 하니 지나간 목회의 여정이 하나하나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개척 다음 해 3월에 지금 25세인 딸의 돌인가? 을 기억하는데 우리 집 사람이 성도들에게 대접을 한다고 점심시간에 잔치 국수를 준비하여 바구니에 담아 집에서 들고 와서 나누어 먹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래도 여기 선 김 목사도 이제 위임을 한다고 생각을 하니 제대로 세울 일군도 없는 것 같이 보이는 화평 교회도 위임 목사를 세운다고 하니 감회가 새로울 뿐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결혼식 날짜를 받아 놓은 처녀 총각 같은 가슴이 설렘이 있습니다.
저도 막상 위임식 날짜가 다가오며 하나하나 진행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아주 강퍅하고 돌같이 굳은 저의 마음도 맥박이 뛰는 감동이 오는 것 같습니다.
여태까지 교회 모든 일들은 싫든지 좋든지 김 목사가 다 하였고 사찰의 일부터 당회장의 일까지 다 하였는데
이번의 위임식은 두 분의 장로님의 주도 아래 온 성도가 치르게 하였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이번 위임식이 잘 준비된 예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성령님이 이 교회에 임재하시고 풍성한 은혜를 내리워 주실 줄로 믿습니다.
무슨 예배든지 무슨 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선으로 준비된 자들이 은혜와 축복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이 위임 제도는 사람이 만들어서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교통을 감당 할의 역할을 할 자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 역할을 하는 자들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이 일을 위임 받는 것입니다.
위임된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을 이스라엘에게 알리시고 백성들은 그들이 하나님께 자신들을 감히 들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그리고 축복하심과 백성들의 기도와 간구 등이 위임된 제사장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위임이라는 뜻은 빈손을 채운다는 뜻으로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갖추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맡았다는 말은 손을 채웠다는 말과 같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대해서 그 사람을 섬기려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그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것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 사람을 섬길 수 없습니다.
섬깁니다. 섬깁니다 하고 말로만 섬기는 것은 섬김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갈 때도 마찬가지로 어떤 조건을 채워야 합니다. 이것이 위임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어떤 것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내 손에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성전 안의 기물들은 거룩합니다.
왜 성전 안의 기물이 거룩한지 아십니까?
세상에 있는 것이고 세상의 것과 똑같은 것인데 더 나아 보이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왜 거룩하다고 하십니까?
그 기물을 누가 쓰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여 짐으로서 거룩한 것입니다.
여러 성도들이 무엇을 보아서 거룩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
어떤 자들은 이방 사람들과 똑 같고또 어떤 사람은 오히려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거룩하다고 할 수 있음은 하나님께 내가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특별한 인물이라도 하나님께 사용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중에 세상에서 제아무리 잘 나가는 자가 있다고 해도 하나님께 드려지는 부분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분 좋게 하는데 쓰여 지는 것은 기물이든지 사람이든지 예물이든지 다 거룩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의복으로 예의를 갖추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위임을 준비하려면 먹는 것을 준비하여야 합니다.본문 1-3절 젊은 수소 하나와 흠 없는 숫양 둘을 취하고 무교병과 기름 섞인 무교 과자와 기름 바른 무교 전병을 모두 고운 밀가루로 만들고 그것들을 한 광주리에 담고 그것을 광주리에 담은 채 그 송아지와 두 양과 함께 가져 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빈손으로 나오면 안 됩니다.하나님께 드릴 음식 중 젊은 수소는 강함과 승리를 의미합니다.
흠없는 숫양 두 마리는 온전함 순수함을 의미합니다.
무교병은 식물성으로 누룩을 넣지 않아 발효되지 않은 것으로 진실하고 신실함을 의미합니다. 기름 섞인 과자와 기름 바른 무교 전병은 사랑과 자비로 말미암아 친절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제물들을 준비해야 합니다.
강함과 승리, 온전함과 순수, 그리고 진실하고 신실함, 사랑과 자비가 있는 친절함의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제물이 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자는 이런 성품을 가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와서 배워라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깨끗하게 씻음으로 내 몸이 정결해야 합니다.
본문 4절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라 고 하셨습니다. 씻는 것은 밖에서 묻은 더러운 것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입니다.
밖은 세상입니다. 세상에서 묻은 때는 물로 씻어야 합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조직 속에서 살므로 서 항상 오염되니 반드시 하나님께 나아 갈 때는 씻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 이외의 모든 것은 먼지요 오염이요 때입니다.
매니큐어도 할 때는 좋지만 오래 있으면 때가 됩니다.
화장도 할 때는 좋지만 이것도 몇 시간만 두면 오염이 됩니다.
왜요? 그 자체가 생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 몸에 붙어 있는 생명이 아닌 것은 모든 것은 때입니다.
그래서 씻어 내어야 합니다. 여러분 몸을 씻을 이상하게 우리 몸에는 때가 생겨 있습니다.
매니큐어는 무엇으로 닦아 냅니까? 아세톤으로 씻지 않습니까?
화장은 클리싱 크림으로 닦지 않습니까?
생명이 아닌 모든 것은 때인데 이것을 씻어 내기 위해서는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없으면 때가 계속 묻게 마련입니다. 아담은 선악을 아는 지식으로 오염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종교적인 교리로 오염되었습니다.
세상적인 이해관계로 오염된 사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볼 때 이해관계로만 봅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이익을 줄 것인가, 손해를 줄 것인가? 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육신의 정욕으로 오염된 사람도 있습니다.
위대한 자가 되어 세상을 지배하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기의 야망과 욕망이 자기를 망치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세상에 휩싸여 살게 되면 세상의 때가 묻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 때를 씻지 않고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보혈을 의지하며 날마다 회개하는 자가 하나님께로 나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옷을 입어야 합니다.
본문 29장 5-9절 의복을 가져다가 아론에게 속옷과 에봇 받침 겉옷과 에봇을 입히고 흉패를 달고 에봇에 공교히 짠 띠를 띠우고 그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위에 성패를 더하고 관유를 가져다가 그 머리에 부어 바르고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워서 제사장의 직분을 그들에게 맡겨 영원한 규례가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장의 옷을 입혀서 아름답고 영화롭게 하라 하셨습니다. 반포 속옷과 겉옷과 에봇은 몸을 가리는 것입니다.
벌거벗은 몸은 가려야 한다. 벌거벗은 몸은 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어야 합니다.
흉패와 견대, 관과 패는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인생은 부끄러운 존재니까 영화롭게 되어야 합니다.
벌거벗은 몸은 아름다운 행실로 덮어야 하고 부끄러운 인생은 관을 쓰고 흉패와 견대를 붙임으로써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이 지정하신 옷을 입어야 합니다.
똑같은 사람이지만 제사장의 옷을 입어야 제사를 집례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니고는 하나님 앞에 사실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를 희생해야 하나님을 섬 길 수가 있습니다.
구원을 누리기만 할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섬길 때는 헌신이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섬기는 자가 누리는 것과 구원을 받은 자가 누리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제사장이 누리는 것과 일반 백성들이 누리는 것이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은 섬김을 받을 때의 은혜가 큽니까?
섬기는 때의 은혜가 큽니까?
섬기지 못한 자는 섬김의 은혜를 모르고 있습니다.하나님을 섬김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축복은 섬기지 않고 누리는 축복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누리기만 하지 않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헌신이 없이는 빛이 날 수 없습니다.
나를 희생하지 않고는 아무 결과도 얻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마음으로 원할지라도 나 자신을 드리지 않으면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무엇인가가 나오는 것은 자기를 드린 헌신의 결과입니다.
내가 손해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아무런 결과가 없는 자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나 자신을 드리는데 심히 인식한 자입니다.제사장으로서의 봉사는 하나님분과 동역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지금까지의 사역을 살펴 볼 때에 참으로 수치스럽고 굴욕적이고 도망가고 싶은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잘 감당 할 때에 큰 은혜가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다 피한다면 제 자존심은 세워 질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 은혜가 전혀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것들을 잘 감당 하는 것이 큰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제물들을 보면 식물성과 동물성이 합해진 제물들로 숫자가 많고 풍성합니다.
이것은 풍성한 음식을 하나님께 드려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소유한 것이 많아야 하고, 소유가 많아지려면 내가 먼저 드려짐도 많아야 합니다. 우리의 풍성함은 예수 그리스도로 풍성해집니다.
넉넉한 사람은 남의 것을 착취하지 않습니다.
짐승들도 자기 밥이 많으면 으르렁거리지 않습니다. 자기 새-끼일지라도 자기 밥이 적으면 으르렁거리고 잡아먹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드릴 것들이 풍성하지 않으면 내 인생도 풍성하지 못하게 됩니다. 돈이 있으면서도 없는 사람처럼, 지위가 있으면서도 없는 사람처럼 걸신이 들린 것같이 항상 껄떡거리며 살게 됩니다. 내가 풍성해야 남에게 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내게 있으면 풍성한 사람이 됩니다.
저절로 모든 것이 은혜로 풍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은 아론의 자손들만 되었지만 오늘날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 제사장의 특권을 누리게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교회가 많이 있고 일꾼도 대단히 많습니다.
목사님들이 얼마나 많으며, 장로님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도 일꾼이 없고 지도자가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직분만 가졌지 자격을 구비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성도답지 못하고 목사가 목사답지 못할 때 이 귀한 직분의 거룩함을 가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이번 위임이 김 목사의 위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온 성도가 아니 내가 위임을 받는 다는 마음으로 위임을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김 목사도 전 교회도 아니 내가 먼저 성령의 풍성한 은혜를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Total 914 건 | 1 / 92 page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