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마음의 그릇이 오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652회 작성일 2009-05-27 09:41

본문

누가복음2 : 8-20순수한 마음의 그릇이 오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어제는 성도 여러분들의 과분한 관심 속에서 목사 위임 감사 예배를 드리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성도 여러분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위임 목사라는 이름이 저 자신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주겠지만 저는 화평교회를 섬기는 일에 더 충실 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요 성도들의 요구 인 줄로 알고 굴레를 씌운 소와 같이 제 소임에 열심을 다 하기로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예식을 또한 성령님께서 준비하는 일이나 그리고 예식을 진행하는 동안에 은혜롭게 주장하시는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이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인줄로 압니다.
이런 크신 은혜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의 계절이 다가 왔습니다.
12월 20일은 새 세상이 된다고 야단입니다.
5년간 나라를 통치하는 대통령이 새로 선출되어도 나라가 새롭게 된다고 후보들이 제 각각 말들을 하는데하물며 만왕의 왕이 되시는 예수님이 오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역사가 바뀔 것이요
내 인생이 바뀔 것이요
보라 옛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되었도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새로운 축복의 역사가 일어 날 것입니다.
루시 코르데스 데 니에베스는 세상은 온통 나쁜 소식으로 가득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언제나 좋은 소식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영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하루를 기쁘게 살려느냐? 이발을 해라.한 주간을 기쁘게 살려느냐? 자동차를 사라.한 달을 기쁘게 살려느냐? 결혼을 해라.일 년을 기쁘게 살려느냐? 새 집을 사라.그러나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기는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는 않습니다.10절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마음 상한 자를 고치시며 자유와 해방을 주시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심원의 날을 전파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그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시되 사랑을 주어 그 죄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굶주린 자에게는 생명의 만나를 주시고 목마른 자에게는 영생의 물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때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 B. C 31년-A. D 14년 재위)때이고, 유대왕 헤롯때(마2:1)이며, 12월이며, 밤에(-8)탄생하셨습니다.
이 시기는 로마의 지배, 헤롯의 지배로 가장 암울하고,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졌던 시기였습니다(눅1:79).
이 때 예수님이 돋는 해, 희망의 빛으로 태어나신 것입니다(말4:2).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들은 이때를 살피고 준비하다가 구세주 예수의 탄생을 영접하였습니다.
우리 교우들 중에 요즘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았다고 생각되는 분들이 있습니까? 더욱 이번 성탄절을 기다리며 예수를 잘 영접합시다.
오늘 우리 모두가 성탄의 계절을 맞이하여 나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십니까?
오늘 본문에는 들에서 양 떼를 지키는 목자에게 그 소식을 천사가 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필이면 목자에게 전하였을까? 요
당시 유대 사회의 여러 가지 직업 중에서 목자라는 직업은 아주 천하게 여긴 직업입니다.
일반인들은 목자들을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였으며 유대인의 규례에 의하면 부정한 일이라고 생각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정에는 증인으로 채택이 되지 않습니다.
소히 사람 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한 자입니다.
이런 자에게 복음이 전하여졌습니다.
목자에게 찾아 오셨다는 말씀은 이 땅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찾아오시는 예수님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여러분들에게도 예수님은 찾아오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찾아오신 예수님을 누구나 영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탄생의 소식은 벌써 알려진 사실입니다.
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오랫동안 전하여 내려 왔습니다.
그리고예루살렘에서 소동이 날 정도로 시끄러웠습니다.
유대의 왕 헤롯은 병사를 동원하여 만왕의 왕으로 나실 자가 누구냐? 하며 병사를 동원하여 2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을 죽이라고 명하여 많은 아이들이 희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목동들에게만 전하여졌다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럼 왜 여기 목동을 대표로 소개하고 있느냐? 말입니다.
이 목동이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과 같이 예수님에 대한 소식이 풍성한 때가 없습니다.
얼마나 예수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지 믿지 않는 자가 교회에 대하여 더 잘 알고 믿는 자들이 바로 믿지 못한다고 비판을 하고 있는 아주 웃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을 만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도 마찬 가지입니다.
교인은 되지만 그리스도인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들었지만 그 복음의 주인공은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목동은 주의 성탄의 소식을 듣고 어떠하였습니까?
비판만 하고 판단만 하고 따지기만 하고 그것으로 복음이 예수님을 만나게 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따지고 판단하고 헤아리다가 진정 만나야 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만나지 못합니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조건들입니다.
내가 얼마나 잘 났는지 하고 따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사를 살펴보면 선교사들의 선교대상은 양반이나 귀족으로 구성된 상류사회가 아니었습니다.
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먼저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일본 선교의 특징은 선교사들이 상류사회, 지식 계층을 겨냥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지금도 일본 기독교는 지적 수준은 세계적입니다만 수가 불어나질 않습니다.
내촌감삼(內村監三)같은 분은 유명한 주석가가 아닙니까?
그는 크리스마스는 우주의 축일이다.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이 그 석방, 자유, 완성을 축하하여야 하는 날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 기독교는 인구의 1%를 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선교의 특징은 민초들을 대상으로 시작했습니다.
부자들과 양반들은 기독교를 서양 귀신이라고 거부하고 박해했지만 서민 속으로 파고든 기독교는 마치 딸기 뿌리처럼 땅속으로 뻗고 뻗어 대중 종교로 발전했습니다.
머슴도 예수 믿고, 마부도 예수 믿고, 백정도 예수 믿고, 장사꾼도 예수 믿고, 무당점쟁이도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쟁이라는 비속어의 별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천만이 넘는 기독교인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복음 앞에는 누구든지 순수하여 지고 자신의 조건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목자들은 그들의 순수함이 복음 앞에 드러났습니다.
15절 천사들이 더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하고 빨리 달려갔습니다.
얼마나 순수합니까?
복음 앞에 내 모든 계급장을 내려놓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자익 라는 목사님에 얽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살길을 찾아 경상도 진주를 떠나 전라도 남원을 거쳐 김제에 도착했습니다.
조덕삼이라는 사람의 집에 머슴으로 들어갔습니다. 1905년의 이야기입니다.
조덕삼의 사랑채에서 예배가 시작되었을 때 머슴인 이자익도 함께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머슴이 열심히 예수를 믿었습니다.
교인이 100명 정도로 성장하자 장로 한 사람을 뽑기로 했는데 주인 조덕삼을 제치고 이자익이 장로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머슴이 믿음이 더 좋았던 것입니다. 훗날 조덕삼 씨도 장로가 되었습니다.
조덕삼 장로는 이자익 장로를 평양 신학교에 유학을 보냈습니다.
졸업 후 자기를 키워준 고향 교회의 목사가 되어 총회에서 세 차례나 총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머슴이었던 이자익 소년의 성공담도 아름답지만 반상의 벽을 허물고 자기 집 머슴을 장로로 떠받들고 담임목사로 모신 조덕삼 장로 이야기는 바로 예수님의 정신이었던 것입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다시 한 번 복음 앞에 순수해 지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음만 낮추면 아니 받아 드리기만 하면 오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예수님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주님의 나심이 기쁜 소식이 아니라 골치 아픈 소식이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의 나심은 자기들의 지위를 흔들어 놓는 자로 보았습니다.
빌라도와 군병과 같은 정치지도자들은 사회를 어지럽히는 자로 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아니라 골치 아픈 소식이었습니다.
복음이 짐스러움이 아니라 내 짐이 들어지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누구에게 기쁜 소식인 것입니까? 나는 죄입니다. 나는 구원이 필요한 자입니다.
나는 나의 삶을 잘못 살아왔습니다.
이제라도 다른 삶을 살아봤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하는 자들에게는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의 구주로 오셨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십니다.
나는 죄가 없습니다라고 하는 자에게는 기쁜 소식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하는 자들에게는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모든 죄와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줄 구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유흥가 룸살롱에서 웨이터로 일하면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던 어느 목사님의 성탄절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목사님이 뜻을 가지고 한 유흥가에 위장취업을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유흥가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른 이 사람을 경계하였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그들과 가까이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손님 없는 무료한 초저녁, 시간을 매우기 위해 동료 웨이터들과 함께 동전 따먹기 놀이도 하고, 아가씨 대기실에 들어가 고스톱을 치기도 하고, 웨이터 보조들과 함께 룸을 청소하기도 하였습니다.
성냥과 담배를 가지고 로비에 나와 앉아 있다가 담배를 찾는 아가씨들이 있으면 불을 붙여 주었습니다. 짓궂은 손님들의 잔인한 요구를 뛰어나와서 울음을 터트리는 자가 있으면, 어깨를 토딱 거리며 위로하여 주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들과 친해지게 되었고, 그들의 세계를 보다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보다 오히려 낮고 천한 자들에게 더 관대했던 이유를 가슴으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의 글의 내용은 1960년도 크리스마스이브에 대하여 그 목사님이 적어 놓은 경험의 이야기입니다.
24일은 보통 날보다도 손님이 많았다. 8시가 채 되기도 전에 8개 룸이 모두 찼고, 단골손님들조차 돌아가야 했다. 나는 선물과 캐잌을 준비하고 생일초대장을 만들었다. 모든 웨이터들과 호스티스들에게 생일축하 파티에 참석해 줄 것을 부탁했다. 누구의 생일 파티냐고 물었지만 웃어만 주었다.
밤은 깊어만 갔다. 술 자석은 달아올랐다. 그리고 루돌프 사슴 코와 같은 캐럴 송이, 심지어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가요처럼 연주 되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노래에 맞추어서 고함을 쳤고, 술을 마셨고, 온갖 음란패설과 음란한 행위를 즐겼다.
술과 고함과 음란과 욕심과 거룩한 캐럴 송, 그것이 세상이었다. 마침내 12시가 넘었고, 셔터가 내려지자 손님들은 아가씨와 함께 여관으로 갔다. 여관으로 가지 못한 아가씨들은 대충 정리를 끝내고 룸으로 모였다. 2시 30분이었다.
모인 사람들을 세워보니 17명이나 되었다. 나는 전등을 커고 케잌에 불을 붙였다. 분위는 조금 산만했다. 마담이 누구의 생일이냐고 질문했다.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차근차근 위대한 그분의 생일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분이 누구며, 그 분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말해주었다. 또 그 분이 이 땅에 사는 동안 누구에게 관심을 가지셨고, 어떻게 사셨는지에 대하여도 말해 주었다.
나의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산만했던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그들은 조용히 머리를 숙였다. 부유함으로 거만했던 자들의 친구가 아니라, 가난하고 외롭고 비틀거리는 상한 마음들을 눈물로 어루만져주었던 그분의 사랑이 지금 듣고 있는 그들의 심정을 가장 잘 덮어 주었다.
누군가가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았다. 마침내는 여기저기서 눈물을 닦아내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가슴에 앉는 순간이었다. 가장 음란하고 추악한 일에 쓰임을 받고 있었던 그들이, 그리고 그곳 공간이, 가장 거룩하게 드려지는 순간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 날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가슴이 미워지도록 소리쳐 불렀다.
그날 이후 나는 그들로부터 예수님에 대해 좀 더 알려 달라는 요구를 받게 되었고, 그 룸 사롱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매주 성경공부모임이 열러지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모임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성경공부를 2년 만에 끝을 보게 되었는데, 이유는 그 룸살롱 주인이 신앙을 이유로 직업을 바꾸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찾아오신 예수님 내 인간적인 조건으로 날마다 예수님이 무안을 당하시고 천대를 받으시고
나의 삶에서 전혀 상관이 없이 살았지만 이번 성탄절에는 복음 앞에 순수한 자가 되어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의 축복을 내 삶에서 풍성히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Total 914 건 | 1 / 92 page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