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결산은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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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96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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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5 : 1 - 7 한 해의 결산은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 앞에서
만인의 사랑을 받은 그 유명한 메시야의 할렐루야를 탄생하게 한 헨델은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그의 곡이 발표되는 공연장에 불량배들을 동원, 공연을 하지 못하게 함으로 헨델은 그 일로 충격을 받아 앓아 들어 눕게 되었습니다. 여태까지 심혈을 기우려 준비한 곡들이 발표가 되지 못하자 낙심과 좌절로 고민하고 있을 때에 무명의 한 시인으로부터 한 통의 격려 편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헨델 염려만 하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그도 사람들로부터 버린바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만왕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글을 읽은 헨델은 힘을 얻고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끊고 23일간 금식을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금식 24일째 되는 날 하인이 헨델의 방에 들어갔을 때에 헨델은 무릎을 꿇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주인님 어떻게 된 것입니까?
헨델은 환희에 찬 얼굴로 하늘이 열렸다. 나는 전능왕 메시야를 보았다고 외쳤습니다. 그때에 메시아 곡 중 제 42번인 그 유명한 할렐루야를 완성하였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시니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헨델은 그의 음악의 결산을 만약에 인간적으로만 펼치겠다고만 하였다면 황당한 결과를 가져 올 것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펼치는 결산이 되었을 때에 여태까지의 모든 음악의 삶을 보상 받는 아무도 생각지 않는 명작 할렐루야가 창작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지금도 할렐루야는 모든 사람들이 이 곡을 연주하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까?
영국의 황제 조지 2세가 헨델의 할렐루야가 연주 될 때에 감동을 받아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일어선 것이 연유가 되어 지금도 할렐루야 연주 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만 바라보았다면 망쳐 버릴 것만 같았는데
오늘 본문에서도 야곱은 20년간의 인생을 수고하고 이루어 놓은 모든 인생의 결과가 하루아침에 수표로 돌아 갈 그런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잘 표현이 되어 있는데 창세기 34:30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는 것입니다.
여태까지의 삶이 무엇인가?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쳐야만 하는 삶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멸망의 두려움에서 해방이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의 축복의 사람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이제 2007년의 한해를 보내는 시점에 서 있습니다.
아니 내 한 평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내 삶의 결산을 무엇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
그 결산을 누구에게서 하느냐? 에 따라서 내 인생은 너무나도 초라하고 두려움으로 다가 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너무 나도 복되고 장래가 있는 인생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의 한해의 결산을 보는 내 인생의 결산을 보는 야곱과 같은 축복이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가 없다면 인생이 아닙니다.본문의 야곱 역시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20년의 고생 끝에 고향 땅으로 돌아와서 행복하게 살줄 생각하였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두 아내를 위하여 14년의 세월을 보내고 그리고 6년 동안은 재산을 얻기 위한 세월이었습니다.
여느 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공한 것 같았습니다.
아들이 12명이요 재산은 소 떼와 양 떼기 헤아릴 수 없을 정도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순식간에 20년 동안 수고가 한 것이 다 날라 가게 되었습니다. 딸 디나가 세상 구경 나갔다가 세겜 족장의 아들에게 겁탈을 당하더니 그 일로 야곱의 아들들이 분노하여 이 들을 속이고 세겜 족속을 멸하고 재산을 탈취하였습니다.
이 소문이 다른 족속에게 알려져 주위의 모든 족속이 일어나 야곱의 재산이 아니라 생명까지 다 멸하려고 하였으니 다 망하게 생겼습니다.
소이 말해서 여태까지 살아 온 것이 헛수고 되고 말았습니다.
왜 이런 결과를 가져 왔을까요? 여태까지의 모든 것이 헛되게 되었느냐?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결산을 보려고 하지 않고 인간적인 계산이 앞서다 보니 멸망이었습니다.
스티븐 코비가 쓴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이란 책에 보면 소중한 것부터 먼저 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선순위를 분명히 할 줄 알아야 성공한다는 것이지요.
야곱의 우선순위는 자기 먼저, 사업 먼저,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마음대로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는 모든 좋은 것이 멀어집니다.
야곱의 어려움이 왜 왔느냐? 이제 잘 살줄 알았는데 …….
하나님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 육신적으론 화려한 땅 세겜에서 야곱의 딸 디나는 강간을 당하고 그의 아들들은 그곳 사람들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입니다.
야곱이 기대 했던 삶의 환상이 깨어졌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자리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면 여태까지의 모든 것이 헛되이 될 것입니다.
내 인생이 헛수고가 될 것이요 허탈함을 금 할 길 없을 것입니다.
천하의 모든 부귀영화를 다 누린 솔로몬 왕이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전1:2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아직도 우리 가운데에는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따라 가다가 이런 것을 느끼지 못하는 분들이 있는데 세상을 따라 가다가 나중에 이 사실을 느낄 때에 얼마나 허무하게 될 것입니까?
간혹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내가 세상 헛살았다고 어느 시점에 이르러 보니 그러 한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하여야 합니까? 세상과 더불어 망하고 말아야 하지 않습니까?
이 때 하나님은 야곱을 부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번 결산을 해 보자는 것입니다.
벧엘로 올라오라고 하십니다.
벧엘은 통상 야곱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진로를 새롭게 설정하는 곳입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는 것을 발견하는 곳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곳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만이 자신의 존재가 확실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분을 잃어버리면 자신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이 자리가 벧엘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결산을 해 보자는 것입니다.
벧엘로 가기로 하니 벌써 놀라운 일들이 생겨났습니다.
사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그리고 나면 환경이 바뀌게 됩니다.
인간적인 사고를 버렸습니다. 이방 신상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상 즉 하나님의 사상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렇게도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온 주위의 환경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어떻게 오히려 세상이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5절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앞에서의 결산이 이렇게 복되게 바뀌게 된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야 행복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때에 행복해지도록 그런 영적인 존재로 창조된 것입니다.
그래서 혹여 세상의 모든 부귀와 성공과 쾌락을 다 얻는다 할지라도 혹여 하나님을 만나지 않는 인생이라면, 그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강건하게 되지 않는다면 그 누구든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즉 사람은 원래 하나님과 만나는 영적인 존재로 지어졌기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야하고 그렇게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만날 때에 비로소 행복해지고 그 삶이 영원토록 록 강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물론이거니와 미주 이민 교회에는 연말 연시에 교회마다 새벽 기도회에 성도들이 넘쳐 난다고 합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만날 때에 내 인생은 좋은 결산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파스칼의 팡세에서 우리 영혼에는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고 하였고, 어거스틴도 그의 참회록에서 하나님! 하나님께서 제안에 거하시기 전까지 저는 늘 불안하였지만 이제 하나님을 만나니 참된 평안과 쉼을 얻나이다\\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제라도 인간적인 방식을 던져 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어쩌면 내 인생이 아무런 기대치를 가지지 못하고 허무한 인생이 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이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야곱이 육신의 안락의 장소 밧단 아람에 있기를 원치 않으시고 쾌락의 장소 세겜에 머무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와 은혜의 장소 벧엘에 거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당신은 야곱의 밧단아람과 같이 우리가 육신에 머무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또한 세겜에 머무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징계를 받은 자리에 머무르지 말아야합니다.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복을 받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오늘 우리 앞에 새로운 한 해가 올 것입니다.
그 자체가 새로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새해를 하나님께서 주신 현실인줄 알고 회개와 순종의 걸음을 걸으면 우리의 걸음이 복될 것입니다. 새로워질 것입니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이 있다면 내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먼저 하나님을 경배해드리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복은 더 이상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관련 없는 성공, 그것은 성공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행이 있을 뿐입니다.그래서 우리는 순간순간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두 사람의 마부가 수레에 짐을 싣고 먼 여행을 떠났습니다.
한 사람은 주일이 되자 말과 같이 하루를 쉬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은 하루를 쉬면 얼마나 손해가 많은가? 라고 생각하고 계속 말을 몰아 목적지를 향하였습니다.
그런데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주일마다 꼬박꼬박 쉬면서 예배를 드린 믿음을 가진 마부가 목적지에 먼저 도착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에 목적지에 도착한 믿지 않는 마부는 말도 없이, 마차도 없이 기진맥진한 빈 몸으로 도착하였습니다.
이 마부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몰았기에 말도 병이 나고, 마차도 고장 나서 겨우 몸만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어려움과 문제가 생기면 처음 신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기교를 부리려 하지 말고, 기본의 폼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그리하면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입니다.야곱은 극적인 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창세기 28장에 보면 그는 형 에서를 피해서 당시 멀고먼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칩니다.
그런데 그 가는 도중 베델에서 야곱은 꿈에 그 유명한 사닥다리를 보게 되고 거기에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창 28:13)내가 너와 언제나 항상 함께 할 것이고, 너를 지켜줄 것이며 안전하게 다시 돌아오게 해서 네가 지금 누워있는 이곳에서부터 동서남북에 이르기까지 다 너와 네 자손에게 줄 것이다\\라는 약속을 하셨던 것입니다.그 불투명한 장래 앞에서 염려하던 그에게 하나님의 이 생생한 말씀은 얼마나 큰 힘이 되었겠습니까?
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한 그는 아침에 일어나 그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이렇게 하나님께 약속을 합니다.
하나님! 만약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저를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신다면 제가 반드시 이곳에 다시 돌아와서 여기에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제게 주신 모든 것의 십분 일을 드리겠습니다그리고 야곱은 그곳을 하나님의 전,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의 벧엘이라는 이름을 직접 지었던 것입니다(28:18-22).
한마디로 야곱은 그곳으로 다시 돌아와 반드시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 것을 단단히 약속했던 것입니다.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어 주셨습니다.약속하신 대로 외삼촌 집에서도 20년 동안 야곱을 특별히 도와주셨고 결국 그곳을 빠져 나와 다시 고향으로향할 수 있도록 모든 안전 조치를 해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숙제였던 형 에서와도 극적으로 화해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셨습니다.
야곱은 모든 문제가 해결된 그는 당연히 어디로 먼저 가야 하나요? 야곱은 당연히 베델로 올라가야 합니다.그의 선택은 \\하나님의 집\\이 아니라 그냥 장막이라는 뜻의 숙곳, 즉 세상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중심을 잃어버리고 그는 10년이나 넘도록 그러한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하나님을 떠난 삶의 결과가 좋을 수가 없습니다.
헬라어에 새롭다는 뜻을 나타내는 형용사 두개가 있습니다.
네오스라는 말과 카이노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네오스는 시간적으로 새것, 즉 시간상 새로운 것을 의미합니다.
새해를 맞이했다는 것은 달력상 새해라고 부르고 시간적으로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카이노스라는 말은 질적으로 또는 본질적으로 따라서 새것이라는 뜻입니다.
질(質)에 있어서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또 아주 딴 사람이 된 사람의 경우를 말하는 의미입니다.
야곱이 벧엘의 경험처럼 우리도 질적으로 변화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서 결산을 하고 새해를 맞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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