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허락하시는 축복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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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63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창35:9-15 또 다시 허락하시는 축복의 약속
한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시작 되는 시간을 성도들이 한 곳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보내게 된 것을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누구나 한 해를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신 줄로 압니다.
그러나 모두가 만족하다 하지는 못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얼굴에 보니 대체로 나는 만족하지 못하다 하고 쓰여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간혹 어떤 분들의 얼굴에는 만족합니다고 써져 있는 분들도 더러 있기도 합니다.
그 기준이 무엇인가? 하고 살펴보았습니다.
만족하지 못한 자들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래도 만족하다고 하는 자는 하나님을 기준으로 삼는 자이었습니다.
사55:1-2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성도들의 만족은 하나님께로 부터입니다.
다윗도 하프로 이런 연주를 하지 않았습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초장에 뉘게 하시며 잔잔한 물가로 잔잔한 물가로 인도 하시는 도다 진실로 선함과 인자하심이 인자하심이 나의 사는 날까지 나를 따르리니 내가 내가 여호와 전에 영원토록 영원토록 영원토록 거하리로다 아멘
그런데 우리 인간들의 모습은 하나님으로 만족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얼마나 자기중심으로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육체적으로 만족을 얻으려고 하니 만족해지는 것입니까?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만족이 되지 못하고 축복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게 야곱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자의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이런 모습들은 너무나도 많이 보입니다.
어떻게 인간적으로는 어떻게 하여도 제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이 제지 하여 주실 것입니다.
물가의 돌들은 모두가 둥근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끊임없이 흐르는 물의 도전을 받고 보니 어느 순간에 보니 둥근 모양으로 다 되어있더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야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는 살아 갈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때가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나간 생활로 족하게 여겨야 합니다.
벧전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다시는 육체적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영적인 인물이 되라고 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싶어 합니다.
참으로 좋은 형상입니다.
그러나 왠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축복은 본인이 이스라엘화(化)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게 한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 이상 야곱을 논하지 말고 이스라엘로 이야기 하자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야곱에게 찾아 오셨듯이 이 자리에 나에게도 찾아오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음성을 다 같이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 은혜와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할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사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이 그 사람의 인격을 대신 나타내 줍니다. 또한 우리들에게는 통상 사회에서 불리는 이름 외에 예수그리스도를 믿고서 얻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 성도님 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야곱이라는 세상 이름은 지금까지 자기만족만을 위하여 불평과 원망 속에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오늘 한번 살아온 뒤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너무나도 인간적이지 않았습니까?
참으로 고귀하고 복된 이름을 받아 놓고도 이름값을 하지 못하고 살아 온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영생을 얻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되었는데도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그 은혜에 감격할 줄 모르고 항상 세상의 재리와 염려와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혀서 감사할 줄 모르면서 불평과 원망과 짜증에 사로잡혀 살아오지 않았는지 자기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장 13절 말씀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인간적인 것들을 다 버리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얻을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얼마나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관심이 많으신지 언제든지 먼저 찾아 오셔서 말씀을 하십니다.
지금 교회는 구약성경을 새벽 기도 시간에 묵상을 하는데 매장마다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아도 하나님은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 분이신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들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세상에 빠져 야곱같이 사느라고 어찌 하나님을 만나 뵐 시간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9절 다시 야곱에게 나타 나사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야곱에게 찾아오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먼저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찾아가는 종교가 아닙니다.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종교입니다.
야곱에게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날마다 찾아오시고 날마다 은혜를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창 28장20절 벧엘에서 야곱이 서원했던 내용을 야곱에게 찾아오셔서 기억하게 하시는 하나님, 이 서원을 잊고 있던 야곱에게 디나의 사건을 통해 깨달음을 주시고 다시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사실 세겜에서 벧엘까지는 남쪽으로 약48Km정도 되는 짧은 거리였습니다.
야곱은 거리가 멀기 때문에 벧엘로 안온 것이 아니고 언약백성으로써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야곱에게 직접 찾아 오셨습니다.
오늘날도 저희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는 것은 너무 바쁘거나 말씀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 상실되어지고 식어지고 어두워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고 고난 받을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지만 내 삶이 편해지고 풍성해지면 하나님께 약속했던 서원마저도 잊어버리는 것이 사람의 특징인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깨닫는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시 나타 나사 축복을 하신 하나님
생육하며 번성하라고 축복하시며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고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네 후손에게도 주리라고 다시 한 번 언약을 확인해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을 순결하고 정결하게 한 후 벧엘로 올라가는 야곱에게 복을 확인 시켜 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복을 주시고 그의 언약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자 이제는 날마다 벧엘의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날마다 그 축복의 언약들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 삶의 현장이 벧엘이 되셔야 합니다.
벧엘은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말합니다.
야곱의 장래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생각이 많으시다는 겁니다.
땅, 자손,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영향력을 미칠 것, 하나님의 뜻을 이룰 통로가 되는 것, 때가 되면 고장으로 돌아올 것 등 하나님은 야곱에 대한 장래계획을 세우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며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늘 동행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이 이런 축복을 받게 된 이유는 그가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라고. 그 뿐이었습니다. 참으로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어떤 조건과 상관없이 반드시 너를 축복의 사람으로 만들고 말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창28:15절)
내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야곱의 모든 축복은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을 소개 하실 때에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십니다.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을 들어 나는 못하지만 하나님은 하십니다. 아멘!
오늘 우리 교회에 이런 인물들이 많아지시기를 축원합니다.
누구입니까?
이 같은 인물이 나라는 확신이 드십니까?야곱뿐 아니라 하나님은 나를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좋은 배경이나 소위 백이 없어 ‘나는 이끌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체념하며 기죽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 백성과 함께 하며, 지키시고, 이끌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오늘 여기 있는 것은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경주하고 경쟁에서 이겼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잘되고 축복받은 것은 내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이끌어주셨고 내 일을 일 되게 하신 때문입니다. ‘그럼 일이 잘 안 풀리는 나는 뭐냐?’ 이렇게 말씀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께서 나를 이끌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벧엘이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벧엘(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며, 주의 백성이 언제나 있어야 할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벧엘은 가끔씩 방문하는 여행지가 아니고 먹고 마시고 일하며 살아가는 삶의 현장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가 특별한 곳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계시는 곳 그 어디나 벧엘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님이 오신 이후에는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성도의 몸이 벧엘이 되었습니다.오늘 나 자신이 주님이 계시는 벧엘이요 내 삶의 현장이 벧엘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한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시작 되는 시간을 성도들이 한 곳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보내게 된 것을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누구나 한 해를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신 줄로 압니다.
그러나 모두가 만족하다 하지는 못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얼굴에 보니 대체로 나는 만족하지 못하다 하고 쓰여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간혹 어떤 분들의 얼굴에는 만족합니다고 써져 있는 분들도 더러 있기도 합니다.
그 기준이 무엇인가? 하고 살펴보았습니다.
만족하지 못한 자들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래도 만족하다고 하는 자는 하나님을 기준으로 삼는 자이었습니다.
사55:1-2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성도들의 만족은 하나님께로 부터입니다.
다윗도 하프로 이런 연주를 하지 않았습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초장에 뉘게 하시며 잔잔한 물가로 잔잔한 물가로 인도 하시는 도다 진실로 선함과 인자하심이 인자하심이 나의 사는 날까지 나를 따르리니 내가 내가 여호와 전에 영원토록 영원토록 영원토록 거하리로다 아멘
그런데 우리 인간들의 모습은 하나님으로 만족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얼마나 자기중심으로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육체적으로 만족을 얻으려고 하니 만족해지는 것입니까?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만족이 되지 못하고 축복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게 야곱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자의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이런 모습들은 너무나도 많이 보입니다.
어떻게 인간적으로는 어떻게 하여도 제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이 제지 하여 주실 것입니다.
물가의 돌들은 모두가 둥근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끊임없이 흐르는 물의 도전을 받고 보니 어느 순간에 보니 둥근 모양으로 다 되어있더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야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는 살아 갈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때가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나간 생활로 족하게 여겨야 합니다.
벧전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다시는 육체적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영적인 인물이 되라고 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싶어 합니다.
참으로 좋은 형상입니다.
그러나 왠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축복은 본인이 이스라엘화(化)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게 한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 이상 야곱을 논하지 말고 이스라엘로 이야기 하자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야곱에게 찾아 오셨듯이 이 자리에 나에게도 찾아오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음성을 다 같이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 은혜와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할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사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이 그 사람의 인격을 대신 나타내 줍니다. 또한 우리들에게는 통상 사회에서 불리는 이름 외에 예수그리스도를 믿고서 얻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 성도님 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야곱이라는 세상 이름은 지금까지 자기만족만을 위하여 불평과 원망 속에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오늘 한번 살아온 뒤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너무나도 인간적이지 않았습니까?
참으로 고귀하고 복된 이름을 받아 놓고도 이름값을 하지 못하고 살아 온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영생을 얻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되었는데도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그 은혜에 감격할 줄 모르고 항상 세상의 재리와 염려와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혀서 감사할 줄 모르면서 불평과 원망과 짜증에 사로잡혀 살아오지 않았는지 자기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장 13절 말씀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인간적인 것들을 다 버리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얻을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얼마나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관심이 많으신지 언제든지 먼저 찾아 오셔서 말씀을 하십니다.
지금 교회는 구약성경을 새벽 기도 시간에 묵상을 하는데 매장마다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아도 하나님은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 분이신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들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세상에 빠져 야곱같이 사느라고 어찌 하나님을 만나 뵐 시간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9절 다시 야곱에게 나타 나사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야곱에게 찾아오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먼저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찾아가는 종교가 아닙니다.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종교입니다.
야곱에게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날마다 찾아오시고 날마다 은혜를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창 28장20절 벧엘에서 야곱이 서원했던 내용을 야곱에게 찾아오셔서 기억하게 하시는 하나님, 이 서원을 잊고 있던 야곱에게 디나의 사건을 통해 깨달음을 주시고 다시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사실 세겜에서 벧엘까지는 남쪽으로 약48Km정도 되는 짧은 거리였습니다.
야곱은 거리가 멀기 때문에 벧엘로 안온 것이 아니고 언약백성으로써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야곱에게 직접 찾아 오셨습니다.
오늘날도 저희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는 것은 너무 바쁘거나 말씀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 상실되어지고 식어지고 어두워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고 고난 받을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지만 내 삶이 편해지고 풍성해지면 하나님께 약속했던 서원마저도 잊어버리는 것이 사람의 특징인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깨닫는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시 나타 나사 축복을 하신 하나님
생육하며 번성하라고 축복하시며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고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네 후손에게도 주리라고 다시 한 번 언약을 확인해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을 순결하고 정결하게 한 후 벧엘로 올라가는 야곱에게 복을 확인 시켜 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복을 주시고 그의 언약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자 이제는 날마다 벧엘의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날마다 그 축복의 언약들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 삶의 현장이 벧엘이 되셔야 합니다.
벧엘은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말합니다.
야곱의 장래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생각이 많으시다는 겁니다.
땅, 자손,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영향력을 미칠 것, 하나님의 뜻을 이룰 통로가 되는 것, 때가 되면 고장으로 돌아올 것 등 하나님은 야곱에 대한 장래계획을 세우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며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늘 동행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이 이런 축복을 받게 된 이유는 그가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라고. 그 뿐이었습니다. 참으로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어떤 조건과 상관없이 반드시 너를 축복의 사람으로 만들고 말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창28:15절)
내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야곱의 모든 축복은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을 소개 하실 때에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십니다.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을 들어 나는 못하지만 하나님은 하십니다. 아멘!
오늘 우리 교회에 이런 인물들이 많아지시기를 축원합니다.
누구입니까?
이 같은 인물이 나라는 확신이 드십니까?야곱뿐 아니라 하나님은 나를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좋은 배경이나 소위 백이 없어 ‘나는 이끌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체념하며 기죽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 백성과 함께 하며, 지키시고, 이끌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오늘 여기 있는 것은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경주하고 경쟁에서 이겼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잘되고 축복받은 것은 내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이끌어주셨고 내 일을 일 되게 하신 때문입니다. ‘그럼 일이 잘 안 풀리는 나는 뭐냐?’ 이렇게 말씀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께서 나를 이끌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벧엘이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벧엘(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며, 주의 백성이 언제나 있어야 할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벧엘은 가끔씩 방문하는 여행지가 아니고 먹고 마시고 일하며 살아가는 삶의 현장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가 특별한 곳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계시는 곳 그 어디나 벧엘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님이 오신 이후에는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성도의 몸이 벧엘이 되었습니다.오늘 나 자신이 주님이 계시는 벧엘이요 내 삶의 현장이 벧엘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