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후회 없는 고민으로 출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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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91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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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7:8-11 구원에 이르는 후회 없는 고민으로 출발합시다.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의 심리학자 빙 준 쉔은 1986년부터 2004년까지 26년간 735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한 통계 결과를 통해 근심 걱정이 심장을 멍들게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늘 우울하고 근심 걱정에 얼굴을 찌푸린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심장 발작을 일으킬 확률이 30~40% 가까이 높다는 것입니다. 빙 준 쉔은 이 같은 근심 걱정은 혈압을 상승시키고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키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근심 걱정은 사람들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뇌와 심장의 밀접한 관계를 잘 설명하는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이같이 사람의 생명에는 좋지 않는 근심 걱정에서 그 어떤 사람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현실입니다.
올 한해가 2주간이 지나 갔지만 내내 걱정 근심을 하다가 올라오신 것 같은 얼굴들입니다.
한 중년 부인이 얼굴에 너무 주름이 많아서 성형외과를 찾아와서 의사 선생님께 하는 말이 걱정 근심 때문이라고 하지 않고 구기자차를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 얼굴이 너무 많이 구겨졌습니다. 의사선생님 제 얼굴을 제대로 좀 펼 수 없겠습니까? 그랬더니 의사는 처방전을 내려주었습니다. 이제는 구기자 차 대신 피자를 많이 드십시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 후로부터 한국 여성들이 피자를 좋아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조사에 근심에 대하여 이런 통계가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하고 있는 염려와 근심은 40%는 일어나지 않을 일을 걱정하고, 30%는 지나간 일들을 걱정하고, 12%는 내가 걱정 안 해도 될 일을 걱정하고, 10%는 불확실한 일을 걱정하는 것이고, 8%만이 어쩔 수 없는 걱정이라는 조사가 나왔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염려와 근심은 차라리 하지 않고 사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입니다.
내가 염려하고 근심한다고 해서 되어질 일은 하나도 없는 것이 이세상의 근심과 염려입니다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 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이와는 반대로 해야 할 근심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가 싹이 나고 자라나지만 가시떨기 나무에 막혀서 결실을 할 수 없음같이 근심과 염려는 성도들에게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막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세상 근심을 하지 않아서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이 하여서 탈이 된 것입니다.
세상 근심이란 무엇일까?
세상 근심이란 육신의 근심을 말하는데 이 근심은 나에게 결과적으로 사망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근심 걱정 많이 하시다가 오셨을 것입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근심하게 하였는가? 을 살펴봅시다. 아무도 죽음에 자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 그리고 가족들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근심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다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 죽음이 눈앞에 닥치면 예외 없이 다 근심 걱정하고 심한 공포를 느끼며 살아갑니다.
죽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어야 할 이유를 찾으면 한 목숨을 기꺼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질병의 근심입니다. 질병은 사람에게 고통뿐 아니라 슬픔과 근심을 주며 생의 의욕을 빼앗아 갑니다.
그 누구도 질병 없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요즘은 현대인이 최고로 무서워하는 질병은 암과 뇌출혈입니다.
특히 암 병은 우리 믿음의 테스트하는 인류 최고의 도구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암은 하나님의 초대장이라 했습니다.
내게 주어진 질병의 의미를 안다면 그렇게 두려워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도 바울 같은 경우는 내게 주신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고 하시는 가시이구나 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기뻐 할 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자녀가 근심입니다.
잠언17:25절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 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자식 문제로 근심해 보지 않은 부모가 이 세상에 어디 있을 것입니까?
아마 초등학교 시절까지는 그 부모들의 마음에 기쁨과 기대를 주는 사랑스런 대상이 되었을는지 모르겠지만 머리가 커지고 나이가 들면 자식으로 말미암는 근심이 하루도 그칠 날이 없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인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내 자식이라 생각하니 그렇습니다. 내 자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맡겨 주신 것입니다.
환난과 재난입니다.
예상치 못했던 환난과 재난이 닥칩니다. 어느 날 갑자가 홍수가 나서 힘쓰고 애써 세워놓은 농산물이 다 떠내려갑니다. 죽으라고 가르치고 길렀던 아들이 사고로 먼저 갑니다.
밤 잠 안자고 일구어 놓은 사업이 다른 업체가 부도를 내면서 부도가 납니다. 이런 종류 이외에도 각가지 말 못할 재난도 닥칩니다.
그래서 인생 가도를 성공적으로 잘 달려가던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실패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갑작스런 불행한 일이 밀어닥쳐 행복했던 우리네들 가정이 큰 소용돌이 속에 잠길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 때 어느 누가 근심하지 않을 자 있을 것입니까?
그러나 우리 성도는 그때에도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만사가 하나님의 손안에서이루어지고 그러기에 지금 당장은 내가 엄청난 고통을 겪으나 하나님은 절대로 손해 보게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환난과 재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 근심은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까?
기쁨과 즐거움을 빼앗아 갑니다.
근심이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생애에 넘치는 활기는 간 곳 없습니다.
웃음도 옛 얘기요 수심에 찬 얼굴로 살아가는 그의 인생은 참담한 것입니다. 아무리 웃으려 해도 웃을 수가 없습니다. 한번 웃어보십시오 제대로 웃는 사람 몇 명 안 됩니다. 웃음에 너무 어색합니다.
뼈를 마르게 합니다.
잠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근심은 마음의 고통이 극심한 상태가 되어 심장을 멍들게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근심에 빠져서 의욕을 상실하고 좌절감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세요. 그 사람은 얼마 못가 병상에 눕게 됩니다. 왜요? 근심이 뼈를 바르게 합니다. 결국 뼈가 마르면 여러 종류의 질병에 걸리게 됩니다. 화병도 걸리고 소화기 장애 혈관장애가 찾아오면 각종 질병이 심령에 근심 걱정 많은 사람에게서 찾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정신병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 이상 세상 근심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근심 안하고는 사람이 살 수 없는데 축복 받고 생명을 얻는 근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진정으로 근심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세상 근심은 열심히 하였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한 번도 해 보지 못했지 않습니까?
얼굴들을 보니깐 세상 근심만 하였다고 써져 있습니다.
사망의 근심하느라고 생명의 근심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근심이 사망을 주는 것이라면 이 영적인 근심은 우리로 회개케 하고 생명을 준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 근심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침체시키고 하나님을 떠나는 생활을 이루게 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신앙의 활기와 생명력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근심의 질을 바꾸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왜 나에게는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도 없는 것일까?
믿음이 자라지 못하고 늘 제자리에 머물러 앉은뱅이 같은 신앙생활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하고 마음으로 근심해 본 일이 있습니까?
이런 근심이 전혀 없다면 신앙이 성장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맨 날 천 날 세상적인 걱정만 하고 있으니 어찌 믿음이 생기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세상의 소리는 잘 들어요
내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시옵소서 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일성수 못하는 일에 대해 근심해야 합니다.
요즘 우리 성도들 중에 주일 성수 개념이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많은 성도가 주일예배를 여가 생활로 여깁니다. 시간되면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사람입니다. 주일에 예배드리는 삶이 취미생활처럼 여겨지면 큰일 납니다.
회사는 죽어도 안 빠지면서 주일을 빼먹는 것은 가볍게 여긴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주일성수에 대해 근심해 본 일이 있는 것입니까?
만약 이 같은 근심이 없다면 주일을 지키는 일에 평생 실패할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일에 실패한다면 그의 신앙생활에서 바랄 것이 무엇이 있을 것입니까?
순종치 못하는 생활을 근심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을 못하는 사람은 왜 자신이 순종하는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 때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마음에 큰 근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불순종하는 일에 깊이 회개하고 순종의 생활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이 연약하여 짓는 죄를 근심해야 합니다.
자신이 연약하여 죄를 저질렀을 때 왜 나는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번번이 넘어지는 것일까?
왜 나는 나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이처럼 죄를 저지르는 것일까?
크게 근심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핑계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앞에 돌아온 이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나가지 못할 때 이 같은 근심이 끊임없이 일어나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일은 내 속에 내주 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과 주님께 대한 사랑이 내 마음속에 큰 불안을 심어 주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근심은 하면 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근심은 어떤 유익이 있는 것일까요? 회개를 이루게 합니다.
10절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마음은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값진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피로써 회개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 회개는 저절로 마음에서 솟아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할 때마다 이 근심이 나의 마음에 슬픔을 주고 안타까운 마음을 주며 이 일을 어찌할꼬? 하는 마음을 주므로 구원에 이르는 회개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의뢰하게 만듭니다.
여러분은 진정 하나님만 의뢰하십니까?
내 가정에 갑자기 예기치 아니했던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 이 일은 내가 지난날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생활을 해 왔더니 하나님께서 나로 깨닫게 하시는 것이구나, 마음에 근심이 생겨야 합니다.
나는 잘했는데 누구 때문에가 아닙니다.
이 근심은 곧 하나님께 대한 회개로 연장되어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하나님을 더욱 의뢰하게 되며 순종하는 생활로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서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곤고한 날에 뭘 하라구요? 생각하라! 이 말은 뭐 하라는 말입니까? 자신의 죄를 생각하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 원인을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생활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생활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대단히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만사가 우연히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공짜가 없습니다.
자신의 몸이나 자녀들의 몸에 예상치 아니한 병이 생겼습니까?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어쩌다가 감기가 걸렸거니 어쩌다가 그렇거니 우연한 일로 넘기지 말고 자신의 신앙생활과 결부시키는 생활이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할 수 있는 생활인 것입니다.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도 그냥 떨어지는 법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 심령을 새롭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는 반드시 회개라고 하는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이 같은 근심을 통해서 회개의 역사를 이루게 하시고 믿음을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새힘을 주십니다. 회개하면 새로운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새롭게 됩니다. 할렐루야!
누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할 수 있는 것인가?
성령이 그 마음에 내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고민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들이 근심과 고통 가운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궁극적으로 생명과 축복의 자리로 초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No pain, No gain), 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도 없습니다.(No Cross, No Crown)그래서 벧전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변화 시키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픔이 고린도 교회를 어떻게 바꾸어주었을까요?
11절 간절하게 하며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변증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모든 허물을 낱낱이 고백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둘째로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의 행적에 대해 매우 분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전에 지었던 모든 죄와 허물에 대해 자책하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던가 하고 통탄하였습니다.
셋째로 그들은 또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게 되어 범사에 하나님의 뜻만을 좇아 살려고 하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넷째로 고린도 교인들은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먼저 그들은 은혜의 말씀을 사모하게 되었고,
하나님과 항상 동거하는 신령한 생활을 사모하게 되었으며,
주신 은사로 말미암아 능력 있는 신앙생활하기를 사모하였습니다.
다섯째로 그들은 신앙에 열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벌하였습니다.
위대한 신앙인이란 죄를 전혀 안 짓는 사람이 아니라 죄를 짓더라도 바로 돌아서서 통회하는 마음으로 회개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근심이란 그것을 극복하느냐 못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방법으로 대처하느냐,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느냐, 세상적인 방법으로 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근심하지 않고 살수는 없습니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근심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입니다.
2008년은 더 이상 영양가 없는 세상 근심에는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생명과 구원을 얻는 하나님의 뜻을 위한 고민이 시작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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