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은 힘이 큰 감동을 연출하는 한 해로 출발합시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26회 작성일 2009-05-27 09:41

본문

요한복음 6:5-13 내 작은 힘이 큰 감동을 연출하는 한 해로 출발합시다.
2008년 한해를 꿈과 비전을 품고 시작하였습니다.
저 역시 교회와 성도와 제 자신에 대한 꿈과 비전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이루는 한 해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의 말씀을 확신을 가지고 힘 있게 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올 일월 첫 주에는 복음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고민으로 출발하자고 했습니다.
참으로 영혼 구원을 위하여 모두가 열심을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관심이 별로 없이 나 혼자 만을 위하여 고민하는 자들도 있겠지만
그리고 둘 째 주는 구원에 이르는 후회 없는 고민으로 출발 하자고 하였습니다.
내 마음대로 살다가 벌써 후회하는 자가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셋째 주 지난주는 말씀을 붙잡고 강하고 담대하게 출발하자고 하였습니다.
반드시 준비된 약속된 가나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복음을 위하고 구원을 위하고 그리고 말씀에 담대함으로 출발을 하려고 하는 데 내가 너무 약하다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 자신이 감당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히 있으신데 그 말씀을 감당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빈들에서 5000명의 식사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돈도 없고 돈이 있어도 식당이 없습니다.
벳세다 들판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자들이 은혜를 많이 받고 그리고 앞으로 말씀대로 살아가면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모두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말씀을 현실로 가져와서 결실을 해야 하는 데 자신들의 꼴을 볼 때에 말씀과 현실은 너무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복음이니 생명이요 그리고 구원이요 또한 행 할 때에 축복이 되니 담대히 행해야 된다 라고 여태까지 그렇게 알고 은혜는 받았는데 막상 행하기에 엄두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은혜는 되는데 감동은 되는데 축복은 되는데 내가 엄두가 안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의 실천을 두고서 이말 저말 하게 되고 핑계가 앞서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나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는 되는데 감동은 되는데 축복은 되는데 현실로 돌아 가면은 그렇지 못하는 것입니다.
돈이 있어야 갰다? 는 둥 이것 가지고 되겠느냐? 는 둥 별 별 핑계를 다 되는 것입니다.
그 핑계는 결국은 아무런 일이 없는 것입니다.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왜 우리 가운데 그렇게도 떠먹이도록 그렇게 가르쳐줘도 결국은 따르지 못하고 예수님의 축복과 구원과 생명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고 그 반대만이 되는 것입니까?
아무도 이런 일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 아이가 말씀에 응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게 생명이요 구원이요 축복입니다.
응하였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다른 사람이 볼 때에는 하잖게 여기는 것 가지고 말입니다.
빵 2개와 멸치 같은 자그마한 생선 5마리로 장정 5000명이 배불리 먹고 12광주를 남겼다는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 난 것일까요?
예, 그렀습니다.
말씀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그 일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말씀에 내 최선이 있을 뿐입니다.
최선을 다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바로 이것입니다.
말씀 앞에 최선을 다 하는 것입니다.
Do You Best, You can do it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다는 서양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수많은 어른들은 자신들의 이익 정욕 욕심 고집 체면 등등을 세우느라고 자신들의 최선의 모습을 하지 못하고 누가 어떻게 하겠지 누가 하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지 하고 멍하니 바라보고 만 있을 때에이 아이는 모든 것을 장애로 만들지 않고 말씀 앞에 최선을 다하는 순수해 졌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게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것입니다.
이제 2008년도 꿈과 비전을 이루는 한 해가 되시기를 진정으로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감동시키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을 감동시켜도 큰 일이 일어나는데 하나님을 감동시키는데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무엇을 가졌든지 최선을 다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완전함을 요구하시는 것도 아니요 모든 것을 충족시켜 달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5000명분의 식사를 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도시락이라도 내어 놓은 최선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5000명분의 식사를 낸 것과 같은 효과입니다.
최선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일입니다.
왜 하나님을 감동시켜야 합니까?
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통하여 감동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아직도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려고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까?
맨 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나는 못하는 것으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가난하니 돈 있는 사람이 하니 나는 못한다 하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평생 가난하게 살고 싶습니까?
나는 몸이 약하니 나는 못해 하십시오
죽을 때까지 못합니다.
이것이 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이런 것들을 정당하게 조건을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한번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좋겠다고 말들을 했습니다.
그런데 좇겠다고는 하였지만 모두가 그럴싸한 핑계를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니 초상을 치고 가겠습니다.
식구들과 인사를 하고 오겠습니다.
그 어떤 것도 예수님께 인정받는 것이 없습니다.
죽은 자로 죽은 자를 따르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뜻이 서는 것이지 핑계로 주의 뜻을 까 뭉개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뜻이 통하면 만사가 통하는 것입니다.
뜻이 잇는 곳에는 길도 있게 마련입니다.
오 헨리가 쓴 강도와 신경통이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강도가 어느 집에 침입했습니다. 총을 내밀면서 손을 들라고 소리칩니다. 잠결에 일어난 집 주인이 왼쪽 손만 들어 올렸습니다. 오른 편 손도 올리라고 소리쳤습니다. 집 주인은 신경통이어서 올릴 수 없다고 말합니다. 강도 역시 자기도 신경통이어서 권총을 왼 손에 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신경통 이야기로 밤을 새웠습니다.
강도는 더 이상 가해자가 아니요 그 집 주인은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었습니다.
밤새도록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다가 새벽녘이 되자 강도는 집주인과 마치 다정한 친구처럼 손을 흔들며 집을 떠났습니다.
무엇을 나눌 수 있을 때 친구가 되고 나아가 원수가 친구가 되는 놀라운 변화를 얻게 됩니다.
그 주인공으로 나를 불러 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최선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최선을 다 하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너무 너무 아름답고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최선을 하지 않고 핑계만 되고 있는 자도 있습니다. 너무 너무 감동적이지 않습니다.
최선은 말씀에 언제든지 긍정적인 자세에서 나타납니다.
이게 감동입니다.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아직도 빵으로만 산다고 여기십니까?
빵으로만 살려고 하다가 다 죽고 맙니다.
정신 질환자가 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새벽에 교회와 성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교회를 살펴 볼 때에 너무 나도 약하고 저도 부족하고 성도들의 숫자도 얼마 되지 않고 일군도 그렇고 등등 기도하다가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서 낙심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힘을 얻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 설교를 위하여 기도를 하는데 그래 이 가운데서 최선을 다 하자입니다.
그래 최선을 다하자 이것을 붙잡고 제가 살아 난 것입니다.할렐루야!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나를 살리시는지 날마다 말씀을 대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말씀에 긍정적인 아이의 행위가 없었더라면 모두가 쫄쫄 굶었을 것입니다.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말씀으로 5000명이 먹고 12광주리를 남겼습니다.
12광주리를 남겼다는 것은 풍성하게 배불리 먹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할렐루야!
왜 자꾸 세상 적으로 만족을 얻으려고 합니까?
그러다가 다 미쳐버리고 다 망합니다.
말씀에 긍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보십시오 살 길이 여립니다.
내 심령에 만족함이 잇을 것입니다.
왜 말씀에 긍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지 않고 불만하고 못살겠다고 하십니까?
기도회 시간에 올라오십시오
그리고 예배 시간 특히 주일을 지키시고 봉사하시고 각종 예물을 드리시고 최선을 다해 보십시오
안하고 있지 않습니까?
걱정만 했지 원망만 했지 불평만 했지 따지기만 했지 최선이 없었지 않습니까?
이제라도 말씀에 긍정을 가지고 최선을 드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만족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 년을 생존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이 아니면 설명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광야는 나무 한 그루 변변히 서 있지 않는 사막이었습니다. 물도 없었고, 나무나 풀도 없었습니다. 농사지을 땅도, 목축을 할 수 있는 초원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반석에서 샘물이 나게 하심으로 먹이셨습니다.
신명기 8:3절에 보면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이신 것은 바로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심을 알게 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생명의 떡 예수님을 먹고 마실 때 우리는 생명과 구원을 얻게 됩니다.
만족과 기쁨을 누리며, 참 행복을 누립니다. 인생의 문제는 떡이 없어서 불행 한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떡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피상적인 문제를 바라봅니다. 경제적인 문제, 교육문제, 환경문제, 시대문제를 얘기합니다. 그러나 , 정말 근본적인 이유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고 마시지 못한 때문입니다.
생명의 떡 예수님을 먹고 마시지 못하여 내면이 마르고 곤고하며 감사와 기쁨이 없습니다.
우리의 가정에, 모임에, 우리의 삶 속에, 인생과 사역과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와 축복이 넘치기 위한 길이 무엇입니까?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머뭇거리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내 자신의 최선만 필요합니다.
오늘 주님은 내가 어떻게 최선을 다하시는 가를 보시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환경 탓 자신의 한계 탓 사람 탓을 하면서 불평하며 체념하고 있는 문제가 있습니까?
모든 일을 주인공은 바로 나입니다.
가정에서도 나요 직장에서도 나요
그리고 교회에서도 나의 최선을 주님은 원하십니다.
당연히 올 한 해 여러분의 꿈과 비전도 나 스스로의 최선이 요구 될 뿐입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입니다.
티끌이 태산을 이룹니다.
이를 이루시고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찌 긍정적이지 않을 수없지 않습니까?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나에게 최선이라는 것이 없으면 이 자리에 가능성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한 다면 이 자리에 참여한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하고 큰일을 이루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전히 나의 능력과 힘과 소유를 바라보면서 할 수 없다고 핑계치 말고 빈들과 같고 어둑어둑하게 저문 환경과 상황을 보면서 할 수 없다고 하지 말고 나누어 줄 것이 없기에 할 수 없고, 상황이 나빠서 할 수 없고. 사람들의 기대와 요구가 너무 많고 버거워서 할 수 없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할 수 없다고 하지 말고 주님은 그 가운데서 큰 것이 아니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 최선으로 나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주님이 모든 것을 줄 것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Total 914 건 | 1 / 92 page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