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기도는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741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누가복음 22:39-46 진정한 기도는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고난에 함께 참여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집니다.
그중에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 고난을 앞에 두고 기도하시던 모습 본받아 특별히 기도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과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꼭 자기가 생각한 것만큼 그러니 제같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람도 자기 생각과 자기 뜻대로만 행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뜻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바뀌어야 합니다.
특히나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은 더욱이 자신의 뜻대로의 신앙생활이 되어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아무런 도움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사순절에는 생명과 평안의 삶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기도의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주여, 주여 하고 외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난 주간의 겟세마네의 예수님의 기도도 내 원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유명한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찾고 드린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고 십자가를 감당하시도록 기도에 힘을 주셨습니다.할렐루야!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도에는 반드시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으로 길을 열어 주십니다.
아버지의 뜻을 위한 기도의 저자인 미국 국가 장애위원회 차관보인 강영우 박사는 어린 시절에 시력을 잃고는 하나님께 시력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지만, 시력의 회복은커녕 양친이 돌아가시고, 남은 4남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공장에서 일하던 누나마저 과로로 세상을 떠나고, 남은 형제들은 뿔뿔이 헤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어찌 내 뜻을 이렇게도 들어주시지 않나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눈을 회복시켜 달라는 이유도 공장일이라도 해서 남은 동생들을 보살펴야겠다는 그런 마음에서 2년여 동안 매일 피눈물 나는 기도를 올렸지만 감감 무소식 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도 속에서 고난 속에서도 감사하라는 바울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서는 결국 그 생각이 바뀌고 감사하는 믿음을 통하여 생각이 바뀌고 그 생각이 바뀌니 결국 인생이 바뀌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그런지 그는 그의 책에서 어릴 적 하나님께 간절히 올렸던 그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이미 그 기도 중에 하나님은 강영우 박사의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을 바꾸고 계셨던 것이고, 그 바뀌어졌던 생각이 세월이 흐르면서 그와 그의 자녀들의 미래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기도는 내 자신의 필요로부터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코 잘 못된 일이라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가끔 보면 은 기도를 하지 않으신 분들이 기도 시간에 올라오기도 합니다.
이 기도의 성격은 대체로 자신의 소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도입니다.
무슨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하는 기도는 아닙니다.
그래도 이 기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기도 안하는 것보다 훨씬 귀한 일입니다.
그러니 기도하십시오 놀라운 뜻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이 원하시는 뜻이 기도 속에서 나타나지 않습니까?
제발 십자가를 피 할 방법이 없으신가요?
그러니 내 기도가 나를 위한 내 생각을 이루기 위한 기도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 속에는 내 뜻이 원하는 바가 있지만 이 가운데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결코 무시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왜 나의기도 속에는 내 뜻만 있는 것입니까?
이게 예수님의 드린 기도와 내가 드린 기도의 차이입니다.
기도하면 할수록 내 뜻이 충만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도를 하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뀌는 자가 있습니다.
기도는 내 뜻으로 출발이 되지만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는 것으로 마치는 것입니다.
기도로서 바꿔져야 합니다. 날마다 드리는 기도로 날마다 바꿔져야 합니다.
기도함으로서 나라는 그 한계를 벗어 날 수 있고 구태의연(舊態依然)한 자리에서 탈피 할 수 있습니다.
굼벵이가 번데기가 되어 그 껍질을 벗어나면 새로운 모습의 나비가 되는 것입니다.
기다가 날아다니는 것입니다. 땅에 기다가 하늘을 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그 존재가 새롭게 바뀐 자들은 모두가 기도하는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를 쉬지 않고 한 사람입니다. 그랬더니 그는 날마다 새로워 질 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내 겉 사람은 후패하나 내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기도로서 저 만치 앞서가는 자가 있는가 하면 아직도 제 자리에서 뭉개는 자들이 있습니다.
내 생각에 젖은 나를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뀌니 날마다 새로워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 인간의 생각 밖에 하지 못하는 내가 하나님의 생각을 가질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잘 살려면 바뀌어야 합니다.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생각은 기도로서 바뀔 수 있습니다. 기도는 생활입니다.
기도는 좋은 습관입니다. 예수님이 기도에 좋은 습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도 새벽기도 철야기도 산기도 바다가 에서의 기도 십자가상에서도 기도 등등
나에게 기도의 좋은 습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제가 미국에서 다녀와서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성도들이 바뀌었고 교회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아니 무엇이 이들을 바뀌게 하였을까? 기도의 힘이 없습니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그리고 낮기도 하루에 3시간씩 기도하자 이었습니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는 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해야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으니 어쩌면 좋겠는지
하나님은 나를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방법은 기도를 통하여 하십니다.
지난 금요 기도회를 마친 시간에 12시가 다 되어서 가게 일을 마치고 모 권찰님이 기도하려 교회로 올라 오셨습니다. 얼마나 든든한지 그래 이제 염려가 없겠네
하나님이 큰일을 이루실거야
얼마나 복된 사람이 되고 얼마나 복된 가정이 되려고 기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성도들을 볼 때에 목사가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주일을 위해 토요일 교회에서 자고 철야기도 한다는 성도들이 생겼습니다.
저는 확신을 합니다. 이들을 통하여 교회기 변화된다는 것을 할렐루야!
그리고 자녀들이 가정 예배를 드리자는 가정들이 생기는데 참으로 복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도로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큰 걱정거리입니다.
야곱은 인간적으로 실수를 하지 많은 아버지 이삭은 그리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하나님께 기도하는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인간적으로 든든한 자 같았지만은 아버지 이삭은 걱정이었습니다.
왜요? 한 번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제 마음대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이삭이 복을 받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의 복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세상과 사람들의 방해가 얼마나 많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복되게 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잘 되도 걱정이요 못 되도 걱정입니다.
결국은 자기 생각이 나를 망치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의지(will)를 말합니다.
헬라어로는 <테레마>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소원하시고, 하고자 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은 내가 내 원하는 것을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는 자입니다.
신앙의 사람은 먼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5장17절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2장에는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17절)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그런데 내가 그 뜻을 받아 드리기는 너무 준비가 되지 않고 소히 실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점잖을 뜨는 기도를 드리지 말고 제발 받아드리기를 원합니다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힘쓰고 애쓰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세상에 익숙한 내 체질이 확 바뀔 것입니다.
예수님도 얼마나 갈등이 많았겠습니까? 결코 점잔을 빼면서 기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의사인 누가가 보기에도 기도하다가 큰일을 낼 것 같이 보였습니다.
이 사람 기도하다가 죽겠구나! 할 정도인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어떻게 되었다고요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고 하였으니 땀 정도가 아니라 땀구멍에 진액이 다 빠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빠지고 이렇게 기도하지 않으면 십자ㅅ가를 질 수도 없고 이렇게 기도하지 않으면 인간을 구원시킬 힘도 없고 이렇게 까지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고 이렇게 기도해야지 하나님의 뜻을 내가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이신 예수님도 이렇게 기도하셨는데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서 무엇인가 일을 이루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그리고 거짓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무슨 일을 이루는 사람들을 볼 때에 여러분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기도 많이 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들어서 무엇인가를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줄로 믿으십니까?
아니면 그냥 살고 싶습니까? 믿는 사람은 결코 그냥 살게 못하실 것입니다.
어차피 하나님의 자녀로 값주고 사셨다면 그냥 죽게 안 하실 것입니다.
삼손도 하나님은 그냥 죽게 하시지 않고 큰 깨달음을 가지고 눈알이 뽑히고 노예같이 블레셋 사람에게 붙여 그냥 죽도록 하지 않으시고 죽는 그 순간에 살아 있을 때보다 더 큰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미국의 얼바인의 샘물 교회 홍집사님 9년간에 말 못하는 벙어리 되었다가 그냥 인생 끝내게 하지 않았습니다.
9년의 벙어리 기간에 진정한 믿음의 사람으로 돌아서고 이번 기회에 말문이 열리고 이제 자신의 간증을 전도지로 만들어 가지고 전도하는 자로 나섰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그냥 내 마음대로 살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충격과 쇼크 요법을 동원하시기 까지 기다리겠습니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기도하시겠습니까?
제가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특별히 생각하여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가 장차 당 할 큰 시험을 이기게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은 언제든지 큰 시험된 일을 만들 고 맙니다.
기도하지 하지 않으면 큰 일이 되어 나에게 다가 올 것입니다.
예수님도 슬픔을 인하여 감당하지 못하고 자고 있는 제자들에게 그래 슬프겠구나 하시지 않으시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구속사건을 위한 계획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18:14)
이번 사순절의 기도에 내가 참여해야 함은 기도할 때, 우리의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요청하고 아뢰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정작 기도는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들을 변화시키는 것에 그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 교회는 참으로 내가 피 땀을 흘려 해야 할 영혼 구원의 과제가 내가 드려야 기도가 구체적으로 들어나고 잇습니다.
알파 전도입니다.
이번 알파3기에 땀이 피가 되도록 할 의사가 있습니까?
없다면 생기도록 피 땀을 흘리십시오 어떤 모양으로든지 섬겨야 합니다.
첫째로 물질로 섬기셔야 합니다.
그리고 내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한명이라도 모시고 오셔서 섬기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내 뜻에 맞춘 기도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까?
그러면 아직도 알파에 아무런 감동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즉 영혼 구원을 위해 이번 알파 3기에 영육 간에 드려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번 사순절 기도는 승리가 될 것입니다.
기도가 천사가 돕고 살아 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기도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기도입니다.
아마 놀라운 일이 여러분의 삶에서 나타 날 것입니다.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고난에 함께 참여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집니다.
그중에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 고난을 앞에 두고 기도하시던 모습 본받아 특별히 기도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과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꼭 자기가 생각한 것만큼 그러니 제같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람도 자기 생각과 자기 뜻대로만 행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뜻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바뀌어야 합니다.
특히나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은 더욱이 자신의 뜻대로의 신앙생활이 되어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아무런 도움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사순절에는 생명과 평안의 삶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기도의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주여, 주여 하고 외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난 주간의 겟세마네의 예수님의 기도도 내 원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유명한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찾고 드린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고 십자가를 감당하시도록 기도에 힘을 주셨습니다.할렐루야!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도에는 반드시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으로 길을 열어 주십니다.
아버지의 뜻을 위한 기도의 저자인 미국 국가 장애위원회 차관보인 강영우 박사는 어린 시절에 시력을 잃고는 하나님께 시력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지만, 시력의 회복은커녕 양친이 돌아가시고, 남은 4남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공장에서 일하던 누나마저 과로로 세상을 떠나고, 남은 형제들은 뿔뿔이 헤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어찌 내 뜻을 이렇게도 들어주시지 않나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눈을 회복시켜 달라는 이유도 공장일이라도 해서 남은 동생들을 보살펴야겠다는 그런 마음에서 2년여 동안 매일 피눈물 나는 기도를 올렸지만 감감 무소식 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도 속에서 고난 속에서도 감사하라는 바울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서는 결국 그 생각이 바뀌고 감사하는 믿음을 통하여 생각이 바뀌고 그 생각이 바뀌니 결국 인생이 바뀌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그런지 그는 그의 책에서 어릴 적 하나님께 간절히 올렸던 그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이미 그 기도 중에 하나님은 강영우 박사의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을 바꾸고 계셨던 것이고, 그 바뀌어졌던 생각이 세월이 흐르면서 그와 그의 자녀들의 미래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기도는 내 자신의 필요로부터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코 잘 못된 일이라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가끔 보면 은 기도를 하지 않으신 분들이 기도 시간에 올라오기도 합니다.
이 기도의 성격은 대체로 자신의 소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도입니다.
무슨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하는 기도는 아닙니다.
그래도 이 기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기도 안하는 것보다 훨씬 귀한 일입니다.
그러니 기도하십시오 놀라운 뜻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이 원하시는 뜻이 기도 속에서 나타나지 않습니까?
제발 십자가를 피 할 방법이 없으신가요?
그러니 내 기도가 나를 위한 내 생각을 이루기 위한 기도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 속에는 내 뜻이 원하는 바가 있지만 이 가운데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결코 무시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왜 나의기도 속에는 내 뜻만 있는 것입니까?
이게 예수님의 드린 기도와 내가 드린 기도의 차이입니다.
기도하면 할수록 내 뜻이 충만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도를 하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뀌는 자가 있습니다.
기도는 내 뜻으로 출발이 되지만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는 것으로 마치는 것입니다.
기도로서 바꿔져야 합니다. 날마다 드리는 기도로 날마다 바꿔져야 합니다.
기도함으로서 나라는 그 한계를 벗어 날 수 있고 구태의연(舊態依然)한 자리에서 탈피 할 수 있습니다.
굼벵이가 번데기가 되어 그 껍질을 벗어나면 새로운 모습의 나비가 되는 것입니다.
기다가 날아다니는 것입니다. 땅에 기다가 하늘을 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그 존재가 새롭게 바뀐 자들은 모두가 기도하는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를 쉬지 않고 한 사람입니다. 그랬더니 그는 날마다 새로워 질 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내 겉 사람은 후패하나 내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기도로서 저 만치 앞서가는 자가 있는가 하면 아직도 제 자리에서 뭉개는 자들이 있습니다.
내 생각에 젖은 나를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뀌니 날마다 새로워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 인간의 생각 밖에 하지 못하는 내가 하나님의 생각을 가질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잘 살려면 바뀌어야 합니다.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생각은 기도로서 바뀔 수 있습니다. 기도는 생활입니다.
기도는 좋은 습관입니다. 예수님이 기도에 좋은 습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도 새벽기도 철야기도 산기도 바다가 에서의 기도 십자가상에서도 기도 등등
나에게 기도의 좋은 습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제가 미국에서 다녀와서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성도들이 바뀌었고 교회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아니 무엇이 이들을 바뀌게 하였을까? 기도의 힘이 없습니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그리고 낮기도 하루에 3시간씩 기도하자 이었습니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는 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해야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으니 어쩌면 좋겠는지
하나님은 나를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방법은 기도를 통하여 하십니다.
지난 금요 기도회를 마친 시간에 12시가 다 되어서 가게 일을 마치고 모 권찰님이 기도하려 교회로 올라 오셨습니다. 얼마나 든든한지 그래 이제 염려가 없겠네
하나님이 큰일을 이루실거야
얼마나 복된 사람이 되고 얼마나 복된 가정이 되려고 기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성도들을 볼 때에 목사가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주일을 위해 토요일 교회에서 자고 철야기도 한다는 성도들이 생겼습니다.
저는 확신을 합니다. 이들을 통하여 교회기 변화된다는 것을 할렐루야!
그리고 자녀들이 가정 예배를 드리자는 가정들이 생기는데 참으로 복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도로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큰 걱정거리입니다.
야곱은 인간적으로 실수를 하지 많은 아버지 이삭은 그리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하나님께 기도하는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인간적으로 든든한 자 같았지만은 아버지 이삭은 걱정이었습니다.
왜요? 한 번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제 마음대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이삭이 복을 받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의 복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세상과 사람들의 방해가 얼마나 많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복되게 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잘 되도 걱정이요 못 되도 걱정입니다.
결국은 자기 생각이 나를 망치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의지(will)를 말합니다.
헬라어로는 <테레마>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소원하시고, 하고자 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은 내가 내 원하는 것을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는 자입니다.
신앙의 사람은 먼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5장17절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2장에는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17절)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그런데 내가 그 뜻을 받아 드리기는 너무 준비가 되지 않고 소히 실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점잖을 뜨는 기도를 드리지 말고 제발 받아드리기를 원합니다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힘쓰고 애쓰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세상에 익숙한 내 체질이 확 바뀔 것입니다.
예수님도 얼마나 갈등이 많았겠습니까? 결코 점잔을 빼면서 기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의사인 누가가 보기에도 기도하다가 큰일을 낼 것 같이 보였습니다.
이 사람 기도하다가 죽겠구나! 할 정도인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어떻게 되었다고요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고 하였으니 땀 정도가 아니라 땀구멍에 진액이 다 빠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빠지고 이렇게 기도하지 않으면 십자ㅅ가를 질 수도 없고 이렇게 기도하지 않으면 인간을 구원시킬 힘도 없고 이렇게 까지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고 이렇게 기도해야지 하나님의 뜻을 내가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이신 예수님도 이렇게 기도하셨는데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서 무엇인가 일을 이루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그리고 거짓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무슨 일을 이루는 사람들을 볼 때에 여러분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기도 많이 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들어서 무엇인가를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줄로 믿으십니까?
아니면 그냥 살고 싶습니까? 믿는 사람은 결코 그냥 살게 못하실 것입니다.
어차피 하나님의 자녀로 값주고 사셨다면 그냥 죽게 안 하실 것입니다.
삼손도 하나님은 그냥 죽게 하시지 않고 큰 깨달음을 가지고 눈알이 뽑히고 노예같이 블레셋 사람에게 붙여 그냥 죽도록 하지 않으시고 죽는 그 순간에 살아 있을 때보다 더 큰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미국의 얼바인의 샘물 교회 홍집사님 9년간에 말 못하는 벙어리 되었다가 그냥 인생 끝내게 하지 않았습니다.
9년의 벙어리 기간에 진정한 믿음의 사람으로 돌아서고 이번 기회에 말문이 열리고 이제 자신의 간증을 전도지로 만들어 가지고 전도하는 자로 나섰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그냥 내 마음대로 살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충격과 쇼크 요법을 동원하시기 까지 기다리겠습니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기도하시겠습니까?
제가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특별히 생각하여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가 장차 당 할 큰 시험을 이기게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은 언제든지 큰 시험된 일을 만들 고 맙니다.
기도하지 하지 않으면 큰 일이 되어 나에게 다가 올 것입니다.
예수님도 슬픔을 인하여 감당하지 못하고 자고 있는 제자들에게 그래 슬프겠구나 하시지 않으시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구속사건을 위한 계획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18:14)
이번 사순절의 기도에 내가 참여해야 함은 기도할 때, 우리의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요청하고 아뢰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정작 기도는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들을 변화시키는 것에 그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 교회는 참으로 내가 피 땀을 흘려 해야 할 영혼 구원의 과제가 내가 드려야 기도가 구체적으로 들어나고 잇습니다.
알파 전도입니다.
이번 알파3기에 땀이 피가 되도록 할 의사가 있습니까?
없다면 생기도록 피 땀을 흘리십시오 어떤 모양으로든지 섬겨야 합니다.
첫째로 물질로 섬기셔야 합니다.
그리고 내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한명이라도 모시고 오셔서 섬기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내 뜻에 맞춘 기도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까?
그러면 아직도 알파에 아무런 감동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즉 영혼 구원을 위해 이번 알파 3기에 영육 간에 드려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번 사순절 기도는 승리가 될 것입니다.
기도가 천사가 돕고 살아 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기도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기도입니다.
아마 놀라운 일이 여러분의 삶에서 나타 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