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그리스도는 죽음의 공포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750회 작성일 2009-05-27 09:41

본문

마태복음 28: 1-10 예수그리스도는 죽음의 공포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제가 지난 주중에 씨티 극동 아파트에 사신다는 주민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일주일이 되는데 그 어머니가 혹시 뱀으로 환생하여 꿈에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어떠하면 좋겠느냐? 고 물었습니다.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하고 물으니 자신에게는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나서 가보니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언니에게는 뱀으로 나타났고 그리고 다른 장손 조카에게도 뱀으로 나타났으며또 어머니의 채무자에게는 두 번이나 나타나서 자신을 깨물었다는 것입니다.
그 집안에 종교를 물어보니 불교로 시작하여 자신은 케토릭에 2년 전에 다녔는데 지금은 다니지 않는데 이제 나가 볼까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고 물으니 영세를 받으면 귀신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리고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하면 죽은 자가 좋은데 간다고 해서 다시 다니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의 윤회설을 말하면서 뱀으로 환생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냐고 말하니 참으로 영적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사람은 한번 왔다가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여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일은 죽은 후에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계속 살아남아 있다고 자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음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한번 생각 할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뱀으로 짐승으로 환생 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귀신이 되어 구만리 하늘에 정처없이 떠돌아다니겠습니까?
아니면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끝장입니까?아직도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장차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장차 내게 다가 올 사후의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인생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 줄 아십니까?
내가 죽으면 나는 모르겠다고 하면서 나를 그냥 방치 하겠습니까?
절대로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 분에게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흙으로 만들었기에 흙으로 돌아가고 그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불사합니다.
이 지옥인 음부로 가든지 아니면 천국인 낙원으로 가서 영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을 위하여 염불을 하든지 기도를 하고 공을 들여도 죽은 자를 위하여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아직도 케토릭은 죽은 자를 위한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사탄 귀신이 있는데 이것이 죽은 사람을 핑계하여 그와 관계된 자들에게 나타나서 산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처한 귀신의 괴롭힘의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자유 할 수 있다
귀신이 있듯이 하나님의 영 성령이 계시는데 이 귀신은 성령에게는 꼼짝하지 못 한다 인간은 나약해서 귀신에게 패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님이 도와주셔서 귀신에게 이길 수 있다 지금이라도 원한다면 예수님을 믿고 당신이 귀신에게 자유 할 수 있도록 도와 주겠다고 하니 한번 생각해 보고 다시 연락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분명히 말했습니다.
케토릭과 기독교는 다르다
케토릭은 인간 마리아를 성모로 하나님 어머니로 섬기고 있으니 어찌 마리아가 하나님이 될 수있으냐?
그리고 죽은 자를 위하여 후손이 기도한다고 죽은 자가 천국가는 것이 아니다 연옥이 없다 이것만 보더라도 케토릭이 기독교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영적인 세상을 한번 생각이라도 해 보았습니까?
그리고 사후의 나를 생각해 보았습니까?
죽음은 나와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더 놀라운 사실을 하나 소개하려고 합니다.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소식입니다. 할렐루야!
마28: 장사지낸 예수의 시신을 삼일 만에 찾으려 갔다가 들은 소식인데 그 무덤이 시신이 없는 빈 무덤이라는 것입니다.
깜짝 놀라있는데 천사가 들려준 말은 그는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평상시에 말씀하시는데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놀라서 다시 길을 돌아서 가는 노중에 다시 사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는데 그가 말하시기를 평안하느냐? 두려워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신지 아시니까?
죽음을 정복한 하나님 이십니다.
천하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 3번 울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그가 페르샤 원정을 갔을 때 페르샤 왕 고레스의 묘비를 보고 울었는데 인생이 아무리 한때 부귀영화를 누려도 결국은 한 개의 무덤밖에 남기는 것이 없으니 허무하구나 하고 눈물을 흘렸으며 , 인도의 인더스강가에서 인더스강만 건너가면 인도를 정복할 수 있는데 지친 부하들이 따라주지 않고 다시 돌아가야만 할 때 거기서 목 놓아 울었엇고,또 한 번은 모래사장에서 씨름을 하다가 넘어졌는데 넘어진 그 자리를 보고 울었다고 합니다. 그를 넘어뜨렸던 부하가 대왕이여 왜 우시냐고 물었더니 내가 부하에게 져서 원통하여 운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은 이렇게 큰 나라를 가지고 부귀 권세를 누리지만 나도 죽으면 한 평의 땅속에 묻혀 버리고 말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인생이 얼마나 무상하냐고 하며 울었다는 것입니다.
이 대왕도 아니 천하에 그 어떤 인간이 해결 할 수 없는 죽음의 문제를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부활 하심으로 이 사망을 완전히 정복하신 것입니다.할렐루야!
사망은 죄의 값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해 버리니 자연이 죽음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고전15:55-57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게 역사이래로 얼마나 큰 사건입니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니 이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영생을 얻으리로다.할렐루야!
그러면 사람들이 묻습니다.
예수가 살아났다는 증거를 대라고 하는데 물론 그 증거가 있지요
세계의 역사연호는 예수탄생을 기점으로 하는 B.C.(기원전, Before Christ)와 A.D.(기원후, Anno Domini)를 쓰고 있습니다.예수는 인류의 역사에도, 개인 개인에게도 B.C와 A.D.가 됩니다. 생명과 사망, 소망과 절망, 빛과 어두움, 사랑과 증오의 분수령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의 중심입니다. 왜 이렇게 예수의 죽음이 인류역사 전체의 전환점이 되었는가요? 인류역사상 어떤 위인의 죽음도 역사의 중심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독생자요, 인류의 구세주라고 하는 성경, 몰몬경 등의 계시를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소리없는 웅변이기 때문입니다.
역사(History)는 그 의 이야기(His Story) 즉, 한 사람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는 곳은 어디에서나 기적이 일어나고, 그는 인류사에 최대의 도덕적, 정신적, 종교적 영향을 준 사람입니다. 그를 통해서 노예해방, 남녀평등 등, 어린이 존중, 인간의 존엄성, 인정 등 자유와 사랑과 평화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미국 남북전쟁(南北戰爭) 당시의 장군이요, 문인(文人)이었던 「루 월레스(LewWallace)(1827∼1905) 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명한 장군이고 문학의 천재였다.
그는 무신론자요 회의주의자인 친구 Robert Ingersoll과 함께 기독교(基督敎)의 신화(神話)를 영원히 없애버릴 책을 써서 인류를 그리스도에게 매어 있는 굴레로부터 벗겨주자고 그의 친구 한 사람과 다짐했다. Wallace는 유럽과 미국의 유명한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깊이 연구하여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허위(虛僞)라는 것을 주장하는 책을 쓰기 시작했다.
드디어 책의 \\제1장\\을 쓰고는 \\제2장\\의 첫 페이지를 쓰다가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그는 엎디어 무릎을 꿇고 \\당신은 나의 主,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짖었다. 예수의 신성에 대한 확실성에 더 이상 대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사건이 있은 2주 후 『벤허(Ben Hur)』를 썼다.
이것은 Wallace가 지금까지 쓰여진 예수의 생애를 다룬 저술 가운데 가장 위대한 소설이다. 1880년 이 소설은 출판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고 여러 차례 연극화, 영화화되어 인기를 끌었다.
현대의 허리우드에서도 \\벤허\\와 같은 영화는 다시 제작하기가 힘들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은 그래픽이나 모든 초현대적 영상기술을 동원하기 때문에 기법은 발달했으나 과거 영화제작은 사람들을 그대로 동원하는 등 지금의 영화제작과는 전혀 다르다고 한다.
영화로 만든 벤허는 웅장한 스펙터클, 숨막히는 전차경주, 감동적인 인간애, 찰톤 헤스턴의 명연기, 가히 영화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이라 할 만한 영화이다.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 나심
이 세상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루는 인도에서 스탬리 죤스가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설교 도중에 한 이슬람 사람이 나서서 \\우리는 당신들이 못 가진 것을 가지고 있소. 우리는 메디나에 가면 마호멧의 시체가 담겨있는 관이 있고 또 무덤이 있소, 정말 마호멧이라는 사람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기독교는 예루살렘에 가보시시요. 빈 무덤밖에 없지 않소.\\ 그때 스탬리 죤스 박사는 \\고맙습니다. 당신의 말이 진실인데 그것이 바로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요.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빈 무덤밖에는 없는 것입니다.\\하고 답변을 했습니다.
사망에서 자유함

일상의 생활 가운데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의 전화 뱀이 나타났다는 것
하늘 문이 열리고
생활에 평안이 임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를 위하여 무희데려다가 춤을 추게 햇다는 것아닙니까?

부활이 없는자의 삶은 소망이 없기에 방탕합니다.
옛날 어느 나라에서 부자들이 파티 할 때에 필히 관을 준비하고 그 관속에 인형을 시체대신 수의를 입혀서 눕혀 놓았다가 한창 잔치 분위기가 무르익으면누군가가 그 관뚜껑을 열어 제치고 그 속을 들여다 보게 하면서 “우리도 머지 않아 이렇게 관속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인데 그러기 전에 더 잘 먹고 더 재미있게 놀다 죽읍시다.잔뜩 쌓아만 놓고 먹지도 놀지도 못하다 죽으면 얼마나 원통한가?” 하고 외치면 모두 미친듯이 먹고 마시고 날뛴다고 합니다.
부활을 모르는자들의 춤과 노래와 향연은 미친듯이 날띄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자의 삶과 죽음은 다릅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였던 김활란 박사는 임종할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육체가 떠난다 해도 나를 죽은 사람 취급을 하여 장례식을 하지 말라 . 장례식 대신 세상에서 체험할 수 없었던 풍성한 길로 , 더욱 하려한 승리의 길을 가는 나를 환송해 주는 환송예배를 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거기에 적합한 모든 승리와 영광과 생명의 노래로 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길을 웅장하고 신나는 음악회로 만들기 바란다. ”
그래서 장례식을 ‘할렐루야’ 찬송으로 기쁘게 치렀다고 합니다. 참으로 행복한 죽음을 맞이한 위인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콩트(Auguste Comte)와 영국 시인칼라일(Thomas
Carlyle)이 어느날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철학자 콩트가 의
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기독교를 대신할 수 있는완전한
종교를 창설하기 위해 구상 중에 있습니다. 그 새로운 종교는기독교
가 내세우는 유치한 신비적인 이야기들을 배제할 것이기 때문에완벽
하고 분명한 것이 될 것입니다\\라고.

듣고 있던 칼라일이 대답했습니다. \\새로운 종교를 만든다니 좋은 일
입니다.그러나 그 전에 당신이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에수처럼 당
신도 죽었다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당신이 만
들고자 하는 종교가 생명있는 종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기독교는 부활과 생명을 가진 종교입니다. 그 힘 때문에 2천년동안
기독교가 존재할 수 있었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를 셀 수
없는 신앙의 선배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영국의 로지경 (Oliver J.Lodge)은 영국의 물리학자였고, 버밍엄대학
의 창설자입니다. 그의 아들이 1차대전 당시 전쟁에 나갔다가전사했
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전사하기전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속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습니다.

\\아버님 제가 죽더라도 제 무덤엔 오지 마세요. 전 거기에없을테니
까요.\\

어거스틴(Augustine)의 어머니 모니카도 어느날 아들에게 \\내가 죽거
든 장지 문제로 고민하지 말고 아무데나 묻어주기바란다.나는바로
하나님께로 가게 될테니까\\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떳떳하고 편안합니다. 이유는 죽음
을 넘어선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고대 로마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300년동안 기독교를 박해했습니
다. 그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기독교를 박멸하려 했습니
다.

나병이 만연된 골짜기에 몰아넣기도 했고 사자굴에 던지기도했습니
다. 그런가하면 불속에 던졌고, 칼로 쳤습니다. 그러나결국게임은
기독교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예수가 로마를 이긴 것입니다.

생명은 강합니다. 예수의 부활생명은 오늘 우리 속에서역사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증거이며 웅변입니다.

예수는 다시 사셨습니다. 빈 무덤과 기독교 2천년 역사와 성경과수
많은 증인들이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증인은증
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활신앙을 가진사람들은그
부활을 증거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이유 역시 예수가 누구시며 어떻게 죽으셨으며 다
시 사셨다는 사실을 증언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부활 주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몇가지 감사할조건들을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다시 사신 예수를 믿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습니다.

죽은 신, 대답 못하는 잡신,우상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이 얼마나많
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다시 사신 예수, 무덤이 없는 예수를 믿고있
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둘째, 건전한 교단,건전한 교회에 소속돼 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사이비 교단이나 이단 교히에 소속된 목사나 교인은 불행합니다.그
집단이 잘못되면 교인도 낯을 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셋째, 다시 사신 예수님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이감사했습니다.다시
말하면 죽은 예수를 다시 살아났다고 위증해야 한다면 얼마나고통스
럽겠습니까?그러나 다시 사신 예수를 전하며 사는 것은자랑이아닐
수 없습니다.

넷째, 다시 사신 주님의 보호를 받으며 산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지난 3월 18일 새벽 6시 천호동 제일교회 김인식 목사님이 새벽 기도
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길가 쓰레기 차에서이상한소리가
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압축작업 직전의 청소차 곁으로 다가 갔습니다.분명
신음소리, 울음소리였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쓰레기 봉지 안에서 들
리는 소리였습니다.

미화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함께 비닐 쓰레기 봉지를 개봉하자그
안에 새파랗게 질린 피투성이 신생아가 들어 있었습니다. 한시간 정도
지난 신상아였습니다.

추위와 세균 감염 때문에 생명이 위급했습니다. 교회로 안고 와서 난
로를 피우고 물을 끓여 사모님과 함께 씻기고 응급조치를 취해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 누구가가 무책임하게 버린 생명이 기적적으로살아난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 이름을 (금봉지)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쓰레기 봉지에서 죽었어야 할 핏덩이가 금봉지가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해 줍니다. 핏덩이를 내다
버린 비정이나 타락한 윤리 이야기는 제쳐 두기로 합시다.

만일 그때 그 핏덩이가 본능적인 울음을 터트리지않고신음소리를
내내지 않았더라면 그 생명은 죽음의 봉지 안에서 시체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소리, 그 울음, 그 신음 소리가 살게 해 준 것입니다. 성경은 소리
내어 부르짖고, 찬양하고,하나님을 찾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그 생명이 목사님에게 발견되었다는 것, 그것은 보통 일이 아
닙니다. 그 생명은 자기를 버린 생모에게 양육받고 자라는 것보다더
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야말로 쓰레기 봉지가 금봉지가 된것입
니다.

저는 곰곰히 제 자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이야
말로 나에게는 금봉지를 주신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쓰레기만도 못한 존재, 쓰레기에 묻힌 채 죽어야 할 조인, 죄의 비닐
봉지에 싸여 숨막힌채 질식해 죽어가던 나를 주님은 거기서 건져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주셨고 새이름까지주셨습니다.

그 이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금종지는 김 목사님의 호적에 입양이 됐지만 나는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었고 양자가 되었습니다.

이 기쁘고 감격스러운 뉴스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으시렵니까?
어떤 날 인도의 스테판 닐 주교가 성공회의 켄터베리 대주교에게서
류를 내밀고 도움으로 요청했습니다. 대주교는 한참 동안 서류를 들여
다 보다가 옆으로 밀어 넣으며 이렇게물었싸브니다.\\당신은최근에
마지막으로 누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했습니까\\라고 .

기도를 하고, 찬송을 부르고, 예배를 드리고, 부탁을 드리는우리네
열굴을 찬찬히 들여다 보시면서 주님은 말씀하실 것입니다.

\\최근에 마지막으로 누구에게 나를 전했느냐\\라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교회의 절대 과제입니다. 입
을 엽시다. \\다시 사셨습니다.\\

\\믿어야 다시 삽니다\\라고.

부활을 믿지 못하는자는 죽음을 두려워 하고 싫어 합니다.우리나라는 특히 죽는 것이 얼마나 무서웠든지 죽을 死를 넣어서 인명을 쓰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넉四자도 쓰기 싫어하여 병원이나 호텔도 4층을 쓰지않고F층이라고 써놓았습니다. 이렇게 死자는 가장 싫어하고 꺼려하기 때문에 이 죽음을 막아 보려고 많은 사람이 시도해 보았지만 그러나 번번히 실패했을 뿐 전혀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했어도 병을 다 치료하지 못하고 과학자들이 아무리 많은 것을 발명하고 우주까지 정복 했지만 죽음을 막는 것은 발명하지 못하였습니다.인간은 죽지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오래살려고 서양 사람들은사슴의 눈물을 먹습니다. 왜냐하면 세익스피어의 희곡 “마음내키는대로”를 보면 사슴이 죽을때는 반드시 눈물을 흘리는데 그 눈물을 받아 먹으면 만병이 통치되어 오래 산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 말을 믿고 먹는답니다.
그러나 오래살 수는 있어도 늙는길 막을 수 없습니다 .옛시인 정철은 인생의 허무함을 이렇게 읊었습니다. “한 손에 막대잡고 한 손에 가시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 하였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결국 사람들은 무덤 앞에서 누가 우리를 위하여 이 죽음의 돌문을 열어줄까 하며 울고 있습니다.






























































































































Total 914 건 | 1 / 92 page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