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주의 교회를 위하여 중요한 인사로 부르셨습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85회 작성일 2009-05-27 09:41

본문

고린도전서 12:14-20 당신은 주의 교회를 위하여 중요한 인사로 부르셨습니다.
지난 11일 미국 워싱턴 주 타코마의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 매장에서 일하는 커피 전문가 샌드라 앤더슨이라는 사람과 몇 년째 매일 아침 출근길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주문하는 애너마리 오스니스(55) 사이에 커피 매장이라는 한 공간의 만남을 통하여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 있었습니다.오스니스는 20년째 다낭성 신장질환을 앓아 왔고, 최근 신장 기능이 급격히 떨어져 이식 수술을 해야 살 수가 있는데 가족 중 누구와도 혈액형과 조직이 맞지 않고 신장 이식 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기증자가 나타나기를 언제까지나 기다려야 하는 안타까운 사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커피 전문가 앤더슨은 오스니스의 성도 이름도 몰랐지만 그 사연을 알고서는 평소에 마음이 잘 통한다고 느꼈던 그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던 차에 자신의 신장을 떼 주기로 결심하고 지난 11일 두 사람은 나란히 수술대 위에 올라 신장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하였습니다.
오스니스는 하나님께 천사를 보내 달라고 기도했었는데 그 기도가 이루어졌다면서 평생 몸의 일부를 나눠준 앤더슨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안고 남편과 의논한 끝에 이번에 이식 받은 신장에 장미(rose)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붙였다고 했습니다. 한 커피 전문점에서 한 사람은 손님으로서 그 매장을 이용하면서 몇 년 째 커피 점원에게 기쁨의 웃음을 주는 사람으로 자리 매김을 하였고 그 점원의 하루의 일과에 생기를 심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주는 기쁨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연장 시킬 건강한 신장을 자신에게 웃음을 선사 받은 커피 전문가에게서 선물로 받았습니다.
작은 커피의 매장이었지만 거기에서 두 사람의 만남이 원수가 되지 않고 자신의 신체의 일부분이라도 때어 주어도 아깝지 않는 그런 관계가 이루어 진 역사적인 곳이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사가 되었으며 또 하나의 아름다운 생명을 나누는 공동체의 모습이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나의 모습도 이와 같이 생명을 나누는 아름다운 모습이 날마다 연출되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내 가정 내 사업 그리고 내 이웃 간에서 생명을 연출하는 곳이 되어야 하며 그 주인공은 다른 이가 아닌 내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나 교회 안에서는 더욱 그러하여야 할 것입니다.
서로 다른 이가 모인 곳이지만 이 교회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생명이 연출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생명을 나누는 곳이요 생명을 살리는 곳입니다.
그 비유로 우리의 몸을 예를 들었습니다.
나 자신 키는 얼마 160- 180 아니면 몸무게 50-70 이되는 나를 존재하는데 있어서 몸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몸을 구성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지체를 가지고 있는 것도 부인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장 육부 팔 다리 눈 코 등등 이런 지체가 외부로 들어나든지 그렇지 않든지 내 몸의 생명을 분명히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몸과 지체는 결코 따로 띄어 놓고 생각 할 수가 없는 관계입니다.
14절 몸은 한 지체 뿐 아니라 여럿이니 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합니다.
그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성도들은 교회의 꼭 필요한 지체입니다.
지체는 다 다르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몸을 구성한다는 목적에는 같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한 공동체 교회라는 모습이 갖추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의 한 구성원으로서 나와 다르게 생겼다고 해서 결코 비판의 대상이나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를 수용하고 언제든지 받아 드려야 하는 필수적인 인물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살펴 볼 때에 세상에서 별로 인기가 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기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필요 없다고 하여 배척을 당한 자도 혹시 있을지도 모릅니다.
네 같은 자는 지구를 떠나라 하는 자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회에서는 그 누구도 필요로 하는 인기가 있는 자요 너무나도 소중한 자로 대접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시16:3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에게 있도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게 얼마나 좋고 이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저는 알파를 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 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너무나도 존귀한 자가 될 것인데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불러서 존귀한 자 한번만들어 보려고 얼마나 수고하고 물심으로 투자하는데 부름을 받은 자들은 이해를 못하고 있으니 언제까지 별 볼일 없는 자로 남으려고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서 별 볼일 없는 자들을 불러서 아주 존귀한 자로 만들어 주려고 하는데도 그렇게 싫은 것입니까?
고전1:26-28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육체을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가문이 없는 자 불려서 가문을 세우게 하고, 미련한자 불러서 지혜롭게 하고, 약한 자 불러서 강하게 하고, 천하고 멸시 받는 자 불러서 존귀한 자 되게 하고, 죄인들을 불러 의인 삼아 주시고, 화를 받을 자를 불러 복된 자가 되게 하시게 하시려고 부르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들이 가장 가치 있고 인기 있고 존귀한 자로 세우시려면 예수 안으로 교회 안으로 한 지체가 되도록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가 교회다워 질 수 있음은 누구든지 수용하고 받아 드리고 이 교회에서 꼭 필요한 인물로 없어서는 안 될 한 중요한 멤버로 여기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수용하고 받아 드리는 은혜가 큰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메시지를 봅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가난한자도 오고 병든 자도 오고 죄인들도 오고 어떠한 자도 다 오라고 하십니다.
알파 때에 한번 보십시오
별별 사람들을 다 부르지 않습니까?
교회는 이런 곳입니다.
죄인을 불러 의인을 만들고 가난한자 불러 부유케 하고 불만에 가득한 자를 불러 만족하게 하고 죽게 생긴 자를 불러 생명을 주고 지옥 갈 사람을 천국 시민권을 주는 곳입니다
어떤 이는 되고 어떤 이는 안 되고 가 아닙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통하여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특성도 그러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수용하고 받아 드리는 것입니다.
사실 내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은 이 세상에 어디도 없습니다.
제 아무리 혈육의 관계가 결속력이 있다고 하지만 혈육이라는 조건만 가지고도 서로와 서로가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는 놀랍게도 원수까지도 화해가 되는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여순 반란 사건 때에 미국으로 유학 보내려면 두 아들이 폭도들에게 붙잡혀 무참히 살해를 당했습니다.
철전지 대대로 원수요 그 한을 풀 수도 없고 복수를 하고야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들을 죽인 공산 폭도를 여수 경찰서에서 처형 당 할 자를 구해서 자신의 양아들을 삼았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이루어 질 수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예수 안에서 한 몸이라는 우리는 지체라는 한 공동체라는 개념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일입니다.
내 몸의 지체를 예를 들어 봅시다
가끔 딱딱한 내 이빨이 음식물을 먹다가 부드럽고 부드러운 죄도 없는 열심히 일하는 입술을 깨무든지 혀 바닥을 깨물 때가 있습니다.
저에게도 종종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럴 때 어떠합니까?
내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나고 음식물을 먹으면 그 자리가 따갑고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그리고 어떨 때는 몇날 며칠 얼마나 오래 가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나를 깨 물은 이빨을 망치로 두드려 부셔버리고 펜치로 뽑아 버리지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내 입술을 물고 혓바닥을 물어 피가 나게 했지만 제발 이빨아 썩지 말고 내가 죽을 때까지 더욱 강하고 더욱 잘 씹어다오 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 만큼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분은 예수 안에서는 무엇이든지 용납이 되고 이해가 되고 수용이 되어 집니다.
일흔 번씩 일흔 번이라고 용서해 주고 죽기까지 사랑해 주고 모든 일에 부족함이 없도록 해 주는 것이 교회안 예수 안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 그렇다면 나는 어떠합니까?
교회 안에 있는 자입니까?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것이 그렇게 귀한 자 인 줄로 아십니까?
내가 교회 안에 있음은 예수 안이요 믿음으로 산다고 표현 할 수가 있습니다.
믿음이 귀한 줄 안다면 믿음을 자랑하고 믿음으로 살아 갈 것입니다.
자꾸 믿음에서 떠난 생활 교회 생활과 멀어진 생활은 나를 얼마나 천하게 만드는지를 아셔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자는 어떻게 때문에 존귀한자가 됩니까?
자신이 보호만 받고 축복만 받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다른 지체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교회 일을 보십시오
교역자는 직업적으로 하나님이 불러 주셨으니 어찌 할 수없이 주의 일을 한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만은 그러나 성도들은 직업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때때로 성도들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면서 생각을 합니다.
대접을 하는 성도들이 얼마나 복이 될까?
그렇게 하는 것이 너무나도 부러 울 때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일을 봅시다.
자기를 위한 일이 아니고 다 다른 지체를 위하는 일이 아닙니까?
물질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그리고 자신의 몸과 재능을 드리고 해서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사용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어제도 오늘 점심 양식을 위하여 식사를 준비합니다.
물론 알파는 더 말 할 필요 없고요
그 외에도 헌금도 등등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할 수 있으니 존귀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나를 위하여 살아도 부족하다고 아우성을 치는데 나를 위하여 아닌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자신을 드리는 것이기에 성도는 존귀한 것입니다.
내 몸에 있는 지체는 다 다른 지체를 위하여 내 몸을 위하여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 내 몸에 지체가 하나도 귀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18절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다고 했습니다.
내가 주의 교회에 부르심을 받는 것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주를 위하는데 내 가치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맛을 바랜 소금은 그 순간부터 가치가 상실되어 버릴 것입니다.
불을 켜서 등경아래 두면 그 빛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나귀라도 주를 위하여 사용된다면 귀한 존재가 됩니다.
왕이라도 자신만을 위하여 산다면 가장 천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교회 안에서 모두가 존귀한 자인 줄을 아시고 서로가 잘 조화를 이루는 자가 가장 귀한 자입니다.
모든 이들이 다 자신의 특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몸의 지체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대로 충성스럽게 봉사할 것뿐입니다.
이 모든 지체들은 모두 필요하고 모두 귀합니다. 그러므로 다 같이 서로 존경하고, 서로 아끼며, 서로 높여야합니다.
몸의 지체 가운데 보이는 지체도 있고 보이지 아니하는 지체도 있습니다.
눈과 귀는 보입니다. 손과 발도 보입니다. 그러나 심장과 폐장은 보이지 않습니다. 위도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이 보이지 않는 지체들이 몸을 위하여 더 큰 역할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도 어떤 이들은 남이 보는 데서 봉사를 합니다. 가르친다든지 찬양을 한다든지 하는 일은 자연히 남이 보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보이지 않은 가운데서 봉사를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교회를 위하여 조용히 기도하는 이들, 개인으로 전도하는 이들, 환자를 위문하는 이들, 심방 하는 이들. 은밀히 헌금하는 이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히 봉사하고 구제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교회는 남이 알게 일하는 이들도 많아야 하겠지만 남이 모른 가운데 봉사하는 이들이 많을 때 더욱 성장합니다.
결국 몸이 산다는 것은 지체가 사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한 다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을 위한 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교회를 위하지 못함은 결국은 자신을 가장 천하게 만드는 꼴이 됩니다.
사도 요한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로마 제국의 총독이 황제에게 편지를 쓰기를 그리스도인들은 새벽에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합니다. 나사렛의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그에게 경배하는데, 이 사람들은 얼마나서로 사랑하는지 자기 친형제 이상으로 사랑합니다. 이상한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특징입니다.
우리 모두 존귀한 자로 부름을 받음에 합한 자로 존귀하게 사용되시기 바랍니다.
그 존귀한 삶이 교회를 부흥케 하고 다른 이를 살리고 그 결과 내 자신이 사는 축복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Total 914 건 | 1 / 92 page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