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마음에 합한 자를 세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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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57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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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21-23 하나님은 마음에 합한 자를 세우십니다.
어떤 부족의 추장에게 세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나이가 들어 자신의 추장 자리를 그의 세 아들 중 하나에게 물려주기로 하고 고심 하던 중 어느 날 세 아들을 데리고 아들의 의중을 살피기 위하여 사냥을 하러 나갔습니다. 한참 사냥거리를 찾고 있는데 큰 나무에 앉아있는 독수리 한 마리가 추장의 눈에 띄었습니다. 그것을 본 추장은 먼저 큰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저 앞에 무엇이 보이느냐? 라고 물으니 큰아들이 그 앞을 힐끔 쳐다보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아버지! 저 앞에 큰 나무가 있고 그 나무 위로 푸른 하늘이 보이는군요. 그 대답을 들은 추장의 얼굴에는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습니다. 아버지의 의도하고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니 예, 저는 큰 나무와 그 나무 위에 독수리가 앉아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러고는 더 이상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자 둘째 아들의 행동 역시 그 아버지를 만족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전혀 감을 잡고 있지를 못했습니다. 추장은 마지막으로 막내아들에게도 똑같이 물었더니 제게는 두 날개로 가슴을 감싸고 앉아 있는 독수리 한 마리가 보입니다. 그러더니 그 막내아들은 곧 활을 들어 그 독수리의 가슴을 명중시켜 그 독수리를 떨어뜨렸습니다. 그것을 본 추장은 자신의 마음에 원하는 바를 막내아들이 그대로 행함을 보고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추장은 마을로 돌아와서는 자신의 추장의 자리를 당연히 막내아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세상에서의 비견한 한 예에 지나지 않지만은 우리 하나님에게 사용되는 사람도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입니다. 할렐루야!
22절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다윗이 마음에 드셨기에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하시는 바를 다윗을 통하여 다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도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들어 함께 일을 해보고 싶고 자신의 일을 맡기고 싶어서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으시듯이 하나님도 찾으시고 계십니다.
이 집사일까? 김 집사일까? 아니면 비록 예수님에 대하여 늦게 알고 초신 자라 할지라도 주님은 관심을 누구에게나 가지고 계십니다.
시편14:2-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사실 하나님이 인생을 보시고 기뻐하시기 보다는 실망하시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를 통하여 사랑하는 성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귀한 일을 이루시기를 고대하며 여기 모두가 한 사람도 낙오되는 자가 없이 다 사용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똑 같이 하나님께 사용되기를 원하십니다.
한 사람도 멸망을 원치 않으시고 다 구원을 얻으시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울에게도 잔뜩 기대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40년간이나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 40년의 세월이 다 가도록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에게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인가 내일 인가 하시며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내가 이 나이 먹도록 까지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폐하였다고 하니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울을 잘라 버렸다고 생각을 하시는데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은 사울이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기회를 버렸다는 것입니다.
사실 내 자신을 한번 살펴보십시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죄를 짓게 만들고 악하게 만들고 이기적인 인물로 만들고 고집불통으로 만들고 노름꾼으로 만들고 사기꾼으로 만들고 술주정뱅이로 만들고 가정파탄을 만들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 때문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그렇게 만들어 오고 있었던 것 아닙니까?
모세 당시 이집트의 파라오 왕이 마음이 왜 그렇게 강퍅하였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파라오 스스로 그 완악한 마음을 바로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주어도 고쳐먹지 않고 있으니 그 원래의 마음을 그대로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사용되어 질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기회를 스스로 버리는 자였습니다.
성질 그대로 성격 그대로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오늘 우리 가운데 그래 너 성질대로 살아라 하고 그대로 두신 자가 없으시기 바랍니다.
사울 왕은 40년 동안 오로지 그 왕권 그 재산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는 없었습니다.
왜요?
자신에게 왕의 자리에 있게 했으며 왜 자신의 현재에 주어진 것이 무엇을 위하여 있어야 할 줄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을 위하였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것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40년 아무런 의미가 없고 차라리 왕의 자리가 주어지지 않았음이 자신에 더 유익 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은전 30냥에 팔아먹은 가륫인 유다는 차라리 나지 않았더라면 좋을 번 하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내 위치가 바로 하나님께 사용될 시기라고 생각이 되어 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자꾸만 아직도 내가 나설 때가 아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왜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을까요?
끊임없이 내가 무엇을 위하여 있으며 나를 기회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말로 내가 나설 때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나 주를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새벽에도 다윗은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할 수없는 자이었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 왕을 피신하여 다니는 그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그일라 사람들을 위하여 블레셋과의 전쟁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이 나서는 것입니다.
그의 소년기에도 항상 그러했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그 누구도 내가 나설 때가 아니라고 사울 왕을 위시하여 이스라엘의 장군들과 그리고 다윗의 형들까지도 아직은 아니라고 하는데 위문을 온 어린 다윗이 그러면 내가 나서지 하고 자신의 기회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고자 하는 자를 받으시고 그를 붙잡고 사용하십니다.
하나님 앞에는 할 수 없다 못하겠다는 것이 없습니다.
하고 못하고는 자신이 하나님의 향한 열정입니다. 여호와를 위한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
우리나라가 촛불시위 아니 축제라고 하던데 이런 행동을 정부의 잘못을 들추어 하듯이 일본시대에 일본에 그렇게 행하였다면 미국의 손에 의해 독립을 얻지 않고 조선인 손으로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손으로는 나라를 팔아먹고 미국의 손으로 해방이 되지 않았습니까?
36년간 일본에게 있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남북한이 양분도 되지 않았을 것이며 벌써 통일이 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촛불축제같이 이렇게 하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나라와 답답함을 보고 한마디 한 것뿐입니다 만은 의분을 가지고 그 뜻을 표출하는 이런 정신은 귀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을 어디에다가 쏟는가가 문제이지요.
아무도 의분을 골리앗을 향해서는 쏟지를 않습니다.
무엇이 잘못되고 무엇이 옳고 이래라 저래라는 잘도 하지만 골리앗에게는 아무도 안 나서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먹을 것이 없느냐? 너희들이 주라고 하는데 아무도 안 나서는데
나설만한 어른은 안 나서는데 아직도 나서야 할 때가 아닌 것 같은 아이가 나섰습니다.
제 먹기도 부족한 제 도시락을 내어 놓은 것입니다.
나는 예수 믿은 지 아직 얼마 안 되기 때문이다 혹은 능력 있는 집사님이 하시겠지 가 아닙니다.
이제 내가 일어 설 때입니다.
사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은 바로 나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빛을 드러내게 하시고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실 것입니다.
옆 사람보지 마십시오 다른 이가 할 것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는 것입니다.
다른 이 보고 하라고 하지 마십시오 내가 내보고 내가 하라고 하십시오
15세기 중엽 영국과 프랑스가 100년 전쟁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이 때 자기의 일에 성실한 농부의 딸로 부모를돕고 있는 잔 다르크란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때 나이 겨우13살이었습니다.프랑스가 내란의 위기에 놓여 있었을때였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나라를 구하라. 두 번째 음성을 듣고는 일어나 어린 처녀의 몸으로 당시에 영국군에게 포위된 오클레앙성을 구원하였습니다. 남자나 장군도 할 수 없는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17세기 영국의 크롬웰 장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단순히청교도 출신의 농부였습니다. 본래 미국으로 이민을 갈려고하였으나 너희 나라를 구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는 마침내 왕당파를 물리치고 공화제 정권을 수립하고 당시 세계를 지배했던 스페인을 무찌르고영국을 세계 제일의 나라로 만든 사람입니다.
주의 일에 언제든지 내가 하겠다고 하면 됩니다.
왜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들 수가 있습니까? 회개의 기회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그러나 죄인임을 감추는 자가 있고 죄를 회개하는 자가 있습니다.
사울은 죽어도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기회를 만드는 자입니다.
다윗이 내가 하겠습니다고 할 수 있음은 그의 회개 마음이 이 일을 하게 한 것입니다.
무명의 선지자 나단이 다윗에게 와서 죄를 깨우쳐 주고 책망할 때 그는 체면이나 위신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즉시 하나님 앞에 애통하며 철저한 회개를 했습니다.
그는 그 일로 말미암아 그 후에 고통을 많이 당할 때에도 자기의 죄 값이라고 겸손히 회개했습니다.
모든 부족을 내게 돌리는 것이 큰 회개이요 큰 능력이요 큰 축복입니다.
어찌 모든 잘못을 다른 이에게만 열심히 돌리고 있습니까?
내 자신을 보십시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다 다른 이유 때문이야 다른 사람 때문이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게 큰 문제입니다.
사울은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은 다 다윗 때문이라고 하며 다윗을 죽이려고 온 힘을 다하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내가 하나님께 범죄를 하였나이다
다 내 죄입니다. 할렐루야!
나라가 이렇게 된 것 대통령이 아니라 정부가 아니라 다 내게 있습니다고 해야 합니다.
미얀마 폭우 중국 스챤성 지진 다 내 때문입니다.
아무개 성도 어려움 당하고 아파하고 있는 것 다 내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성도들 잘못되는 것 전부 김 목사 때문입니다.
내가 날마다 돌봐주고 최선을 다하고 사랑하고 관심을 가지고 위하여 울면서 기도하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 다 하지를 못하는 제게 있습니다.
여러분은 잘못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실입니다.
김장로님 임장로님 어려움 당하는 것 사실 다 제 때문입니다. 제가 하나님께 회개 할 문제입니다.
다윗은 아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도, 후궁들이 욕을 본 것도, 시므이가 자신을 저주하고 욕하는 것도, 모두 자기가 범한 죄의 값으로 마땅히 받을 것을 받는다고 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채찍으로 생각하고 겸손히 회개했습니다. 후에 그 밧새바의 몸에서 낳은 귀여운 아들이 죽었을 때에도 하나님이나 어느 사람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히 회개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다윗은 이렇게 회개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유명한 사무엘 같은 선지자가 간곡히 말하는데도 고집을 부리고 죽어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자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일꾼이 되도록 날마다 현재의 맡은 일에 열심을 다하고, 자신을 정결하게 준비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최선을 다하지 않고 준비도 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큰 집에 많은 그릇이 있지만 주인이 쓰시는 그릇은 깨끗이 준비된 그릇을 쓰는 것입니다.
내 금 그릇이 아닐망정 천하게 쓰는 토기라고 하여도 깨끗하면 그 그릇에 물을 담아 사람이 마시는 것입니다.
금 그릇이라 할지라도 똥이 묻어 있으면 씻기 전에는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엔 달란트 비유에서 복 받은 두 사람은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이요 저주 받은 한 사람은 구변 좋고, 논리 정연한 똑똑한 사람이지만 자기 맡은 일을 다 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둔하고 어리석어 보여도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이상으로 값진 인생은 없는 것이다.
자기 맡은 일에 부지런히 할 필요 없고 적당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일을 해봐야 별것 없다고 말하는 사람, 주의 일 한다고 무슨 뾰쪽한 수가 있느냐고 빈정거리는 사람, 언뜻 보면 똑똑하고 합리적인사람으로 보일지는 모르나 자기 자신을 근본적으로 망치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유명한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채플이라는 교회당의 천정 벽화를 손수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 천정은 까마득히 높았기 때문에 그 아래에서는 사실 천정의 모습이 한 눈에 정확하게 파악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이 천정의 벽에 가까이 붙어서 선하나 하나를 정성을 다해서 그리고 있었습니다.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친구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보게, 여기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네, 그냥 적당히 해두고내려오게나.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천정에서 그 친구를 향해서 이렇게 소리쳤습니다.여보게,이 그림을 다 그린 후에 이 그림의 성과가 어느 정도인가를 제일 잘 아는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그야 자네겠지. 맞네. 내가 알고 하나님이 아시는 한 나는 최선 이하로 일할 수는 없네.
자기의 삶은 자기가 제일 잘 압니다. 자기의 삶에 얼마만큼 최선을 다했는지, 주어진 시간 속에서 주어진 과제를 위해 얼마만큼 최선을다했는지 자신이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십니다.
적당하게 인생을 사시려는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적당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은 최선만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하나님이 세워 사용하시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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