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보아야 할 로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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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45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사도행전 19 : 21 당신이 보아야 할 로마는
저는 지난 2주간 사도 바울의 전도 여정을 따라 터어키 그리스를 거쳐 이태리 로마까지 다녀왔습니다.
거의 인천 공항을 떠난 지 만 하루가 가까이 되어 터어키의 수도 이스탐풀에 호텔에 투숙 할 수가 있었습니다. 러시아 항공이 인천 공항에서부터 출발지연이 3-4시간이 되고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그 다음날 새벽 같이 일어나 보스포러스해협에서 선상 도착 예배가 있었습니다. 마침 제가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묵상하는 가운데 오늘 본문을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사실 저희들의 여행도 사도 바울의 선교 여정을 따라 로마까지입니다.
이스탐블의 도시를 형성하고 있는 보스포러스 해협은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고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중요한 교통지리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참으로 은혜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고 과연 사도 바울이 어떤 심정을 가지고 로마로 가게 되었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희들은 비행기를 타고 훼리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로마로 가지만 바울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걸어서 그리고 불편한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갔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주 안전하게 보험도 들어가면서 갔지만 바울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갔을 것입니다.
우리는 때를 따라서 주는 일용한 양식을 먹고 공급되는 물을 마시며 갔지만 바울은 굶주려 가면서 목말라 하면서 갔습니다.
그렇게 위협하고 힘든 여정의 길을 왜? 바울이 로마로 가야만 한다고 하였을까요?
저희들도 최대한 편리하게 며칠 만에 다녀왔지만 죽을 고생을 하고 왔는데 바울은 그렇게 힘든 여정을 왜 가려고 하였을 까요?
분명한 목적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당시의 최고의 권력이요 최고의 문화요 최고의 경제요 최고의 시민들이 기거하고 인간 최대의 자랑인 곳입니다.
그러면 한편으로는 극히 인간적이요 세상적인 곳이어서 장차 멸망을 당 할 한 성읍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로마를 향하여 간 것은 세상의 최고를 누리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에게 진정한 생명을 전하고 구원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는 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야 하는 세상입니다.
바울이 이 로마를 향하여 나아갔듯이 내가 향하여 나아 갈 로마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로마는 내 가족이요 내 가정이요 내 친족이요 그리고 내가 속한 삶의 현장이 되기도 합니다.
바울이 로마를 보아야 함은 그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나타내었습니다.
내 속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으며 심지어는 내 몸이 그리스도의 처소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나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생각하는 것도 그리스도의 생각으로 말하는 것도 그리스도 하시는 것같이 심장은 예수의 심장을 가지고 로마를 향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갓난아이일 때는 자기 자신만 봅니다.
언제든지 울고 있고 자기만족을 위하여 본능적으로만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만 그들의 삶의 주제입니다.
아마 우리 가운데는 이런 것만 생각하다가 평생을 보내는 이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린 아이가 자라면서 점차 부모도 보이고 형제자매도 보입니다.
학교에 가면 친구도 보이고 선생님도 보입니다. 그러다가 국가도 보이고 세계도 보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자신이 아는 세계가 전부인 것처럼 살았습니다.
베냐민 지파이니 이스라엘의 초대 왕족의 가문 출신에다, 율법으로는 흠이 없다고 생각한 바리세인이었으며, 당대 최고의 학문을 자랑하는 가말리엘의 하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의 눈이 열렸습니다.
예수가 바로 우리의 구주시고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도 그러하신가요?
나만 알고 살아 왔다가 나 밖에 모르고 살아 왔다가 이제 예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였습니까?
그러면 당연히 이런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신 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로마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바라보게 되었으니 로마도 가야 하리라는 굳은 의지를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자가 당연히 세상을 향하여 그리스도를 전하여야 갰다는 의지를 품은 것은 당연한 일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자는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합니다.
바울은 바뀌었습니다. 포악하고 살기가 등등하고 자기의 의에 충실한 자가 바꿔 버렸습니다.
그 후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 교회를 섬기다가 1차 선교여행, 2차 선교여행, 그리고 에베소에서의 3차 선교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고 오늘의 고백과 같이 이제는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고 새로운 선교의 계획이 서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성지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모스코바 공항에서 몇 시간 기다리는 동안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고려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남녀를 만났는데 그들은 한 사람은 목사님이었고 한 여인은 교수였습니다.
그 여인은 18년 전에 러시아에서 러시아 인을 통하여 복을 듣고 그 때부터 신학을 공부하고 지금도 오스트리아 빈에서 2주간 신학 세미나를 마치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89년에 축구 선수로 한국 롯데 호텔에 투숙했다가 러시아 성경을 선물 받고 러시아에 와서는 그것을 팔아먹었는데 그 후 1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목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지금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모든 선교사들이 다 추방을 당하고 교회들은 지하로 숨어들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발각이 되면 감옥에서 형을 받게 되는데 개의치 않고 우즈베키스탄 인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야 이 복음은 결코 멈춤이 없이 로마로 로마로 가고 있구나를 생각 할 적에 얼마나 놀라운 일이며 나로 흥분되게 하는 일입니다.
스스로 자생력을 가지고 복음은 온 세상을 파고들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희생시키시고 인류의 구원을 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입니다.
고후5:4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는도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졌기에 로마도 보아야만 하였습니다.
인간적인 말똥말똥한 정신을 가지고 무슨 복음을 전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복음의 방해자가 될 뿐입니다.
또한 바울이 로마를 보아야 한다고 함은 그의 사명감입니다.
로마는 당대 세계의 중심지였습니다.
세계 중심지인 로마를 보고자 하는 그의 마음은 세계를 향한 복음의 전초기지로 삼으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통해서 많은 매도 맞고 반대 세력에도 부딪혔으며, 감옥에도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복음 전하여야 하는 사명감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흔히들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 종류의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survival life).
일도 공부도 먹고 살기 위해서 합니다. 여기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삶의 무거운 짐만이 있을 것입니다.
둘째는 성공하기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successful life).
이런 사람들은 사업도, 공부도, 심지어는 목회도 성공하기 위해서 합니다.
여기에는 언제나 남을 이겨야 하는 경쟁심이 있습니다.
남을 사랑과 신뢰로 만나지 않고 경쟁과 의심으로 만납니다. 언제나 긴장과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셋째는 의미 있는 삶입니다(significant life).
이 삶은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서 나의 인생의 보람과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코 삶이 짐이 아니라 즐거움이요 평강이요 생명입니다.
인생은 목적이 아닙니다. 목적을 이루어 가는 과정입니다.
나그네라는 말이 딱 들어맞습니다.
로마라는 여행의 목적을 가지고 바울의 간 여정을 따라 가는 동안 느끼는 것이 있었습니다.
결코 어떤 것에도 머무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종착지인 로마에 입성하여 다른 곳에 출발하기위하여 이틀을 머문 것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한 곳에 머물러 있었던 곳은 없습니다.
12박을 하는 동안 비행기 의자에 않아서 이틀을 방앗간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는 배에서 하루 그리고 호텔에서 9일을 숙박을 했습니다.
항상 떠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가방을 온전히 푸는 적이 없습니다.
잠을 잘 때는 내일 일찍 떠나기 위해 가방을 싸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밤과 낮이 따로 없습니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우리는 한 낮을 살고 있지만 반대편에는 한 낮을 살고 있고요 우리가 한 밤을 보내는 동안 또 다른 한 곳에는 열심히 주어진 삶을 사는 한 낮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어떤 먹는 것이나 자는 것에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눈을 감는 곳이 숙박지요 현지에서 먹는 것이 식사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아침이다 이것이 점심이다 이것이 저녁이다가 없습니다.
먹을 것이 있을 때 먹는 것이 식사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사로운 것에 매여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요? 목적지를 향하여 계속 떠나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로마라는 목적지를 향하여 말입니다.
저는 여행을 하면서 배운 점이 있습니다.
여행 목적을 위하여 시간을 이용할 수 있고 어떤 것도 먹을 수 있고 어떤 곳에도 잘 수 있고 어떤 사람과도 교제를 할 수 있고 어떤 환경도 극복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내 몸에 목적을 위하여 자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에 부름을 받는 사람은 그 어떤 것에도 메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사명감이 나를 이끌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열심히 나를 삼킬 뿐입니다.
빌4:11-12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리스도를 만난 자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어떤 핑계도 더 이상 어떤 이유도 있을 수가 없는 줄로 믿습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있는 자 인 줄로 믿습니까?
바울이 로마를 어떻게 보았습니까? 로마를 위하여 자신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내 모든 것을 투자 하여야 할 대상으로
바울은 로마를 지나 서바나 지금의 스페인 땅까지 나아가려고 하였지만 마지막 선교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이방인의 사도가 된다는 비전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고, 그리고 나서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 동안 훈련을 받았고, 다소에서 상당 기간 동안 기다린 이후에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1차 선교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2차 선교여행을 다녀온 이후에 지금은 3차 선교여행중입니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에베소교회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그의 전도로 말미암아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 이후에 바울이 가진 꿈이 다음 행선지로의 여행계획과 로마에 전도계획인 것입니다.
바울은 그냥 대충 대충 자신의 비전을 실천하지 않고, 각 단계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착실하게 해가면서 그의 비전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9:21을 보면, 이 일이 다된 후에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말씀에 이어서 나오는 말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서 예루살렘에 간 후에 로마를 방문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의 전도 여행 중에 다음 단계의 일을 계획하고, 행동에 옮기는 하나의 기준이 바로 지금 하던 일을 다 한 후, 다 마친 후라는 것입니다.
눈은 로마를 바라보고, 발은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돌아다니는 삶, 이것이 바로 비전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마게도냐에서, 예루살렘에서 정말 치열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의 꿈은 하루라도 빨리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만, 그는 마치 로마에 전혀 가지 않을 사람처럼 지금 그가 있는 곳에서 그의 모든 것을 다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고, 재판을 당하기도 하고, 온갖 수난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 로마에 가서 열심히 복음전할께요. 지금은 좀 봐주세요라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받지 않는 것이요 결코 큰일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반드시 해야 하겠다는 소원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이루고 싶은 소원, 여러분에게 그런 소원은 무엇입니까? 영어단어 MUST로 표현되어야만 하는 그 소원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바울에게도 그런 소원이 있었습니다. 바울에게도 MUST로 표현되는 반드시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로마를 위하여 죽는 길입니다.
저는 바울의 순교 기념 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거꾸로 십자가형을 당하고 죽었습니다.
반면에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졌기에단두대에 도끼로 목이 잘리는 형을 받았습니다.
그 머리가 3번을 튕겨 나아갔는데 그 곳 마다 물이 쏟아 났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바울이 가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의 결단이 남았습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말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인생을 가장 잘사는 길이요 행복한 삶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난 2주간 사도 바울의 전도 여정을 따라 터어키 그리스를 거쳐 이태리 로마까지 다녀왔습니다.
거의 인천 공항을 떠난 지 만 하루가 가까이 되어 터어키의 수도 이스탐풀에 호텔에 투숙 할 수가 있었습니다. 러시아 항공이 인천 공항에서부터 출발지연이 3-4시간이 되고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그 다음날 새벽 같이 일어나 보스포러스해협에서 선상 도착 예배가 있었습니다. 마침 제가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묵상하는 가운데 오늘 본문을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사실 저희들의 여행도 사도 바울의 선교 여정을 따라 로마까지입니다.
이스탐블의 도시를 형성하고 있는 보스포러스 해협은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고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중요한 교통지리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참으로 은혜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고 과연 사도 바울이 어떤 심정을 가지고 로마로 가게 되었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희들은 비행기를 타고 훼리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로마로 가지만 바울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걸어서 그리고 불편한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갔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주 안전하게 보험도 들어가면서 갔지만 바울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갔을 것입니다.
우리는 때를 따라서 주는 일용한 양식을 먹고 공급되는 물을 마시며 갔지만 바울은 굶주려 가면서 목말라 하면서 갔습니다.
그렇게 위협하고 힘든 여정의 길을 왜? 바울이 로마로 가야만 한다고 하였을까요?
저희들도 최대한 편리하게 며칠 만에 다녀왔지만 죽을 고생을 하고 왔는데 바울은 그렇게 힘든 여정을 왜 가려고 하였을 까요?
분명한 목적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당시의 최고의 권력이요 최고의 문화요 최고의 경제요 최고의 시민들이 기거하고 인간 최대의 자랑인 곳입니다.
그러면 한편으로는 극히 인간적이요 세상적인 곳이어서 장차 멸망을 당 할 한 성읍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로마를 향하여 간 것은 세상의 최고를 누리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에게 진정한 생명을 전하고 구원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는 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야 하는 세상입니다.
바울이 이 로마를 향하여 나아갔듯이 내가 향하여 나아 갈 로마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로마는 내 가족이요 내 가정이요 내 친족이요 그리고 내가 속한 삶의 현장이 되기도 합니다.
바울이 로마를 보아야 함은 그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나타내었습니다.
내 속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으며 심지어는 내 몸이 그리스도의 처소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나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생각하는 것도 그리스도의 생각으로 말하는 것도 그리스도 하시는 것같이 심장은 예수의 심장을 가지고 로마를 향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갓난아이일 때는 자기 자신만 봅니다.
언제든지 울고 있고 자기만족을 위하여 본능적으로만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만 그들의 삶의 주제입니다.
아마 우리 가운데는 이런 것만 생각하다가 평생을 보내는 이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린 아이가 자라면서 점차 부모도 보이고 형제자매도 보입니다.
학교에 가면 친구도 보이고 선생님도 보입니다. 그러다가 국가도 보이고 세계도 보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자신이 아는 세계가 전부인 것처럼 살았습니다.
베냐민 지파이니 이스라엘의 초대 왕족의 가문 출신에다, 율법으로는 흠이 없다고 생각한 바리세인이었으며, 당대 최고의 학문을 자랑하는 가말리엘의 하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의 눈이 열렸습니다.
예수가 바로 우리의 구주시고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도 그러하신가요?
나만 알고 살아 왔다가 나 밖에 모르고 살아 왔다가 이제 예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였습니까?
그러면 당연히 이런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신 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로마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바라보게 되었으니 로마도 가야 하리라는 굳은 의지를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자가 당연히 세상을 향하여 그리스도를 전하여야 갰다는 의지를 품은 것은 당연한 일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자는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합니다.
바울은 바뀌었습니다. 포악하고 살기가 등등하고 자기의 의에 충실한 자가 바꿔 버렸습니다.
그 후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 교회를 섬기다가 1차 선교여행, 2차 선교여행, 그리고 에베소에서의 3차 선교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고 오늘의 고백과 같이 이제는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고 새로운 선교의 계획이 서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성지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모스코바 공항에서 몇 시간 기다리는 동안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고려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남녀를 만났는데 그들은 한 사람은 목사님이었고 한 여인은 교수였습니다.
그 여인은 18년 전에 러시아에서 러시아 인을 통하여 복을 듣고 그 때부터 신학을 공부하고 지금도 오스트리아 빈에서 2주간 신학 세미나를 마치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89년에 축구 선수로 한국 롯데 호텔에 투숙했다가 러시아 성경을 선물 받고 러시아에 와서는 그것을 팔아먹었는데 그 후 1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목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지금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모든 선교사들이 다 추방을 당하고 교회들은 지하로 숨어들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발각이 되면 감옥에서 형을 받게 되는데 개의치 않고 우즈베키스탄 인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야 이 복음은 결코 멈춤이 없이 로마로 로마로 가고 있구나를 생각 할 적에 얼마나 놀라운 일이며 나로 흥분되게 하는 일입니다.
스스로 자생력을 가지고 복음은 온 세상을 파고들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희생시키시고 인류의 구원을 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입니다.
고후5:4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는도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졌기에 로마도 보아야만 하였습니다.
인간적인 말똥말똥한 정신을 가지고 무슨 복음을 전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복음의 방해자가 될 뿐입니다.
또한 바울이 로마를 보아야 한다고 함은 그의 사명감입니다.
로마는 당대 세계의 중심지였습니다.
세계 중심지인 로마를 보고자 하는 그의 마음은 세계를 향한 복음의 전초기지로 삼으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통해서 많은 매도 맞고 반대 세력에도 부딪혔으며, 감옥에도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복음 전하여야 하는 사명감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흔히들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 종류의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survival life).
일도 공부도 먹고 살기 위해서 합니다. 여기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삶의 무거운 짐만이 있을 것입니다.
둘째는 성공하기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successful life).
이런 사람들은 사업도, 공부도, 심지어는 목회도 성공하기 위해서 합니다.
여기에는 언제나 남을 이겨야 하는 경쟁심이 있습니다.
남을 사랑과 신뢰로 만나지 않고 경쟁과 의심으로 만납니다. 언제나 긴장과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셋째는 의미 있는 삶입니다(significant life).
이 삶은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서 나의 인생의 보람과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코 삶이 짐이 아니라 즐거움이요 평강이요 생명입니다.
인생은 목적이 아닙니다. 목적을 이루어 가는 과정입니다.
나그네라는 말이 딱 들어맞습니다.
로마라는 여행의 목적을 가지고 바울의 간 여정을 따라 가는 동안 느끼는 것이 있었습니다.
결코 어떤 것에도 머무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종착지인 로마에 입성하여 다른 곳에 출발하기위하여 이틀을 머문 것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한 곳에 머물러 있었던 곳은 없습니다.
12박을 하는 동안 비행기 의자에 않아서 이틀을 방앗간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는 배에서 하루 그리고 호텔에서 9일을 숙박을 했습니다.
항상 떠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가방을 온전히 푸는 적이 없습니다.
잠을 잘 때는 내일 일찍 떠나기 위해 가방을 싸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밤과 낮이 따로 없습니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우리는 한 낮을 살고 있지만 반대편에는 한 낮을 살고 있고요 우리가 한 밤을 보내는 동안 또 다른 한 곳에는 열심히 주어진 삶을 사는 한 낮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어떤 먹는 것이나 자는 것에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눈을 감는 곳이 숙박지요 현지에서 먹는 것이 식사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아침이다 이것이 점심이다 이것이 저녁이다가 없습니다.
먹을 것이 있을 때 먹는 것이 식사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사로운 것에 매여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요? 목적지를 향하여 계속 떠나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로마라는 목적지를 향하여 말입니다.
저는 여행을 하면서 배운 점이 있습니다.
여행 목적을 위하여 시간을 이용할 수 있고 어떤 것도 먹을 수 있고 어떤 곳에도 잘 수 있고 어떤 사람과도 교제를 할 수 있고 어떤 환경도 극복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내 몸에 목적을 위하여 자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에 부름을 받는 사람은 그 어떤 것에도 메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사명감이 나를 이끌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열심히 나를 삼킬 뿐입니다.
빌4:11-12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리스도를 만난 자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어떤 핑계도 더 이상 어떤 이유도 있을 수가 없는 줄로 믿습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있는 자 인 줄로 믿습니까?
바울이 로마를 어떻게 보았습니까? 로마를 위하여 자신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내 모든 것을 투자 하여야 할 대상으로
바울은 로마를 지나 서바나 지금의 스페인 땅까지 나아가려고 하였지만 마지막 선교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이방인의 사도가 된다는 비전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고, 그리고 나서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 동안 훈련을 받았고, 다소에서 상당 기간 동안 기다린 이후에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1차 선교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2차 선교여행을 다녀온 이후에 지금은 3차 선교여행중입니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에베소교회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그의 전도로 말미암아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 이후에 바울이 가진 꿈이 다음 행선지로의 여행계획과 로마에 전도계획인 것입니다.
바울은 그냥 대충 대충 자신의 비전을 실천하지 않고, 각 단계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착실하게 해가면서 그의 비전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9:21을 보면, 이 일이 다된 후에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말씀에 이어서 나오는 말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서 예루살렘에 간 후에 로마를 방문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의 전도 여행 중에 다음 단계의 일을 계획하고, 행동에 옮기는 하나의 기준이 바로 지금 하던 일을 다 한 후, 다 마친 후라는 것입니다.
눈은 로마를 바라보고, 발은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돌아다니는 삶, 이것이 바로 비전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마게도냐에서, 예루살렘에서 정말 치열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의 꿈은 하루라도 빨리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만, 그는 마치 로마에 전혀 가지 않을 사람처럼 지금 그가 있는 곳에서 그의 모든 것을 다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고, 재판을 당하기도 하고, 온갖 수난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 로마에 가서 열심히 복음전할께요. 지금은 좀 봐주세요라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받지 않는 것이요 결코 큰일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반드시 해야 하겠다는 소원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이루고 싶은 소원, 여러분에게 그런 소원은 무엇입니까? 영어단어 MUST로 표현되어야만 하는 그 소원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바울에게도 그런 소원이 있었습니다. 바울에게도 MUST로 표현되는 반드시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로마를 위하여 죽는 길입니다.
저는 바울의 순교 기념 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거꾸로 십자가형을 당하고 죽었습니다.
반면에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졌기에단두대에 도끼로 목이 잘리는 형을 받았습니다.
그 머리가 3번을 튕겨 나아갔는데 그 곳 마다 물이 쏟아 났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바울이 가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의 결단이 남았습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말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인생을 가장 잘사는 길이요 행복한 삶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