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수고는 기쁨의 열매를 가져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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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06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시 편 126:1-6눈물의 수고는 기쁨의 열매를 가져 옵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20세로 최연소 우승한 우리나라 신지애양을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스무 살 꽃띠 처녀의 이와 같은 웃음 뒤엔 곱씹어 울음을 삼킨 아픔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2003년 그가 15세 되던 해에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일 년을 고생하다가 돌아가셨고 동생 두 명도 사고로 병 수발을 해야 했습니다. 신지애는 아버지, 두 동생과 함께 사글세방에 살면서 골프를 했는데 그녀에게 있어서는 골프는 귀족 스포츠가 아니라 처절한 삶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는 목사인 아버지의 신앙을 영향을 받아 일찍 어머니를 잃어버리고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잘 견디어 승리의 삶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가 흘린 울음은 헛되지 않았고 그의 울음은 오늘에 와서 많은 사람을 웃게 하였는데 이 골프는 멘탈 게임으로 불릴 정도로 심리적인 평안과 담대함, 집중력 등이 요구가 된다고 합니다.
특히 기술적인 차이가 거의 없는 프로선수들 사이에서는 대회 당일의 심리적인 상태가 승부와 직결이 된다는 말입니다.
막상 레인에 들어섰을 때 가장 큰 적은 누군가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레인입니까? 아니면 상대방 선수입니까 ?
레인도 아니고 상대방 선수도 아니요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합니다.
정신적 압박감과 주위의 세세한 작은 일들 그리고 여러 가지 환경에 의해 흔들릴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바로 자신의 가장 큰 적인 것입니다.
상대방 선수와 함께 자기 자신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또 한명의 내부의 적인 자신과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브리티시오픈 우승을 앞둔 신지애는 대회 마지막 날을 앞두고 전날 밤 흥분이 돼 잠을 자지 못했고, 너무 떨렸다고 합니다. 그는 기도와 찬송, 성경말씀 묵상 등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되찾아 대회 마지막 날 역전 우승을 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신지애의 스윙 기술은 다른 LPGA 선수들보다 나은 수준은 아니고, 오히려 보완할 점이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결국 승인은 그의 신앙의 힘이 그를 웃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같이 우리는 외부의 적 때문에 자신이 무너진다고 생각을 하는데 실상은 바로 내 자신입니다.본문 역시 나라를 잃어버리고 바벨론의 속국이 된 이스라엘은 그발강 가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이 눈물이 억울해서도 아니요 절망해서도 아니요 제대로 흘린 눈물이 되고 보니 웃음을 가져오는 해방을 얻을 수 있었는데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이룰 수없는 중에 이루는 기쁨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눈물과 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축복된 미래를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눈물과 땀으로 감당이 될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가 기쁨으로 곡식을 거두어 돌아올 것이라고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워 눈물을 흘리는 한이 있더라도 씨를 뿌려야 추수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힘든 인생에 무엇인가 결실을 가져오고 인생 역전의 기회가 생깁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세월아 네월아 하고 막연히 인생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사람의 생전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큰일을 행하시고 우리는 작은 일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무슨 큰일을 할 것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큰일을 행하셨고 인간은 거기에 비하여 아주 작은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것은 큰 수확을 위하여 뿌리는 작은 씨앗과 같은 것입니다. 이 작은 것에서부터 역사는 일어납니다.
작은 것을 감당하여 큰일을 가져 오기도 하지만 이 작은 일을 무시하여 큰일을 놓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1986년 1월 28일 미국 후로리다 케이프 케너버럴 우주발사대를 떠난 우주선 챌렌져호는 발사된 지 73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해서 7명의 탑승원이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사고 원인을 조사한 결과는 연료기기에 박혀있었던 나사가 빠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연료가 없어서도 아닙니다. 챌린저호의 선장과 승무원이 잘못해서도 아닙니다. 커다란 구멍이 나서도 아닙니다. 나사입니다. 작은 나사하나, 이것이 문제입니다.
큰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작은 일을 감당하는 나를 통하여 하나님은 큰일을 하십니다.
성경에는 무슨 큰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무슨 자신에게 큰 것을 요구하는 줄 알고 야단입니다.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이 산을 옮긴다고 하였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큰일을 마끼신다고 하셨습니다.
작은 일을 할 기회를 놓치면서 무슨 큰일을 위하여서 무엇을 하는 것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작은 일에 충성치 못하면 주신 것까지 다 빼앗아 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작은 것 하나에 감사하게 감당하는 자에게 기적을 가져 오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이지만 하나님의 큰일을 가져오게 하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생명력이 있는 씨앗을 심자는 것입니다.
씨앗은 작은 것이지만 이것을 통하여 큰 수확을 가져 오는 것입니다.
무엇을 심을까? 경건(敬虔)에 이르는 씨를 뿌려야 합니다.
농부들은 씨를 뿌릴 때 사용하는 종자는 최고로 상태가 좋은 씨로 남겨둡니다.
그리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차라리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을지언정 종자는 절대로 먹지 않습니다.
배가 고프다는 이유만으로 종자를 먹는 것은 미래를 먹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건의 생활은 삶의 종자 씨와 같은 것입니다.
당장 배가 고프고 어렵고 바쁘다고 해서 경건의 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미래를 기다리는 종자를 먹어버리는 것이 되니 그 사람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딤전 4:7,8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물리치십시오. 경건함에 이르도록 자기를 훈련하십시오. 육체의 운동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니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 준다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경건의 훈련은 현실의 삶에서도 그리고 장차 올 세상에서도 모든 면에서 유익하다고 합니다.
경건은 하나님의 뜻을 내 삶 속에서 이루어 나가는 생활입니다.
무슨 도를 닦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범사의 생활입니다.
사실 인간은 경건치 못하고 세속적입니다. 죄성에 영향을 받아 제 마음대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의 말과 같이 경건하기 위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 훈련의 핵심이 하나님 말씀의 생활과 기도의 생활입니다.
경건한 삶을 위해서는 말씀생활과 기도생활 모두 중요합니다.
성경공부는 잘하는데 기도를 하지 않으면 능력이 없고 심령이 메마릅니다.
기도생활은 열심인데 성경을 공부하지 않으면 생각이 허망해지고 생활이 엉망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씀과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기본생활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을 가만히 보십시오 하나님은 말씀을 하시고 그리고 인간은 기도로 감당을 하는 것입니다.
제자훈련의 터를 닦는 것이 무엇 인줄 아십니까? 말씀과 기도 생활입니다.
이것 없이 제자훈련 아무리 해보았자 아무런 변화를 가져 오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경건한 생활을 위해서 매우 힘쓰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벽 미명에 일어나 기도하시고 밤이 새도록 철야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성경에도 매우 능하셨습니다.
구약과 시편을 자유자재로 인용하실 만큼 성경을 잘 알고 암송하고 계셨습니다.
복음서가 성경을 인용하시지 않으면 있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기도와 말씀에 힘쓰셨다면 죄인인 인간 우리는 얼마나 더 애써야 할까요?
그런데 의외로 말씀생활과 기도생활을 성실하고 균형을 이루어 감당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경건의 능력과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눈물을 흘리는 고통스러움이 동반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일보다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으로 연예인들이 어떻고 하는 가십거리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영화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이런 것들은 이를 악물고 투쟁하지 않아도 본성적으로 끌립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금방 잠을 잡니다.
마음으로 결단을 하고 시간을 정해놓아도 꾸준하게 실천해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깜짝깜짝 놀라는 것이 있는데 제하고 가까이 하는 성도들이 연예인에 대하여 얼마나 잘 아는지 이것은 남녀노소 관계없이 기가 막힐 정도로 잘 아는데 얼마나 텔레비전하고 친했으면 저렇게 달달 외울까?
그러니깐 연예인들이 인기가 있고 한번 출연하면 몇 천만 원씩 받고 예수님과 목사님은 인기가 없어 찾는 자들이 없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성경읽기와 묵상에 얼마나 충실하였습니까?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성경읽기와 묵상에 뿌린 만큼을 거두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뿌린 만큼 말씀을 얻어서 말씀의 곳간에 저장되었고 그 곳간이 풍성하였다면 그 삶이 풍성하였을 것이며 사회생활도 풍성할 것입니다.
말씀생활뿐 아니라 기도생활도 쉽지 않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규칙적으로 기도생활을 감당하려면 눈물 나는 투쟁을 해야 합니다.
몸이 너무 힘들어 제 같은 경우도 하루만 쉬고 싶은 때가 많습니다.
또 보통 때는 기도 할 만하지만 마음이 힘든 때에도 기도하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기도해야 합니다.
혹 다른 많은 것에 성공했을지라도 경건의 생활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성공이라고 할 수없습니다.
별 볼 일없는 사람이 됩니다.
내가 성공적인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중요한 열쇠는 경건의 생활을 위해서 얼마나 눈물로 씨를 뿌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다른 이의 구원의 열매를 위해서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합니다.
구원의 열매를 위해서 씨를 뿌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열매를 맺기 쉽지 않는 이유는 씨를 뿌리는 일에는 많은 눈물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는 일은 정말 눈물이 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말씀의 씨를 뿌리면서 그것 자체도 힘들지만 내가 헛수고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 때문에 더욱 힘듭니다.
뿌려도 열매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힘이 빠집니다. 이게 마귀가 써 먹는 수법입니다.
성령은 말씀에 확신을 줍니다. 그래서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게 됩니다.
진실한 농부는 씨를 뿌리면서 나지 아니할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뿌리면 반드시 싹이 나고 열매를 거둔다는 것을 잘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약속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복음의 열매를 거두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은 것도 나를 위해서 누군가가 눈물로 씨를 뿌리고 눈물로 기도했고 눈물을 흘리며 헌신했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으로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합니다.
한국에 첫 메달을 안겨준 유도 60kg의 경량급 최민호는 지난 2004년 아테네대회에서 컨디션 조절에 실패, 발가락에 쥐가 나면서 피를 뽑아내는 악조건 속에 경기를 치른 끝에 동메달에 그쳤습니다. 그 후 절치부심(切齒腐心) 실력을 닦아온 최민호는 결승까지 4경기 연속 한판승으로 금메달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인생 예선에 탈락한 자가 되지 마시고 한 경기 한경기 감당하여 결국은 인생 금메달을 따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가운데 인생 예선에 탈락된 자들이 더러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절치부심의 정신 즉 내 인생 이렇게 끝나면 되겠는가? 즉 몹시 분하여 이를 갈며 속을 썩일 정도로 확실하게 한번 해 보시고 싶지 않습니까?
세상이 그렇게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잠자고 싶은 마음, 놀고 싶은 마음,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외로운 투쟁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이겨낸 사람만이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수고하기를 겁내지 마라
잔잔한 호수에 떠 있는 백조를 보면 얼마나 평화롭습니까? 그러나 그 백조가 물위에 떠 있기 위해 얼마나 부단히 발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떠 있는 백조만 보려고 하지 보이지 않는 백조의 모습은 모르고 있습니다. 평
수고한 뒤에 결실이 따릅니다.
인생을 보면 요행이 없습니다. 노력한 만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이 진리를 오늘 말씀에서는 자연의 법칙을 통해서 아주 단순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이 말씀은 울면서도 씨를 뿌리러 나가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일은 미래를 생각하면서 현재의 고통을 참으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미래의 결실을 생각하면서 현재의 달콤한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기 부인에 성공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그 인생의 결과가 달려 있습니다.
뿌린 만큼 거둡니다. 요행이 없고 무섭도록 정직합니다.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을 부러워합니다. 그들의 현재만 부러워합니다. 부러워할 뿐 아니라 질시하고 평가절하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성공의 뒤에는 눈물로 씨를 뿌린 고통스러운 과거가 있습니다. 울면서도 씨를 뿌리러 나가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부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현재의 나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이제까지의 내가 뿌린 것의 결과입니다.
실력이든, 영적인 성숙이든, 성격이나 습관이나 체중이나 심지어는 외모까지도 이제까지 내가 뿌린 것의 결과입니다.
감사한 것도 많고 아쉬운 것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회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 후회 없는 인생을 위해서 이 말씀을 깊이 마음에 새기고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꿈을 꾸는 것 같은 생각하지 않은 기쁨을 노래 할 날이 올 것입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20세로 최연소 우승한 우리나라 신지애양을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스무 살 꽃띠 처녀의 이와 같은 웃음 뒤엔 곱씹어 울음을 삼킨 아픔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2003년 그가 15세 되던 해에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일 년을 고생하다가 돌아가셨고 동생 두 명도 사고로 병 수발을 해야 했습니다. 신지애는 아버지, 두 동생과 함께 사글세방에 살면서 골프를 했는데 그녀에게 있어서는 골프는 귀족 스포츠가 아니라 처절한 삶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는 목사인 아버지의 신앙을 영향을 받아 일찍 어머니를 잃어버리고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잘 견디어 승리의 삶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가 흘린 울음은 헛되지 않았고 그의 울음은 오늘에 와서 많은 사람을 웃게 하였는데 이 골프는 멘탈 게임으로 불릴 정도로 심리적인 평안과 담대함, 집중력 등이 요구가 된다고 합니다.
특히 기술적인 차이가 거의 없는 프로선수들 사이에서는 대회 당일의 심리적인 상태가 승부와 직결이 된다는 말입니다.
막상 레인에 들어섰을 때 가장 큰 적은 누군가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레인입니까? 아니면 상대방 선수입니까 ?
레인도 아니고 상대방 선수도 아니요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합니다.
정신적 압박감과 주위의 세세한 작은 일들 그리고 여러 가지 환경에 의해 흔들릴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바로 자신의 가장 큰 적인 것입니다.
상대방 선수와 함께 자기 자신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또 한명의 내부의 적인 자신과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브리티시오픈 우승을 앞둔 신지애는 대회 마지막 날을 앞두고 전날 밤 흥분이 돼 잠을 자지 못했고, 너무 떨렸다고 합니다. 그는 기도와 찬송, 성경말씀 묵상 등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되찾아 대회 마지막 날 역전 우승을 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신지애의 스윙 기술은 다른 LPGA 선수들보다 나은 수준은 아니고, 오히려 보완할 점이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결국 승인은 그의 신앙의 힘이 그를 웃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같이 우리는 외부의 적 때문에 자신이 무너진다고 생각을 하는데 실상은 바로 내 자신입니다.본문 역시 나라를 잃어버리고 바벨론의 속국이 된 이스라엘은 그발강 가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이 눈물이 억울해서도 아니요 절망해서도 아니요 제대로 흘린 눈물이 되고 보니 웃음을 가져오는 해방을 얻을 수 있었는데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이룰 수없는 중에 이루는 기쁨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눈물과 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축복된 미래를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눈물과 땀으로 감당이 될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가 기쁨으로 곡식을 거두어 돌아올 것이라고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워 눈물을 흘리는 한이 있더라도 씨를 뿌려야 추수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힘든 인생에 무엇인가 결실을 가져오고 인생 역전의 기회가 생깁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세월아 네월아 하고 막연히 인생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사람의 생전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큰일을 행하시고 우리는 작은 일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무슨 큰일을 할 것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큰일을 행하셨고 인간은 거기에 비하여 아주 작은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것은 큰 수확을 위하여 뿌리는 작은 씨앗과 같은 것입니다. 이 작은 것에서부터 역사는 일어납니다.
작은 것을 감당하여 큰일을 가져 오기도 하지만 이 작은 일을 무시하여 큰일을 놓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1986년 1월 28일 미국 후로리다 케이프 케너버럴 우주발사대를 떠난 우주선 챌렌져호는 발사된 지 73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해서 7명의 탑승원이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사고 원인을 조사한 결과는 연료기기에 박혀있었던 나사가 빠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연료가 없어서도 아닙니다. 챌린저호의 선장과 승무원이 잘못해서도 아닙니다. 커다란 구멍이 나서도 아닙니다. 나사입니다. 작은 나사하나, 이것이 문제입니다.
큰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작은 일을 감당하는 나를 통하여 하나님은 큰일을 하십니다.
성경에는 무슨 큰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무슨 자신에게 큰 것을 요구하는 줄 알고 야단입니다.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이 산을 옮긴다고 하였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큰일을 마끼신다고 하셨습니다.
작은 일을 할 기회를 놓치면서 무슨 큰일을 위하여서 무엇을 하는 것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작은 일에 충성치 못하면 주신 것까지 다 빼앗아 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작은 것 하나에 감사하게 감당하는 자에게 기적을 가져 오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이지만 하나님의 큰일을 가져오게 하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생명력이 있는 씨앗을 심자는 것입니다.
씨앗은 작은 것이지만 이것을 통하여 큰 수확을 가져 오는 것입니다.
무엇을 심을까? 경건(敬虔)에 이르는 씨를 뿌려야 합니다.
농부들은 씨를 뿌릴 때 사용하는 종자는 최고로 상태가 좋은 씨로 남겨둡니다.
그리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차라리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을지언정 종자는 절대로 먹지 않습니다.
배가 고프다는 이유만으로 종자를 먹는 것은 미래를 먹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건의 생활은 삶의 종자 씨와 같은 것입니다.
당장 배가 고프고 어렵고 바쁘다고 해서 경건의 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미래를 기다리는 종자를 먹어버리는 것이 되니 그 사람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딤전 4:7,8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물리치십시오. 경건함에 이르도록 자기를 훈련하십시오. 육체의 운동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니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 준다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경건의 훈련은 현실의 삶에서도 그리고 장차 올 세상에서도 모든 면에서 유익하다고 합니다.
경건은 하나님의 뜻을 내 삶 속에서 이루어 나가는 생활입니다.
무슨 도를 닦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범사의 생활입니다.
사실 인간은 경건치 못하고 세속적입니다. 죄성에 영향을 받아 제 마음대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의 말과 같이 경건하기 위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 훈련의 핵심이 하나님 말씀의 생활과 기도의 생활입니다.
경건한 삶을 위해서는 말씀생활과 기도생활 모두 중요합니다.
성경공부는 잘하는데 기도를 하지 않으면 능력이 없고 심령이 메마릅니다.
기도생활은 열심인데 성경을 공부하지 않으면 생각이 허망해지고 생활이 엉망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씀과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기본생활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을 가만히 보십시오 하나님은 말씀을 하시고 그리고 인간은 기도로 감당을 하는 것입니다.
제자훈련의 터를 닦는 것이 무엇 인줄 아십니까? 말씀과 기도 생활입니다.
이것 없이 제자훈련 아무리 해보았자 아무런 변화를 가져 오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경건한 생활을 위해서 매우 힘쓰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벽 미명에 일어나 기도하시고 밤이 새도록 철야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성경에도 매우 능하셨습니다.
구약과 시편을 자유자재로 인용하실 만큼 성경을 잘 알고 암송하고 계셨습니다.
복음서가 성경을 인용하시지 않으면 있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기도와 말씀에 힘쓰셨다면 죄인인 인간 우리는 얼마나 더 애써야 할까요?
그런데 의외로 말씀생활과 기도생활을 성실하고 균형을 이루어 감당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경건의 능력과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눈물을 흘리는 고통스러움이 동반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일보다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으로 연예인들이 어떻고 하는 가십거리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영화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이런 것들은 이를 악물고 투쟁하지 않아도 본성적으로 끌립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금방 잠을 잡니다.
마음으로 결단을 하고 시간을 정해놓아도 꾸준하게 실천해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깜짝깜짝 놀라는 것이 있는데 제하고 가까이 하는 성도들이 연예인에 대하여 얼마나 잘 아는지 이것은 남녀노소 관계없이 기가 막힐 정도로 잘 아는데 얼마나 텔레비전하고 친했으면 저렇게 달달 외울까?
그러니깐 연예인들이 인기가 있고 한번 출연하면 몇 천만 원씩 받고 예수님과 목사님은 인기가 없어 찾는 자들이 없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성경읽기와 묵상에 얼마나 충실하였습니까?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성경읽기와 묵상에 뿌린 만큼을 거두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뿌린 만큼 말씀을 얻어서 말씀의 곳간에 저장되었고 그 곳간이 풍성하였다면 그 삶이 풍성하였을 것이며 사회생활도 풍성할 것입니다.
말씀생활뿐 아니라 기도생활도 쉽지 않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규칙적으로 기도생활을 감당하려면 눈물 나는 투쟁을 해야 합니다.
몸이 너무 힘들어 제 같은 경우도 하루만 쉬고 싶은 때가 많습니다.
또 보통 때는 기도 할 만하지만 마음이 힘든 때에도 기도하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기도해야 합니다.
혹 다른 많은 것에 성공했을지라도 경건의 생활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성공이라고 할 수없습니다.
별 볼 일없는 사람이 됩니다.
내가 성공적인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중요한 열쇠는 경건의 생활을 위해서 얼마나 눈물로 씨를 뿌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다른 이의 구원의 열매를 위해서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합니다.
구원의 열매를 위해서 씨를 뿌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열매를 맺기 쉽지 않는 이유는 씨를 뿌리는 일에는 많은 눈물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는 일은 정말 눈물이 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말씀의 씨를 뿌리면서 그것 자체도 힘들지만 내가 헛수고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 때문에 더욱 힘듭니다.
뿌려도 열매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힘이 빠집니다. 이게 마귀가 써 먹는 수법입니다.
성령은 말씀에 확신을 줍니다. 그래서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게 됩니다.
진실한 농부는 씨를 뿌리면서 나지 아니할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뿌리면 반드시 싹이 나고 열매를 거둔다는 것을 잘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약속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복음의 열매를 거두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은 것도 나를 위해서 누군가가 눈물로 씨를 뿌리고 눈물로 기도했고 눈물을 흘리며 헌신했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으로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합니다.
한국에 첫 메달을 안겨준 유도 60kg의 경량급 최민호는 지난 2004년 아테네대회에서 컨디션 조절에 실패, 발가락에 쥐가 나면서 피를 뽑아내는 악조건 속에 경기를 치른 끝에 동메달에 그쳤습니다. 그 후 절치부심(切齒腐心) 실력을 닦아온 최민호는 결승까지 4경기 연속 한판승으로 금메달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인생 예선에 탈락한 자가 되지 마시고 한 경기 한경기 감당하여 결국은 인생 금메달을 따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가운데 인생 예선에 탈락된 자들이 더러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절치부심의 정신 즉 내 인생 이렇게 끝나면 되겠는가? 즉 몹시 분하여 이를 갈며 속을 썩일 정도로 확실하게 한번 해 보시고 싶지 않습니까?
세상이 그렇게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잠자고 싶은 마음, 놀고 싶은 마음,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외로운 투쟁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이겨낸 사람만이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수고하기를 겁내지 마라
잔잔한 호수에 떠 있는 백조를 보면 얼마나 평화롭습니까? 그러나 그 백조가 물위에 떠 있기 위해 얼마나 부단히 발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떠 있는 백조만 보려고 하지 보이지 않는 백조의 모습은 모르고 있습니다. 평
수고한 뒤에 결실이 따릅니다.
인생을 보면 요행이 없습니다. 노력한 만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이 진리를 오늘 말씀에서는 자연의 법칙을 통해서 아주 단순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이 말씀은 울면서도 씨를 뿌리러 나가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일은 미래를 생각하면서 현재의 고통을 참으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미래의 결실을 생각하면서 현재의 달콤한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기 부인에 성공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그 인생의 결과가 달려 있습니다.
뿌린 만큼 거둡니다. 요행이 없고 무섭도록 정직합니다.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을 부러워합니다. 그들의 현재만 부러워합니다. 부러워할 뿐 아니라 질시하고 평가절하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성공의 뒤에는 눈물로 씨를 뿌린 고통스러운 과거가 있습니다. 울면서도 씨를 뿌리러 나가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부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현재의 나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이제까지의 내가 뿌린 것의 결과입니다.
실력이든, 영적인 성숙이든, 성격이나 습관이나 체중이나 심지어는 외모까지도 이제까지 내가 뿌린 것의 결과입니다.
감사한 것도 많고 아쉬운 것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회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 후회 없는 인생을 위해서 이 말씀을 깊이 마음에 새기고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꿈을 꾸는 것 같은 생각하지 않은 기쁨을 노래 할 날이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