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교회에서 드리는 기도가 응답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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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73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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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8:27-30 주의 교회에서 드리는 기도가 응답되게 하옵소서
가끔 산행을 다니다 보면 기왓장에다 기도 제목을 써 놓고 여기 보란 듯이 진열을 해 놓은 것을 보게 됩니다.
사찰에서 건축헌금을 거두는 것인지 무슨 헌금인지는 몰라도 일단 헌금을 하면 소원도 적어 주고 염불을 해서 소원 성취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때로는 그 내용이 교회 성도들의 기도 제목하고 거의 같다는 것을 알고 사람은 절에 다니든지 교회를 가든지 소원은 인간의 소원은 누구나 비슷하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고목나무에 세끼줄을 치고 두 손을 모아 성황당의 서낭신에게 비는 기도도 별 다른 내용이 아니고 정화수를 떠다가 장독대에서 두 손을 살살 빌면서 드리는 소원도 인간의 나약함의 도움을 비는 기도의 내용에 있어서는 대동소이(大同小異)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공을 드리고 기도를 하지만 대다수가 별로 기도에 응답은 받지 못하고 있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기도를 올릴 대상이 어떤 분이신지를 모르고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 응답을 받지 못함의 가장 큰 원인이겠습니다 만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의 우상 종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엘리야 시대에 갈멜산에서의 엘리야와 바알의 선지자와의 대결에서 누가 참 신인가?에서 바알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바알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 가운데는 헛된 우상에게 심지어는 자기 자신도 어찌 할 수 없었던 조상에게 복을 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엘리야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에 하늘에서 불로 응답하시고 그 불이 제단을 살랐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응답하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서는 이방이 믿는 우상에게 기도하는 것도 아닌데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데 응답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사실 기도하여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우리 가운데도 있지 않습니까?
본문에서 솔로몬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응답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성전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라고 기도의 응답을 바랐는데 하나님은 솔로몬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왕하 9: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을 향하여 하나님의 눈과 귀가 머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가슴이 설레는 일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번에 우리 교회가 새 성전을 준비하면서 마치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고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그의 응답하심에 기대가 부풀었던 것과 같이 저 역시 그런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보니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이 자리에 참여한 모든 성도들이 이런 은혜를 받으시기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마 성전을 짓고 나면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상당히 변화를 가져 올 것이 틀림없습니다.
모두가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성전을 완공해 놓고 얼마나 하나님과 교통을 잘하겠는가를 생각 할 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 집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 할 수 있음은 어떠한 자세를 가졌기 때문일까요?
누가 무슨 말을 하여도 하나님의 기분을 잘 맞추는 자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누구를 좋아하겠습니까? 사사건건 도전하고 반대하고 빈정대고 하는 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영어에 botherer라는 단어는 기독인에게 사용이 되곤 하는데 그 뜻은 귀찮게 하는 사람, 괴롭게 하는 사람이란 말인데 성도가 드리는 많은 기도가 하나님께 열납 되기보다 오히려 끊임없는 자기 마음대로 드리는 기도로 하나님을 괴롭히고 귀찮게 하는 것을 꼬집어 표현한 단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지금 이스라엘의 열왕들의 행적을 새벽 기도 시에 보는데 특히 북왕국의 왕들은 하나님을 무지무지하게 귀찮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한 뜻을 구하지 아니하고 무조건 금송아지만 좋아하고 그것만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도 화가 나서 금송아지 주겠습니까?
금송아지를 주는 것이 아니라 맨 날 벌만 받고 화만 받고 멸망당하고 살해를 당하고 이러다가 나라가 끝이 안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제 마음대로 믿다가 하나님의 복을 받기는커녕 화만 잔뜩 받고만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이 사실을 스스로가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을 보세요 하나님 때문에 복된 마음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틀림없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응답을 잘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강퍅해져 있고 분이 가득차 있고 한 사람은 앞으로 계속 그렇게 살아 갈 것이요
제 마음 하나도 자신이 다스리지 못하고 결국은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갈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응답을 받는 복된 마음을 가졌습니다.
성경에는 솔로몬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기도의 예가 많이 나오는데 그중에 두 번이나 연달아 기쁘시게 함으로 하나님께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솔로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의 기도를 왜 기쁘게 받으셨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도 botherer가 되기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인으로 내 기도가 응답이 되는 복을 받으시기를축원합니다.
솔로몬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움직였습니까?
솔로몬은 성전을 두 번 지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기에는 솔로몬이 성전을 한번 지은 것으로 알고 있지요
예 그것은 보이는 성전이고요 실상은 보이지 않는 성전을 먼저 지었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이 보이는 성전의 기초가 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이란 마음의 성전을 가리키는데 어떻게 지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함은 내 마음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라는 자세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만 내 마음의 주인은 항상 내가 주인이 되어 내 성질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성질부릴 것 다 부리고 할 말 다하고 그래놓고 나는 뒷 끝이 없는 화통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줄로 믿습니까? 그렇다면 이것은 아셔야 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멘
저는 제 자신을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왕의 보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기브온 산당에 가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는 아직 성전을 짓기 전이라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주로 이용을 하였는데 기브온은 가장 큰 산당이었는데 그 곳에는 모세 때의 장막 성전 기구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역대 하에서는 이 행사가 전국가적인 행사였음을 말해 줍니다.
왕의 행사였기에 당연히 그리했으리라고 생각이 되어 집니다.
행렬의 선두에는 수백의 마병들이 행진했고 솔로몬 왕의 뒤편에는 이스라엘의 천부장과 백부장과 재판관과 온 이스라엘의 방백과 족장들이 화려한 예복을 입고 줄 지어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이스라엘 온 회중이 행진했습니다. 가벼운 예배가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까지 솔로몬이 그 단에서 온 백성과 함께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일천 번제는 일천 번의 번제일 수 있고 일천 마리의 제물을 드린 번제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엄청난 규모의 제사였습니다.
어떤 사람의 계산에 의하면 일천 마리의 제물을 태워 제사를 드리려면 적어도 7-8일이 걸린다고 합니다.
왕과 모든 대신들과 백성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국사와 생업을 제쳐두고 일주일씩이나 제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까?
번제란 본래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 드리는 제사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위한 전적 헌신의 표시로 드리는 자원제의 하나입니다.
이를 볼 때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린 것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유일한 하나님이시며 참 왕이시라는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왕이 되겠다는 결단의 표시였습니다.
제사장이 번제물을 바치는 동안 솔로몬은 산당에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이제 갓 스무 살밖에 되지 않아 경륜도 없는 자신이 그 많은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할 때 심히 두렵고 떨렸습니다.
하나님의 법도대로 올바르게 다스려야 할 텐데 여러 가지로 부족한 내가 어떻게 그 막중한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엎드려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끊임없는 제사와 기도로 인해 피곤에 지쳐 깜박 잠든 솔로몬의 꿈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이 말씀은 네가 무엇을 구하든지 줄 터이니 너는 구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일천 번제와 기도를 매우 기뻐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천 번제 속에는 솔로몬의 하나님께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이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는 주님께 대한 신앙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온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 그리고 기도를진심과 열정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이렇게 드려진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에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겠습니까?
금송아지를 주세요라고 할 것 같습니까? 하나님 뜻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금송아지를 구하고 있다면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예배와 기도가 없는 자는 금송아지만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금송아지 구한다고 금송아지가 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구 할 때에 금송아지는 와서 날 잡아 잡수시오 하고 오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기도가 주의 마음에 맞았고 주님께서 솔로몬의 기도를 기뻐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마태복음 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또한 솔로몬의 기도가 응답을 받을 수 있음은 그 마음속의 성전이 실제로 보이는 성전으로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기도제목이 7가지로 길게 나오지만 내용이 다를 뿐 한 가지 패턴이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이 기도가 성전봉헌 예배 때 드린 기도임을 고려할 때 주목되는 점은 솔로몬의 기도에 있어서 성전의 역할입니다.
솔로몬은 기도할 때마다 성전을 향하여, 또는 성전에서 기도하거든 들어주시라는 말을 9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를 볼 때 솔로몬은 성전을 매개로 하는 기도를 매우 중시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전이 다른 곳보다 특별히 거룩하고 우월한 장소라서 이곳에서 기도하기만 하면 무슨 기도든지 다 들어주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만일 성전에서 하는 기도만이 효력이 있다면 성전 밖에서 하는 기도는 아무 효력도 없고 기도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 성전은 하나의 종교적인 건축물에 불과하지만 이 성전은 그들의 마음의 열정을 드러낸 그들의 마음의 성전의 모습을 들어 내 주는 것입니다.
솔로몬에게 있어서 성전은 29절에 의하면 주의 이름이 거기 있는 곳,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는 곳입니다.
이스라엘은 항상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함의 표로 성전을 약속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요 하나님과의 만남의 처소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민족을 이루어 출 애굽시에 그들은 장막 성전을 지었으며 여호수아시대 사사 시대 후에 산당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다가 다윗의 감동으로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 후 왕정시대가 끝나고 시드기야 왕 이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무너지고 이들은 바벨론 포로 시대 내내에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성전을 사모하다가 다시 해방을 맞이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우여 골절 끝에 또 다시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 성전은 기원전 168년에 헬라 시대에 애급왕 안티오쿠스에게 무너져 버리고 기원전 3년에 헤롯왕에 의해서 금과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세워졌으나 70년에 로마군에 의하여 무너지고 지금은 통곡의 벽이라 불리우는 성벽 일부만 남아 잇을 뿐입니다.
지금은 이슬람이 장악하여 금으로 그들의 돔 성전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성전의 터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린 모리아 산입니다.
이 때 아들이삭이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에 있나이까 라고 아브라함에게 묻자, 아브라함의 대답은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번제로 바쳐져야 할 외아들 이삭 대신에 하나님이 준비하신 여호와이레의 수양이 모리아 산에서 대신 죽었다는 이 사건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자녀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사건의 그림자적인 예표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의 모퉁이 돌이요 기초석이 되시는 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입니다.
이제 이 예수는 나의 마음을 성전을 삼고 계시면서 나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게 하시며 무슨 기도든지 다 들어 주실 것입니다.
또한 내 마음의 모습이 그리스도인의 생활 가운데 드러날 것입니다.
여러 모양으로 영혼 구원을 위하여 생활에 나타 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성전 확장의 모습인 줄로 믿습니다.
이제 내 마음의 표를 이 성전 확장에 드림으로 또한 나의 기도가 뜨겁게 상달되는 모습을 보이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 인테리어 업자들을 만나 보는 가운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자가 있습니다.
교회 건축의 모텔은 이제 교회에서 찾기 보다는 호텔과 백화점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한국 교회가 그 만큼 세상의 그 어떤 건축물보다 앞서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번 교회 확장이 작은 우리 교회로서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기회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생각해보니 그냥 대충하면 되겠지 가 아니라 할 수만 있으면 최선을 다 하여야 할 것만 같습니다.
모든 성도들도 여러분의 마음의 신아의 모습이 이번 확장에 보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기도도 이번 일로 통하여 하나님의 뜻가운데 인도함을 받는 축복의 계기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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