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선물은 예수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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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34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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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3:1-10 중추절에 가장 큰 선물은 예수 이름입니다.
오늘은 주일이지만 민족의 최대 명절이라는 추석(秋夕)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3대 명절 중의 하나가 추석인데 우리는 보통 한가위 혹은 추석이라 하지만 중국인들은 중추절(中秋節 or 仲秋節)이라 부르는데 음력 7,8,9월이 일 년 중 가을에 해당하고 그중에서 8월이 중간이며, 또 8월 중에서 15일이 그 중간이라 하여 이 음력 8월 15일이 가을철의 한 가운데다 하여 중추절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추석의 정확한 유래는 전하지 않으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 유리왕(儒理王) 9년 나라 안 6부(六部)의 부녀자들을 두 편으로 가르고 두 왕녀(王女)를 각각 우두머리로 삼아 음력 7월 기망(旣望;16일)부터 한 달 동안 베를 짜게 하고, 마지막 8월 15일에 승부의 판정이 나면, 진편에서 이긴 편에 음식을 대접하고 회소곡(會蘇曲)을 부르며 밤새도록 노래와 춤을 즐겼는데 이를 가배(嘉俳)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전하는데 이 가배가 오늘날 한가위의 가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뜻은 가운데(中) 또는 반(半)의 어근인 갑에 명사형 접미사 이가 붙어서 가을의 반 즉 중추(仲秋)의 한국식 표기가 된 것으로 짐작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며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추석은 수확기를 맞아 풍년을 축하하고 조상의 덕을 추모하여 제사를 지내고 자기의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으며 이웃끼리 인심을 나누고 놀이를 즐기는 명절로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명절은 흩어진 혈육이 모여 서로서로의 교제를 통하여 혈육의 관계를 확인하고 자신의 능력에 따라 소유를 나누어 혈육의 정을 나눔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추석 절에 우리 성도들도 서로 간에 아름다운 교제를 가지며 자신의 능력을 나누는 일에 그리스도인 이라는 핑계를 삼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합니다.
소흘리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가장 아름다운 교제와 선물을 주는 자가 되셔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제와 선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 라고 하셨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면 생명이 있고 구원이 있고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사람과의 육적인 교제만 있고 육신의 본능을 채우는 선물이 최고의 선물로 여기고 있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는 별로 호감을 가지지 않고 절대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독일의 심리 사회학자인 에릭 프롬의 말에 의하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소유 지향적인 삶과 존재 지향적인 삶의 성향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소유 지향적인 삶이란 가진 만큼 행복해 질수 있다고 생각하며 많이 소유함으로 인생을 만족하려는 삶의 양식을 말합니다.
이에 반해서 존재 지향적인 삶이란 내가 무엇을 소유했으며 얼마나 소유했는가에 집착하지 않고 나는 어떤 존재로 살아야 하는가? 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삶의 양식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날 너나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은 소유지향적인 삶을 목적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것과 더 좋은 것을 가지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빨리 깨달아 져야 하는데 사람마다 가진 만큼의 행복이 있다고 착각을 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많은 것을 소유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단, 가치 있는 것을 가지라고 말을 합니다.
많은 것과 가치 있는 것 사이에는 분명히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뇌성마미 시인 송명희는 이런 시를 썼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나는 남이 다 가진 것들을 가지진 못했지만 남이 없는 것을 가졌으니 그것을 내 최고의 가치로 압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신앙인의 고백이 있다면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비결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살아가면 갈수록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더 깊이 깨달아지는 진리가 주님 한 분 밖에는 더 좋아할 것도, 더 사랑할 것도, 더 욕심 낼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본문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할 것이냐는 나의 비뚤어진 사고를 무엇을 가질 것이냐는 문제로 바꾸어야합니다.
그것이 인생가치의 최고의 문제요, 신앙차원의 근본문제입니다
본문에 등장인물 3명이 무대를 펼칩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분은 당연히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하여 돈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한 장소에 거하면서 또 다른 이에게 돈을 구걸(求乞)을 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벌써 나이가 40이나 되었으니 더욱 그의 삶은 초조하여 돈이 그의 희망이요 아니 생명이었습니다.
이 나이까지 모은 돈도 별로입니다. 그러니 그는 매일 매일의 모습이 이렇게 처량하게 비춰집니다.
길을 지나는 이 마다 날마다 애처롭게 쳐다보며 여보시오 내 형편이 이렇습니다.
그러니 나에게 무슨 기대를 할 것이 있습니까?
오직 돈이 필요한 것인 줄 아시겠지요 돈이 내 부모요 내 효자요 내 효부요 내 신랑입니다.
물론 이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간다면 당신은 사람도 아니라고 할 만하지요
더욱이 오늘 같은 명절에는 말입니다.
오늘은 명절이니 나를 더 도와야 하고 또 오늘은 더우니 더 그러하고 오늘은 추우니 더 그러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 내 소욕을 채워야 하는 이유로 가득차고 내 소욕을 위한 나의 인생일 뿐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오늘의 나의 모습은 아닙니까?
이 세상을 바라 볼 때에 내 소욕만을 채워야만 하는 날들 뿐이지요
내 존재가 그러해야 충족이 되는 것 같이 여겨지지 않습니까?
오로지 내 육신의 필요만을 위한 나
그러면 내 육신을 만족시키느라고 내 육신이 오히려 내게 짐이 되고 있습니다.
혹시 내 육신이 내게 짐이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구걸하는 나면서 걷지 못하는 자를 바라보는 베드로와 요한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육신의 소욕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닌데 과거에 나도 그렇게 밖에 살지 못했는데
이제는 나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내게 있는 것 한번 보여 줄까요
오히려 자신에게 있는 것을 주겠다고 하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자가 되어 그로 인해 40평생을 거지로 살아 온 그 사람의 근본적인 문제를 보았습니다.
세상적인 어떤 소유로도 바뀌어 질수 없는 그의 인생을 본 것이 아니라 존재의 가치로 달라질 그를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그 사람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는 돈이 없기 때문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중심에 안고 있는 인생의 패배감 내지는 삶의 절망감 그리고 핸디캡이 문제였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다보면 때로는 돈이 능사가 아님을 발견하지 않습니까?
인간이란 따뜻한 정이 그리울 때가 있고 한 마디의 위로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정말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마음이 고플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돈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 돈으로 다 된다고 하고 있는데 돈이 아닙니다.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할렐루야!
내 주위에는 예수님의 이름이 필요 한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걸 선물로 주셔야 합니다.
윤형주라는 가수를 아실 것입니다.
그는 연대 의대를 다닐 때 송창식 등과 함께 트윈 폴리오를 결성해서 통기타로 많은 사람들에 인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20대 초반에 벤츠를 타고 다녔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열광과 박수를 받아 육신의 소욕을 충족시켰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육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대마초를 피우다가 구속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 육신을 위한 화려했던 삶을 사라지고, 차가운 감방 속에서 사람들의 차디찬 시선을 받으며 갇혀 있으니 자기 꼴이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이제 육신을 끝장 낼 생각으로 자살을 결심하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면회 온 어머니가 성경책을 전해 주었는데 이 순간에 이까짓 성경책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하고 성경책을 냅다 던져 버렸습니다.
이미 4대째 내려오는 기독교 집안이요 윤동주 시인이 그의 작은 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단 한 번이라도 봐달라는 어머님의 호소에 죽기 전, 한 번이라도 보아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책을 펼쳐 들었는데 그 순간 성경에 들어있는 모든 글자가 빛이 되어 자신의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교만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인기와 박수를 구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예수께로 돌리면 살게 됩니다.그 날 밤 차가운 감방 속에서 하염없이 울며 회개하고 윤형주 장로라는 새 인물이 탄생이 되고 육적인 노래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는 자가 아니라 생명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변화된 윤형주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일어 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사람들은 세상과 나와 같은 사람에게서 만족을 구합니다.
참 만족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있는 이름을 소유한 나에게 왜 이런 기적이 없는 것입니까?
왜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것입니까?
예수의 이름이 능력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소욕이나 만족 시켜주는 부적으로 여기기에 그렇습니다.
나에게 예수그리스도의 능력 있는 이름을 믿는 참된 믿음만 있다면 나의 그 믿음이 나를 근본적으로 바꿔 버릴 것입니다.
기뻐 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나의 신앙을 다시 한 번 뒤돌아 볼 것입니다.
돈이 없으면 건강한 몸을 주님 앞에 드려 주님을 섬길 것이고, 시간이 없으면 시간을 만들어 섬길 것이고, 마음만 있으면 믿음으로 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 베드로와 요한을 보세요.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베드로와 요한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것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나사렛 예수의 이름, 그리스도의 이름, 그들은 이 보배로운 이름이 자기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냈습니다.
여러분, 내가 믿는 예수의 이름을 우습게 만들지 마십시오. 예수의 이름을 욕되게 만들지 마십시오.
내가 지금까지 믿는 예수의 이름이 그렇게 유치하고, 치사하고, 속물적인 이름이 아니지 않습니까?
참으로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면, 그래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고,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되어 삶에 대한 분명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면 이 이상의 가치 있는 재산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래도 예수의 이름을 우습게 여길 것입니까?
그리스도는 건강보다도 소중하고, 물질보다도 소중하고, 명예보다도 소중하고, 생명보다도 소중하신 분이십니다.
이 고백만 있다면 신앙생활을 그렇게 취미 삼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재미로, 내 기분으로 교회나 나가는 그런 어리석은 발상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무언가를 소유하고 누리며, 즐긴다는 것은 인생 최고의 행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귀중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있는 이름을 소유하며 그와 더불어 살아 삶은 날마다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이 명절에 정말 사랑하는 자들에게 힘들어 하는 이웃에게 꼭 주어야 할 선물이 무엇입니까?
마음의 선물은 물론이지만 나를 구원하시고 변화시키신 이 사랑의 주님을, 이 구원의 주님을 그들에게 선물로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예수 때문에 변화 된 내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고도 그 능력 있는 예수님으로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내 모습이 문제 있는 것입니다.
그 능력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내 속에 계십니다.
이 세상의 것을 다 가지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단 한 가지, 예수그리스도면 됩니다.
정말 여러분 속에 예수 그리스도 능력의 이름을 소유하여서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상처받은 심령이 치유를 받습니까?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화해가 이루어집니까?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는 믿음의 행위가 뒤따릅니까?
오늘 조용히 주님 앞에서 진정으로 내가 가진 소유의 가치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간증... 죽음을 앞둔 3개월
예수님을 믿고 살려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루를 더 살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찰스 알렌 박사가 최근에 교인들의 신앙 상태를 면밀히 조사한 결과 보고에 의하면 20%의 교인이 예배에 불참하고 있고, 25%의 교인이 기도를 안 하고 있고, 30%의 교인이 기도를 할 줄 모르고, 35%의 교인이 성경을 읽지 않고 있으며, 40%의 교인이 헌금을 안 하고 있으며, 60%의 교인이 신앙 관계 서적을 읽지 않고 있으며, 70%의 교인이 교회 활동을 외면하고 있으며, 75%의 교인이 교회에서 책임진 일이 없고, 85%의 교인이 한 사람의 불신자도 인도해 본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00%의 교인이 하나같이 예수 이름으로 무엇을 얻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성 어거스틴이 어느 날 밤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는 꿈결에 사랑하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께서 어거스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아들아 너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저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만을 원합니다. 주님 자신만을 원합니다 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오늘 나로 말미암아 전해져야 할 예수 이름이 더 이상 나에게 와서는 멈춰버리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이 시간에 나에게 꼭 필요한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아직도 세상의 다른 이름을 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하세요 그리고 예수 이름을 부르세요
그러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참으로 뛰며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이 명절에 가는 곳 마다 예수 이름이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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