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와 상이 준비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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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649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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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4:6-12 승리와 상이 준비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웁시다.
세계적인 문호 빅토르 유고는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생존 경쟁과 투쟁의 연속적인 삶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산다는 것은 싸우는 것이요 싸우지 않고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람의 일생은 싸움의 연속입니다.
싸움, 다른 말로 전쟁입니다.
입시 전쟁, 교통 전쟁, 마약과의 전쟁, 출퇴근 전쟁, 질병과의 전쟁 등 힘겨워 하면서 날마다 전쟁입니다.
이러한 전쟁, 싸움이 싫다 하여 자신을 기피하고 방관하고 방치하고 있으면, 이 사람은 더 심한 패배자가 되고, 포로가 되고,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누가 말하기를 아름다운 꽃밭을 망가트려 버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꽃밭을 가꾸기 위하여 아무 일도 안하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면 꽃밭은 잡초가 무성하여져서 저절로 황폐하게 됩니다.
부부간의 사랑을 아주 간단하게 깨어 버리는 방법 중의 하나가, 매일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면, 쉽게 부부 사이가 깨어지지만, 그런 방법을 사용 안하고서도 자연스럽게 사랑을 깨어 버리는 방법은 남편은 아내가, 아내는 남편이 존재하지 않는 것같이 그냥 무관심 속에 내버려두면 쉽게 가정은 깨어집니다.
내 인생을 망치는 법은 방탕하게 생활하며, 법을 어기며 건강을 마구 해치면, 내 삶을 망칠 수가 있습니다.
그보다도 더 쉬운 내 인생을 망치는 법은 악한 세상이 돌아가는 대로 그냥 나를 마껴 버리면, 나는 저절로 망가져 버립니다.
그래서 망가진 인생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인생을 가장 멋있게 살은 사도 바울은 자신도 싸움을 싸웠다고 하였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얼마나 좋은지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번 오 권사님, 장모님의 임종을 바라보면서 오늘 본문이 생각이 났습니다.
임종 예배시 본문의 말씀을 대신 하였습니다.
88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셨는가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순간까지 온전한 정신으로 자세하나 흩트리시지 않으시고 말 한마디 실수 하시지 않으시고 바른 자세 그리고 합당한 말씀을 하시고 말로만 듣던 찬송을 하시면서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사람은 임종의 모습에서 그 사람의 살아온 삶을 볼 수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마도 예수님을 본받고 그리고 사도 바울을 본받은 믿음의 생활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생존의 싸움 얼마나 힘이 드십니까?
그러나 주어진 인생을 선하게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승리의 개가를 불러야 합니다.
이 자리에 그 누구도 인생의 패배자가 나오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이 부르실 때에 뜨뜻하게 찬송을 하시면서 갈 수 있는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떻게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습니까?
달려갈 길이 정해져 있습니다.
달려갈 길을 마치고 라고 했으며
고전9:26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백의의 천사로 널리 알려진 나이팅게일은 30세 되던 날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늘 내 나이 서른이 되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 나이이다. 주님, 저도 오늘부터 당신의 부르심에 따라 살겠습니다.
유치했던 생각은 버리고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주님의 목적에 순종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이팅게일은 많은 사람들을 섬기는 간호사로서의 헌신된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후에 한 기자가 성공적인 인생의 비결이 무엇이냐? 라고 묻자 그녀는 비결은 하나뿐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불러 주신 그 뜻에 나를 맡기고 끝까지 그 길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기로 결단하는 것은 내가 취할 선택입니다
아직도 내가 나아가야 할 인생의 방향과 목적이 잡히지 않고 방황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 설까?
무슨 유행가 가사 같이 부르고 있지 않습니까?
싸움을 승리하면 준비된 상급도 있습니다.
8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에비 되었으므로
하나님은 반드시 상을 주십니다.
이 땅에 살 때도 받고 장차 천국에서도 상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상의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다.딤후4:8에 기록된, 의의 면류관은 물론이고 약1:12의 생명의 면류관이었고 살전2:19의 자랑의 면류관, 벧전5:4의 영광의 면류관이다. 고전9:25의 썩지 않음의 면류관이 있습니다.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장래에 받게 될 미래의 면류관 이외에도 현대에도 받는 상이 있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벌을 받고 내가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상을 받고 살구나 하며 행복해 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갈6:7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가 받는 모든 것을 더하는 상이 있습니다. (마6:33)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받는 재물과 영광과 생명의 상이 있습니다. (잠22:4)
이 얼마나 다양한 상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면류관은 우승자를 위한 것입니다.
경기 내내 이를 악물고 열심히 뛴 선수의 몫입니다.
목구멍까지 차 오른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끝까지 달린 경주자를 위한 것입니다.
모든 경기 선수들이 그러하겠지만 몬테익의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영웅 황영조 선수가 한 말은 아직도 뇌리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가 도로변에서 경기를 위한 훈련을 할 때에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달리는 자동차에 그냥 뛰어 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달렸기에 월계수를 쓸 수 있는 영웅이 된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이 마련하신 면류관을 바라보았습니다.
험악한 세월을 보내느라 지친 몸이지만 훗날 영광스러운 승리의 면류관을 쓸 마음에 여유로움의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의의 면류관은 주님께 받은 직무를 성실히 감당한 자에게 주어집니다.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하여 흘린 땀방울에 대한 영광의 보상입니다.
편하게 대충해보자 그 순간은 좋을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돌아오는 것이 없고 크게 후회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최선을 다하여 새 성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온 힘을 다하여 힘겹게 헌신하는 자는 참으로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기회에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나중에 크게 후회가 되는 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하필 내가 어려울 때에 확장을 왜 하지 내가 마음은 없는 것은 아니야 형편이 형편인 만큼하고 스스로 합당한 변명을 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가장 합당하게 내게 지금 내가 속한 교회에서 기회를 주신 줄로 여겨집니다.
이번 기회를 통하여 최선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기회는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적당하면 하나님도 적당하게 다가 갈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전심을 다하면 하나님도 전심을 다 할 것입니다.
내가 전심을 다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는 하나님이 아시기 전에 먼저 자신이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오권사님 자랑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에 제 장모가 아니고 일반 성도라면 더 자랑을 했을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셨는지…….
제가 용돈도 제대로 들이지를 못했는데 병중에 계시면서 건축헌금 100만원을 하셨습니다.
제가 그 돈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립니다.
많고 적은 것이 아니라 그의 전부를 드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소천하시기 며칠 전에는 정신이 혼미하신데도 불구하고 나 같은 사람 권사로 세워주셨음에 감사하다고 하시고 찬송가에 5만원 감사헌금으로 드리라고 할 때에 이 돈을 받아 들고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교회 개척 당시부터 교회 출석하셔서 그 전에 다니시기는 하셨지만 화평교회와 더불어 믿음이 성장하셨습니다.
제가 담임 목회자 이지만 사위이기 때문에 장례 예배를 일산에 처형이 다니는 목사님께 부탁을 했습니다.
제 보다 오 권사님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발인 예배 때 드릴 말씀을 제가 우리 성도들에게 하는 것입니다.
누구하나 오권사님에 대한 빈축하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그냥 덕을 들어내시기만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만 날 뿐입니다.
권사님이 많이 힘들어 하실 때에 이 말씀을 묵상하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시92:12-14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어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그의 삶의 모습 그대로 이십니다.
제가 20-30년 장모님으로 함께 생활을 해 왔지 않았습니까?
가까이 집안 식구부터 친척 이웃까지 누구하나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위가 목사인 교회에 20년을 넘도록 출석하시면서 사위가 목사네 하실 만도 하신데 한 번도 그렇지 않습니다.
어제 지휘자 선생이 조문을 와서 하는 말이 오늘 이래야 목사님 장모님 이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지휘자 선생이 우리 교회 온지 몇 년이 되는데.....
이것은 누가 잘 못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오권사님이 너무나도 잘 하시고 나는 너무나도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오권사님 같은 삶의 미총을 거둘 수 있을까?
너무나도 부러울 따름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닮고 바울을 닮고 믿음의 선진을 닮고 그리고 내 주위에 본받을 분으로 오권사님이 계시는 것 같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다 승리하신 분들이십니다.
한국교회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세우시고 지금은 은퇴하신 모 목사님은 자신의 달려온 길을 이렇게 회고를 하셨습니다.
저는 50평생 목회를 하면서 얼마나 수많은 장애물에 걸렸는지 모릅니다.
세상에 살면 죄의 유혹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죄가 장애물이 되어서 발을 걸고넘어지며 달려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세상의 유혹의 장애물과 부귀영화 공명의 장애물이 있어서 그것이 발을 붙잡고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병고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마음과 몸이 병들어서 고통스러워 뛸 수 없게 낙심시키는 장애물인 것입니다.
생활고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먹고 살기가 힘들고 고통스러우니 복음증거도 다 집어 치워버리고 돈벌이나 하겠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이 한두 번 아닙니다.
실망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낙심되고 실망하여 천지를 봐도 깜깜하고 살 길이 없는 그런 장애물도 있는 것입니다.
시련과 핍박의 장애물도 있습니다. 시련도 다가오고 수많은 내적 외적 핍박도 다가옵니다.
장애물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평신도는 평신도로서 넘어서야 할 장애물이 있고 주의 종은 주의 종으로서 뛰어 넘어야 될 장애물이 있는 것입니다.
장애물을 없애달라고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장애물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해야 합니다.
비겁하게 피하고 무관심하게 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491장 험하고 높은 이 길을 싸우며 나아갑니다. 다시금 기도하오니 내주여 인도하소서 ......
나도 잘 감당하여 상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8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여러분 반드시 승리하셔야 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으로 내게 주어진 일을 피하지 말고요
그리고 상을 타셔야 합니다.
똑같이 믿음의 출발을 하였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10-12절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버리고 떠나는 자가 아니라 끝까지 함께하고 유익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사람만이죽음 앞에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하늘의 면류관을 바라 볼 수 있으며 기쁨으로 찬송을 부르며 이 세상을 하직할 수 있는 사람이 승리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로마 원형 경기장은 2000년 전에 세워진 운동장으로 5만 명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운동장 가운데 사자 같은 맹수와 사형수를 싸움을 시킵니다. 그러면 짐승의 밥이 되느냐 살아남느냐 둘 중에 하나였습니다. 맹수와 싸워서 이기면 살려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생명을 건 결사적인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이 때 사형수는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이라 그야말로 필사적인 싸움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에서 지냈으니까 이런 모습을 생각하며 감옥에서 자기는 선한 싸움을 일생 싸워 왔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인생길을 걸어간 사도 바울의 고백은 정말로 큰 도전이 되지 않습니까?
언제일지 모르지만내 인생의 마지막에도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감격적이고도 담대하게 고백하면서 인생을 마칠 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니 이 시간을 이런 승리의 쾌감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현세에도 내세에도 상을 들고 금메달을 이빨로 깨물어 확인하는 것 같은 기쁨이 나의 삶에 날마다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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