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말씀을 믿고 행하면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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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35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출애굽기 14:15-20 약속의 말씀을 믿고 행하면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이제 새 성전이 이번 주 토요일이면 인테리어가 끝이 나고 그 다음 주는 음향과 영상 그리고 성도석등 기물과악기 등이 셋팅이 될 것입니다.
저는 새 성전을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또한 위하여 기도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새 성전을 위하여 오랫동안 기도를 하였고 그리고 새 성전을 허락하심을 확신을 하고 일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확신을 하였는가? 말입니다.
누가 돈이 있어서도 아니고 무슨 돈이 준비되어 있어서도 아니고 어떠한 가능성이 인간적으로 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확신으로 다가 왔느냐는 것입니까?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또한 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그 증거로 성령의 감화 감동하심이었습니다.
믿음은 대단한 것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할 수 없는 중에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주저주저 하고 있는 자에게 주님은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야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고 하지 않았습니까?
새 성전은 틀림없이 믿음으로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왜요? 세상적으로 원하는 그런 조건이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믿습니다의 믿음이 아니라 이 믿음은 자신들이 드려지는 행동입니다.
믿음은 의지와 함께 하는 행동입니다. 의지만 있는 믿음은 신념에 불과합니다.
어떤 누구의 믿음으로 이루어짐을 확신을 할 수 있습니까?
저는 기도 했습니다. 누가 믿음으로 하겠습니까?
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을 기대하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김목사 믿음으로 하면 돼?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너 여태까지 뭘 믿고 왔느냐?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말이야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무엇이라고 하신 줄 아십니까? 주님 제가 주님을 믿습니다.
제 믿음으로 하겠습니다. 라고 고백을 하고 제 작은 믿음을 드리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한 번의 일회성의 믿음이 아니고 연속성이었고요 작은 믿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큰 믿음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온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아니 목숨까지라도 말입니다.
아하! 이게 믿음이구나?믿음을 드려보니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더라고요
하나님의 뜻에 꼼짝없이 나를 드리는 것이 믿음이었습니다.
마치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두고 고민하며 기도를 하십니다.
아버지 이 쓴잔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됩니까?
하고 기도하면 할수록 아니야? 내가 마셔야 할 잔이야 하고 다가오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 뜻대로 하옵소서
아하, 이게 믿음이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지난 금요 철야기도 시간에 제가 성도석 계약금 400백만 원이 당장 내일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야만 날짜에 맞게 규격에 맞게 성도석이 제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지금까지 자신의 믿음대로 한 것이 틀림이 없는데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믿음이 요구되었던 것입니다.
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무도 반응이 없기에 그래 내 믿음이 필요해 하고 있었는데 윤태형 집사님 임종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데 누가 믿음을 보이더라고요
아이고 여기 믿음이 있구나? 아니 힘들 텐데 괜찮아요 할 만하니 하는 것입니다.
아하? 인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것이구나?
저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요 인간적으로 받지 말고 믿음으로 받아야지 할렐루야!
우리 모두는 이런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여태까지 작은 무리로서 그리고 내 능력으로서 힘든 가운데서 믿음을 보였습니다. 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 말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참으로 이상하십니다.
지금까지 행한 믿음으로 만족하시지 않으시고 더 큰 믿음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가운데 이런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드린 내 믿음은 무엇이냐고 할 것입니다.
무슨 역사가 일어나고 무슨 기적이 일어나야 하지 않겠느냐? 고 할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그것을 이루어 주셔야 하지 않겠느냐? 고 하실 지도 모릅니다.
무슨 기적을 기다리거나 내 원하는 것을 이루어 달라고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은 내 자신을 다 드리는 것뿐입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주의 뜻에 따라서 헌신함이 믿음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 뜻대로 하옵소서 이게 믿음입니다.
벧스메스로 법궤를 메고 가는 암소가 송아지를 떼 놓고 가는 눈물을 흘리며 가는 것만으로 끝이 아닙니다. 자기가 끌고 온 수례를 부숴 번제단을 만들고 자신이 죽어 그 단위에 불살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무슨 기적만을 바라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지금보다 더 믿음적인자가 되시기를 원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가져야 할 믿음은 기적을 바라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내 자신을 드림이 요구되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에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하나님은 힘을 주시고 하나님은 역사를 하시고 하나님은 도와주시고 하나님은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기적이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성도는 내가 드려지는 믿음의 생활이 범사에 기적을 맛보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믿음은 언제든지 능치 못함이 없고 믿음이 길이요 믿음이 구원이요 믿음이 축복이요 믿음이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지금까지 드린 믿음보다 더 큰 믿음이 요구 되고 있습니다.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이 지금까지의 믿음으로 무슨 기대를 가지는 것을 원치아니하시고 여태까지 생각지도 못한 해보지도 못한 큰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홍해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이들은 믿음으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드린 믿음으로 가나안으로 나아가는 길에 만사형통해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하고 불평과 원망으로 바꿔져 있습니다.
이게 믿음입니까? 이게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무엇을 주시든지 받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면 무엇이든지 드리겠다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절대로 나쁜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내가 선별적으로 받으려고 하고 내 마음에 드는 것만 받으려고 하니 제대로 축복을 받지 못하고 인생의 길이 열리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아 와서 내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지 않습니까?
내 마음대로 살아 온 결과가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까?
믿음을 요구하시는 예수님을 보십시오
가시는 곳마다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 쫓으시고 그리고 축복을 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못 믿으시겠습니까?
자꾸만 자신의 소리만 하고 자기 변명에 자기 형편을 합리화 시키려고만 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은 자기변명이 없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온 천하는 여호와 앞에 잠잠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소리도 아닙니다. 저 소리도 아닙니다. 믿음은 소리가 없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하겠습니다 만이 있을 뿐입니다.
훈련된 군사들의 세계를 보십시오 자기변명이 통하지 않습니다.
명령에 죽고 사는 것뿐입니다. 변명 다 듣고 있으면 아무 일도 못합니다.
해서도 안 되고 하나님 역시 들어 주시지도 않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믿음은 말씀에 죽고 사는 것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온 이스라엘을 다녀보아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고 하시며 로마군인 백부장을 칭찬을 하셨습니다.
칭찬의 내용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듣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내가 이해되어야 듣겠다는 것 아닙니다. 내 형편에 따라 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잘되게 해 주시면 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맨날 내가 이해되어야 하고 내 형편에 맞게 해야 하고 잘되게 해 주시면 하겠다는 이런 모습만을 보이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당장 불평하고 불만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믿음이 무슨 일을 한 적이 있습니까?
아무 일도 이런 사람을 통하여 할 수가 없고 앞으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의 불만과 불신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믿고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리고 가나안 땅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갈수도 없고 옆으로 셀 수도 되었습니다.
가난안은 젓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인데 왜 못 가게 하느냐는 말입니다.
이 만큼 믿어 주었으면 됐지 더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만큼 믿어 주었는데 무엇인가 보여야 할 것 아니냐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아셔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내 믿음이 나를 이 만큼 이라도 인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멘
더 이상 불평과 불만을 낼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믿음의 도전이 필요할 뿐입니다. 할렐루야!
15-16절 너는 어찌 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가라지게 하라
내 자신의 형편과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정신분석학자인 메닝거는 오늘날 우리가 두려워하는 중요한 이유는 너무나 자신에게만 몰두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두려움이 생기는 이유는 자신에 너무 몰두해 있기 때문입니다.
돈 버는 일에 몰두하고 자식 키워 성공시키는 일에 몰두하고 너무나도 현실에 몰두합니다.
오늘날 정형적인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현대인들이 너무나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제가 새 성전을 준비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대하게 됩니다.
결론은 이해타산입니다.
이 공사를 해서 내가 얼마나 이익을 내느냐? 내지 못하느냐? 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까지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제 만큼은 이런 이해타산에서 벗어나자 내가 조금 손해 보면 누가 조금 이익을 보아 행복해 하겠지 그것도 내게 행복이요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꼭 내 손에 쥐어져야 만족이 아니라 내 대신 다른 이가 만족하면 그것 또한 나의 만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족이 나의 만족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잊어버리고 자기의 이해타산에만 몰두하니까 두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자기중심적입니다.
자신에게 처해진 일들만 보고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정말 자기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위기를 만나면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이는 자포자기 합니다. 어떤 이는 자살합니다.
어떤 이는 사고를 크게 내고 도망칩니다.
여기에 하나님은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정면 돌파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신앙인의 강함은 권력이나 무력이나 경제력이 아니라 철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보호하고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사실 외에 대적들과 친히 싸우시고 그의 백성에게 승리를 안겨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백성으로 하여금 알게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중에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방황하고 있는 자가 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없는 자가 있습니다.
모두가 믿음으로 돌파구를 찾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믿음이 하나님이 홍해라도 길을 열게 하십니다.그러면 내가 처한 환경에서 더 큰 믿음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심을 아셔야 합니다.
자연도 순복하는 하나님 앞에 한계성 있는 나의 지식과 지혜로 하나님의 놀라운 사건을 등한히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장 내 눈 앞에서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없는 것 아닙니다.
당장 내 눈에서 문제 해결이 안 된다고 길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동쪽에서 동풍을 일으켜 홍해를 가르고 계심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분명한 것은 여러분이 힘들고 어려울 때, 그리고 죽을 것 같은 상황이 눈앞에 있을 때, 주님은 절대로 그냥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의 길을 여는 하나님의 동풍은 지금도 불고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약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그리고 하나님 나를 사용하시면, 나는 하나님 역사의 주인공이 되며 세상 역사를 해방시키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이 기대됩니다.
이제 새 성전이 이번 주 토요일이면 인테리어가 끝이 나고 그 다음 주는 음향과 영상 그리고 성도석등 기물과악기 등이 셋팅이 될 것입니다.
저는 새 성전을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또한 위하여 기도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새 성전을 위하여 오랫동안 기도를 하였고 그리고 새 성전을 허락하심을 확신을 하고 일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확신을 하였는가? 말입니다.
누가 돈이 있어서도 아니고 무슨 돈이 준비되어 있어서도 아니고 어떠한 가능성이 인간적으로 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확신으로 다가 왔느냐는 것입니까?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또한 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그 증거로 성령의 감화 감동하심이었습니다.
믿음은 대단한 것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할 수 없는 중에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주저주저 하고 있는 자에게 주님은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야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고 하지 않았습니까?
새 성전은 틀림없이 믿음으로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왜요? 세상적으로 원하는 그런 조건이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믿습니다의 믿음이 아니라 이 믿음은 자신들이 드려지는 행동입니다.
믿음은 의지와 함께 하는 행동입니다. 의지만 있는 믿음은 신념에 불과합니다.
어떤 누구의 믿음으로 이루어짐을 확신을 할 수 있습니까?
저는 기도 했습니다. 누가 믿음으로 하겠습니까?
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을 기대하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김목사 믿음으로 하면 돼?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너 여태까지 뭘 믿고 왔느냐?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말이야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무엇이라고 하신 줄 아십니까? 주님 제가 주님을 믿습니다.
제 믿음으로 하겠습니다. 라고 고백을 하고 제 작은 믿음을 드리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한 번의 일회성의 믿음이 아니고 연속성이었고요 작은 믿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큰 믿음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온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아니 목숨까지라도 말입니다.
아하! 이게 믿음이구나?믿음을 드려보니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더라고요
하나님의 뜻에 꼼짝없이 나를 드리는 것이 믿음이었습니다.
마치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두고 고민하며 기도를 하십니다.
아버지 이 쓴잔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됩니까?
하고 기도하면 할수록 아니야? 내가 마셔야 할 잔이야 하고 다가오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 뜻대로 하옵소서
아하, 이게 믿음이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지난 금요 철야기도 시간에 제가 성도석 계약금 400백만 원이 당장 내일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야만 날짜에 맞게 규격에 맞게 성도석이 제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지금까지 자신의 믿음대로 한 것이 틀림이 없는데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믿음이 요구되었던 것입니다.
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무도 반응이 없기에 그래 내 믿음이 필요해 하고 있었는데 윤태형 집사님 임종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데 누가 믿음을 보이더라고요
아이고 여기 믿음이 있구나? 아니 힘들 텐데 괜찮아요 할 만하니 하는 것입니다.
아하? 인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것이구나?
저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요 인간적으로 받지 말고 믿음으로 받아야지 할렐루야!
우리 모두는 이런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여태까지 작은 무리로서 그리고 내 능력으로서 힘든 가운데서 믿음을 보였습니다. 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 말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참으로 이상하십니다.
지금까지 행한 믿음으로 만족하시지 않으시고 더 큰 믿음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가운데 이런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드린 내 믿음은 무엇이냐고 할 것입니다.
무슨 역사가 일어나고 무슨 기적이 일어나야 하지 않겠느냐? 고 할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그것을 이루어 주셔야 하지 않겠느냐? 고 하실 지도 모릅니다.
무슨 기적을 기다리거나 내 원하는 것을 이루어 달라고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은 내 자신을 다 드리는 것뿐입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주의 뜻에 따라서 헌신함이 믿음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 뜻대로 하옵소서 이게 믿음입니다.
벧스메스로 법궤를 메고 가는 암소가 송아지를 떼 놓고 가는 눈물을 흘리며 가는 것만으로 끝이 아닙니다. 자기가 끌고 온 수례를 부숴 번제단을 만들고 자신이 죽어 그 단위에 불살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무슨 기적만을 바라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지금보다 더 믿음적인자가 되시기를 원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가져야 할 믿음은 기적을 바라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내 자신을 드림이 요구되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에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하나님은 힘을 주시고 하나님은 역사를 하시고 하나님은 도와주시고 하나님은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기적이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성도는 내가 드려지는 믿음의 생활이 범사에 기적을 맛보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믿음은 언제든지 능치 못함이 없고 믿음이 길이요 믿음이 구원이요 믿음이 축복이요 믿음이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지금까지 드린 믿음보다 더 큰 믿음이 요구 되고 있습니다.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이 지금까지의 믿음으로 무슨 기대를 가지는 것을 원치아니하시고 여태까지 생각지도 못한 해보지도 못한 큰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홍해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이들은 믿음으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드린 믿음으로 가나안으로 나아가는 길에 만사형통해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하고 불평과 원망으로 바꿔져 있습니다.
이게 믿음입니까? 이게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무엇을 주시든지 받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면 무엇이든지 드리겠다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절대로 나쁜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내가 선별적으로 받으려고 하고 내 마음에 드는 것만 받으려고 하니 제대로 축복을 받지 못하고 인생의 길이 열리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아 와서 내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지 않습니까?
내 마음대로 살아 온 결과가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까?
믿음을 요구하시는 예수님을 보십시오
가시는 곳마다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 쫓으시고 그리고 축복을 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못 믿으시겠습니까?
자꾸만 자신의 소리만 하고 자기 변명에 자기 형편을 합리화 시키려고만 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은 자기변명이 없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온 천하는 여호와 앞에 잠잠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소리도 아닙니다. 저 소리도 아닙니다. 믿음은 소리가 없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하겠습니다 만이 있을 뿐입니다.
훈련된 군사들의 세계를 보십시오 자기변명이 통하지 않습니다.
명령에 죽고 사는 것뿐입니다. 변명 다 듣고 있으면 아무 일도 못합니다.
해서도 안 되고 하나님 역시 들어 주시지도 않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믿음은 말씀에 죽고 사는 것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온 이스라엘을 다녀보아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고 하시며 로마군인 백부장을 칭찬을 하셨습니다.
칭찬의 내용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듣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내가 이해되어야 듣겠다는 것 아닙니다. 내 형편에 따라 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잘되게 해 주시면 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맨날 내가 이해되어야 하고 내 형편에 맞게 해야 하고 잘되게 해 주시면 하겠다는 이런 모습만을 보이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당장 불평하고 불만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믿음이 무슨 일을 한 적이 있습니까?
아무 일도 이런 사람을 통하여 할 수가 없고 앞으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의 불만과 불신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믿고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리고 가나안 땅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갈수도 없고 옆으로 셀 수도 되었습니다.
가난안은 젓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인데 왜 못 가게 하느냐는 말입니다.
이 만큼 믿어 주었으면 됐지 더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만큼 믿어 주었는데 무엇인가 보여야 할 것 아니냐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아셔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내 믿음이 나를 이 만큼 이라도 인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멘
더 이상 불평과 불만을 낼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믿음의 도전이 필요할 뿐입니다. 할렐루야!
15-16절 너는 어찌 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가라지게 하라
내 자신의 형편과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정신분석학자인 메닝거는 오늘날 우리가 두려워하는 중요한 이유는 너무나 자신에게만 몰두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두려움이 생기는 이유는 자신에 너무 몰두해 있기 때문입니다.
돈 버는 일에 몰두하고 자식 키워 성공시키는 일에 몰두하고 너무나도 현실에 몰두합니다.
오늘날 정형적인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현대인들이 너무나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제가 새 성전을 준비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대하게 됩니다.
결론은 이해타산입니다.
이 공사를 해서 내가 얼마나 이익을 내느냐? 내지 못하느냐? 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까지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제 만큼은 이런 이해타산에서 벗어나자 내가 조금 손해 보면 누가 조금 이익을 보아 행복해 하겠지 그것도 내게 행복이요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꼭 내 손에 쥐어져야 만족이 아니라 내 대신 다른 이가 만족하면 그것 또한 나의 만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족이 나의 만족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잊어버리고 자기의 이해타산에만 몰두하니까 두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자기중심적입니다.
자신에게 처해진 일들만 보고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정말 자기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위기를 만나면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이는 자포자기 합니다. 어떤 이는 자살합니다.
어떤 이는 사고를 크게 내고 도망칩니다.
여기에 하나님은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정면 돌파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신앙인의 강함은 권력이나 무력이나 경제력이 아니라 철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보호하고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사실 외에 대적들과 친히 싸우시고 그의 백성에게 승리를 안겨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백성으로 하여금 알게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중에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방황하고 있는 자가 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없는 자가 있습니다.
모두가 믿음으로 돌파구를 찾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믿음이 하나님이 홍해라도 길을 열게 하십니다.그러면 내가 처한 환경에서 더 큰 믿음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심을 아셔야 합니다.
자연도 순복하는 하나님 앞에 한계성 있는 나의 지식과 지혜로 하나님의 놀라운 사건을 등한히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장 내 눈 앞에서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없는 것 아닙니다.
당장 내 눈에서 문제 해결이 안 된다고 길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동쪽에서 동풍을 일으켜 홍해를 가르고 계심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분명한 것은 여러분이 힘들고 어려울 때, 그리고 죽을 것 같은 상황이 눈앞에 있을 때, 주님은 절대로 그냥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의 길을 여는 하나님의 동풍은 지금도 불고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약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그리고 하나님 나를 사용하시면, 나는 하나님 역사의 주인공이 되며 세상 역사를 해방시키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이 기대됩니다.